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소녀의 눈동자 1939> 서평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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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2-0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행복희망꿈 2007-02-07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sokdagi 2007-02-07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07-02-0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요..^^ 감사함다..

짱꿀라 2007-02-08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07-02-08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섬사이님/ 저 거기 갔다가 방금 왔는데 언제 왔다 가셨네요^^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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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술술 읽히지 않았다. 배를 깔고 엎드리거나 갓 뽑은 커피를 마시며 이 책을 읽었다는 걸 작가에게 사죄하고 싶다. 지옥같은 내용을 서술하는 담백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따라가면서, 최대한 자제심을 발휘하여 안정적인 마음을 취하고자 하는 작가의 극한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 곳곳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넘어가야 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후 40여년에 걸쳐 증언의 글을 남겼다.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증언록이다. 그는 1987년 4월 11일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혹독한 ‘절멸의 수용소’에서도 하지 않았던 일을. ‘자살’은 사유가 가능할 때 할 수 있는 삶의 또 다른 적극적 방식이다. 수용소에서는 인간임을 자각할 수 있는 사유가 불가능했다. 그는 증언의 문학을 일관성 있게 발표하면서 우리 시대에도 끊이지 않고 있는 파시즘을 경고하고, 아우슈비츠에 대한 모든 증언을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붉은 신호등으로 밝히고자 했다. 그가 자살을 하기 직전에 쓴 문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 <결론>에서 인용한 일부가 이 책의 부록에 실려 있다.


- 점점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일종의 의무로, 동시에 위기로 본다.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위기, 귀 기울여지지 않을 위기,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넘어서 혹은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어떤 근본적인 뜻밖의 사건을 집단적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뜻밖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이다. (......) 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p338)


아우슈비츠나 독일군에 의한 유대인 핍박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많고 책도 있지만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부록 1 ‘독자들에게 답한다’에서 친절하게 덧붙이고 있는 작가 자신의 사려 깊은 생각은 더욱 값지다. 독일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극도로 표출하지 않은 담담한 서술, 집단적 반란을 하지 않았던 유대인들, 유대인에 대한 나치스의 광적인 증오에 대한 근본적 이유, 그리고 작가가 생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요인들에 대한 답변 등이 역사적, 철학적 사유와 함께 녹아있다. 청소년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식인데 작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들이다.


증언과 기록의 글, <이것이 인간인가>가 오랜 세월동안 읽히며 감동의 물결을 밀고 오는 이유는 이 책이 단지 기록에서 끝나지 않고 문학적으로 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1943년 12월 13일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되어 폴란드 수용소로 걸어가는 길을 ‘여행’이라는 소제목으로 표현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꿈꾸고 그리워했던 것 중에 ‘먹는 것’과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거의 집단적인 꿈이었다. 탄탈로스의 신화처럼 영원한 기아와 갈증에 허덕이면서도 지난날을 소재로 혹은 돌아갈 집을 소재로 이야기들을 나눌 때면 암흑의 지하세계에서도 환영처럼 반짝 하는 햇살 한 줄기를 본 것인 양 행복해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를 원한다. 이야기 속에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 금기어 중에 '내일 아침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내일 아침'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이야기로서의 장점을 두루 지닌다. 사실적이면서도 적나라하지 않고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어조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있다. 당연히 1인칭시점의 서술이지만 인물들을 보는 눈에 상당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특히 작가가 주변을 보는 눈이나 인물들을 파고드는 눈은 과학자답게(실제로 화학자) 섬세하고 면밀하다. 결코 치우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천착을 놓지 않는다. 그가 절멸의 수용소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생의 값진 소득이라고 여길 수 있는 힘도 인간성에 대한 나름의 연구,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 기인한다. 인간성의 연약함, 인간이 열망하는 자유, 그래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일련의 일들을 증언하며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한 진지한 답변을 스스로 하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혀만을 휘두른 이야기라면 오랜 감동을 줄 수 없을 테다. 그는 인간성의 위대함만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인간성의 허약함'은 또 다른 아우슈비츠를 낳을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를 흘려듣지 말아야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징후들은 사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잔인한 얼굴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 얼굴은 실체가 없다. 이미지만으로도 괴력을 발휘하는 집단적, 총체적 두려움이다. 독일군이나 독일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왜 표현되지 않았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작가는 얼굴 없는 대상에 대고 어떻게 분노를 터뜨릴 수 있는가 라고 답변했다. 증오하지만 표적의 대상으로는 막연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인간이 갖는 공포심의 본질이 아니던가.


<이것이 인간인가>가 문학적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는 작품 전체에 장치되어 있는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이다. 작가는 수용소로 가는 길, 일 년 남짓의 수용소 생활과 퇴각하는 열흘간의 이야기까지 흘러오면서 내내 ‘지옥’을 연상하였음이다. 총 17장의 이야기 중 ‘오디세우스의 노래’ 에서는 단테가 집중적으로 인용된다. 나는 이 장에서 다른 어떤 생생한 증언이나 기록에서보다,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 슬픔의 극치를 느꼈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과 인간임을 포기할 수 없어 감당해야 했을 자멸감이 절정에 이르러, 직설적 어조보다 울림이 깊고 강했다.


...... 단테는 어떤 사람인가. <신곡>은 무엇인가. <신곡>이 무엇인지를 간단하게 설명하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신선하고 낯선 감정이 생겨난다. ‘지옥’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거기서 어떤 벌을 받는지.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이고 베아트리체는 신학이다.(p171)


동료, 피콜로에게 귀와 머리를 열어 잘 들어보라며, 날 위해 이해해 달라며, 읊는 아래의 노래는 프리모 레비의 참담한 심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에게 전한다.


-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德)과 지(知)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마치 나 역시 생전 처음으로 이 구절을 들은 것 같았다. 날카로운 트럼펫 소리,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잠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피콜로가 다시 들려달라고 간청한다. 피콜로는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그는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나를 위한 일임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p174)


그는 ‘익사한 자’가 아니라 ‘구조된 자’였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작가 자신의 대답은 이 책의 제목이 반문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정직한 답변으로 들린다. 인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암흑과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소에 널리 퍼져 많은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 이라고 스스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가 입은 트라우마는 4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끝내 그를 자살로 몰고 갔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두 군데 오기와 한 군데 띄어쓰기 오류는 옥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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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0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참고로 밑에 있는 책 참고 하시면 도움이 되실 같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신영복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서준식선생님의 “옥중서한”
서경석선생님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프레이야 2007-02-0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좋은 책과 추천도서 감사드려요.^^
권해주신 책들 중 세권은 담아두겠습니다. 한권은 있는 것이라...
특히 이 책을 읽고나서, 주기율표, 를 읽어보고 싶더군요.

스파피필름 2007-02-0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인듯 싶네요.. 보관함으로 쏙~ ^^

프레이야 2007-02-07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피필름님/ 후회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달팽이 2007-02-0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감동적인 글입니다.
처음 리뷰를 올릴 때 시간이 없어 빨리 읽었는데...
레비의 자살로 끝난 그의 삶이 왜 수용소에서 그를 끝까지 지켜주었던 인간에 대한 관찰과 수호의지의 은혜를 더 받지 못했는지 안타깝습니다.
사실 인간 내면에 존재한 악의 본성인 루시퍼는 인류역사와 더불어 그 얼굴만 달리했을 뿐 늘 우리 곁에서 존재했는데 말이죠..

푸하 2007-02-08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셨군요. 저도 조만간 보려는 책인데 그 때를 위해 아껴서 리뷰를 읽어야 겠습니다.

오우아 2007-02-0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눈물겨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좋은 리뷰 잘읽었습니다.

sokdagi 2007-02-0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가슴 적시는 리뷰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쓸 수 있는지 부럽기만 하네요.^^
님이 설명해 주신 구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까 봅니다.

프레이야 2007-02-08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고맙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악설이 좀더 맞는 것 같지요? ^^
푸하님/ 전 어떤 책을 읽기 전에 다른 사람의 리뷰를 보지 않는 편입니다.
님도 아마 그러시는 게 좋을 듯해요. 그러실 것 같지만요. 님의 리뷰 기대해도
되지요?
오우아님/ 반갑습니다. 극도로 억누르고 있는 분노가 슬픔으로 뭉쳐있더군요.
이런 일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레비는 그걸 내다보기라도 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sokdagi님/ 에고, 감사합니다. 다시 보면 다시 북받칠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7-02-1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서가님의 깊은 사유도 기대됩니다.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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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지속적인 모든 행복을 오염시키듯, 이것들은 또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파편화하고, 그만큼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여행 중에 그리고 그후에도, 끝도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18쪽

그러니까 나는 바닥에 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을 경우 과거와 미래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것을 아주 빠르게 배워나간다. 수용소에 들어온 지 보름 뒤에 나는 이미 규칙적으로 배가 고팠다. 자유로운 인간들은 알지 못하는, 밤이면 꿈을 꾸도록 만드는, 우리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만성적인 허기다.-50쪽

음악의 곡조는 열두 개 정도밖에 되지 않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똑같다. 행진곡이나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민요다. 그 곡조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아마 수용소의 기억 중 우리가 가장 나중까지 잊지 못할 것일 게다. 그것은 수용소의 목소리이고 그 기하학적 광기를 지각 가능한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먼저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말살시킨 다음 나중에서야 서서히 우리를 죽여버리려는 그들의 결단을 예리하게 표현한다.-73쪽

우리의 밤은 그렇게 흘러간다. 탄탈로스의 꿈과 이야기의 꿈이 점점 더 구별하기 힘든 이미지들의 천으로 짜여나간다. 굶주림과 구타, 추위와 노동, 두려움과 혼란으로 뒤범벅된 낮의 고통이, 밤이 되면 전대미문의 폭력이 담긴 무형의 악몽으로 변한다. 자유로운 삶에서는 열에 들뜬 날 밤에나 나타나는 것들이다. 매순간 공포로 얼어붙어, 사지를 떨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명령을 외치는 듯한 느낌 속에서 잠을 깬다.-92쪽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근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며, 그래서 우리가 수용소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삶에서, 인간이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말을 그토록 자주 듣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110쪽

절도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단어는 'klepsiklepse'인데, 그리스어에 그 어원이 있는 게 분명하다. 테살로니키의 유대인 거주지에서 온 사람들 중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생존자들은 스페인어와 그리스어, 이 두 개의 언어를 사용했고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그들의 존재야말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의식적인 지혜의 보고로, 그 지혜 속에 지중해 문명의 모든 전통이 뒤섞여 있다. 이 지혜가 수용소에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도둑질 및 자리 강탈, 물물교환 시장의 독점으로 변형되었지만, 이유 없는 잔인성에 대한 그들의 혐오감, 적어도 잠재된 인간의 존염성을 지켜내려는 그들의 놀라운 의식이 그리스인들을 수용소에서 가장 민족적인, 그리고 이런 점에서 가장 문명화된 집단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120-121쪽

얼굴 없는 그들의 존재가 내 기억 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악을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할 수 있다면, 나는 내게 친근한 이 이미지를 고를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뼈만 앙상한 한 남자의 이미지이다. 그의 얼굴과 눈에서는 생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136쪽

유대인 특권층들이 만들어내는 인간상은 슬프면서도 주목할 만히다. 현재,과거,고래의 고통들, 이방인에 대한 전승되고 학습된 적개심이 그들 안에서 하나가 되면,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비사교적이고 무례한 괴물로 만든다. 그들은 독일 수용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작품이다. 노예 상태에 있는 몇몇 개인에게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높은 생존 가능성이 제공되는데, 대신 그들은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배신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물론 몇몇은 그 요구를 받아들인다.-137쪽

우리는 '허기'라는 말을 쓴다. '피로', '공포', '고통'이라는 말도 쓴다. '겨울'이라는 말도. 하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것들이다. 자기 집에서 기쁨을 즐기고 고통을 아파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자유로운 단어들이다. 만일 수용소들이 좀더 오래 존속했다면 새로운 황량한 언어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영하의 날씨에 바람 속에서 셔츠와 팬티, 올이 성긴 천으로 만든 윗도리와 바지만 입은 채, 더할 수 없이 허약해지고 굶주린 육체로, 종말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하루종일 노동하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189쪽

코만도의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그러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 내가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침에 내가 사나운 바람을 피해 실험실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내 옆에 한 친구가 등장한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다, 카베에서나 쉬는 일요일마다 마타나던 친구다.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내게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216쪽

지금 나는 아우슈비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시대에 그 누구도 신의 섭리에 대해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간, 극한 상황에서 구원을 받는 성서의 모든 일화들이 바람처럼 모두의 머릿속을 스쳤던 것은 사실이다.-241쪽

우리 존재의 일부분은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눈에 하나의 사물일 뿐인 시절을 보낸 사람의 경험이 비인간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세 사람은 대부분 거기에 물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샤를과 나의 우정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다.-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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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7-02-0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으로 머리로 읽을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읽을 책이네요... 휴...

프레이야 2007-02-0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인님, 좋은 책이더군요. 특별한 감동을 줍니다...

달팽이 2007-02-0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별한 감동, 맞아요..
 
 전출처 : 水巖 > 오규원 - 안개

                          
                                           - 오      원 -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
              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나의  하체를  지웠다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허공에    있었다
              나는  이미  나의  지워진    손으로
              지워진  하체를      쳤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강변에서      소리를  냈다

 

1941 경남 밀양 출생.  
          동아대 법학과 졸업.  
1968 <현대문학>에 시<몇 개의 현상>이 추천되어 등단.  
1982 현대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분명한 사건(事件)>    한림출판사  1971
시집 <순례(巡禮)>    민음사  1973
시집 <사랑의 기교(技巧)>    민음사  1975
시집 <왕자(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 지성사  1978
시집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抒情詩)>    문학과 지성사  1981
시집 <희망 만들며 살기>    지식산업사  1985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    문학과 지성사  1987
수필집 <아름다운 것은 지상에 잠시만 머문다>    문학사상사  1987
시집 <하늘 아래의 생(生)>    문학과 비평사  1989

2007. 2. 2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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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2-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답게 시를 남기고 가셨더군요.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툭툭 두드리며 하늘로 돌아가셨겠지요.
 
 전출처 : 짱꿀라 > 제자 손바닥에 손톱으로 마지막 시를 쓰고 떠나다 - 오규원 시인

# 평생을 시 창작에 몰두하시다가 돌아가신 고 오규원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 세상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시작품만을 남기고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가셨습니다. 혼신을 다해 작품을 내셨던 분을 볼 수는 없지만 선생님의 혼이 실린 작품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작가소개
   오규원 : 1941년 경남 삼랑진에서 태어났다.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대를 졸업했다. 교사, 회사원, 출판인 생활을 하다가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 <순례>, <사랑의 기교>,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사랑의 감옥>,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등이 있고, 시론집으로 <현실과 극기>, <언어와 삶>, <날이미지와 시>, <현대시작법> 등이 있다.

(2007년 2월 5일 조선일보기사)
제자 손바닥에 손톱으로 마지막 시를 쓰고 떠나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 마지막으로 쓰고 가신 작품 -

시인은 의식이 남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썼다. 지난 2일 폐질환으로 타계한 오규원 시인(1941~2007)이 병상에서 제목이 없는 4행시 한 편을 남겼다. 오 시인이 가르쳤던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 문인들은 4일 “지난 1월21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던 선생님이 손톱으로 마지막 시를 쓰셨다”고 전했다.

당시 의식을 잃기 직전 상태였던 오 시인은 간병 중이던 제자 시인 이원씨의 손바닥을 찾았다. 그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손톱으로 제자의 손바닥에 시를 한 자 한 자 새겼다. “선생님은 처음 3행을 썼다가 한참 시간을 들인 뒤 마지막 한 행을 썼다”고 제자는 전했다. 스승의 빈소에 모인 제자들은 “마지막 시구는 2연의 첫 행일지도 모르지만, 4행을 한 편의 시로 편집하자”고 뜻을 모았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고 쓴 시인의 장례식은 5일 오후 2시 강화도 전등사에서 수목장으로 진행된다. 제자인 이창기 시인은 “선생님께서 의식을 잃기 전까지 유골을 화장해달라고만 말씀하셨는데, 수목장은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유족들이 결정한 것”이라며 “선생님의 시가 마치 사후의 일까지 내다보신 것 같다”고 말했다.

                               

 
오규원 시인은 한국 시단에서 언어 탐구의 거목이었다. 초기시에서부터 ‘추상의 나뭇가지에 살고 있는 언어’(시 ‘몇 개의 현상’ 부분)를 탐구했던 그는 결국 나무 아래에 묻혀 영면을 취한다. 그는 ‘사랑의 기교’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등의 시집과 ‘현실과 극기’ 등의 시론집을 통해 시적 언어의 투명성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서 독특한 시세계를 일궜다. 또한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1982~2002)를 지내면서 수많은 제자 문인들을 키웠다. 80년대 이후 시단에 진출한 양선희 박형준 윤희상 장석남 함민복 이병률씨 등 젊은 시인들을 지도했을 뿐 아니라 소설가 신경숙 하성란 조경란 강인숙 천운영씨 등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규원 시인은 말년에 만성폐쇄성폐질환이란 희귀병을 앓으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 반딧불이가 살 정도로 공기가 맑은 경기도 양평의 전원주택에 칩거하던 그는 지난 2005년 9번째이자 마지막 개인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를 펴내면서 ‘날(生) 이미지 시’를 제창했다. “존재의 현상 그 자체를 언어화하자는 것”이라고 ‘날 이미지 시’론을 설명했던 그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 오규원 선생님의 시 두편은 소개한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 시인  오규원

비상하는 새의 꿈은
날개 속에만 있지 않다 새의 꿈은
그 작디작은 두 다리 사이에도 있다
날기전에 부드럽게 굽혔다 펴는
두 다리의 운동 속에도 그렇고
하늘을 응시하는 두 눈 속에도 있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우리의 몸 속에 숨어서 비상을
욕망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을 보라
언제나 미래를 향해 그것들을 반짝인다

모든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잎이나 꽃의 힘에만 있지 않다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막막한 허공에 길을 열고
그곳에서 꽃을 키우고 잎을 견디는
빛나지 않는 줄기와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깜깜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숨어서 일하는 혈관과 뼈를 보라
우리의 새로움은 거기에서 나온다

길이 아름다운 것은
미지를 향해 뻗고 있기 때문이듯
달리는 말이 아름다운 것은
힘찬 네 다리로
길의 꿈을 경쾌하게 찍어내기 때문이듯
새해가 아름다운 것은 그리고
우리들의 꿈이 아름다운 것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비상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과
하늘로 뻗는 줄기와 가지가
그곳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1

들은 길을 모두 구부린다
도식주의자가 못 되는 이 들[平野]이
몸을 풀어
나도 길처럼 구부러진다

2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길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나를 멈춘 자리에 다시
웅크린 이슬로 여물게 한다

모든 길은 막막하고 어지럽다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이 보이고
지워진 길을 인도하는 풀이 보이고
들이 기르는 한 사내의
편애와 죽음을 지나

먼길의 귀 속으로 한 발자국씩
떨며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을 사람들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순례 序」 부분, 2 ;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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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2-0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신문에서 시인의 기사를 읽으며 책꽂이를 더듬어보니 시집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가 있더이다. 책을 펼쳐보니 '늦가을 광화문에서 만난 사랑 하나'라는 메모가... 너무 일찍 가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