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처녀들 / 뮤리엘 스파크 / 김재욱 옮김
The Gilrs of Slender Means



9월의 첫날, 아직 여름기운이 짱짱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다르다. 여름 동안 좋은 일들이 있었고,
습관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끼지만
계속 지구력을 잃지 않기를.
한여름에 뜻밖의 선물을 두 권 받았다.
뮤리얼 스파크는 에든버러 출생으로 작품이 아주 많다.
이 책은 친절한 번역자주와 잘 읽히는 좋은 문장이 돋보인다.
에든버러 출생 뮤리얼 스파크도 알게 되었다.
작품이 아주 많다. 차츰 읽어보고 싶다.
부산점자도서관에 한 권 기증하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낭독녹음 도서로 읽을 생각이다. 에세이류 하느라 한동안
뜸했던 소설 낭독이 기다려진다.



비평가들이 《가난한 처녀들》에 재주목하는 이유도, 전쟁의 폭력성과 애도에 집중하던 당시 영미 문단에서 이 소설은 “독일과 일본의 항복이라는 두 차례의 종전 사이” 짧은 기간과 당시 영국의 분위기 및 생활상을 집중 조명한 몇 안 되는 전후소설이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구시대의 상징인 처칠을 축출하고,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삶을 보장한다는 복지국가 이념을 정초하고 전후 유럽과 미국의 사회보장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베버리지 보고서》를 구매하려고 배급품 줄보다 더 긴 줄을 섰다. 이런 재건의 꿈에 부푼 당대의 분위기를 《가난한 처녀들》은 그대로 펼쳐 보인다. - 출판사 책소개 중



그녀는 5월의 테크 클럽을 이상적인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계량기에 동전이나 꽂아 넣어 가며 사는 여자의 삶에 황금시대의 아름답고 무심한 가난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정신 박힌 여자라면 가난을 그저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 전에 일시적이어야만 할 무언가로 여길 터였다. -98쪽



공교롭게도, 이 소설 출간 3일 후인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했다. 이 뉴스는 소설 전반에 깔린 냉정한 죽음, 혹은 그 수용의 정취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단숨에 《가난한 처녀들》의 판매량을 수직 상승시켰다. 《가난한 처녀들》은 출간 몇 주 만에 영미 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기류가 감도는 와중에 ‘5월의 테크 클럽’이라는 여성 전용 하숙집에 찾아든 “키가 큰 무정부주의자 시인 비슷한” 남자와 열한 명의 개성 넘치는 ‘아가씨’들이 벌이는 깃털보다 가볍고 심연보다 더 깊은 사랑과 구원 이야기에 독자들이 그토록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 알라딘책소개 중


번역자 김재욱의 다른 책
<데이비드 댐로쉬의 세계문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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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4-09-0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습니다. 여전히 낭독하시고 녹음하시고 멋집니다!!! 이제 가을이 오나 봅니다. 여전히 덥지만 그래도 짧아진 해가 가을을 재촉하는 것 같아요. 건강하시고 9월 첫째 주 화이팅 입니다^^

프레이야 2024-09-02 12:4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꼬마요정 님^^
무더위가 더디 가려나 봐요. 육냥이랑 잼나게 지내시죠. 구월이라니 한 해가 후딱입니다.
화이팅이에요 !!

페크pek0501 2024-09-0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잘 안 들어오다 보니 프레이야 님이 새로 올린 글도 이제야 보네요.
앞으로는 읽는 만큼 글도 써야겠어요. 그동안 너무 독서에 치중해 산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이 읽지는 못했다는...
시간은 자꾸 가는데 나이는 먹어 가는데... 짧게 단상이라도 쓰려고 합니다. 프레이야 님도 예전처럼 자주 글을 올려 주시고 책 소개도 해 주시면 좋겠네요.^^

프레이야 2024-09-03 14:54   좋아요 1 | URL
네. 페크님 짧게라도 단상을 올려 볼게요 ^^

희선 2024-09-05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월이 가고 구월이 왔네요 팔월보다 시원해지기는 했지만, 낮엔 여전히 덥습니다 팔월보다는 나아서 다행이다 생각해야겠네요 다음 낭독녹음할 책은 《가난한 처녀들》이군요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재미있게 보셔서 하시는 거겠네요


희선

프레이야 2024-09-05 07:32   좋아요 1 | URL
한낮엔 많이 더워도 아침저녁으로 좀 낫지요. 적응해 가는 거 같아요 모두. 건강 조심하시고요. 주변에 코로나 걸리는 사람들도 제법 있더군요. 여자만의책장 끝내면 바로 가난한처녀들^^
 
여자만의 책장 -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
데버라 펠더 지음, 박희원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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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녹음 시작 107쪽 / 571쪽
파일 1,2,3,4,5번 완료.

여성의 삶을 바꾼 책으로 데버라 펠더가 뽑은 50권의 책
원본 표지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와 있는 표지를 실어 두어 보기에 좋다. 각 장의 간지 역할도 한다.
오늘은 “겐지 이야기”에서 시작해 “작은 아씨들”
초반 부분까지 읽었다.

저번달에 “사물의 표면 아래” 녹음 완료.
팔월엔 이 책 완료하려면 앞으로 23시간 정도
더 소요 예정.

점자도서관을 나와 가까이에 있는 용운사에 잠시 들렀다.
아빠 49재를 올렸던 절이다. 그냥 가보고 싶었다.
그땐 2월이었고, 계절이 그동안 여러번 바뀌었다.
스님이 대웅전 옆 조그만 암자 지붕의 뭔가를
긴 작대기로 건드리고 있었다. 하늘이 몹시도 파랬다.
날 본 순둥이 개가 몇 번 짖어대다 말았다.
고요한 절 마당을 나오는데 흰 양말 신은 고등어무늬
고영희 씨가 저물어가는 그늘에 앉아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고. ^^

미디어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여성이라는 1980년대식 ‘슈퍼우먼‘ 신화를 적극적으로 내세웠고, 수전 팔루디는 이 현상을 "여성의 권리에 가하는 반격, 즉 백래시이며 페미니스트의 활동으로 어렵게 이뤄낸 여성의 작은 승리 한 줌마저 무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팔루디는 1991년 발표한 「백래시에서 이 현상을 파고든다. 이어서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여성들의 글을 모은 캐시 하나워의 [그래, 난 못된 여자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골랐다. 21세기 여성 문학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어떤 경험을 할지에 달려있다.
독자 여러분도 몇백 년에 걸친 여성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각자 마음속으로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작품을 소개함과 동시에 작품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깨달음과 눈부신 기쁨을 담은 이 책에, 여러분이 후보로 고려해볼 만한 작품을 선정해보았다. 앞으로도 새로운 이야기와즐거움을 선사하며 발전할 여성 글쓰기의 세계,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빌리면 "글이라는 완전한 진술"이 가득한 서재에 들어서는 이들에게 이 책이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머리말 중 - P14

시골에서 벌어지는 추한 이야기에 혐오와 매혹을 동시에 느낀 플로베르는 ‘성 귀스타브의 날‘이라고 기릴 만한 1851년 9월 9일, 자신이 창조한 세계와 인물을 완전히 꿰뚫어 보기까지 5년에 달하는 고생길에 들어섰다. 플로베르는 연민과 풍자를 결합해 물질적 만족, 과학과 진보에 대한 믿음, 종교가 주는 위안, 사랑과 정열의 고귀한 힘 등 당시 사회에 만연한 환상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일에 착수했다. 다른 소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극적이고 낭만적인 자극 대신 갑갑한 부르주아적 삶의 하찮고 사소한 부분을 드러내며 ‘무에 관한 책‘을 쓰고자 했다. 사건이 아니라 인물의 의식으로 이야기를 엮으려 했고, 단어와 심상, 장면이 모두 아래에 깔린 의미 체계로 이어지도록 하는 ‘딱 맞는 단어‘를 추구했다. - P97

플로베르는 1856년 보바리 부인』을 완성하고 먼저 《르뷔드 파리>에 연재했다. 작품에 딸려올 게 빤한 폭풍 같은 논란을 피하려 어떤 부분은 잘라내기도 했지만 다른 부분은 편집자와 논쟁한 끝에 그대로 유지했다. "차라리 전체를 반박하면 모를까, 자네는 세세한 부분을 문제 삼고 있어. 이 작품의 냉혹함은 외양이 아니라 본질일세. 작품의 ‘피‘를 바꿀 수는 없어. 묽게 할 수 있을 뿐이지."
플로베르는 풍기문란과 종교 모독으로 기소되어 재판받게 되었고, 재판이 반어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노고를 인정해주고 문학을 장려한다고 생각하며 씁쓸하게 유죄판결을 예상했다. 그러나 무죄가 선고되면서 소설은 악명높은 문제작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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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9-05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쓰셨을 때는 스물세시간이나 더 녹음을 하셔야 했군요 다 하셨겠지요 다 끝냈을 때 기분 좋으셨을 것 같네요 다른 여름보다 무척 더운 여름에 하셔서 기억에 더 남을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4-09-05 07:29   좋아요 1 | URL
희선 님 안녕하세요^^
이제 반 정도 했어요. 조금 천천히 할 것 같아요 학기 시작해서. 내용이 좋습니다. 책에 소개된 책들의 계보를 따라 다 읽으면 더 좋겠어요.
 

낭독녹음 5시간. 파일6,7,8,9,10.
86-166쪽 완료



흥미로운 내용들이 이어지며, 연계하여 찾아볼 인물들.
정말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것들이 많다.
저자는 자료에 근거를 두고 가려진 사실과 진실을 쓰면서
정확하고 신랄한 시선과 함께 따스한 어조를 잃지 않는다.



전쟁과 추모
루퍼트 브룩 / 병사
존 매크래이 / 플랑드르 들판에서
윌프레드 오언 / 복되고 마땅한 일


에베레스트 등정
조지 핀치 1922
1953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


https://www.facebook.com/61550693436760/posts/pfbid02DSuuGNEVUiU1XPhec8RTRHGeokZBkkQfAqfhMQyxjBiognL95AnCdAf2j8fwcnQal/

1953년, 마침내 승리가 도래했다. 에베레스트 원정을 오직 참된 영국 신사의 몫으로만 두고자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던 아서 힝크스는 영국인이 아닌 뉴질랜드 출신 양봉업자이자 제국 변경 중의 변경 출신인 농부 에드먼드 힐러리와 대담한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의 원정이 대서특필되는 것을 살아서 보지 못했다. 역사를 쓸 각오만 된 것이 아니라 역사 자체를 뒤집을 운명이었던 노르가이는 신체 능력으로 이룩한 단번의 업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정의를 바꿔놓았다. - P161

1차 세계대전은 끝난 지 한 세기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상상에 한결같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전쟁이 무고한 수백만 생명에게 안긴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윈스턴 처칠이 "피로 물든 폭력의 세기"라 부른 시기에는 한층 거대한 참상도 벌어졌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이 전쟁에서 싸운 남성들의 성격과 이들이 체현한 가치다. 자기 자신에게 골몰하는 문화에서는 너무나 보기 드물어서인지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우러르는 자질 말이다. 이들은 신중과 범절을 아는 사람들이었고 자기 일로 세계를 어지럽히기를 꺼리는 세대였다. 감정을 분석에 맡길 생각은 없었어도 남성성에 자신이 있었기에 남자 간의 사랑을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하고 동틀 무렵에 나비를 채집하고 오전 느지막이 수채화를 그리고 점심을 먹으며 키츠와 셸리를 논하고도 땅거미 질 때는 독일군 전선을 공격할 태세를 갖출 수 있는 개인이었다. 우리가 다시는 볼 수 없을 부류의 남성이었다. 이들의 말과 행적은 하나의 증표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남성들이 우리의 조부 세대였다는 사실이리라.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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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7-08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여전히 낭독 봉사 열심히 하시네요. 이 책 최근작인데 벌써 낭독까지... 멋지세요. 오랫만에 인사드리니 더 반갑네요. 저도 요즘 드문드문했는데 프레이야님도 드문드문이었던거 맞죠? ^^

2024-07-08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8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9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7-09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한국말로 옮긴 책을 또 녹음하게 돼서 기쁘시겠습니다 내용도 좋은가 봅니다 프레이야 님 마지막까지 즐겁게 녹음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4-07-09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29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29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비탄이 든 권총을 든 13세 소년이었다. 경찰이 이들에게 접근해 소리쳤고, 놀라 달아나던 소년의 손에 든 총을 보고 권총을 쏘았다. 미얀마 소수민족, 그 엄마가 우는 얼굴 위로 뉴스 화면에 뜬 미얀마 소년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본 뉴스이고, 웨이드 데이비스가 첫 장 “이것이 미국이다”에서 자세히 다룬 일의 극히 일부분이다.


# 사물의 표면 아래 / 너머를 보는 인류학
Beneath the Surface of Things
지은이 Wade Davis. 옮긴이 박희원 / 아고라

오늘 부산점자도서관에서 녹음 시작
5시간 연이어 86쪽까지 파일5번까지 완료.
편집 상태 따라 책마다 다른데 이 책은
한 파일에 15쪽 정도가 담기는 걸로 보아 앞으로
16시간 정도 더 소요될 것이다.
상당히 매력적으로 읽힌다.

Franz Boas 1858-1942 미국 문화인류학자.

인류학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학문으로 사물의 표면 아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 양식과 다른 사고방식, 다른 삶의 비전이 실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 앞에서, 우리가 이 지구에 거주하는 근본 양식을 반드시 바꿔야 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는 우리 문화 내부의 말은 거짓이 된다. 인류학은 순혈주의의 해독제이자 혐오의 적이요, 선동가의 수사를 침묵시켜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 (미국인과 캐나다인 남성만으로 2016년에 구성된 극우 집단 - 옮긴이)와 도널드트럼프 같은 부류에 대항할 세계의 예방 주사가 되는, 이해와 관용과 공감의 백신이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여러 사건에서 드러났듯 오래전 프랜츠 보애스가 벌인 투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류학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입에서 나와야만 귀로 들어갈 수 있다.
100만 위구르인이 중국 수용소에 있고 페난족이 사는 사라의 숲이 황폐화되고 이누이트의 고향 땅이 그들의 터전 아래에서부터 녹아내리는 지금, 현대의 인류학자는 교조적인 불만학(젠더학, 퀴어학, 비판적 인종이론 등의 분야가 엄밀한 학술적접근보다는 정체성 정치 중심의 불만 토로에 집중한다고 보고 이를 비판하는 용어- 옮긴이)과 교차성 세미나, 대명사 사용을 비롯해 다양하게 표현되는 각성 문화의 정설만 탐닉하는 것을 넘어 반드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이 학문이 실제로 가장 무가치한 학부 전공이라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다면. - P72

생전에 보애스는 자신의 통찰과 직관이 새로운 전 지구적 문화의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연과학에서 확증되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그러나 80년이 흐른 뒤 인간 게놈 연구는 인류의 유전적 자질이 단일한 연속체가 맞음을 밝혀냈다. 인종은 실제로 허구다. 우리 모두는 같은 유전적 천에서 재단된, 공통 조상을 둔 자손들이다. 6만 5,000년 전 아프리카에서 걸어나와 4만 년에 걸쳐 2,500세대 만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 구석구석으로 인간의 정신을 실어나른 여정을 시작한 이들도 그 조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생각은 이것이다. 모두 같은 생명의 천에서 재단되었다면 우리가 명민한 정신과 다듬지 않은 천재성을 똑같이 공유한다는 것도 자명하다. 이 지적 잠재력이 기술 혁신으로 발휘되는지 아니면 신화에 내재한 기억의 복잡한 타래가 풀어지며 발휘되는지는 순전히 선택과 지향, 순응적 통찰과 문화적 강조의 문제다. 문화사에는 진보의 위계가 없으며 성공으로 가는 진화의 사다리도 없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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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7-2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이 이런 글을 올리신 줄 몰랐어요. 이제야 보네요.
예전에 인류학에 매력을 느껴 공부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프레이야 2024-07-29 22:14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페크님. 흥미로워요.
 

Beneath the Surface of Things / Agora
저자 Wade Davis
역자 박희원

https://youtu.be/ZyjNgnFOmyU?si=mwNEPOJvshk24aiG

https://youtu.be/agZKV-eMaCM?si=O8UC3HXmwYxx9GAB

https://youtu.be/UgfXHy4pIDM?si=Qr9SN4irFIBbIBBf

인류가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걷기 시작했고 차차 1만 곳이 넘는 부족 영토를 일궜다. 저마다 독립된 이 고향 땅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송라인(노래의 길)으로, 무지개뱀이 살던 시절에 노래를 불러 세상을 만들어낸 태곳적 선조들이 따라간 길이다. 오늘날 송라인의 자취를 밟으며 첫 여명의 이야기를 읊조리는 애버리지니는 드림타임(꿈의 시대)에 들어선다. 이는 꿈은 아니지만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는 척도도 아니다. 드림타임은 선조들의 영역 그 자체, 일반적인 시공간과 운동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평행우주다.

신성에 관하여 319 - P319

송라인을 걷는 것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세계의 창조에 참여하는 것이다. 세계라는 장소는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아직 형성되고 있다. 그래서 애버리지니는 단순히 땅에 부속된 수준을 넘어 땅의 존재에 없어서는 안 될 민족이다. 땅이 없으면 애버리지니는 죽는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없으면 땅도 시든다. 의식이 멎고 목소리가 고요해지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땅 위의 만물은 송라인으로 뭉쳐져 있고, 마찬가지로 만물은 한결같으면서도 끝없이 변하는 드리밍(꿈의 상태) 아래에 있다. 모든 지형지물은 기원의 기억과 맺어져 있으면서도 언제나 태어나는 중이다. 모든 동물과 물체는 아득한 옛날 일의 맥박과 공명하면서도 여전히 꿈꾸어져 탄생하고 있다. 대지는 현실의 모든 차원에서 지금까지 존재한 만물과 앞으로 존재할 만물로 암호화되어 있다. 세계는 완벽하고 완전하지만 끊임없이 다시 상상되며 새로워지고 있다. 이 대지를 걸으며 송라인을 기리는 것은 끊임없는 긍정 행위에, 끝없는 창조의 춤에 참여하는 것이다. - P320

이번 책의 방향은 좀 달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동이 제한되고 또 각종 환상이 벗겨지면서, 캐나다인으로 태어났지만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한 저자의 "인류학의 렌즈"는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를 직접 향했다. 앞서 번역 출간된 전작들이 지금 지구에 함께 존재하는 다채로운 문화들을 펼쳐 보였다면 이번에는 오늘날 미국, 나아가 서구권 사회의 덮개를 들춰 역사를 되짚거나 비주류 견해를 검토하는 내용이 더해졌다.
내가 충격 요법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특정인물을 언급할 때가 아니면 대체로 과격한 서술을 경계하는 듯한 저자의 글은 색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슴슴한가 싶어도 듣는 사람의 가슴속에 침전되어 있다가 나중에 떠오르는 어른들 말씀 같기도 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거듭 말하는 인류학의 렌즈를 장착해보도록 독자를 이끌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 - 옮긴이 후기, 중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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