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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2022.10.26. 연필로 쓰기 / 김훈 / 문학동네(2019)
381-467쪽 17,18,19,20파일 낭독녹음
전체완료
오늘 점자도서관 가는 길에는 라디오에서 박주원의 슬픔의 파에스타,가 흘러 나왔다. 오래전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박주원 공연 본 거 생각나 좋았다 그냥. 도서관냥이들 갖다줄 습식캔을 까먹을까 봐 어제 한 박스 미리 현관에 내놓았다. 주차하고 보니 저쪽에 한 녀석 앉아서 나를 빤히 보고 있다. 갈색 치즈냥이다. 어쩐지 추워보인다. 가까이 가면 달아날까봐 조금 거리를 두고 폰카메라로 줌인.
습식캔을 상자째 남자직원에게 드렸더니 사료칸에 쟁여두며 한 마리가 얼마전 새끼냥이들을 낳아 좀 예민하다며 씨익 웃는다. 보고 싶지만 참고, 커피 한 잔 들고 녹음실에 들어가 네 시간 연속 달렸다. 오늘은 이 책을 마치고 다음주에 다른 책 하고 싶어서 중간에 화장실 갈 시간도 넘겨버렸다.
오늘 낭독 부분에서 유독 만난 반가운 것들
1. 좋아하는 시, 백석 “국수”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평양냉면 먹으러 가야겠다.
2. 113년 전 오늘(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한 거사
# 열차는 이토가 대련에서 하얼빈으로 온 철도를 거꾸로 달려서 하얼빈에서 대련으로 향했다. 안중근은 이틀째 자지 못했다. 몸이 열차의 리듬에 감겨서 졸음이 쏟아졌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가 본 적 없는 대련이 안중근의 마음에 떠올랐다.
…… 이토의 나라는 대련을 쳐부수어서 차지했고 대련을 발판으로 하얼빈으로 진출했다. 하얼빈역 플랫폼은 내가 이토를 쏘기에 알맞은 자리고 이토가 죽기에 알맞은 자리다.
…… 나는 이토가 온 철도를 거슬러 가고 있다. 대련은 이토의 세상이다. 대련은 내가 말하기에 편안한 자리이고 내가 죽기에도 알맞은 자리다.
- 김훈, 하얼빈(2022), 194쪽
3. 송년회
열심히 일하고 총알도 피해 살아왔지만 꼰대라떼라는 소리나 듣기 십상인 대한민국 일흔살 남자들의 시시껄렁한 송년회 이야기가 마지막 장이다. 왠지 웃픈 장면을 상상하며 김훈 식의 썰렁한 유머에 피식 웃었다. 또 한 해가 간다.
하얼빈역은 동청철도와 만주철도 여순지선의 교차점이다. 하얼빈역은 안중근이 이토를 쏘아 죽이기에 가장 걸맞은 시대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고, 이토 또한 총 맞아 죽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나는 이토가 잠자다가 침실에서 당하거나, 기생집에서 놀다가 당하거나, 자신을 배반한 부하에게 당한 쪽보다는 동청철도 하얼빈역에서 실탄 7발만을 지닌 조선 청년에게 당한 죽음이 그의 명예에 다소 기여한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왔고, 이토는 여순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왔다. 둘은 하얼빈에서 부딪쳤는데, 동서와 남북이 만나는 이 교차로의 개방성은 안중근의 거사를 암살이 아니라 공개처형으로 격상시켰고, 이 철도의 침략성은 이토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안중근 거사의 당위를 그 철도의 노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교차점이 안중근의 사격 위치였고 이토의 죽음의 자리였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의 하얼빈역 사진 속에서 검은 객차와 레일은 지금도 쇠비린내를 풍긴다. 길들은 싱싱하다. - P415
종합상사 주재원 하던 친구가 어디서 구했는지 달력을 한 개씩 나누어주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잔을 들어서 또 한잔씩 마셨다. 총무가 회비를 걷었다. 다들 3만 원씩 냈다. 저녁 6시에 시작했는데, 오래 버티지 못했다. 8시가 넘으니까 다들 마누라한테서 전화받고, 9시에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둠 속에서 가슴이 뻥 뚫린 듯이 허전했다. 당신들은 이 송년회가 후지고 허접하다고 생각하겠지.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덧없는 것으로 덧없는 것을 위로하면서, 나는 견딜 만했다. 후져서 편안했다. 내년의 송년회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해마다 해가 간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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