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반올림 3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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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모건스턴은 미국출신 유태계 프랑스인이다. 출신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 이전에 모건스턴의 작품 속에는 개성있고 당차며 적극적인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해서인지 몰라도 재기발랄하면서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은 하나같이, 통통 튀는 공을 받아 치며 이리저리 공을 굴리고 이편저편으로 발을 디디며 주인공과 함께 가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재치있는 문장과 참신한 어휘의 선택, 생동감과 현실감이 느껴지는 사건전개와 허를 찌르면서도 시적인 비유같은 것들로도 충분히 유쾌하지만, 언제나 인물에 부여하는 작가의 포용력이 가장 마음에 든다.

<중학교 1학년>을  이제 중학생이 될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바람의 아이들'에서 엮는 '반올림'시리즈는 청소년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 책은 6학년을 마감하려는 학생이나 중학교 1학년 정도의 학생들이 읽어보면 공감도 되고 이래저래 흐트러진 생각의 조각들을 얼마간 주워담을 수도 있겠다. 중학교라는 이름에 설렘과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을 예비중학생들에게 또는 중학교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을 맞이할 친구들에게도 이 책은 학교의 의미와 그곳에서 배우는 것들의 가치, 삶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에 한번쯤 생각의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중학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호기심이 더 한다. 우리네 중학교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몇가지 다르게 보이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하는 심의회 같은 것이다. 여기서 학교를 개혁하는 길에 대한 학부모의 적극적인 제안과 체험학습에 드는 경비문제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는 보수적인 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마르고는 '돈도 안 드는 일'을 한 가지 제안한다. '학교'라는 이름부터 바꾸어 학교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 자체를 바꾸어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다. 이를 테면 '학교'를  '앎의 터전', '탐구모임', '삶의 현장' 같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학교를 '감옥'이라고 여기는 마르고의 입을 통해 던지는 작가의 생각이 신선하다.  

기대감과 현실의 결과 사이에는 예측불허의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마르고는 중학교입학통지서를 일흔 번이나 들여다보고 새로운 시작을 하지만 학교생활은 만만하지가 않다. 유난스럽다고 퉁을 주는 언니, 곧 익숙해질거라며 말로만 해결하려는 소극적인 엄마, 권위적인 선생님, 생각지 않았던 과중한 숙제, 인색한 수행평가, 별 의미도 인생도 없는 시 쓰기, 담배를 권하는 아이들, 개선에는 무관심한 아이들, 난데없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친구. 적극적으로 반의 일을 주도하고 아이들에게 적당한 자극도 주려고 노력한 마르고가 얻은 이름표는 '우리반 최고의 바보'라는 은근한 조롱이다. 이런 기분으로 간 로마로의 단체여행이 그리 산뜻할리도 없다.

여러가지 사건들로 좌절감과 소외감을 느끼지만 좌충우돌 1학년을 겪은 마르고는 알게 모르게 생각이 영글어 있다. 존경하는 뤼롱 선생님께 편지도 쓰고, 자유로운 하늘아래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행복을 누리는 자신의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꼼꼼히 기록해둔 각 과목의 노트들이 공중으로 날아가 낱장으로 흩어져버려도 오히려 기분이 가뿐해지는 걸 느낀다. 아더가 그랬던 것처럼 마르고도 세상을 향해 또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의 결과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여겨진다. 마르고는 이런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다. 불만이 있으면 개선이나 개혁을 계획하는 마르고는 체념하고 '룰루랄라하기'만을 하는 반아이들을 이끌어가려고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자신만의 색깔과 주장을 버리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기억될 1학년 나날의 마지막 장면마저도 마음 속에선 어느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다. 

생을 행복한 것으로 만드는 건 이성보다 감성의 발달에 있지 않나싶다. 마르고는 지리한 수업 중 '심술괴팍단어장'을 돌리다 발각되지만 관대한 뤼롱선생님의 반응에 살 맛을 느끼며 '천사단어장'을 쓴다. 부정적인 단어들이 쏟아지던 머릿속에서 긍정적이며 황홀한 단어들이 술술 풀려나온다. 마음먹기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반사되는 모양새에 웃음이 묻어난다. 또한 마르고의 밝고 순수한 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은 갖가지 '바람'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다. 따분하기만 한 국어시간에 상상 속의 알피유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바람'으로 인해 황홀해진다.

마르고가 '감옥'이라고 생각했던 '학교'는 1학년을 마감할 즈음, 좀 다르게 다가온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작가는 생각의 개혁을 종용하지 않는다. 그저 서서히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주며 생각의 전환을 유도할 뿐이다. 마르고가 지은 싯구를 보면, 학교라는 또 하나의 사회 혹은 인생을 우리는 너무 기대하거나 폄하시킬 필요가 없을 듯하다. 학교는 곰팡내만 나는 곳도 아니고 '피 튀기는' 전쟁터도 아니며, 그냥 학교일 뿐이다. 학교에서 인생의 비밀을 터득하기에는 우리가 앞으로 더듬어가야할 길이 멀고도 길다. 더구나 학교가 우리에게 말하는 법과 주장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기에는 세상엔 너무 알아야할 것이 많거나, 알아야할 것이 너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2학년이 될 마르고한테서 일 년 전의 들뜸과 벅찬 기대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좀더 담담한 태도로 다가올 시간을 맞을 것 같다. 작가는 섣불리 낙관적인 눈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싹을 못 틔우는 씨앗도 있을 거라고 미리 마음의 여유를 두는 식이다. 세월을 거슬러 가서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걸, 이런 생각만이 든다. 깔끔하고 재치있는 문장과 아이들의 구미에 맞는 발칙하고 발랄한 어휘로 작가의 개성을 한껏 살린 번역의 맛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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