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具의 힘

 

                                                                       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 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나오는 오래 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 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 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의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문학과 지성사)

 

  ** *       이 가난한 시인과 어머니 사이에 서글픈 '가구론'이 들어와 앉아 있는 이 시를, 안도현은 액자시라 부른다.  이 시를 읖조리면, 중얼대면서도 가난한 젊은 아들을 안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자글거리는 눈가에 매달려 있는,  어쩔 수 없는 사랑이 보인다.

 

명절이면 으레 긴장이 되곤 한다. 이레저레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고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아래 위로 챙겨야할 것이 많은 것도 바로 우리가 주역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라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힘으로 삼고 이번 설연휴를 출발했다. 시댁식구들과 이틀, 친정엔 23일에 갔다. 

이번 설은 대한과 함께 정말 설답게 추워서 쌉싸름한 공기를 코로 들이키며 좁다란 계단을 조심해서 밟으라며 아이들을 앞세워 올라갔다. 둘다 한복을 곱게 입고선 치맛자락을 한껏 올려잡고 올라가는 모습이 참 많이도 컸다 싶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트집이 났다. 집이 냉골이었기 때문이다.  이 추위에 기름보일러 아낀다고 제대로 안 켜고 계신 것 같았다. 수도관은 얼어서 만 하룻동안 수돗물도 못 썼다고 한다. 발바닥이 얼 것 같았다. 엄마의 명요리,  만두(올해는 며느리랑 함께 빚었다)가 나왔지만 몸이 풀리지 않는다.

엄마의 아들(나의 막내 동생)은 가난하다. 엄마 눈에 보이는 상대적인 기준으로,  당신은 그 점이 못내 안스럽다. 생전 별로 그렇지 못한 성미의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먹이려는 모습이 왠지 낯설고서글펐다. 평소 닦달하곤 했던 점이 아들에게 미안해서이겠지, 하면서 엄마의 눈가에 자글자글 그어지는 주름이 난 끼어들 수 없는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내가 맘을 풀지 않고 있어서이겠지, 하면서도 이젠 정말 늙어가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고 화가 나는 건 또 무슨 일인지...

동생은 시인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젊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 엄마 집에는 오래된 가구가 많다. 그리 비싼 가구들도 아니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라고 시인은 짐짓 위안하고 있지만, 그리 추억할 만한 생채기가 묻어있는지 잘 모르겠다. 작년 여름 이사하면서 정말 생채기가 나 있었던 가구들을 대거 처분했다. 엄마에게 준 식탁과 장식장, 동생에게 준 소파와 거실장, 동서에게 준 5단 서랍장... 11평 연립주택에서 시작한 나와 남편의 집은 결혼 14년만에 6배정도로 불어났다.

엄마는 재수 좋은 가구 한 개쯤은 남겨두라는 말을 하며 새 것을 사들이는 맏딸을 불편한 눈으로 보셨다. 이래저래 걸리는 것들이 있어 내 원하는 기준으로 구입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맘도 요새는 조금 있다. 만두국을 먹으며,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더해질 것이라는 남편의 말이, 엄마 아빠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떨 땐 고의적이다 싶게 눈치가 없다.  이제 완전히 생퉁맞게 삐죽거리며 뒤틀리기 시작한다.  너무 민감하다 싶은 내가 또 거추장스럽다.

엄마가 서실로 쓰는 방에 들어갔다. 월간 서예를 비롯해 붓글씨와 사군자에 대한 자료와 책자, 그리고 파일에 차곡차곡 정리해 둔 연습글자들을 보았다. 왜 이제야 눈에 들어왔는지, 나도 참 무심하다. 엄마가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고 계신 것인데,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작가로 데뷔도 하셨으니 다음 기회엔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격려의 웃음이 담긴 편지라도 드려야겠다. 냉방의 서실에서 움츠린 어깨로 붓을 잡고 연습하는 엄마에게 따스한 힘 한번 제대로 실어주지 못한 못난 딸이다.

엄마의 가구에는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힘이 있을 법하다. 매달리고픈 소망이기도 하다. 가구란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생각을 몰아간다. 엄마의 손때가 묻었을 낡은 책상과 문방구, 아빠가 여태껏 쓰시는 스테인레스스틸 재떨이(원래는 보온 도시락)가 올라앉아있는 이동식 원목 테이블 같은 것들이, 훗날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 입은 내 가슴을 덥혀줄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의 힘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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