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절반이 훌쩍 지나가고 나머지 절반의 시작이 또 나흘째, 지금은 해거름이다.
점자도서관에서 발행되는 소식지 '점자나라'에 실릴 봉사자 글을 부탁 받고 유월 말까지 보내주기로 해놓고선
완전히 깜박해버렸다. 방금 음성지원실의 착한 샘이 전화 와서 앗차 했다. 자기도 깜박하고 중간에 확인 한 번 해드린다는
걸 잊었다면서, 행정실에서 전화 와서 알았다며 오히려 미안해 한다. 친절한 마음과 선하고 깍듯하고 나긋한 목소리에
마음이 몽글몽글 보송보송해진다. 내일 퇴근 전까지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책과 영화와 와인이 있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행복을 주는 건 사람,
사람의 마음과 사랑이라는 걸 좋은 사람의 목소리로 오늘아침을 시작하면서 느꼈고 다시 한번 느낀다.
아침에 이번 기말고사 두 과목 말아먹었다고 기죽은 '척'하며 나가는 작은딸한테 웃으며 격려하고 비올지 모르니
접이우산 쥐어서 보내길 잘했다. 학교 가는 길에 빗줄기가 내리더란다. 그래도 반에서 일등이더라며 시크하게 말하네.
김치볶음밥 해서 먹이고 어학당 보냈다. 보냈다기보다 스스로 잘 간다. 좋아하는 선생님과 좋아하는 영역이니 어련히...
책이며 영화며 공연이며 일상이며 사람이며 밀린 스치는 단상과 감흥, 하고픈 이야기들이 엄청 많은데 흘러가고 잊혀지고,
자연스럽게 남을 건 남아있고... 나쁘지 않다. 말(표현)은 왜곡을 낳고 오해도 부르니 때로는 속으로 부르는 노래도
괜찮지 싶다.
유월부터는 전자책까지 더해, 동시에 4권의 책을 보는 셈이다. 점자도서관에서 녹음하는 책과 1차 편집하며 재독하는 책,
집에서 보는 종이책과 수시로 보는 전자책. 종이책과 전자책, 어느 것이 더 좋은가를 묻는 건 무의미한 것 같고
나름대로 장단점과 효용이 있는 것 같다. 늘어나는 종이책으로 부족한 공간에 답답함이 책높이 만큼이나 높아지니
대거 정리도 좀 할 생각이다. 전자책은 공간활용 면에서 미덕이 있고 밝지 않은 공간에서 볼 때도 무리가 없다.
가방 안에 책 두세 권이면 차지하는 자리도 만만치 않고 어깨에 가중되는 무게를 생각해도 전자책은 착하다.
종이책의 질감과 냄새 같은 건 바랄 수 없고 연필로 손수 긋는 밑줄이나 메모는 할 수 없어도 나름대로
하이라이트 기능(형광펜처럼)과 메모, 검색, 책갈피 기능도 갖추고 있어서 영리하다. 전자책으로 본 도서들은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지금은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을 읽는 중.
녹음도서도 종이책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필요한 분들에게 나름의 비슷한 기능을 한다.
눈을 감고 들으면 더 잘 들린다는 점, 눈으로 볼 때보다 오히려 더 집중력이 요구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요즘 눈이 침침해지다보니 시각이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 중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얄궂은 생각도 해본다.
다른 감각인들 중요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시력이 없어진다면 책을 보고 싶은대로 보지 못할 것이고
남을 위해 읽어줄 수도 없지 않나. 생각하면 아찔한, 그래서 가진 게 많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의 무릎을 꿇게 된다.
그래도 종이책이 있으니 전자책도 오디오책도 나올 수 있다. 종이책 특유의 질감과 부피감, 냄새, 활자의 친밀감 같은 건
다른 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니 역시 나의 종이책 사랑은 변하지 않을 듯. 단지 집착과 욕심과 허영은 금물이다.
지상의 노래 / 이승우 / 민음사 (365쪽)
2013년 5월 8일 녹음시작, 6월 26일 완료, 20시간 소요
철학적, 미학적 문장과 여러 겹의 스토리가 하나로 모아지는 곳이 천산 수도원이다.
그곳에서 발견된 벽서를 따라 우리 현대사와 개인의 역사가 섞이고, 운명과 현실의 가학성,
그런 현실을 넘어선 말씀 너머의 힘, 즉 말씀의 무능력함에서 벋어나오는 능력에 대해 말한다.
세상은 희망도 낙관도 할 게 못되는,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는 죽음도 영생이 되는,
그 기구하고도 비극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단정하고 철학적인 문장들 속에서
아름다운 활자의 벽서를 새기듯 펼쳐진다.
결말은 비감한 문장으로 이렇게 맺는다.
차동연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세상의 권력은 그들의 구별된 공간인 천산을 침범하고 파괴하여 카타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침범하고 파괴하는 권력이 행사되는 이 세상이야말로 카타콤에 다름 아님을 그들의 구별된 삶과 특별한 죽음으로 증거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었지만, 그전에 세상은 그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버렸지만, 그전에 그들은 세상을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그들이 세상을 버리는 방법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간섭하지 않았다. (p346)
당신을 위해 지은 집 / 함성호 / 마음의숲 (283쪽)
2012년 8월 29일 녹음시작 12시간 소요 완료,
2013년 6월 12일 1차편집 시작, 7월 3일 83쪽까지 완료
작년 여름 지인의 책 발간을 도우며 이 책처럼 만들고 싶었었다. 수수한 흑백 사진과
군더더기 없는 편집, 그리고 표지가 좋아보였다. 시인 건축가 함성호의 산문 읽기를
다시 하니 다른 말 필요없이 그냥 '참 좋다.' 이 사람, 세상을 보는 눈이 참 맑고 밝고
반듯하면서도 틀에 매이지 않는다.
우리의 독특한 지리관을 말하며, 솟대를 바라보는 함 시인의 눈은 또 어떤가!
솟대는 둥지로 돌아온다는 깃듦 외에 다른 정신적 존재가 깃든다는 의미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솟대에 깃들어 있는 정신은 어떤 초월적 존재일 수도 있고, 정신적 귀향처의 의미일 수도 있다.
언제나 돌아가서 품에 안길 수 있는 곳. 솟대는 잎 무성한 세계수의 골격이다. 세 마리 새에게 깃들어 있는 세계의 영혼. 그것은 잉태의 이미지이고, 살아있는 몸이다. 우리가 어떻게 영역 없이도 장소의 갈피를 잡는지, 나는 이렇게밖에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 누구도 끝까지, 인간 내면의 북쪽 극단까지, 이해 가능한 혹은 상상 가능한 최후의 지점까지, 장벽에 부딪힐 때까지
가지 않는다. 나는 무한정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나를 본다. " 라고 말한 사람은 폴 발레리이다.
그 북쪽, 북쪽을 향해 기러기가 가을 하늘을 이고 날아간다. 안국동에서 만나자. 끄덕거리며. (p80-81)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 서정홍 시집 / 보리 (155쪽)
2013년 7월 3일 녹음 시작, 2시간 소요 128쪽까지 완료
어제 시작했는데, 시집은 보통 세시간이면 되니 다음주에 가서 다 읽을 듯.
'사람은 모름지기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란 걸 깨닫고 농부가 되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고 믿으며 글쓰기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책날개에 소개된 약력, 중에서.
이 시집에 실린 생무 맛을 닮은 소박하고 아릿한 시와 농부시인의 깨끗한 영혼을 더욱 밝혀주는 몫을 사진이 하는데,
월간 <전원생활>의 사진기자 최수연 님의 흑백사진이 그것이다. 생명의 근원에 대한 고민을 사진에 담아내고자 하는
그의 사진은 하나같이 화장기 전혀 없는 시골 아낙과 주름이 자글자글한 시골 노인들의 얼굴과 손등, 굽은 등을 닮아 있다.
지긋이 바라보노라면 흑백의 수수하고 맑은 정수에 젖어 마음이 푸근하고 넉넉해진다. 시인이 두둔하고 있는 고단한
농부의 삶과 후덕한 인심, 목숨 있는 것들에 대한 무한애정, 걸쭉한 입담과 경상도 사투리에 울다 웃다 재미있기도 하고. ^^
유유상종! 지리산 박남준 시인이 '열무김치와 풋고추와 된장, 가지나물 반찬 밥상 앞에 앉아 기도 드리며
'추천하는 말'을 곁들였다. "겸손하고 순정하여라 그대의 밥상이여"
밥 문나
외할머니는 밥만 먹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다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세상에서 밥이 최고였다.
어릴 때부터 쉰 살이 넘도록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는 외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밤새도록 똑같은 잠꼬대를 하셨다.
"밥 문나?"
외할머니는 무엇이 그리 바쁘신지
해가 뜨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서
내 손을 잡고 딱 한마디 하셨다.
"밥 문나?"
자격증
도서관에 가서 '아무리 바빠도 부모 노릇은 해야지요'
라는 주제로 강의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교육 담당자
한테서 전화가 왔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강사 자격증
을 복사해서 보내 달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격증이 없었다. 그래서 국가
에서 인정하는 거라곤 '운전면허증'밖에 없다고 했다.
교육 담당자는 웃으면서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
면 국가에서 인정하는 '농지원부'가 있는데 보내 드리
겠다고 했다. 농지원부가 뭐냐고 묻기에 '삼백 평 이상
농사지으면 국가에서 농부임을 인정하는 자격증'이라
고 말했다.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흔한 이야기지만 자연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고 한
다. 농부는 자연 속에 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강사
자격이 있지 않느냐고 내가 힘주어 말했다. 교육 담당
자는 그제야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농부, 내게도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격증이 하나 있다.
- 서정홍 시집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