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이호백 아저씨의 이야기 그림책
이호백 글 그림 / 재미마주 / 200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호백님의 이 그림책이 탄생된지는 제법 되었지만 나는 이제서야 자세히 보게되었다. 요즘 일곱살 작은 아이가 아주 재미있어하며 보는 그림책이다. 특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잘 펼치는 아이의 구미에 잘 맞는다. 게다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친구인 토끼가 마치 자신인 것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토끼가 신나는 모험을 하는 공간은 별다른 곳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늘 보아왔던 사람들의 공간이다. 토끼가 자신의 신나는 상상을 현실화한 공간은 베란다 유리문 한 장을 넘는 것으로 가능하다. 우리의 현실과 환상의 범주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마음의 문을 살짝 열고 한발만 내딛는 것. 그러므로 환상과 상상의 기회는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기회를 어른들은 간과해버리고 미처 잡지못하거나 잊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따분한 일상이라 투덜거리며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좀 다르다. 어른들도 모두 거쳐온 시절이지만 지금은 퇴색된 흑백사진처럼 상상력의 고갈로 마른 샘 하나를 가슴에 간직하고 산다. 아이들은 만나는 모든 대상이 마음에서 살아움직인다. 하물며 장난감 강아지에게도 말을 걸고 밥을 주고 잠자리를 봐주며 재워주는데, 살아서 눈을 깜박이는 토끼가 무슨 일을 못 할까.

베란다에서 얌전히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하얀 토끼는 의외로 쉽게 열리는 유리문을 살짝 넘어 평소에 해보진 못하고 마음으로 꿈만 꾸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본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아주 특별나고 대단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사람들이 날마다 하는 평이한 행위들이다. 토끼에게 이런 작은 바람이 있었다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 같다. 작가는 소박한 모험으로 충분히 신나는 경험을 하게 하며, 이 그림책을 함께 보는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아이 적에 엄마의 하이힐 구두를 신고 싶어 몰래 신고는 뒤뚱거리다 넘어지기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을 보며 묘한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던 그 옛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토끼는 예쁜 돌복도 입어보고 화장도 해보고 그 집 아저씨의 서재에 앉아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토끼의 신나는 모험 중에서도 가장 신나는 장면은 롤러블레이드를 마치 썰매처럼 타는 모습이다. 토끼의 긴 귀가 마치 스카프처럼 뒤로 날리고 튀김젓가락을 양팔에 쥐고 몸을 앞으로 약간 기울인 자세에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블레이드위에 올라 앉아있는 토끼는 마냥 짜릿한 표정이다.

이 장면은 책의 양면을 펼쳐서 화면 가득 그려져있다. 주조색인 채도 낮은 갈색톤에 카키색 블레이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그림책의 그림은 내용과 참 조화롭다. 현실감있는 상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 미덕을 잘 살려주는 부분이 바로 이 장면의 그림에서도 눈에 들어온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호백님의 세심함이 무척 기쁘다. 블레이드의 조이는 부분이 모두 풀어져 있다는 점이다. 토끼가 신기에는 너무 커서 그 위에 그냥 올라앉아 타고 있는데 만약 블레이드가 제대로 다 잠겨있다면 앞뒤가 맞지 않았을 것이다.

감쪽같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우리의 토끼는 자신의 똥을 치울만큼 치밀하지는 못하다. 아이처럼 순진하고 허술하다. 꼭 나의 작은 딸 같다. 자신의 영역 표시라도 하는 양 온집에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앉아 능청을 떨고 있는 토끼를 한번 쓰윽 보고 어른은 무언가 미심쩍지만 알고도 모른 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토끼 곁에 가서 뭔가 속닥속닥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몰래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짓을 도모한 동지끼리 나누는 귓속말 같은 것일 게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4-07-1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읽었는데 그림이 아주 힘있고 좋더라고요.
이호백 씨의 글과 그림이군요.^^
보관함에 담습니다.

진주 2004-07-2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을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림책 볼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림책을 사기가 쉽지 않군요. 서점에서 마음에 쏙 드는 그림책을 만나면 그저 넋이 나간 듯 보기만 한답니다. 속으론 치열한 전쟁을 하면서요-살까 말까 살까 말까...결국엔 만원짜리 한 장 허투루 쓰는 것 같아 사고 싶은 마음을 접고 만답니다. 이호백화백을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프레이야 2004-07-2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오랜만이네요. 더위에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그림책과 멀어지기 시작하는 건 슬픈일에요. 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