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를 모르면 웃을 수도 없다 책세상 루트 4
박우현 지음 / 책세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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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은 언제인가부터 중요한 과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대한 인지도에 비하면 구체적이며 실용적인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논리에 대한 기본 이해와 구조를 가르쳐주지 않기도 하거니와 '논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는 책이 별로 없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해하는 언어의 한계 안에서 논리를 설명해야하는데 어려운 용어를 쉽게 이해시키는데에 연령적인 한계가 있기도 하다. 초등학생은 그 용어를 어려워하니 '논리'와 관련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논리를 알 수 있도록 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책은 중학1학년 이상의 학생들로, 추상적인 단어들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졌다면 흥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겠다. 논리적인 글의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유머러스한 이야기들을 연이어 예로 들어 웃음 속에서 논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말을 낳는다. 논리적인 생각이 논리적인 행동과 말을 낳는다. 하지만 이 책은 말이나 글이 행동을 낳고 더불어 생각의 집도 지을 수 있다는, 어쩌면 역설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우리는 말과 행동에서 모순이나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이 흔히 있다. 글은 그런 오류를 범하기가 더욱 쉽다. 글은 문장과 문장이 유기적으로 맺어진 관계다. 관계의 중요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도 그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감에서 의미가 발생하듯 문장과 문장 간의 유기성에서 글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의미)가 드러난다. 사람간의 관계가 매끄러우려면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듯 문장 간의 관계가 물 흐르듯 이어지려면 적절한(건전한) 논리가 매개체로 되어야한다. 이 책은 전제와 결론, 다시 말해 이유와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떠한 요건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여러가지 예화들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며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크게 세 장으로 나뉘어 '논리'와 '언어'와 '삶'을 이야기한다. 목차에는 '추론, 개념과 정의 그리고 오류' 라는 제목으로 각 장이 시작되며 다시 소제목들로 나뉘어 이어져 모두 17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이 끝나면 '생각해볼 문제'라는 꼭지를 두어 유머이야기 두 가지를 문제로 제시하고 그것에서 논리와 관련한 문제를 꺼내 생각해보게 한다. 추론에서는 귀납/ 연역/ 유비추론을 비교설명하고 개념과 정의에서는 유개념과 종개념 그리고 정의를 내릴 때 유의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사항은 유개념과 종개념에 대한 저자의 확산해석이다. 공통점을 근거로 정립된 유개념과 종차로 인해 구분된 종개념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눈을 길러야한다는 의견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뜻이다.

글을 쓰는 아이들을 보면 글의 제목 쓰기를 어려워한다. 유개념을 파악하는 눈이 아직 여물지 않았다는 말이다. 유개념에 대한 경시는 비단 글쓰기에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의 인식에도 여지없이 고개를 든다. '차이점만 생각하다 보면 차이점의 근거가 되는 공통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유개념이 없는 종개념은 부모 없는 자식들과 같다. 우리는 제목을 알아야 한다.' '공통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파주의에 물들기 쉽고 공동체의식이 결여되기 쉽다.' '부분은 전체를 위해 존재하고 전체는 부분을 위해 존재한다.' (p104-105)

오류를 다루고 있는 장에서는 웃음을 유발하거나 별로 그렇지 않은 일련의 상황들을 제시하며 갖가지 오류를 나열한다. 다소 산만하게 서술되어 오류에 대한 여러가지 용어나 개념이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장을 읽어보면 우리의 언어와 행동, 그것이 파생하는 우리의 삶이 오류로 범벅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저지르곤 하는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고 그것으로 다시 고민하고 다시 오류에 빠지는 순환논법의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언어와 웃음에 대한 철학이 있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라고 했다. 침묵도 언어이며 '모든 언어는 삶의 형식을 보여준다'. 올바른 언어생활은 올바른 삶의 형식을 구축하는데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웃음은 오류에서 발생하지만 그 오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용으로 덮어주는 미덕을 지녔다고 한다. 논리를 모르면 웃을 수도 없다고 한다면 논리를 모르면 관용도 베풀기 어려워진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아, 이 결론은 혹시 오류가 아닌지..)

'논리'가 무엇인지, '논리적'이 되려면 어떤 요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 그리고 논리가 삶의 집을 짓는데 왜 필요한 것인지를 알고 싶으면 이 책을 보면 좋겠다. 논리란 딱딱하고 아전인수격인 게 아니라 부드럽고 넓은 품을 가진 친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게다가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논술이 중요한 과목이라 생각되어 논술학원을 찾는 학생들과 어머니가 함께 보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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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6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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