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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20
로얼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리뷰를 올리진 않았지만 얼마전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다. (언뜻 보면 제목이 내용의 전부일 것 같아 보이는 책이지만, 정말 강추하는 책이다. 그 책을 통해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이려나 ^^)
다음은 그 책에서 인용한 문장.
"제이미에게 읽어준 첫 번째 소설이자, 다른 부모들에게 맨 처음 선택할 책으로 1천번도 넘게 권한 책이 로알드 달의 <제임스와 슈퍼복숭아>이다.... 일곱살부터 열세 살짜리까지 주의를 집중시키고 상상력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마법의 책이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이다."
200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아이에게 직접 읽어준다는 생각은 미처 해본 적이 없었다. 길어야 50페이지 정도되는 그림책까지는 엄마가 직접 읽어줄 수 있다지만... 그보다 두꺼운 책은 아이들이 이른바 "읽기 독립"을 한 후에 자기가 알아서 읽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의 저자에 따르면 '아이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어있으며, 계속해서 4분짜리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자라나는 정신과 집중력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다 싶었다.
그래서, 아직 읽기 독립을 하지 못한 우리 첫째 아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울 첫째는 한글을 뗀지 1년을 넘겼는데도, 혼자 읽으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핑계를 대며 무조건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녀석이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를 보여주며, "우리 이 책 한번 읽어볼까? 무지 재밌다는데?" 하고 물었더니 저도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자기가 봐도 지금껏 읽어온 책들과는 뭔가 차원이 달라보였나 보다.
아들놈 : "흐익~~ 이렇게 긴 책을 읽으라고? 어떻게?"
엄마 : "한번 읽어보는 거지 뭐. 읽다가 재미없음 관두고." (뭐 읽어주는 거 듣기만하는 지가 고생인가? 읽는 엄마가 고생이지.)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하루에 20 여페이지씩, 다 읽어주는데 한 열흘 쯤 걸렸다. 또래보다 이해력이 좀 뒤진다 싶은 울 아들이 과연 이야기의 전후관계를 충분히 이해하며 따라가 줄까 싶었는데, 그건 기우였던 모양이다. 어제 읽은 내용, 그저께 읽은 내용을 비교적 정확히 기억하며, 다음 이야기를 예상하는 과정을 즐기기까지 했다. 이건 울아들 놈이 잘나서가 아니라 (다시한번 말하지만 늦된 녀석이다.) 이 소설이 취학전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할 만큼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소리내어 읽어주는 과정이 엄마에게 너무 고역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엄마들은 아시리라, 책 읽어주기가 얼마나 중노동인가. 목 바짝바짝 마르고, 목소리 갈라지고, 하품 나오고...) 소설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신나게 전개되서, 읽어주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어떤 날은 그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나혼자 먼저 다 읽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이와 함께 그 기대감을 이어가기 위해 꾹 참고, 다음 날을 기다리곤 했다. 아이가 집중력을 잃지않고 끝까지 함께 가준 것도 역시 타고난 이야기꾼 로알드 달의 재능 덕분이었다. 대화체를 많이 섞어 짧게 짧게 이어지는 문장들도 역시 읽어주는 사람의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어째 쓰다보니, 정작 책 내용에 대한 감상은 별로 없는 요상한 리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책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면 아시는 거고 (흐흐,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결론은 취학 전 아이에게 엄마가 읽어줄 첫 소설로 아주 따~악 적당한, 훌륭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나서 울 첫째에게 찾아온 변화가 있다면 2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아주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기가 직접 읽은 것도 아니면서, 완전히 자기가 읽어냈다는 착각에 빠져 아는 형에게 껍죽대고 자랑을 하질 않나... 엄마가 스티븐 킹의 <리시 이야기>를 읽는 걸 보더니 "엄마, 이 책, 제임스와 슈퍼복숭아보다 쬐금 더 두꺼운데?" 하면서 동급으로 놀려고 들질 않나... 그래도, 이 착각이 일종의 자신감으로 작용해서 두꺼운 책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점은 참 반가운 변화였다.
하지만, 아들 놈이 또다른 로알드 달의 소설을 선뜻 빼들고 와서 "이것도 읽어주세요" 할 때는 솔직히 엄마가 두렵다. <마띨다>는 페이지 수는 비슷해도 글자가 얼마나 깨알만한지.'....이것도 또 내가 읽어줘야 해? 이젠 좀 너혼자 읽어 보기도 하고... 그러면 안 될까?'
아.... "읽기 독립"의 그 날은 정말 멀고 험하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