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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클럽 ㅣ 창비아동문고 110
막스 폰 테어 그륀 지음, 정지창 옮김 / 창비 / 1989년 9월
평점 :
절판
막스 폰 데어 그륀은 바퀴의자에 앉아 지낸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을 위해 이 동화를 지었다고 한다. 이 동화에 나오는 쿠르트는 세살 때부터 바퀴의자에 앉아 지내는 아이인데, 생각도 깊고 총명한 아이이다. 쿠르트는 '악어클럽'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악어클럽은 동네의 악동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이들은 어른들을 골려주기도 하고 버릇없이 보일 때도 있지만, 개성이 강하고 우정을 지키기 위해 친구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이 믿음직한 아이들이다.
이 동화의 배경은 독일의 공업도시 도르트문트인데, 이곳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이탈리아, 터키인 등)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을 함부로 무시하고 심지어 마을의 절도사건의 범인일 것이라고 단정하여 떠들어댄다. 마치 외국인노동자들이 그들의 밥줄을 빼앗기라도 하는 것처럼 저주의 말도 서슴치 않는다.
이런 편견은 장애인 쿠르트에 대한 말들에도 잘 나타난다. 극단적인 단어까지 쓰면서 바퀴의자에 앉아있는 쿠르트를 무시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악어클럽의 대장 올라프도 예외가 아니다. 집에서 어른들에게서 들은 것들이 은연중 아이들의 의식에 자리하곤 하는데, 올라프나 프랑크 이들 아이들은 외국인에 대해서도 장애인에 대해서도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심하다. 그러나 이들은 편견을 바로잡아가고 전혀 다른 태도로 발전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우정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끼리의 모임이 있고 범죄인을 좇아 큰 일을 해내는 신나는 일을 통해 그리 심각하지 않게 우리의 편견을 꼬집어준다.
이탈리아 아이들에게 절도범의 혐의가 돌아가고 악어클럽의 친구 프랑크의 형이 절도범 중 한 명으로 확실해진 상황에서 친구들과 쿠르트가 보이는 신중한 처사가 돋보인다. 이들은 친구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이탈리아 아이들의 무고도 생각하여 경찰에 직접 신고하는 대신, 단서만 제공하고 뒤로 빠지기로 한다. 사건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프랑크의 형 에곤은 미성년자로서 적절한 처벌을 받게 되고 집에서도 벌을 받는다. 그러면서 프랑크와의 우정은 잘 지킨 셈이다.
아이들을 만나면 곤고한 편견의 벽에 갇혀있으려는 경우를 만난다. 남자아이들은 다 재수없다, 또는 여자아이들은 다 그렇고그렇다, 외모가 어떠면 어떨 것이다, 와 같은 편견은 우리 사회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걸려있는 편견의 그물에 비하면 귀엽다. 우리는 그 그물을 쉽사리 걷지 못하고 걷으려 들지도 않고 있는지 모른다.
어느 아이의 아버지가 의족을 하고 있는 2급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 아이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내심 걱정이 되어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편견이었다. 이 아이는 아버지의 상태를 자세히 들려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다.
역시 같이 부대끼는 것이 편견을 없애는 최상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들은 그들, 우리는 우리, 라는 벽을 쌓고 딴 세상의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편견을 버리라는 말은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듯 잡히지 않는, 말뿐인 표어다. 장애우 자매결연학교 같은 것으로라도 함께 부대끼는 시간을 많이 마련해주는 학교제도가 보편화되면 좋겠다. 이런 일을 행사처럼 하는 곳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가 더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어른도 아이도 책은 책이고, 생활은 생활인 것으로 책을 본다. 육교 지나갈 때 이상하게 생긴 아저씨가 있으면 엄마는 자기를 저쪽으로 밀며 돌아가게 한다는 한 5학년 여자아이는 엄마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가슴이 뜨금하였다.
우리나라는 전 인구의 10%가 장애우로 등록되어있는데(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고속철은 장애우를 배려한 시설은 거의 없는 상태라 심한 항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소위 선진국형 고속철에 이런 시설조차 마련하지 않고 개통했다니. <악어클럽>에서도 바퀴의자가 쉽게 들락거릴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작거나 큰 편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