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연구인 선대인 ; 경제와 인문 사회를 교직하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돌이켜보니 그가 번역한 말콤 글래드웰 책은 읽어보았지만 정작 그가 쓴 책은 정독해 본적이 없다. 죄송합니다.^^;; 읽겠습니다. ^^ (최근작 선대인의 빅 픽처를 읽었군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해관계에 따라 오염되는 정보다. 재벌들의 목소리를 어떤 식으로 직간접적으로 대변하고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경제연구소들도 대기업과 정부 관료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를 이끌면서 세금과 예산에서 기득권의 이해를 앞세우는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따 2012년 문을 연 선대인경제연구소는 “정부와 재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직한 정보 생산 기관이자 이런 콘텐츠를 체화한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양성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감은 선대인 글쓰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처음 기자가 된 건, 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변되지 않을까. 언론인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해서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주류 언론에 들어가 언론을 바꾸겠다고 각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1999년 삼성 이재용 씨의 편법 상속 문제를 다룬 기사를 사회면 머리기사로 발제해 썼지만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삼성과 관련된 기사는 줄기차게 축소 왜곡됐고, 파업을 다룬 기사에서도 사용자측의 목소리만 비중 있게 실렸다.
그는 책을 쓸 때 마다 ‘왜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보는 걸 보지 못할까’,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왜 사람들이 놓치고 지나갈까’, ‘제대로 알려야겠다.’라는 욕구들이 상당히 강했다. 이제껏 그런 욕구에서 책을 써왔고, 그것이 대중적 반향을 일으켜 알려진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 하고 싶은 말이 뚜렷하지 않은데, 예컨대 돈을 벌려고 책을 낸다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연습이다.
여동생 친구가 신형철 여친이란 말을 듣고 어찌나 그 여친이 부럽던지. (그 여친이 ‘정확한 사랑’일까.) 난 ‘절대적’ 이성애자거늘.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났다면 신형철 스토커가 됐을지도. 사랑해요. 형철씨. ^^
신형철은 비평의 근본이 섬세함에 있어야 하고, 섬세함이야말로 비평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김현은 신형철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비평가다.
“김현 선생의 비평이 섬세해서 좋다는 빤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섬세함은 비평의 여러 가치 중 하나가 아니라 비평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비평이 미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사회적 실천일 수 있으려면, 섬세함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김현 비평의 힘은 제게 근원적인 것이에요.”
“비평이 하나의 글로 존립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가져야 할 것 중 하나가 인식의 생산이에요. 비평은 텍스트를 앞에 세워야만 존재할 수 있는 글입니다. 텍스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과정에서 비평의 고유한 장점이 발휘될 수 있어요. 그러나 비평이 텍스트로 환원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굳이 비평을 읽을 이유는 없겠지요. 텍스트로 환원될 수 없는 인식을 생산해내지 못한다면 비평은 하나의 글로 존립할 수 없습니다. ”
“‘삶에 의미가 있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넓은 의미에서 윤리학적인 테마들입니다. 문학이 제게 소중한 이유는 삶의 의미에 대해 가장 섬세하게 질문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
“어떤 사태와 진실을 백퍼센트 담아내는 문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문장으로 표현되면 부정확해지는 그런 문장 말입니다. 정확한 인식에 도달하게 해주는 문장이 정확한 문장입니다. 그런 문장을 쓴다면 당연히 인식의 생산에 성공할 수 있죠. 마찬가지로 정확한 문장을 쓰지 못하면 어떤 인식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화려하거나 현학적인 문장은 그 부작용으로 생기는 거라고 봐요.”
이 책에 나오는 파워라이터 중에 나는 신형철을 제일 좋아하나 보다. 그의 책 세 권을 다 읽었으니. 세 권 다 ‘투 썸 업’ & 별 다섯 개.
문화학자 엄기호 : 당신은 누구의 ‘곁’에서 글을 쓰는가
그의 관점에 이론(異論)이 있기는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본받고 싶다.
엄기호는 위안을 주지도, 선동하지도 않았다. 그가 생각할 때 위안과 선동은 모두 ‘어른’의 목소리였다. 엄기호는 다르게 접근했다. 기성세대의 눈엔 찌질하고 무기력하고 탈정치적이고 이기적이고 싸기지 없는 오늘날 청춘의 육성을 그는 그저 담담히 전했다. 채근하거나 위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젊은이들의 속내를 모른 체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우리를 두러싼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외부의 시선으로 비난하는 이에게 내부 사정을 들려주며 공감 얻기. 이것이 엄기호가 가진 삶의 태도이자 서술의 방식이다.
엄기호는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폐허를 직시할 용기’다. 눈앞에 폐허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폐허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하는 희망은 거짓이다.
그는 한국의 교육이 이미 ‘망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망한 학교 안에서도 교사와 학생은 살아간다. 엄기호는 ‘살아 있는 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 ‘망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나는 이미 망했어요. 그때 ‘당신도 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기쁘죠. 또 ‘걔도 곧 망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나,너 우리가 모두 망하면 그때부터 ‘공동의 운명’으로 엮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요.”
한 명이 말하면 개인적인 일이고, 두 명이 말하면 의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세 명이 이야기하면? 그것은 사회적 현상이다.
입자물리학자 이강영 : 누군가는 써야 하는 글에 도전하라.
“(지식인이라면) 자기 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제 3자의 눈으로 보는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 스스로 그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늘 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신뢰할 만한 사람을 가까이에 두는 게 좋습니다. ‘이런 건 누구나 다 아늘 걸 거야’하는 생각과 ‘이런 건 아무도 모를 테니까’하는 생각 둘 다 버려야 합니다.”
앞으로 현대물리학의 중요한 개념과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다는 이강영. 대중을 위한 읽을거리와 교과서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책이되, 읽고 나면 작은 주제나마 현대물리학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한단다. 이를테면 칼텍의 물리학자 킵S 손이 쓴 <블랙홀과 시간굴절>같은 책 말이다.
시인 이병률 : 사람 마음을 훔치는 ‘끌림’이란
시가 갖는 문법의 허용치는 높다. 반면 산문에는 이런저런 제약이 많이 따른다. 그래서 시인이 사용하는 문장은 그것이 비문이라 할지라도 시적 허용이 가능하다. 이병률 또한 그런 작업에 젖어 있다 보니 산문에선 정확한 문장을 써야 한다는 세상의 규범에 거부감이 있다. 독특한 문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비문과 오문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재주가 있는데, 그 역시 문장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세상에 없는 문장에 대한 욕심, 세상 그 누구도 쓰지 않은 문장에 대한 동경이 저한테도 있어요.”
경제평론가 이원재 : 사회적 경제의 시작, 소셜 픽션
그의 공식 직함은 희망제작소 ‘소장’이지만 이원재는 ‘경제평론가’로 불리기를 원한다. 여기에는 진보적인 경제학자이자 1980년대 최고의 경제평론가였던 고 정운영 교수의 영향이 크다. (...)이원재는 대학 시절 정운영의 강의를 듣기 위해 다른 대학까지 찾아간 적이 있을 정도로 그의 팬이다.
“문학 텍스트에 맞먹는 미적 광채를 신문 칼럼에 부여한 드문 저널리스트(고종석)”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운영은 딱딱한 경제 문제를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한편 <블링크>와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친절함’이라는 측면에서 이원재가 정운영 교수와 함께 롤모델로 삼는 경영사상가다. 글래드웰은 깊이에서는 정운영 교수에 뒤지지만 대중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경제 평론가로서 이원재의 목표는 정운영의 ‘깊이’에 글래드웰의 ‘전달력’을 갖춘 글을 쓰는 것이다.
소셜픽션은 2013년 4월 그라민 은행 창립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주창한 개념으로, 19세기 과학소설에 등장한 아이디어들이 모두 현실이 된 것처럼 사회도 우리가 상상한 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을 떠올려보자. 스웨덴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가난한 농업 국가로, 당시 공업화와 파업, 대량해고 등 갖가지 사회문제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훗날 스웨덴 재무 장관이 되는 사민당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1919년에 출산 수당, 평등한 교육, 누진적 상속세와 소득세 등을 핵심으로 하는 ‘예테보리 강령’을 작성한다. 당시 스웨덴에서 이 강령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은 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비그포르스의 이 강령을 통해 상상했던 사회의 모습을 수십 년 뒤 스웨덴은 결국 만들어냈다. ‘현실’을 핑계 대지 않고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상상’을 실행해 옮긴 사회야말로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소셜픽션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 책의 대표 집필자로 참여한 이원재는 거대 담론들이 실패로 귀착되는 이유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내다보았다. “사회 변화는 미래와 과거가 밀고 당기는 가운데 일어나기 마련이에요. 이상적인 미래의 이미지가 앞에서 끌어당기고, 현실화된 과거가 뒤에서 밀어주어야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회적 상상이 사라지면 인류 진보의 시계는 멈추게 됩니다.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벽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거예요.”
미술사학자 이주은 : 우연한 만남에서 글감을 떠올리는 그림 에세이스트
이주은 글의 근간을 이루는 건 이미지다. 이미지는 이주은의 삶 자체다. 이미지를 보고 또 보고, 그 이미지를 두고 생각을 거듭한다. 그는 계랑화하기 힘들 정도로 이미지를 봐왔다. 국내외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발바닥이 부르틀 정도로 샅샅이 보고 다닌다.
그는 미술관이나 도록에서 한순간 정지된 그림 장면을 보면서, 그 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그답게 사건을 해결하듯 그림의 디테일에서 단서 하나하나를 찾아낸다. ‘저 신발이 왜 저기 떨어져 있을까’를 생각하며 단서를 읽어낸다. 세심하게 보면서 연상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그림의 전체부터 보지 말고 구체적인 것부터 떠올리라고 말한다. 발상에서 연상을 강조한다. 이런 연상의 방식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미술평론가답게 자신의 다이어리를 일종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 논리적이지 않은 사물이나 언어의 배치)이라고 일컫는다. 그다지 체계적으로 보이지 않는 다이어리 메모, 즉 데페이즈망은 글감의 원천이다. 마구 뒤섞인 메모 내용들이 나중에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자기만의 글쓰기 방식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많이 읽고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많이 읽고, 그것들이 내 안에서 넘쳐흐를 만큼 가득할 때 비로소 글이 술술 써지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많은 지식을 전달하려는 욕심을, 조금이라도 잘 전달하겠다는 욕심으로 전환시켜야 해요.”
이주은이 좋아하는 작가는 홍은택씨다. 심오한 지식과 소소한 정보를 잘 결합시키는 점, 생각의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점, 저널리스트가 쓴 문장처럼 명쾌한 점, 자기만의 생생한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점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알랭 드 보통도 좋아한다. 또 섬세하고 잔잔하게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스다 미리의 시각도 편안해서 좋아한다. 마스다 미리의 시선으로 일상을 살아보고 싶은 충동도 간혹 느낀다고.
서평가 이현우. 표류하는 책의 바다에서 나침반이 되다.
그러고보니 난 신형철 보다 이현우의 책을 더 읽었다. 이현우를 더 사랑하는 걸까.
아, 아리송해.
이현우는 스스로를 ‘문학 극대주의자’라고 말한다. 역사, 철학, 문학 모두가 큰 의미에서는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라면 전체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이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라면, 플롯이나 수사 같은 문학적 장치들을 다루는 정도에 그쳐선 안돼요. 내 경우엔 현상학, 해석학, 정신분석학, 수용이론 등 문학이론을 공부하면서 관심사가 자연스레 철학으로 확장된 사례죠.”
비평과 구분되는 서평만의 독자적 영역은 무엇일까. 비평은 독자들이 같은 책을 다시 읽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서평은 책을 읽을지 말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평이 어떤 책을 이미 읽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서평은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에 따르면 한 세대 전과 달리 지금은 비평보다 서평의 역할이 커졌다는데, 책을 읽는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현우의 일상은 읽고 쓰는 일의 반복이다. 어찌보면 책 속에 구속된 삶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 독서는 ‘자유’의 다른 말이자, 인간이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권리’다.
“‘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우리가 너나없이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어 한다면, ‘책을 읽을 자유’는 자유의 최소한이다. ‘최소한의 도덕’(아도르노)이란 표현을 빌려 ‘최소한의 자유’라고 말해도 좋겠다. ‘닫힌 사고’와 ‘빈곤한 생각’만큼 우리를 옥죄는 감옥도 없을 테니까."
2015년 말, 로쟈 이현우 알라딘 기록을 보았다. 구매한 책값이 1억을 넘어섰다.
허걱. 신형철은 이현우를 보고 “저이는 사람이 아니라 (독서)기계가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현우를 본받아 나도 ‘독서기계’이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