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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나는 글을 쓰겠다.”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기억을 잘 다루는 작가 중 한 사람.
사람의 기억이 타인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다감함.
‘내가 어렸을 때 익숙하게 듣던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루시바턴, 못된 계집애 같으니. 너한테 우리가 쓰레기라는 말을 들으러 내가 이 나라를 가로질러 여기까지 날아온 게 아니야. 우리는 이 나라로 건너온 최초의 사람들이었어, 루시 바턴. 내 조상과 네 아빠의 조상 모두 너한테 우리가 쓰레기라는 말을 들으러 내가 이 나라를 가로질러 여기까지 날아온 게 아니라고. 그들은 선량하고 점잖은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매사추세츠 주 프로빈스타운의 해안에 닿았고, 물고기를 잡는 정착민이었어. 우리는 이 나라에 정착했고, 나중에 선하고 용맹한 사람들은 중서부로 건너갔지. 우리는 그런 사람이야.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돼." - P142
세라 페인이 말했다. 자신의 글에 약점이 보이면 독자가 알아내기 전에 정면으로 맞서서 결연히 고쳐야 해요. 자신의 권위가 서는 게 그 지점이에요. 가르친다는 행위에서 오는 피로가 얼굴에 가득 내려앉았던 그 강의 시간 중 하나에서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사랑한다는 말을 절대 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 P157
그때 이후로 내게도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곁을 지킨 순간들이 있었고-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나는 육신의 최후의 빛이 꺼져갈 때 눈동자가 불붙듯 타오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그 남자가 그날 내게 도움을 주었다. 그의 눈동자가 말했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을 거야. 나는 그가, 죽음이, 엄마가 나를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절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 P163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쓰게 될 거예요. 이야기는 걱정할 게 없어요. 그건 오로지 하나니까요." - P169
나는 작가가 되려면 냉혹해야 한다는 제러미의 말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내가 늘 글을 쓰고 있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오빠나 언니,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아 안 간 것이기도 했다.) 시간은 늘 충분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내가 결혼생활에 안주하면 또다른 책,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책은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 P204
나는 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아이의 유년기가 끝난 건 그때였다고. 죽은 사람들, 연기, 이 도시와 이 나라에 가득 퍼진 공포, 그 이후 세계적으로 일어난 참혹한 사건들. 하지만 나는 그날에 대해 떠올릴 때 내 딸만 생각한다. 그전에도, 그후에도 그 아이가 그런 목소리로 외친 것은 들은 적이 없다. 엄마.
또 가끔 생각하는 건, 내가 세라 페인을 옷가게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자기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녀가 아직 뉴욕에 사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뒤로 그녀는 새 책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몹시 지쳐갔던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는 하나뿐이라던 그녀의 말을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 그녀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혹은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가 쓴 책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를 피해 비켜서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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