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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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와 고래, 손, 저만치 혼자서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남는다.
{세월이 지나니 견딜 수 있게 된 일들과
갈수록 드러내기 어려워지는 연약한 감정과
흐르는 시간 앞에 겸허해지는 인간 존재에 대하여}
- 책뒷표지 중

그리고 저자가 소설 뒤에 단, 스스로 객쩍은 소리라고 쓴 “군말”에서 이야기들의 실제 배경, 저자가 소설로 옮기고픈 이유와 마음이 느껴진다. 단편마다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혹은 우리 이웃에 사나 눈여겨보지 않았던, 삶을 견디며 묵묵히 이어가는 개별의 이웃을 끌어낸다. 그 한 사람으로 여러 사람을 대변한다. 결국 함께 이 땅을 사는 우리를 포함한다. 담담하나 우울한 이야기이고 어쩌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해결되지 않았거나 해결되지 못할 문제들, 국가적 폭력과 여전한 치욕을 감당하며 사는 이웃과 함께 살면서도 기어이 못 본 척하기 쉬운 또 한 사람의 이웃으로서 이 글을 썼다, 김훈은.
오래 살아온 정발산 아래 일산 호수공원 장기판 이야기는 에세이집 “연필로 쓰기”에서도 등장하는데 이 책에선 “저녁 장기 내기”로 그만의 느낌을 단조롭게 그려낸다. 구체적 풍경도 김훈의 손에 가면 추상적인 저너머의 어떤 것으로 흘러나온다. 그게 참 묘하게 서늘하고 슬퍼서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손”은 영화 “시”가 떠오르는 사건이다. 실제로 오영환 소방사의 글을 읽고 나서 손에 사로잡혔다는데 김훈은 “공무도하”에서도 장철수의 앙상한 손과 악력을 문장으로 말했다. 그 문장이 좋았고 동시에 내가 본 손을 여럿 떠올렸던 기억을 다시 데려왔다. 손은 조용히 많은 걸 말해주고 꾸미기 어려운 신체 부분이다.
늙어가는 몸은 누구든 피할 수 없으니 김훈도 심장에 이상이 와 입원도 하고 그랬나 보다. 문장은 힘이 좀 덜어지고 더 간결해졌다. 행간에서 읽어야할 심정이란 게 더 늘어간다, 주름살 늘어가듯. 건강 잘 살피며 독자 곁에서 오래 글을 쓰면 좋겠다.
아래 밑줄은 모두 따끈한 군밤 같은 “군말” 중 일부다.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나는 해체되는 삶의 아픔을 느꼈다. 저마다의 고통을 제가끔 갈무리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앉아서 장기를 두는 노년은 쓸쓸하다. 삶을 해체하는 작용이 삶 속에 내재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서 보았다.
「저녁 내기 장기」는 대상에 바싹 들러붙어서 쓴 글이다. 형용사를 쓰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바싹 붙는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바싹 붙고 나면 글을 데리고 물러서기가 어렵다. 나는 날마다의 불완전 속에서 살고 있다. - P260

오영환 소방사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해서 그때의 손의 느낌을 더 자세히, 더 육감적으로 말해보라고 다그쳤는데 그는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세 마디를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글을 써서 그 빈자리를 메꾸기로 했다. 나는 오영환 소방사가 전한 느낌을 등대처럼 바라보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지어내서 그 등대에 연결시키려고 애썼다. 십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나의 이야기는 꿰맨 자리가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이 세 마디를 이겨낼 도리가 없다. 글은 삶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은 여전히 나의 소중한 테마다.
노동하는 손, 사랑하는 손, 쓰다듬는 손, 주무르는 손, 주는 손, - P262

받는 손, 부르는 손, 보내는 손, 기도하는 손, 연장을 쥐는 손, 악기를 쥐는 손, 무기를 쥐는 손, 고운 손, 부르튼 손,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손잡이에 남아 있는 손들의 자취와 표정에 대해서 나는 쓰고 싶다. 나의 ‘손‘은 오영환 소방사의 ‘손‘에 미치지는못하지만 ‘손‘이라는 제목은 내 마음에 든다.
2022년 여름 김훈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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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2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김훈 선생의 글들에 대해서는 항상 이중적인 복잡함을 느껴요. 뭐랄까 너무 싫은데 너무 좋다 딱 이런식으로 표현하는게 말도 안되는거 같은데 진짜 제가 김훈이라는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나 느끼는거거든요. 언젠가는 여기에 대해서 글을 한 번 써보고 싶기도 한데 마음만요. ㅎㅎ

프레이야 2022-06-22 23:00   좋아요 2 | URL
저도 그렇답니다 ^^ 그럼에도 손 내밀어지는 강한 끌림. 떨칠 수가 없는 매력이 있어요. 문장도 사유도. 소설보다는 에세이 문장이 더 좋지만요. 긴 활같은 서늘한 눈매를 좋아해 흠모했던 예전 알라디너 기억하시나요? 다섯자 닉이었지요. 속닥속닥 자주 이야기하곤 했죠. 그분, 한강도 좋아했어요. ^^

얄라알라 2022-06-23 01:21   좋아요 1 | URL
이중적인 복잡함...뭘까? 바람돌이님께서 느끼셨다는 그것..궁금하면서

더 궁금한 것은 항상 느끼신다는 점이요...음...저도 같은 질문은 제게 던져 봅니다. 어떤 특정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일관된 정서적 반응이 올라오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가?....흠...저는 그 정도로 한 작가의 작품은 파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겠어요.

프레이야님께서는 바람돌이님 말씀 바로 아시네요..부럽습니다

프레이야 2022-06-23 11:11   좋아요 2 | URL
얄라 님^^. 김훈의 문장은 곰곰이 씹어 읽어야 사유의 맛과 문장의 말맛이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서사 중심의 소설읽듯 휘휘 읽어내려가면 별로로 느껴질 수 있고요. 구체성이 다소 부족하나 싶다가도 치열하게 구체적이고 모호하다 싶다가도 자명하고요. 철저한 자료조사로도 유명하죠.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제겐^^

바람돌이 2022-06-23 11:36   좋아요 2 | URL
헉 누구였죠???? 그분은 저랑은 속닥속닥 안하셨나봐요. ㅠㅠ
저도 김훈은 에세이를 더 좋아해요. ^^

프레이야 2022-06-23 12:07   좋아요 2 | URL
춤추는인생 님이에요. ^^
공개페이퍼로도 가끔 언급하셨어요.
참 고운 분,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걸요.

바람돌이 2022-06-23 12:23   좋아요 3 | URL
앗 춤추는인생님. 당연히 기억나죠. 아 진짜 섬세하고 다정하신분. 예전에 뵙던 분들이 많지않다보니 이렇게 이름만 들어도 그립네요. ^^

페넬로페 2022-06-22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김훈 선생의 신작 기대됩니다^^

프레이야 2022-06-22 23:02   좋아요 3 | URL
기대가 너무 크면 괜히 …
실망하시진 않아야 할 텐데요.
양장본으로 참하게 나왔어요. 독서대도요^^

scott 2022-06-23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첫장을 읽자마자
김훈 작가의 문장으로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프레이야 2022-06-23 11:21   좋아요 1 | URL
김훈의 배경묘사 문장에는 특별함이 있지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칼의노래 첫문장, 이 주격조사를 다른 언어로는 어떻게 번역할지) 싫어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문장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한글판을 읽어보시길 뽐뿌질합니다. 번역되어 나가 기쁜 일이고요. 우리말맛이 어떻게 잘 전달되었을지요.

서니데이 2022-06-23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산에 가끔 가는데, 한번도 호수공원에 가본적이 없어요.
정발산 근처로 가지만, 시내라서 그런지 보이지도 않고요.
그런 호수공원의 장기판이라니.
그게 쓸쓸해질 수도 있구나. 했습니다.
오랜만에 김훈 선생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 좋아하는 분들 많으실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 덥고 습도 높은 날씨예요.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2-06-23 10:30   좋아요 2 | URL
전 호수공원 가보았어요 두 번 ㅎㅎ
물도 좋고 장미정원도 좋고 한바퀴 걷기에 좋은 곳이어요. 전 장기 두는 늙은 사내들을 보진 못했지만 김훈은 매일 그 또래의 사람들을 보고 장기판을 보나 봅니다. 쓸쓸함이 잔뜩 묻어나요. 해가 지면 판을 덮고 제각각의 집으로 들어가겠죠. 비가 오기 시작하네요. 좋은 하루^^

별족 2022-06-23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을 저렇게 많이 보니, 손님도 (내)손(手)이 많이 가서, (남의) 손(手)이 와서 손인가,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 ㅋ

프레이야 2022-06-23 10:34   좋아요 2 | URL
별족 님 오랜만 안녕하세요 ^^
손에 대한 다른 생각 넘 좋아요. 손이 많이 간다는 건 서로의 관계를 잘 말해주네요. 얼굴은 꾸며도 손은 그럴 수 없이 사람을 보여주는데 희한하게 그게 또 딱 선입견 갖기 좋기도 하구요. 사람 보면 손을 보게 되어요. 손이 많은 걸 말해주지만 그 한계가 있더군요. 장마 시작되었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stella.K 2022-06-23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좋긴한데 뭔가 홍상수 풍이란 생각을 했어요. 이 비슷한 영화있지 않나요? 김훈 좋아하는데 꽤 오랫동안 읽지않고 있네요. 저는.ㅠ

프레이야 2022-06-23 11:23   좋아요 1 | URL
제목은 소월 시 산유화에서 한 구절을 따왔다고 명시했어요. 오래된 에세이 풍경과 상처, 에서도 산유화를 전문 인용하며 썼는데 그 책이 1994년판이니 진짜 세월 많이 흘렀죠. 독보적 여행에세이. ^^ 그 책 책날개에 젊은 얼굴이 있는데 이제 늙어진 작가의 얼굴을 보면 … ㅠ 오래 글 쓰시면 좋겠어요.

mini74 2022-06-24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 정말 좋네요 프레이야님 저도 에세이 좋아합니다 갑자기 제 손을 바라보게 되네요 ㅎㅎ

프레이야 2022-06-24 17:27   좋아요 1 | URL
ㅎㅎ 미니 님 손 티비에 언뜻 비쳤던 거 같은데 이뻤던 기억이 … 자세히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희선 2022-06-25 0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훈 님 책을 조금 읽기는 했지만, 뭐라 말하기는 어렵네요 잘 몰라서... 책을 읽고 안 쓸 때였을지도... 라디오 방송에 나왔을 때 들었습니다 그 방송엔 작가 별로 나오지 않는데, <음악캠프>예요 그러고 보니 그렇게 들은 거 처음이었나 봅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2-06-25 02:00   좋아요 1 | URL
배철수의 음악캠프였나요? 전 전혀 몰았어요. 오호 이야기도 천천히 은근 유머러스하게 해서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