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동그라미 >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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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령이 운동회 날이다. 보름전부터 연습을 하더니 어린이날 행사를 겸해 오늘이 그날이다. 기침감기가 심해 좀 걱정되었지만 하는 수 없지 뭐.

청군이 80점 차이로 승리해서 파란 띠를 두른 희령이랑 나는 입이 벙긋벙긋~~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가장 싫었던 행사가 운동회였다. 난 그때 달리기를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100미터를 2박3일에 걸려 달리는 수준이다. 즉 23초..  달리기를 하면 3등까지만 손목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내가 희령이만할 때였던가. 웃지못할 추억이 있다.

난 열심히 달린다고 달리는데 완전 슬로우모션이었나보다. 다음 팀이 내 뒤로 달려와 나는 그 팀에 섞여 3등을 하였다. 왠걸.. 진짜로 나는 3등인 줄 알고 도장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곤 3등 줄로 가 섰던 거다.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찍어주시진 않고 웃으며 내게 뭐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운동회 때면 나는 계주가 가장 신난다. 바톤을 받고 이어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어찌 재미나던지.. 내가 독서지도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어 더 반가웠다. 아슬아슬하게 뒤따라가다 속도를 붙여 앞사람을 따라잡는 청군~~ 와~~ 희령이랑 박수치며 "브이" 하고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꼭짓점 댄스였다. 전교생이 했는데 "오~ 필승 코리아" 노래에 맞춰 신나는 한 판 댄스였다. 사실 독일 신문에도 났던 꼭짓점 댄스를 오늘 난 처음 보았다. 똑 같은 율동인데도 아이에 따라 어찌 차이가 나던지.. 재미났다. 가만 보니 율동이 반복되면서 리듬을 타는데 쉬워보여도 제대로(흐느적거리며) 하기엔 좀 어려워보였다. 오늘 저녁에 도영이(5학년인데 오늘 앞줄에 서서 제일로 멋지게 해냈다) 수업하러 오면 시켜서 다시 보고 배워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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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6-05-0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 조카 운동회에 가요,,

치유 2006-05-0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제 끝낸 기분이겠어요..저희 내일이던데..수고하셨네요..오늘 날이 좋아서 다행이었어요..

치유 2006-05-03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꼭지점 댄스 다들하나봐요..저희 아이도 학교 홈에 들어가서 동영상으로도 배우고 하더라구요..ㅋㅋ낼 보면 멋지겠어요..

sooninara 2006-05-03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도 내일 운동회 해요^^

치유 2006-05-0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 님네두요..아..낼 총 집합이나 보네요..ㅋㅋ그렇죠??

sooninara 2006-05-0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달리기 20초 넘겼어요.ㅠ.ㅠ 운동은 완전히 잼병이라서..

치유 2006-05-0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저도..그래서 이런날 싫어해요..울 아이들까지도..ㅋㅋ

치유 2006-05-0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은 아직 아이가 어려서 잘 모르시겠어요..조카들하곤 또 틀리더라구요..

세실 2006-05-03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학교는 왜 이리도 늦게 하는지 원....16일에 한다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셨네요. 저두 달리기는 꽝~

물만두 2006-05-03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2006-05-0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원조 꼭짓점댄스닷..

진주 2006-05-03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우리 중학교때 많이 췄던 허슬의 한 동작이잖아요.
(나만 많이 췄나? ㅎㅎㅎ)
얼마전에, 미국춤을 국민응원춤이라고 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옥신각신하는 토론수업도 열나게 했었어요. 애들이 할말이 많더군요 ㅎㅎㅎ(전 참관인으로 가만히 있었지만 '반대'였구요. 허슬 싫어요 ㅋ)

진주 2006-05-0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필승코리아에 맞춰 췄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YMCA에 맞춰서 월드컵공식응원으로 한다고 들었어요. 그건 좀 아니라고 봐요^^;

프레이야 2006-05-0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그러게요.. 전 김수로가 만들어 금새 이렇게 유행되었다는 점에도 놀랐어요. 아이들 간에 유행하는 춤이라니 어느 순간부터 점점 사라져가겠죠.. 쉽고 반복되는 단순함 속에 웃음을 유발하는, 뭐 그런게 아이들 유행코드일까요? 하여튼 오늘 배우고봐야겠어요^^

조선인 2006-05-0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게 바로 꼭지점댄스이군요. 제대로 본 건 처음. 친정조카도 운동회 때 꼭지점 댄스 춘다고 빨간 티와 빨간 두건을 샀더이다. 아디다스에서 파는 정품은 5만원도 넘길래 큰새언니가 5천원짜리 시장표를 사줬다고 입이 삐죽. 저로선 분당 한복판에 살면서도 꿋꿋하게 깍쟁이 노릇하는 새언니가 흐뭇했죠. ^^;;

프레이야 2006-05-0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새언니처럼 깍쟁이노릇 해야하는데 요즘 아이들 시장표 사다주면 좀 싫어라하죠 ㅠㅠ
 
 전출처 : 물만두 > 간서치가 등장하는 작품들

 이 책은 조선시대 지식인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한 글이다.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노긍, 김영 등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시대의 메이저리거들이 아니라 주변 또는 경계를 아슬하게 비껴 갔던 안티 혹은 마이너들이었다.
남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성실과 노력으로 일관한 삶의 태도, 신분과 나이와 성별을 잊고 이름 밖에서 그 사람과 만나고자 했던 진실한 사귐,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고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일깨움을 이끌어내는 통찰력. 그러나 이들은 세상의 인정을 받기보다는 죄인으로, 역적으로, 서얼로, 혹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기생과 화가로 한세상을 고달프게 건너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심지어 굶어죽기까지 했다.
저자는 다만 “이 책에서 기록의 행간에 숨어 잘 보이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를 먼지 털어 전달하는 사람의 소임만을 다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렇게 되살린 이들의 삶은, 본받을 만한 사표(師表)도, 뚜렷한 지향도 없어 모호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옛글 속에서 길어올린 지식인의 내면 풍경

이 책의 저자 정민은 스스로 먼지 쌓인 한적 속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전도 코드만 바꾸면 얼마든지 힘 있는 말씀이 될 수 있다 한다. 그렇다. 같은 글도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른 울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서 저자가 붙잡은 화두는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이다. 이를 조선 지식인의 내면을 읽는 화두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18세기 지식인을 읽는 새로운 코드, 벽(癖)

“사람이 벽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다. 대저 벽이란 글자는 질((疾)에서 나온 것이니, 병 중에서도 편벽된 것이다. 하지만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이 있는 사람만이 능히 할 수 있다.” - 박제가, 《백화보서》
꽃에 미친 김덕형, 장황에 고질이 든 방효량, 돌만 보면 벼루를 깎았던 석치(石癡) 정철조, 담배를 너무 좋아해 아예 담배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책을 엮은 이옥, <백이전>을 1억1만3천 번을 읽은 독서광 김득신, 스스로를 간서치(책에 미친 바보)라 했던 이덕무……,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글에서는 무언가에 온전히 미친 마니아들의 존재가 부쩍 눈에 띈다.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로 비칠 만큼 미친 듯이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이들의 존재는 이 시기 변모한 지적 토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기 넘치는 마니아의 시대

18세기 지식인들은 이처럼 벽에 들린 사람들, 즉 마니아적 성향에 자못 열광했다. 너도나도 무언가에 미쳐보려는 것이 시대의 한 추세였다. 이전 시기에는 결코 만나볼 수 없던 현상이다. 이전까지 지식인들은 수기치인 곧 자기를 닦는 공부에 몰두했다. 사물에 몰두하면 뜻을 잃게 된다고 하여 오히려 금기시했다. 격물치지 공부를 강조하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사물이 아니라 앎이, 바깥이 아니라 내면이 최종 목적지였다. 이런 흐름이 18세기에 오면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진다. 세상은 바뀌고 지식의 패러다임에도 본질적인 변화가 왔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이때 쏟아져 나온 그 방대한 저작들, 정약전의 《현산어보》 김려의 《우해이어보》, 정약용의 그 엄청난 저작들은 모두 벽의 추구가 낳은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의 산물이었다.
나태와 안일을 꾸짖는 서늘한 죽비소리

그러나 저자는 이들이 이룬 성취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한낱 기생과 깊은 우정을 나누고 보잘것 없는 화공의 죽음에 크게 낙담했던 허균, 나이와 신분을 잊고 음악을 통해 진심을 나누었던 홍대용과 그의 벗들, 자신의 둔함을 탓하는 제자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스승 권필과 그런 스승을 정성으로 모시는 제자 송희갑 등,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그 자체로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서늘한 죽비소리이다. 날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주체를 세우지 못한 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이들에게, 그렇게 해서야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묻고 있는 것이다.
작은 영웅들의 삶을 복원 -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힘으로 우뚝한 보람을 남긴 이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고달프고 신산한 삶을 이어갔다. 천대와 멸시 속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좌절과 분노 속에, 그렇게 잊혀져갔다. 굶어죽고 만 천재 천문학자 김영, 과거시험 대필업자라는 조롱 속에 세상을 냉소하였던 노긍, 불온한 문체를 쓴다는 이유로 견책을 입고 군역을 갔던 이옥, 저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잊혀져 간 이들의 삶을 정성스레 복원해내고 있다. 이들이 자신에게 자꾸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고 한다. 김영의 죽음에 홍길주는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며 안타까워했고, 이가환 역시 “노긍을 알아줄 환담(한나라때 양웅의 대단한 학문을 알아보았던 사람)은 없다”며 자신이 그 역할을 맡겠노라 했다. 이들의 기록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들의 삶이 이렇게 전해지게 되었다. - 이덕무가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에 대해 적은 <간서치전>이다

 시인, 소설가, 비평가로, 최근에는 도서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석주의 북리뷰집. 그가 “직관과 내적 필요에 의해” 읽고 써낸 글들은 총 70편이다. 책에 대한 품평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회와 시대정신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사회의 트렌드인 ‘웰빙’ ‘몸 만들기 열풍’ ‘느리게 사는 삶’ ‘명품족’ 등과 조선시대의 선비로부터 김병익, 김지하를 아우르는 인물들을 만난다. 또한 시와 소설, 이미지에 대한 저자의 예리한 비판과 통찰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문화 사회적 징후, 일상과 책을 연결시키는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와, 마음으로 세상을 꿰뚫는 시선의 깊이를 느끼고, 아울러 자신의 인식을 고양시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주제에 대해 정교하게 다듬고 벼려낸 저자의 문장들은, 우리에게 글쓰기의 또 다른 전범을 제시하고 있다. -
그이는 아무도 자기 전기를 써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자기에 대한 글을 짓는데, ‘간서치전’이 바로 그것이다.

 16살이 가기 전에 꿈과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라!
모든 성공은 10대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흔히 꿈 많은 젊은이를 일컫을 때 우리는 ‘이팔청춘’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물론 시대가 변해서 예전의 16살과 지금 중3인 16살은 사회적·정신적으로 그 간극이 꽤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볼 때, 16살은 분명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는 나이임에 틀림 없다. 이처럼 시대를 막론하고 16살은 10대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인생의 얼개를 짜야 하는 중요한 때다.왜냐하면 이때 자신의 꿈과 비전을 확실히 세우지 못한 사람은 20대에 혼돈과 방황의 나날을 보내고 어느덧 사회의 중핵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30대에 접어들어서도 자신의 삶과 일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뒤늦게 후회해 봐야 소용 없는 일이 아닌가.
이 글은 미국 경영협회와 포춘지가 선정한 역사 속의 위대했던 75가지 선택 중에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45가지를 가려 뽑았다. 한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어 기업과 국가의 흥망까지도 뒤흔들었던 중요한 결정들을 여러 가지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비단 꿈과 비전을 품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10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심기일전하려는 2,30대를 비롯해 교사와 학부모들이 먼저 읽어 볼만한 인생 지침서라 할 만하다.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손정의, 박찬호…
만일 10대에 자신의 꿈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우리 주위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16살 이전에 자기 인생의 꿈과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뚜렷이 그렸다. 만약에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손정의, 박찬호 등 뛰어난 인물들이 10대에 자신의 꿈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자녀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기보다 책 속의 인물들의 결정과 그에 따른 선택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살펴 실질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실행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했다. 또한 장기적인 전망이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채 자기 자신의 일에만 매몰되면 아무리 뛰어난 생각과 능력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 있고 보다 발전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려는 일련의 노력과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게 된다. 자라나는 꿈나무들과 삶의 방향을 못 잡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은 “미래는 지금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한다. -
스스로 간서치(책에 미친 바보)라 했던 이덕무는 특별히 뛰어난 재주는 없었지만

 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으로서 또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서 한평생 청소년교육에 투신해온 권이종 교수의 청년기 고백록 『교수가 된 광부』가 출간되었다. 권 교수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이 1964년 독일에 광부로 떠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지난 40년간 자신의 숨겨진 기억을 겸손하게 회상하고 토로한다. 신문, 방송, 동료들의 수기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자료 속에 숨겨진 많은 내용을 찾아내고 저자 본인도 많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음을 솔직히 밝혔다.
권 교수는 『교수가 된 광부』를 통하여 “1963년 광부 제1진을 시작으로 40년 전 독일로 떠났던 약 9천여 명 동료들의 피와 땀이 헛되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영전에, 세계 도처에 살고 있을 광부 동료들에게 작은 위로를 드리려 한다”고 술회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1960년대의 한국 국가발전의 역군이며, 자수성가로 일가를 이루어온 광부들의 자부심과 긍지 넘치는 삶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독일 광부 파견의 역사적 배경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공식방문과 뤼프케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독경제협력이 강화되었고 한국은 1970년대의 경제개발 시기에 독일에서 많은 차관을 도입하였다. 1959년부터 1976년까지 5억 1200달러를, 1977년부터 1980년까지는 2억 6100만 달러의 차관을 독일에서 도입하였다. 전후 폐허에서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독일을 배우자!’라는 구호 아래서 독일모델은 우리나라의 제2공화국뿐만 아니라 제3공화국에서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십수 년에 걸친 독일로의 광부, 간호사 파견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지노 하나 외에 우리 광산마을에 아무것도 해준 것이 권 교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광산마을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 그리고 자연적인 조건이나 사회복지정책이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어서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문제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나라의 1960년대 초 국민소득이 90불이 안 되었을 때의 광산촌의 생활상과, 2004년 국민소득 1만불이 넘는 지금의 생활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탄 에너지가 석유와 가스 에너지로 바뀌면서 석탄 소비량과 채탄량이 점점 줄어든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광산 폐쇄와 그에 따른 광부들의 파업으로 상당 기간 많은 곤란을 겪었다.(우리는 영화 [브레스트 오프] [빌리 엘리엇] [풀 몬티] 등에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한 광부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중?장기적 고용정책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여, 광부들의 자존감을 고취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복지정책을 마련하였다.
광산촌을 인간 친화적으로 재건설하고, 광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며, 광산촌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고 오히려 외부인까지 광산촌으로 유입할 수 있는 유인정책을 펴왔다. 물론, 독일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광산촌 시설은 매우 원시적이어서 독일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건설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것은 광산촌에 인간 중심적인 중장기 복지정책이 펼쳐지지 못함으로써 공존하는 사회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태백시에 일부 광업소가 연명하고 있다. 광산촌에서 일하다 실직자가 된 수천 명의 광부들은 광산촌을 대부분 떠나야 했고, 광산촌을 떠나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의 광부들의 삶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경제부흥을 일궈냈고 산업전사로서 훌륭하게 일해 왔는가를 인정하기는커녕 푸대접하는 실정이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독일에 갔던 광부 산업전사들, 국가 발전을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린 우리들, 지하 전쟁터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해 왔던 우리 동료들에 대하여 아무런 보답이 없음에 매우 아쉬울 뿐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
스스로를 책에 미친 '간서치(看書痴)'라 불렀던 선인들의 지혜를 얻고 싶었던 욕구가 평생 동안 나를 뒤따라 다녔다.

 이 책은 시리즈 1번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다시 읽고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 고미숙은 박지원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자신만의 발랄하고 경쾌한 문체로 <고미숙표『열하일기』>를 선보인다. 그녀의 문체는 그 자체로 유쾌하기 짝이 없지만, 『열하일기』와 만나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한 시대의 사유체계에 대한 도전은 문체로 드러난다고 믿는 저자가, 고문(古文)에 반대하고 살아있는 생생한 문장을 추구하여 문체 반정의 원인이 되었던 박지원을 만났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한편 이 책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디즘에 기대어 『열하일기』를 읽는다. 저자는 연암이야말로 머묾과 떠남에 자유로왔던 유목민이었으며, 사물의 '사이'에서 사유할 줄 알았던 경계인이었다고 본다. 『열하일기』는 중심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리좀'이며, 모든 장이 저마다 독립적인 세계를 가진 천의 고원이라고 선언한다. 또 '탈주'와 '재코드화', '재배치'의 대가인 연암은 사물의 어느 한국면에 머물지 않는 강한 호기심과, 풍부한 유머, 그리고 통렬한 패러독스로 『열하일기』를 채우고 있다.

이 책은 <리라이팅 클래식>이라는 기획의 진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전을 '다시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오늘날의 코드로 텍스트에 접근하는 것이며, 마침내 그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고미숙은 연암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훌륭한 프리즘으로 그것을 이루어냈다.모든 삶의 질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태는 사람들이 '돈 되는' 분야에 몰리도록 만들어 사회를 기형적인 모습으로 만들고 말았다.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 단순히 모든 학문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 대중들에게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인문학이 삶의 질에 관련된 문제임을 제기하고자 하며,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으로 극복해 보려 한다.
불행하게도 고전은 과거에만 속할 수 없는 책들이 어느 시대에건 읽히길 바라며 붙여진 이름이지만, 어느새 그 이름은 내용을 떠나 너무 낡은 냄새를 피우게 되었다. 우리는 고전이라는 말에 묻어 있는 옛냄새를 지우고 그것에 현재를 담고 싶었다.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전 자체가 완전히 해체, 재구성되어야 했다. 그간 출판계에서도 독자들이 고전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고전에 현대적 주석을 다는 데 그쳤을 뿐, '다시 쓰는' 시도는 아직 없었다. 기존의 요리에 양념 몇 가지를 첨가하거나 세팅을 바꾸는 것으로는 오늘의 우리가 먹을 음식이 되기엔 뭔가 부족했다. 우리는 재료는 빌려오되, 젊은 필자들이 과감하게 다시 만든 요리를 내놓고 싶었다.
그 요리를 위해 지금-여기에 있는 저자는 시공간을 넘어서 원저자와 때론 웃으며 때론 논박하며 대화를 나눴다. 시대를 뛰어넘는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고전에 대한 해설서가 아닌 새로운 책 리라이팅 클래식을 낳았다. 그리고 그 소통은 독자에게로 확장된다. 책을 읽는 독자가 원저자와 만나 소통하고 그 가운데 지금-여기의 저자가 끼여드는 고전, 요컨대 원저자, 저자,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토론과 사유의 장을 지향한다.
한편 리라이팅 클래식은 원저자와 대화하며 지금-여기를 말하지만 시대와 불일치하는 시간을 담은 책이다. 니체를 빌려온다면 시대와 불일치하고 때에 맞지 않는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바로 미래가 될 것이다. 리라이팅 클래식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과 더불어 오는 책이며 미래의 책이다. 시간과 더불어 호흡하는 리라이팅 클래식은 늘 변화와 생성을 꿈꾼다. 그래서 저자들이 원저자와의 대화가 다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그 때가 언제든 개정판을 낼 생각이다. 10년 뒤, 어떤 책은 10번쯤 모습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
서얼 출신인 데다 자신을 '간서치'(看書痴), 곧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부를 정도로 책벌레였던...

 한 해를 정리하며 '책과 만나다'
한 해를 정리하는 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은 뭘까? 출판사는 왜 책을 만들며, 독자는 왜 책을 읽는 걸까? 도서출판 그린비는 연구 공동체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와 함께 책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끌어낸 책의 존재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책은 그 속에서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에 그치는 것(책­세계)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그 자신을 끌어내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데 쓰여야 하고(책­기계), 그래서 삶의 무기가 되고 삶을 축제로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존재 의미를 갖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나름의 문제의식 속에서 출판사와 연구실은 책을 책­세계가 아니라 책­기계로 읽어낸 결과물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무려 93권이나 되는 책들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단순히 책에 대한 책은 아니다. 책(book)에 대한 자세한 소개보다는, 책과 만나고 그 책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book+ing) 사유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이 책을 단순한 book이 아닌 book+ing으로 이용해 주었으면 한다.
'book+ing'이 만난 책들
1. 일상의 축제-되기, 코뮨적 삶을 위하여
일상은 늘 남루한 듯하다. 반면 그것이 어떤 이름을 가졌든 축제는 기쁨과 활력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런 축제의 기쁨은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는 것이다. 1부에서는 코뮨적 삶을 살며,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책들과 만났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밥상 혁명을 통해 삶을 바꾸라고 선동하며, [파라다이스]는 견고한 뿌리를 자랑하는 나무가 아니라 범람하는 잡초가 되라고 권하고, [가비오따스]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공동체의 삶을 말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흐친의 진정한 웃음([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과 마르코스의 목소리([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를 만난다.
2. 철학의 외부, 근대에 내재하는 외부를 위하여
다른 종류의 삶을 창안하고자 하는 사유는 반드시 외부를 통해 사유하는 철학이며, 철학의 외부를 긍정하는 철학일 것이다. 자기 안에 갇힌 사유는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어 다른 삶을 꿈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2부에서는 외부를 사유하는 철학들과 만났다. [천 개의 고원]은 다양한 욕망의 배치에 대한 창발적인 분석으로 우리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안내하며, [제국]은 새롭게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명령의 양식과 그것을 깨뜨려 나갈 대중들의 잠재력을 말하고, [알이 닭을 낳는다]는 다른 종들과 소통을 고민할 때 인간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르디외([파스칼적 명상])의 "나는 내 안에 있는 지식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과, 질병과 치유의 반복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과 새로운 건강을 얻는 니체의 모습([유고:1882년 7월~1883/4년 겨울])도 만날 수 있다.
3. 우리 신체에 새겨진 근대성, 그리고 혁명
우리는 자신의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의 풍요를 착취하는 인간의 추악함, 도덕의 철책으로 민중을 규격화하는 국가장치,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의식하게 되는 타인의 눈 등을 통해 우리의 몸에 새겨진 근대성을 도처에서 확인한다. 3부에서 만난 책들은 이러한 근대성을 상기시키며 낡은 습속에 길들여진 눈을 던지고 도덕의 감금장치를 유쾌하게 뛰어넘으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이름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그래서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는 한국에서 근대적 주체가 생성되는 과정을 찾아 나서며 길들여진 신체와 싸우기를 권하고, [종횡무진 한국사]는 'national history'로서의 '한국사'가 아니라 'history'로서의 '한반도의 역사'를 말한다. 또 [한국 문학사의 논리와 체계]는 한문학과 국문학,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경계를 자유롭게 종횡하며, [사생활의 역사]는 어떻게 국가가 사회성의 영역에 침입하여 그것을 공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 영역을 사적인 영역으로 만들었는지 말한다.
4.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
도덕은 자유로운 영혼을 길들여 덜 위험하게, 즉 나약하게 만드는 '동물원'이다. 지배적 사유는 도덕의 철책을 뛰어넘는 것들을 '광기'라 부름으로써 '우리'와 다른 모든 것들을 '타자'로 밀어낸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광인들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미래의 시간(항상 와 있지만 항상 오해되고 있는 시간이고, 아무리 늦게 나타나도 항상 너무 이르게 나타나는 시간)을 향해 절규한다. 근대 권력의 폭력성과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푸코([미셸 푸코]), 도덕성과 법의 원리를 '절대부정'했던 사드([미덕의 불운]), 나이 오십에 그때까지의 자신은 남들이 짖어대며 이유도 모르고 따라 짖는 한 마리 개와 같았다고 말했던 이탁오([분서]), "노예가 없어지면 흑인도 없어진다"며 흑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내파하려 했던 파농([검은 얼굴, 하얀 가면]), 대학 교수가 아니라 러시아의 노동자로 살고 싶어했던 비트겐슈타인([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저주받은 영혼 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예프스키]), 금기와 복제를 거부했던 고야([고야, 영혼의 거울]), 서구적 근대와 다른 독자적 역사를 만들려 했던 소세키와 루쉰([동양적 근대의 창출]) 등이 4부에서 만나는 광인들이다.
5. 고전과의 유쾌한 연애, 리딩클래식
누구나 들어봤고, 누구나 좋은 책들이라 말하지만 손에 들기가 쉽지는 않았던 책들. 누군가는 그런 책들을 고전하며 읽기 때문에 고전이라 부르는 거라고도 했다. 그러나 500년 전의 친구와 수다를 떨고, 1000년 전의 연인과 사랑을 나눈다면? 5부에서는 '저 오래된 책들'과 연애함으로써 일상의 출구를 발견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감히 알려고 하라, 네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는 칸트와 만나고, [장자]에서는 무한경계로 나의 사소함을 보여주는 장자와 만나며, [열하일기]에서는 낯선 공간과의 마주침을 때로는 개그맨의 목소리로, 때로는 화려한 수사학자의 목소리로, 또 다른 곳에서는 도도한 거장의 목소리로 전하는 박지원을 만난다. 뿐만 아니라 캉유웨이와의 연애에서는 국가와 민족, 종교, 인종, 그리고 성별까지 뛰어넘는 세상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고([대동서]), 다윈과의 우정 속에서는 '인간이란 종은 고정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종의 기원]). -
어쨌든 자신을 간서치看書痴, 곧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불렀던 이덕무의 『청언소품집』 제목으로는 참 어울리는 구절임에 틀림없다.

 선인들의 독서의 목적은 지혜를 얻는 데 있었지, 지식의 획득에 있지 않았다.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이 독서에서 다 나왔다. 책 속의 구절 하나하나가 그대로 읽는 이의 삶 속에 체화(體化)되어 간섭하고 통어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네들이 읽은 책이라야 권수로 헤아린다면 몇 권 되지 않았다. 그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읽다 못해 아예 통째로 다 외웠다. 그리고 그 몇 권의 독서가 그들의 삶을 결정했다.
『책 읽는 소리』는 독특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는 젊은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고전독서 에세이로, 옛 글에서 떠오르는 옛 사람들의 내면 풍경을 오롯이 되살리고 있다. 시서화(詩書畵)를 아우르고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사색의 글을 남긴 추사 김정희나 근원 김용준을 기리는 정민 교수의 에세이는 옛 선인들의 학문과 사상이 그리 멀지 않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모두 3부 47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옛 글을 읽는 까닭'은 독서와 관련된 글들이다. 책읽기와 글쓰기에서 미끄러져 나온 생각들, 옛 사람의 음미할 만한 일화들이 등장한다. 제2부 '마음 속 옛 글'은 옛 글의 행간에서 옛 사람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본 것이다. 제3부 '옛 글과 오늘'은 고전을 오늘의 삶과 이어보려는 생각들이 담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으로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부르며 쓴 자기 이야기에서, 그는 "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연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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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끼사스 > [말들의 풍경-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이오덕 (한국일보 2006년4월26일)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백성의 말’을 향하여
 
^‘우리글 바로쓰기’(초판 1989, 고침판 1992)를 쓰며 이오덕(1925~2003)이 글과 말에 대해 품은 생각은 한글학회 둘레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한글학회 언저리의 한국어학자들과 한국어운동가들이 대체로 언어민족주의자라면, 이오덕은 언어민중주의자였다. 물론 이오덕은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우리글 바로쓰기’에는 언어민족주의자 이오덕의 생각을 드러내는 문장이 수두룩하다. 이를테면 “우리말과 글을 바로 쓰는 일은 무엇보다도 밖에서 들어온 불순한 말을 먼저 글 속에서 가려내어 깨끗이 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거나 “우리말이 잡스럽게 되는 것은 마침내 우리 겨레의 넋이 말에서 떠나 버리는 것”이라는 견해 따위가 그 예다. 그는 또 우리 글자로 써서 알 수 없는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고도 했다. 이오덕 역시, 최현배를 비롯한 언어민족주의자들처럼, ‘깨끗한 우리말’ ‘순수한 우리말’에 깊은 정을 보였다. 다시 말해 드센 순화 욕망이 그에게도 있었다. ‘우리글 바로쓰기’의 적잖은 지면은 그렇게 깨끗하고 순수한 우리말을 보여주는 데 쓰였다.
^그러나 이오덕이 보기에 흔히 민족적이라 일컫는 것이 민중적인 것과 고스란히 겹치지는 않았다. 민족적인 것은 민중적인 것의 바탕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민족적인 것을 그리도 내세운 것은 그것이 대체로 민중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둘이 우연히 맞부딪치게 될 때, 이오덕은 기꺼이 민중 쪽을, 그의 말을 받아쓰자면 ‘백성’ 쪽을 편든다. 그 점이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것은 이른바 한글운동가들이 새로 만든 말에 대한 그의 거리낌에서다. 이오덕은 말한다. “지식인이나 학생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관청의 관리들이 제멋대로 말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름없이 겨레말을 어지럽힌다.” 한글학회 둘레의 일부 호사가들이 즐기던 고유어 새말 만들기를 이오덕은 혐오했다. 그 신조어들은,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민족과 관련될 수는 있겠지만, 민중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모람’(회원)이나 ‘먹거리’(먹을거리), ‘읽거리’(읽을거리) 같은 말은 이오덕이 보기에 우리말이 아니었다. 민중언어의 어법 바깥에서 억지로 만들어진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오덕은 국어운동가 대다수보다 한결 보수적이었다.
^그러니, 우리말과 글을 ‘한말글’이라 부르려는 시도를 이오덕이 크게 나무란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한말글 사랑 겨레 모임’이라는 국어운동단체의 회장으로 추대된 그는 이를 사양하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대관절 ‘한말글’이 무슨 말입니까? 나같이 평생 책 읽고 글 쓰면서 살아온 사람도 귀에 설게 느끼는 이런 말을 온 백성 상대로 일을 해 나가려는 모임의 이름으로 내걸고 싶어하는 분들의 속뜻을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말이 안 돼도 새로 만들어 자꾸 퍼뜨리면 결국을 쓰게 된다’고 할 것 같은데 그런 태도는 분명히 우리말을 바로잡는 일을 해친다고 봅니다.”
^이오덕이 이런 새 말 만들기만 꺼린 것은 아니다. 그는 비록 이미 있어온 고유어라 할지라도 보통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을 굳이 찾아내 쓰는 사람들 역시 슬그머니 타박했다. “중국글자말(한자어-인용자)도 아니고 일본말이나 서양말도 아니고, 그러니까 순수한 우리말인데 이미 옛말이 되어서 요즘은 입말로 쓰지 않는 말을 글에서 즐겨 쓰는 경향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넘어가고 싶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지금은 그다지 쓰지 않는 말을 찾아내어 쓰는 일은 대단히 바람직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로 우리 것을 아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다만 사람들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으니까 좀 귀에 설고 새롭고, 그래서 그것을 쓰면 유식해 보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그런 좀 근사해 보이는 말을 써 보자고 하는 마음인 것 같다. 그런 증거로는 똑같은 뜻을 가진 말로서 많이 쓰는 말이 있는데도 그런 입말을 쓰지 않고 일부러 입말이 아닌 말, 어쩌다 글에만 나오는 말만을 즐겨 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미 옛말이 되어 요즘은 입말로 쓰지 않는 말’을 글에서 쓰는 것까지 마땅치 않아 했으니, 거의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고유어를 사전 한 귀퉁이에서 찾아내 제 글에 버젓이 끼워 넣는 언어민족주의자들의 멋 부림을 이오덕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말하자면 이오덕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이 순수한 우리말이냐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백성의 말이냐 여부였다. 그 백성의 말은 ‘글의 해독을 입지 않은 말’이었고, 그 적잖은 부분은 ‘농민의 말’, ‘어렸을 때 배운 고향 말’이었다. 당연히, 그는 사투리에 너그러웠다.
^이오덕이 바람직하게 생각한 글은 ‘언문일치’의 글이었다. 이때의 언문일치란 이광수 이후 현대 소설 문체에서 확립됐다고 흔히 여기는 언문일치가 아니었다. 이오덕의 언문일치는 글을 말에 고스란히 포개는 진짜배기 언문일치였다. 그러니, 이광수는 말할 것도 없고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요즘 소설도 이오덕이 생각하는 언문일치에선 멀찌막하다. 지난해에 발표된 소설 한 대목을 보자. “망각이 우리를 구원한다. 진정 새로운 것이 아닐지라도 새롭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망각의 힘이다. 하지만 그 기능은 선택적이어서 행복의 기억은 흔적도 없이 거둬가면서 불행의 기억은 조각들을 남겨두곤 한다”(조선희의 ‘한때 우리 신촌거리에서 만났지’에서). 나무랄 데 없는 문장이다. 그러나 이오덕이라면 많이 나무랐을 것이다. 입으로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이오덕에게 야단을 덜 맞으려면 이 문장을 이런 식으로라도 고쳐야 하리라. “잊을 수 있으니 살 수 있지. 진짜 새로운 게 아니더래두 새롭다구 착각하게 하는 게 망각의 힘이야. 그렇지만 그게 또 불공평해. 행복했던 기억은 말끔히 없어지는데 불행했던 기억은 남아있을 때가 많거든.”
^그러니까 이오덕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문학은 구비문학이었다. 그는 ‘우리글 바로쓰기’ 제4장 ‘말의 민주화’ 제1절 ‘이야기글의 역사’에서 경기도 강화군(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81세 할머니가 구술한 ‘까투리와 오리의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옮겨놓으며, 이를 우리말의 본 바탕을 짐작하게 하는 깨끗한 말로 칭찬하고 있다. 이오덕이 이 책 여러 곳에서 지적했듯, 이런 언문일치의 글에서는 문장이 ‘-다’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 속에서는 지문과 대사가 문체로는 구별되지 않는다. 이오덕은 소설이고 수필이고 논문이고 할 것 없이 우리 글을 모조리 ‘다’ 하나로 끝맺게 된 상황의 첫 책임자로 이인직을 꼽고, 이런 관행이 일본글의 흉내라 지적한다. 이오덕에 따르면 바로 이 ‘-다’ 글체야말로 우리말 이야기글을 입말에서 떼어놓은 주범이다. 글 쓰듯 말하지 말고 말하듯 글을 쓰라는 것이 ‘우리글 바로쓰기’의 요지다. 물론 그 때의 말은 학교교육의 때를 타지 않은, 우리가 어머니한테서 배운 말이다.     
^‘우리글 바로쓰기’의 상당 부분은 저자가 잘못됐다고 판단한 표현들을 잘된 표현으로 고치는 형식으로 서술됐다. 관형격 조사 ‘-의’와 접미사 ‘-적’의 사용을 절제하자거나 ‘-에 있어서’, ‘-에의’ 같은 일본말투를 쓰지 말자는 제안은 특히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사사로운 회고를 하자면, 나는 89년 이 책의 초판을 읽은 뒤 그 때까지 별 생각 없이 써오던 ‘-에 다름 아니다’나 ‘주목에 값한다’ 따위 표현들과 헤어졌다. 나는 그 뒤 ‘-에 다름 아니다’를 쓸 자리에선 ‘-와 다르지 않다’, ‘-와 한가지다’ ‘-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고, ‘주목에 값한다’고 쓸 자리에선 ‘주목할 만하다’고 썼다.
^그러나 이오덕의 처방을 죄다 따를 수는 없었다. 어느 땐 그의 견해에 공감할 수 없었고, 어느 땐 공감하면서도 해묵은 습성을 이기지 못했다. 이오덕의 우리 말 치료는 어휘 수준을 훌쩍 넘어서 문체에 이르고 있는 만큼, 그에게 ‘양호’ 판정을 받을 글쟁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글 바로쓰기’ 전체를 통해서, 함석헌, 문익환, 권정생 같은 이들만 겨우 퇴원 허가를 받았다. 주시경이나 최현배 같은 보수적 국어학자조차, 영어 문법의 과거완료 시제와 과거완료진행 시제를 베껴와 ‘-었었다’ ‘-고 있었었다’ 따위를 우리말 시제 체계에 넣었다는 이유로 입원 가료 판정을 받았다. 이오덕 선생이 살아 계셔 이 글을 읽으신다면 고치실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이 고치신 곳을 내 고집대로 되돌려 놓을지도 모른다. 객원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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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4-26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이 쌩까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지요. 이오덕 선생님 같은 분은 '한글 운동가'들도 비판하시거든요. 제맘대로 말을 휘두르지 말라고...
지나치게 불필요한 한글 맞춤법만 강조한다든지,
순우리말만 지향하는 순수주의자들.(명사를 이름씨, 동사를 움직씨로 쓰던 이상한 외계어를 만들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리고 일본말, 영어에 오염된 말을 고치자고 하면, 고종석같은 치들은 '이미 그렇게 쓰고 있는데 까탈스럽게 왜 그러셔?'할는지 몰라도,
이오덕 선생님 같은 분은, 당신 죽기 전에 우리말이 어떤 것이었는지 남겨 두고 싶으셨던 거지요. 원래 우리 말이 어땠다는 것. 오염되었다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리말은 이랬는데 오염되었다는 것을 적고 있는 것이지요. 고종석은 무조건 순수를 싫어하고 오염을 좋아합니다만, 그런 고집은 짜증납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대구 까면서, 복거일 같은 넘의 공용어론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헤벌레한 논리.

프레이야 2006-04-2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쌩까고 있는 고종석 ㅎㅎ 글샘님 안녕하시죠?
 
 전출처 : 이매지 > 모네의 정원에서

모네의 정원에서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글 / 레나 안데르손 그림 / 김석희 옮김 / 미래사

 

 

 



 
 
 
나는 꽃을 무척 사랑한답니다.
그건 우리 아파트 위층에 사시는 블룸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예요.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정원사이셨지만 지금은 은퇴하셨어요.
나는 할아버지 댁에 가서 프랑스 화가인 클로드 모네에 관한 책을 보는 게 즐거워요.
모네 역시 꽃을 사랑해서 많은 꽃그림을 그렸어요.
책에는 아름다운 모네의 정원 사진도 실려 있어요.
 
"모네의 정원에는 어떻게 갈 수 있죠?"
"우선 파리에 가야 돼."
"파리는 너무 멀잖아요."
"그래, 하지만 갈 수 없는 건 아니야."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파리에 갈 준비를 모두 끝내고 8월에 떠났어요.
수련이 8월에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에스메랄다 호텔'에 묵었어요.
호텔은 작고 낡았지만 파리 시내를 흐르는 센 강 근처에 있었어요.
에스메랄다는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곱추>에 나오는
집시 여인의 이름을 딴 거예요. 

 



 

 

파리에 온 첫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마르모탕 미술관'에 갔어요.
이 미술관에는 모네의 그림이 많아요.
책에 실린 그림을 보는 것과 '진짜'를 보는 것은 전혀 달랐어요.
우리는 하얀 수련 두 송이가 그려진 그림 앞에 서 있었어요.
나는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 보았어요.
그랬더니 수련은 물감 얼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내가 다시 뒤로 물러서자, 수련은 연못에 있는 진짜 수련으로 바뀌었어요.
참으로 신기한 마술이었답니다!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잠시 작은 배가 그려진 그림 앞에 앉아 있었어요.

 "저 배가 아직도 거기에 있을까요?"

"내일 보러 가자꾸나."

  




 

이튿날 아침 일찍, 우리는 생라자르 역에서 열차를 타고 센 강을 따라 달렸어요.
강변을 지나고, 크고 작은 배들과 선착장, 집들,
강둑에 축 늘어진 수양버들과 높이 솟은 포플러 나무들을 지나갔어요.
우리는 베르농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내렸습니다.
역에는 자전거를 빌려 주는 곳이 있어서
'클로드 모네 기념관'이 있는 지베르니 마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었어요.

  




 

마침내 우리는 도착했어요!
정원에는 크고 많은 꽃들이 즐비했어요.
할아버지와 나는 경치를 구경해야 할지, 아니면 사진을 찍어야 할지
결정하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졸졸 따라왔어요.
나는 모네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뒷계단에 나와 앉았어요.
나는 집에 보낼 그림 엽서에다 이렇게 썼어요.

 

"우리는 이곳에 앉아서 모네 가족을 흉내내고 있답니다.
정원은 너무너무 멋있어요.
이제 우리는 수련 연못을 보러 갈 거예요."

  



 

 

"할아버지, 저것 좀 보세요! 저기 일본식 다리가 있어요!"
마침내 다리 위에 섰을 때, 나는 너무나 감격해서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였답니다.

 "연못 저편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 다리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째서지?"

"이 다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인상'을 얻기 위해서예요. 모네처럼요."

 하지만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쯤, 내 인상은 모두 사라졌어요.
하지만 모네는 인상을 붙잡는 '훈련'을 쌓았어요.
모네는 날마다 다리를 주의깊게 관찰해서 그렸는데
똑같은 그림은 한 장도 없었어요.

 




 

나는 여러 각도에서 연못 사진을 찍었어요.
내가 수련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면,
블룸 할아버지는 내가 연못에 빠질까 봐 가슴을 졸였지요.

 




 우리는 모네의 정원으로 흘러드는 뤼 강 어귀에서 도시락을 풀었어요.
오는 길에 사온 염소치즈와 고기파이, 사이다도 좋았고
특히 바게트 빵과 함께 먹으니 더욱 맛이 있었어요.
점심을 먹은 다음, 나는 풀밭에 벌렁 드러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았어요.

파리를 떠나는 날, 블룸 할아버지가 여섯 시에 나를 깨웠어요.

 "지금 당장 일어나면, 멋진 걸 한 가지 더 볼 수 있을 게다."

"정말요? 그게 뭔데요?"

"센 강의 해돋이 장면."

"저는 졸리니까 할아버지 혼자 가세요."

 

하지만 나는 결국 할아버지와 함께 밖으로 나갔어요.
우리는 첫 햇살을 보며 모네가 그린 해돋이 그림을 떠올렸어요.

 




 

우리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여행이 끝났어도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나는 게시판에 파리 여행에서 가져온 그림 엽서, 입장권과 차표,
비둘기 깃털 한 개와 모네의 정원에서 만난 모네의 의붓 증손 사진을 핀으로 꽂아 놓았어요.
이제는 내가 파리와 모네의 정원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에펠탑은 어땠니?"하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답니다.

 

"에펠탑은 볼 시간이 없었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봐야 했거든."

  

 

 

모네의 그림 좋아하세요?
저에게 모네는 그림을 보는 눈과 마음을 열어 준 화가랍니다.
모네의 그림을 통해 다른 그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제게는 그림 선생님이나 다름없죠.
이 책은 모네의 정원과 관련된 책들을 찾다가 알게 되었어요.
주인공 리네아가 일본식 다리 위에서 기뻐하는 모습의 표지에 단번에 마음이 사로잡혔어요.
언젠가 저 자리에 있을 제 모습을 상상하며 꿈을 꾸는 것도 좋았어요.
그 언젠가가 온다면 저도 리네아처럼 유명한 에펠탑보다는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에, 아를에 있는 고흐의 방에,
슈와젤에 있는 미셸 투르니에의 집을 보러 갈 거예요.

 이 책의 주인공 리네아는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 소녀를 모델로 했어요.
검은색 머리의 동양적인 얼굴만 봐서는 한국에서 파리로 떠나는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블룸 할아버지가 이름도 얼굴도 한국 사람같지 않아서 헷갈리셨을 거예요.
리네아는 이 책의 그림을 그린 레나 안데르손의 실제 딸이라는데
입양한 딸을 모델로 그림을 그린 걸 보면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아요.

이 책은 단순히 모네의 정원을 다녀오는 여행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모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어요.
페이퍼에 소개하는 글은 정말 극히 일부분의 글들이에요.
그러니 글을 읽을 줄 아는 나이대의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또 모네와 관련된 사진들도 많이 실려 있기 때문에 '작은 모네 안내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랍니다.

출처 : http://paper.cyworld.com/boo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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