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일본 여류작가 쓰시마 요코(津島佑子)의 소설 ‘나’(유숙자 옮김)의 작가 서문에는 ‘제4인칭’이란 말이 나온다. 나, 너, 그의 세 가지 인칭 외에 또 다른 제4인칭? 작가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소설 속에서 진한 글자로 표기되는 ‘나’는 ‘나 아닌 나’, 그래서 1인칭으로 표기될 수 없는 또 다른 나로 설정된다는 것이다. 가령 무당이 신들려 죽은 혼령의 말을 빌려 ‘나’라고 할 때의 그 나는 무당 자신이 아니라 무당의 입을 통해 말하는 혼령을 가리킨다. 그때의 나를 작가는 제4인칭이라고 부르고 있다. 작가는 소설 속의 화자를 자유롭게 옮겨 가며 또 다른 나를 등장시키는 데 제4인칭의 효과를 활용하면서 이 발견을 스스로 매우 신선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라는 말 뒤에 숨은 ‘나’▼
쓰시마는 이 4인칭의 발견은 아이누족의 설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쓴다. ‘사양(斜陽)’으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딸인 그는 홋카이도(北海道) 바로 아래의 아오모리(靑森)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설화를 많이 들었고 그 설화의 구승(口承) 속에서 ‘나 아닌 나’의 존재를 깨달았다고 한다. 쓰시마는 4인칭으로서의 ‘나’를 일본 소설의 전통인 사소설(私小說)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소설은 1인칭으로 서술되지만 그 소설 속의 1인칭은 작자 자신과는 또 다른 존재인 ‘나’로 봐야 한다는 것이고 그 나를 4인칭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쓰시마가 말하는 4인칭적 존재는 아이누족만이 아니라 구비문화 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었을 것이다. “옛날 옛적에 가난한 농사꾼이 살았더란다”라고 시작되는 우리 할머니 이야기에서 그 이야기가 사실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아득한 조상들로부터 전승된 것임을 “…더란다”라는 말로 돌리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오 여신이여,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노래하라”로, ‘오디세이’가 “뮤즈들이여, 세상을 무수히 편력한 그 사내의 행적을 말해 주오”라고 시작하는 것도 기억의 원천을 향한 제4인칭의 호명(呼名)이다. 성서의 저자가 복음의 원천으로 ‘성령’에 기대는 것도 이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구비문화 시대를 벗어나 문자 기록의 역사 속으로 들어와서도, 그리고 이성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주체적 존재성을 자부하면서도, 특히 큰 이야기를 할 때 주체적인 1인칭으로서의 나가 아닌 또 다른 인칭으로 나의 말을 대변하는 일은 많다. 가령 흔하게 동원되는 ‘양심의 소리’ ‘역사의 심판’ ‘민족의 외침’ 혹은 ‘우리의 주장’이 그것들이다. 나의 개인적 의사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큰 존재에 의탁하여 제시한 이때의 주어는 관념적이어서 모호하지만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어서 호소력이 강하다. 구비문학에서는 화자가 4인칭으로 초월적인 존재를 불러내는 것과는 달리, 오늘의 주장 발언에서는 화자가 집단적 혹은 관념적 주체 뒤로 숨거나 속으로 들어가 익명화한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고, 그래서 강제력은 강화하면서 책임감은 희석하는 효과를 얻는다.
▼자기 주장에 ‘국민-시민’ 남용▼
근래 더욱 뜨겁게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이라고, 운동단체들이 ‘시민’의 의지라고 발언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자신의 의사를 국민이란 추상적인 전일체의 이름에 의탁하거나 자기 의지를 시민들의 일치된 주장으로 강변하는 것이라면, 그 발언은 신자의 탐욕을 ‘하나님의 뜻’으로 설교하는 것과 그리 먼 거리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참칭(僭稱)’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방금 무심히 ‘우리’라고 써 버렸다. 책임 있는 주체로서 발언해야 한다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우리’란 말로 숨어든 것이다. 아아, ‘나’의 말로써 말하기 어려움(!)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시대에도 여전한가 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