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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그책 / 2016년 12월
평점 :
2009년 4월 개봉관에서 영화 <박쥐>를 보았고 각본집은 2022년에 읽었다. <헤어질 결심 각본>의 영향으로 정서경의 각본집을 더 읽고 싶어져 <박쥐 각본>과 <아가씨 각본>을 구매했다. 읽기를 잘했다는 결론.^^
박 감독 개인적으로는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고 성당에서 느낀 어린 시절 내면의 경험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각본집에서 정서경 작가의 말과 박찬욱 작가의 말이 서두에 있는데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밀한 심적 동기가 어디서든 중요하다. 그것은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잘 녹여내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완수하고 나서도 계속 내적 흔들림은 있게 마련이다.
당시엔 내가 감독님보다 죄의식을 덜 느끼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은 나이가 들고 여러 가지 경험히 쌓이면서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싶다. <박쥐>는 내가 참여한 다른 어떤 각본 작업보다 감독님이 먼저 시작하고 감독님이 완결하신 작품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외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감독님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 영화에 가장 많은 감독님의 살과 피가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자기 삶의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서 감독님께 경외심을 느낀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 정서경 작가의 말, 중(5쪽)
제도화된 종교를 더는 존경하지 않지만 어떤 종교인들은 지금도 충분히 존경한다. 천주교 신부가 주인공인 이 영화로 나는 - 비록 그가 흡혈귀가 됐어도, 아니 흡혈귀가 됐기 때문에 더욱 - 내가 아는 몇몇 경건한 신부님들을 향한 내 존경심을 표현하려고 했다. - 박찬욱 작가의 말, 중 (7쪽)
영화장면을 떠올리며 각본집을 읽고 장면이 더 생생해졌다. 거의 같은 느낌으로, 영화를 보고 썼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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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좇아가려고 노력했다.
- <테레즈 라캥> Emile Zola, 서문 중
10년을 준비해 만들었다는 영화 <박쥐>는 감독 자신의 말대로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소설 <테레즈 라캥>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 두 주인공을 비롯해 조연들에게서 보였던 모종의 이해하기 어려울 듯한 기질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공포와 혐오감 그리고 죄의식의 근간을 이해하기에 소설이 좀 더 도움이 되었다.
동물을 해부하듯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여 펼쳐 보이고 싶었다는 에밀 졸라의 서문처럼 영화는 인간 내면의 갈증을 박쥐라는 동물로 환치했다. 박쥐는 밤과 낮, 흑과 백, 어둠과 빛의 경계를 넘나들며 산다. 궁핍과 결핍을 떨쳐낼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 즉 인간의 자화상이다. 그런 동물(인간)에게 Thirst - 갈증, 갈망, 갈급, 갈구 그리고 갈등 - 는 숙명이다. 실재와 환상, ‘이다’와 ‘아니다’, 은폐와 노출 등 수많은 상극의 단어가 맞닿아 있다.
지고지순한 어떤 것, 아름다운 것, 불멸의 것. 다다를 수도 획득할 수도 없이 그것들 앞에 인간은 한낱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고도 믿고 싶어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그것은 이데아로서의 지고지순함, 이데아로서의 아름다움, 이데아로서의 불멸성, 즉 최고선善으로서의 일자一者를 믿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덜함’ 혹은 '없음'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지 않은 완전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존재할까.
우리는 어떤 면에서 죽음을 수시로 연습하며 산다. 지금 숨을 쉬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죽음은 혼이 육체에서 이탈하는 것, 육체를 죽이고 혼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부활이다. 상현의 자발적 자살 의도(박테리아 실험에 자원함)는 순교(이타적 자살 중의 하나)의 의미로 갱생하고 이것은 뱀파이어로의 부활에 이른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에밀 졸라가 탄생시킨 로랑이라는 남자, 피의 기질로 사는 인간을 연상시킨다. 로랑과 테레즈의 기질이 뒤섞이고 서로 영향을 주어 기질의 변화가 오듯 상현과 태주는 서로 피를 나누며 죽음과 부활을 거듭한다.
둘은 공범의식으로 괴로워한다. 단지 환상일 뿐이라고 서로 위무하면서도 돌덩이를 달아 수몰시킨 죄의식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 행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분히 자발적으로 보인다. 공포와 혐오감을 망각하기 위해 각자가 끌어들이는 제삼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식물인간이 된 라여사를 (표면상으로) 극진히 모시는 태주와 상현. 그들의 죄의식은 거울에 반영되고 고통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들 사이에 죽은 자가 늘 끼어 있다. 세 명이 누워있는 침대의 침구는 온통 뱀을 연상하게 하는 문양이다. 뱀은 치유를 상징한다. 그들의 지극한 바람이 투영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다. 또 한 명,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분노하는 라여사가 앉아 있다. 그녀는 반죽음 상태로 마치 전지자적인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단죄하려 든다. 하지만 그녀가 실제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 별로 없고 무능력해 보인다.
에밀 졸라의 서문을 다시 인용하고 싶다. - 내가 그들의 회한을 촉구해야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 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
그들에게 영혼은 정말 완벽하게 부재할까. 그렇다면 구원이나 불멸을 바라는 마음 또한 부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좀 다른 이야기로 나아간다. 영혼의 부재를 의심하고 영혼의 재림 혹은 갱생으로 치닫는다. 그것 또한 갈증으로 우물을 찾는 일종의 허기진 질주다. 뱀파이어가 된 태주와 상현은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생명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모순된 존재양식이다. 불안을 떨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빛의 의식'이 행해져야 할 차례다. 또 다시 살기 위해서다. 습기 차고 침침한 집안을 온통 백색으로 칠하여 빛을 끌어들인 것 같지만 그들의 핏빛 욕망과 죄의식은 날로 깊어질 뿐, '행복한복'이라는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백색은 더욱 살기등등해지는 그들 심리를 차갑게 반영해주는 역설적인 색깔이 되어버렸다.
결국 태양빛 아래 그들의 육신을 하얗게 태움으로써 불멸의 약속을 한다. 육의 세계에서는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상현과 태주는 차라리 태양 아래에서 육신을 사그라지게 하는 제의를 치른다. 상현의 커다란 신발을 다시 신는 태주는 그것으로 대속받으며 치유와 회복의 기운을 얻는 셈이다. 그 신발이야말로 말로 하는 어떤 기도의 말보다 신실해 보인다. 신발은 땅, 지옥을 딛기 위해 필요한 것, 이 세계에 몸 담고 있는 물건이다. 영화는 표면적으론 하늘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땅을 말한다. 하지만 태양 아래 저들의 두 눈은 하늘을 열망하듯 올려다보고 있다.
‘행복한복’에 감금된 태주의 육체는 영혼과 함께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행복한복’은 은폐의 공간이다. 가장된 평화와 한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음습하고 억압된 공간이다. 모든 죄악을 가둬놓은 육肉의 공간이다. 상현의 표현으로는 태주에게 그곳은 지옥이다.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줄게요”라고 말했던 상현은 이제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우리 지옥에서 만나요”라고 담담하고도 비장하게 말한다. 종교가 없어서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하던 태주도 상현을 따라 지옥길에 동행한다. 지상의 지옥을 벗어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옥도 천국도 가름이 무의미하다.
상현은 지옥을 말하지만 천국을 동시에 말한다. 수많은 밤의 자식들(잠, 죽음, 나이와 질병, 착각과 망상, 오류와 거짓, 망각 등)을 말할 때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은거하는 빛의 존재들을 인정한다. 모든 악덕이 세계를 보는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왜곡시킨다 해도, 자신 안에 갇히는 땅에 발 딛고 산다 해도 우리는 그 너머 어느 곳에 먼 시선을 두고 그곳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한다. 허망하게도, 영생을 꿈꾸는 것이다. 육의 세계에서는 영원히 함께 살 수 없음이다.
이즈음 클라우스 헬트가 쓴 <지중해 철학기행>을 낭독 녹음하다가 영화 <박쥐>를 나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초가 읽혀 반가웠다. - “만일 인간이 지속적인 행복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영혼은 피안에 자리한 이데아들의 세계에서 참된 고향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혼이 정화되어야, 다시 말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데아들을 인식하면서 지속적인 행복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감각이 일어나는 바로 육체이기 때문이다. 이데아들을 순수하게 바라보기 위해 혼은 육체로부터 떨어져야 한다.... 철학은 죽음의 훈련이다."
22살의 빛나는 원석, 김옥빈.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는데 이후 아쉽게도 멋진 역할이 안 주어졌네.
<박쥐 각본>에서 다시 선명히 들어온 것들
1. 고향
각본집을 읽고 다시 들어온 첫 번째 단어는 역시 ‘고향’이다. 영화에서 라여사와 강우가 자주 듣는 남인수와 이난영의 노래가 단초였다. 영화에선 흘려듣게 되는데 각본집에선 두드러지게 가사까지 적어놓았다. 아마도 박 감독의 아이디어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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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낚싯배 (밤)
태주를 가운데 두고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강우와 상현. 보름달 보며 [고향 그림자]를 제법 구성지게 부르는 강우.
강우
똑딱선 푸로페라 소리가 이 밤도 처량하게 들린다
물 위에 복사꽃 그림자같이 내 고향 꿈은 어린다
- 69쪽
내 고향 꿈이 어리듯 “물 위에 복사꽃 그림자” 어리는 이미지로 각본집 표지를 삼은 듯 아름답다.
각본집의 마지막은 이렇다. 영화의 첫 장면, 나뭇가지 그림자 어른대는 하얀 벽면만큼이나 압도적 영상이 연상되면서 대조적으로 강렬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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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들석이며 숯덩이가 되어가는 남녀, 깜빡거리지도 않고 이 소멸을 관찰하는 라여사의 싸늘한 눈동자. 그러거나 말거나 옛 노래는 무심히 흐른다.
이난영
정들은 고향 길에서 순정에 어린 그대와 나는
언제나 변치 말자고 손잡고 맹서했건만
그대는 그 어데로 갔는가, 잊지 못할 추억만 남기고
정들은 고향 길에는 구름만 흘러갔고나...
-121쪽
2. 헤어질 능력, 뛰어내림의 희열
태주 : 당신은 날 죽여도 후회, 살려도 후회야...
우리 인제 헤어져.
상현 : 나한텐 그런 능력이 없어.
헤어질 수 있었으면 너를 왜 살렸겠어?
- 104쪽
10년도 더 지나 정 작가와 박 감독은 헤어질 능력을 발휘해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고^^
고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릴 수 있냐고 묻는 태주를 안고 상현은 박쥐처럼 뛰어내린다. 그때 태주는 세상에서 맛보지 못했던 최고의 희열을 맛본다. 피를 나누어 준 후 재생한 태주에게 상현이 한 말 “해피버스데이 태주씨!” (난 이 장면과 목소리가 제일 좋았다) 태주가 새로 태어난 이후 느끼는 환희는 잠깐이다.
3. 캄캄한 세상
영생의 욕망이 차올라 피를 나누어 달라는 눈먼 노신부에게 상현은 말한다.
“그렇게 보고 싶으세요? 이 캄캄한 세상이?”
노신부 : (벌컥 화를 내며) 너는 남의 피로 연명하면서 네 피 한 방울 나눠 주는 건 아까워하느냐! (75쪽)
윤동주 시인이 암담한 세상을 두고 ‘병원’이라는 시를 지었듯 세상은 아직도 밤이다. 헛된 믿음으로 기적을 신봉하는 자들에게 허상을 깨닫게 해주려고 한 신부. 병든 몸의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기분을 상현은 한때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으로 느꼈다. 내쳐지지 않고 선택받았다는 기분. 하지만 그또한 허상이라는 걸 깨닫는다.
4. 물과 피
지속적으로 물과 피가 대조되어 흐른다. 물은 고향(귀향), 정화, 속죄, 구원, 소멸과 해방을 상징하고 피는 생명, 욕망, 죄와 고통을 상징한다. 상현과 태주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멸하고자 밤길을 달려 새벽에 도착한 곳은 동해안의 개활지. 위압적인 해가 떠오르자 일제히 모세혈관이 눈에서 터지고 “파랗게” 타오르는 거대한 태양을 바라본다. 각본집에 “파랗게”라고 씌어 있어 놀랐다. 파랗게라니! 영화에선 몰랐던 부분. 심장이 타들어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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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의 상상적 시점으로, 환상적으로 변용된 일출 장면. 파랗게 타오르는 거대한 태양에서 칼날처럼 뾰족하게 사방으로 뻗치는 햇살.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빛깔들로 이루어진 뭉게구름, 피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고래들이 뿜어 올리는 피 분수, 날개 달린 거대 지네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하늘. 수십 명의 인간이 각기 다른 멜로디로 부르는 합창. - 121쪽
5. 행복한복, 현상현
<헤어질 결심>에서 안정안, 엄마원전 완전안전,처럼 이런 말장난 좋아하는 개구쟁이 박 감독. 무거울 법한 이야기에 무겁게 빠지지 않도록, 너무 심각해지지 않도록 권한다. 위트를 수시로 날려주는 깨알대사, 결정적 순간에 숨통을 틔워주는 특유의 스타일, 부조리한 대사 중 철학적 메시지와 인간의 존재론적 의문에 대한 갖가기 이미지가 폭발적이다. 신발 장면은 작가와 감독 모두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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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 : (꼭 끌어안으며 담담하게) 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 120쪽
1. 병원 효성 입원실 (낮) 상아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벽과 문짝에 나뭇가지 그림자 어른거린다. 문 열리고 상현 들어선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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