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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 칼럼]제4인칭 그리고 참칭
[동아일보 2004-05-12 18:59]
[동아일보]

일본 여류작가 쓰시마 요코(津島佑子)의 소설 ‘나’(유숙자 옮김)의 작가 서문에는 ‘제4인칭’이란 말이 나온다. 나, 너, 그의 세 가지 인칭 외에 또 다른 제4인칭? 작가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소설 속에서 진한 글자로 표기되는 ‘나’는 ‘나 아닌 나’, 그래서 1인칭으로 표기될 수 없는 또 다른 나로 설정된다는 것이다. 가령 무당이 신들려 죽은 혼령의 말을 빌려 ‘나’라고 할 때의 그 나는 무당 자신이 아니라 무당의 입을 통해 말하는 혼령을 가리킨다. 그때의 나를 작가는 제4인칭이라고 부르고 있다. 작가는 소설 속의 화자를 자유롭게 옮겨 가며 또 다른 나를 등장시키는 데 제4인칭의 효과를 활용하면서 이 발견을 스스로 매우 신선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라는 말 뒤에 숨은 ‘나’▼

쓰시마는 이 4인칭의 발견은 아이누족의 설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쓴다. ‘사양(斜陽)’으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딸인 그는 홋카이도(北海道) 바로 아래의 아오모리(靑森)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설화를 많이 들었고 그 설화의 구승(口承) 속에서 ‘나 아닌 나’의 존재를 깨달았다고 한다. 쓰시마는 4인칭으로서의 ‘나’를 일본 소설의 전통인 사소설(私小說)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소설은 1인칭으로 서술되지만 그 소설 속의 1인칭은 작자 자신과는 또 다른 존재인 ‘나’로 봐야 한다는 것이고 그 나를 4인칭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쓰시마가 말하는 4인칭적 존재는 아이누족만이 아니라 구비문화 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었을 것이다. “옛날 옛적에 가난한 농사꾼이 살았더란다”라고 시작되는 우리 할머니 이야기에서 그 이야기가 사실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아득한 조상들로부터 전승된 것임을 “…더란다”라는 말로 돌리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오 여신이여,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노래하라”로, ‘오디세이’가 “뮤즈들이여, 세상을 무수히 편력한 그 사내의 행적을 말해 주오”라고 시작하는 것도 기억의 원천을 향한 제4인칭의 호명(呼名)이다. 성서의 저자가 복음의 원천으로 ‘성령’에 기대는 것도 이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구비문화 시대를 벗어나 문자 기록의 역사 속으로 들어와서도, 그리고 이성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주체적 존재성을 자부하면서도, 특히 큰 이야기를 할 때 주체적인 1인칭으로서의 나가 아닌 또 다른 인칭으로 나의 말을 대변하는 일은 많다. 가령 흔하게 동원되는 ‘양심의 소리’ ‘역사의 심판’ ‘민족의 외침’ 혹은 ‘우리의 주장’이 그것들이다. 나의 개인적 의사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큰 존재에 의탁하여 제시한 이때의 주어는 관념적이어서 모호하지만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어서 호소력이 강하다. 구비문학에서는 화자가 4인칭으로 초월적인 존재를 불러내는 것과는 달리, 오늘의 주장 발언에서는 화자가 집단적 혹은 관념적 주체 뒤로 숨거나 속으로 들어가 익명화한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고, 그래서 강제력은 강화하면서 책임감은 희석하는 효과를 얻는다.

▼자기 주장에 ‘국민-시민’ 남용▼

근래 더욱 뜨겁게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이라고, 운동단체들이 ‘시민’의 의지라고 발언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자신의 의사를 국민이란 추상적인 전일체의 이름에 의탁하거나 자기 의지를 시민들의 일치된 주장으로 강변하는 것이라면, 그 발언은 신자의 탐욕을 ‘하나님의 뜻’으로 설교하는 것과 그리 먼 거리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참칭(僭稱)’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방금 무심히 ‘우리’라고 써 버렸다. 책임 있는 주체로서 발언해야 한다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우리’란 말로 숨어든 것이다. 아아, ‘나’의 말로써 말하기 어려움(!)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시대에도 여전한가 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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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나 친구 사이에서 싸우는 것은 쉽지만 사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방법만 잘 알면 ‘성공적’으로 사과할 수 있다. 호주 공영방송 채널7은 최근 효과적으로 사과하는 요령 10가지를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에서는 “사과는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사과는 자신의 책임과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솔직한 인간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이 방송에서 소개한 효과적으로 사과하는 법을 소개한다. (담아왔어요^^)
 
1. 사과는 반드시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해라.
사과는 직접 만나서 하는 것이 좋다. 싸운 뒤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사과를 하게 되면 자신의 진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어 오히려 싸움을 더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싸운 뒤 만나는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직접 마주본 상태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 상대방 기분에 철저히 맞춰 줘라.
사과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다. 사과를 할 때는 먼저 상대방의 기분이 지금도 화가 나 있는지 살펴야 한다. 아직 화가 난 상태라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삼가고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말들을 적절히 골라 사용해야 한다.
 
3. 사과보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먼저다.
무작정 사과부터 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상대방이 왜 화가 났는지 어떤 점이 불만인지 말하게 하고 이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상대방은 화를 어느 정도 풀 수 있고 자신도 어떤 점을 사과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4. 사과는 타이밍이다.
사과를 하는데도 적절한 타이밍은 아주 중요하다. 잘못을 저지른 뒤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서로 기분이 상하고 난 뒤 바로 그 자리에서 사과하는 것은 오히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싸우고 난 뒤 서로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을 때쯤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
 
5.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사과만큼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없다. 연인사이라면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여성은 자신이 어떤 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사과의 의미로 꽃을 보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만 만약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사과부터 하자는 마음이었다면 여성은 이 꽃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 도 있다.
 
6. 만나기 힘들다면 사과는 편지로.
만나서 사과를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만나기 힘든 상황이라면 편지로 사과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진심이 담긴 편지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과를 할 때 가장 적절하지 않은 방법은 문자메시지다. 성의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7. 사과는 여러 번 하면 좋다? NO!
반복된 사과는 진실성이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 상대방이 자신을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면 앞으로도 자신이 한 사과를 잘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8. 부모도 자녀에게 사과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 사과를 잘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솔직한 대화는 많을수록 좋다. 특히 부모들은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진심을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의 솔직한 모습은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9.자녀도 부모에게 사과해야 한다.
어린 자녀들은 대부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잘 알지 못하고 말로만 사과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녀들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먼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부모에게 사과하면 부모는 자녀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10.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계속 ‘네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싸우는 것은 서로의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에 앞서 자신의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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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사과를 apple로 오해한점 사과드립니다.
잘 새기고 사용하도록 노력할게요

水巖 2006-11-2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짱꿀라 2006-11-2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고 갑니다. 담아왔어도 좋은 글은 나누면 더 좋은 글이 된답니다. 고맙습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좋은 한주 시작하시기를........
 
 전출처 : 해리포터7 > 모퉁이 -- 안도현

모퉁이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 테고

하굣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엇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지



--- 안도현 (좋은생각 2006년 1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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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魂(몽혼) 李玉峰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砂(문전석로반성사)

요사이 우리 님 안부가 궁금하네요
창가에 달빛 고요하니 이몸은 외롭습니다
만일 꿈속에서 다닌 길이 흔적이 있다면
임의 문전 돌길이 반은 모래 되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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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24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혼 이옥봉님의 시조이군요. 아주 훌륭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시조입니다.
달빛을 보면서 님을 그리워하는 심정, 너무나 애절합니다. 좋은하루가 되시기를......

프레이야 2006-11-2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하늘이 잔뜩 지푸리고 있습니다. 바람도 차갑네요.
그래도 오늘 하루 유쾌하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용(南宮适)이라는 자는 언행을 삼갈 줄 아는 인격자로서 공자에게 늘 인정을 받았다.

白圭之? 尙可磨也 斯言之? 不可磨也 (백규지점 상가마야 사언지점 불가마야 )

흰옥에 있는 티는 갈아서 없앨 수 있으나 말속에 있는 티는 갈아서도 없앨 수 없다

매일 읊으면서 자신의 말을 절제하고 수양해 나갔던 것이다.

이런 남용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지 공자는 그를 자기의 조카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어떤가..좋은 말을 쓰면서 스스로의 품위를 높여나가고

게다가 존경하는 스승 공자의 조카사위까지 되었으니.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입조심을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쳐왔으며

선현(先賢)들도 입조심, 말조심에 관하여 각별하게 언급하였다.

 

 知而不言 所以之天(지이불언 소이지천)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하늘의 경지에 들어가는 최상의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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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2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게 새겨야 것 같습니다. 원래 고전에는 훌륭하고 지혜를 가르쳐주는 말이 많이 나오거든요. 고전을 보는 처번째 이유거든요. 좋은 밤 되세요.

마노아 2006-11-22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이에요.

부엉이 2006-11-22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메트로 신문 오늘의 운세를 보니 '경거망동하지 말것'이라고 써 있더군요. ㅋㅋ 말조심.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호인 2006-11-2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게 말입니다. 입과 말에는 많은 속담이라든가 격언들이 있는 이유도 그래서 일 것 같습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묻어두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입을 통해 전달된다"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