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독서 일기>는 대개 재밌기 마련. 닉 혼비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간인 줄 알고 덥석 샀더니 이미 2009년에 출간된 책이었을뿐더러 혼비의 독서 일기는 2003년부터 2006년이라 다소 김 빠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뭐 어떠랴?
내가 유일하게 필사한 소설은 디킨슨의 <위대한 유산>이었다. 그만큼 디킨슨의 작품에 애정이 있어서인지 영화나 소설에서 디킨슨을 인용하는 작품들은 왠지 더 정이 간다. <어바웃 타임>은 영화자체로 사랑스러운 영화였는데 게다가 디킨슨을 인용하다니!! 마구 좋아지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
닉 혼비는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
“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책을 다 읽은 것이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그립다.---“
그렇지만 디킨슨 외에 혼비가 읽은 책들은 죄다 처음 듣는 작가들이었다.
이렇게 무지할 수가!!
그나마 알아 들을 수 있는 이름은 데니스 루헤인 정도.
그러나 그가 추천한 <미스틱 리버>는 영화를 보았다는 핑계로 읽지 않았다. (지금은 읽었다)
<머니 볼>도 똑같은 이유로 읽지 않았는데.
<클러커스>? 리처드 프라이스는 누구지?
“저자인 리처드 프라이스가 톰 울프처럼 엄청난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그의 책은 플롯도 적절하고, 지극히 독창적이고 진지한 자세로 쓴 것이며, 영혼이 담겨있고, 윤리적인 힘이 있는데 말이다.”
이런 소개 글에 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패트릭 해밀턴은? 도리스 레싱이 터무니 없이 과소평가된 소설가라고 말했다는데.
메릴린 로빈슨?
“어쨌든 메릴린 로빈슨의 [길리아드]는 분명 현대의 클래식이다. 출간된 지 5분도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대단히 진지하고, 아름답고 풍성하고, 잊을 수 없는 작품이며, 이 책이 이미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로빈슨이 한 건 해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혼비는 로빈슨의 또 다른 책 한권을 독서일기에 추가시킨다. [하우스 키핑]. 내가 만일 혼비의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혼비는 4년 동안 한 작가의 책을 두 번 이상 읽은 적은 없었다. 있다면 보네거트와 데니스 루헤인 정도? 그가 두 권의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메릴린 로빈슨의 책을 두 권 읽고 나니 그녀가 현재 미국에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그룹에 속하는 건 분명하다고 느껴진다. 그녀와 비슷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자 그대로의 표현이다. 문학 속에서든, 다른 어디서든, 그녀와 같은 정신을 가진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
현대의 가장 위대한 작가 그룹에 속하는 작가를 나는 전혀 몰랐다니!!
너무 궁금해서 결국 사고 말았다.(읽다 말았다)
필립 라킨 역시 처음 들어보는 시인이었는데, 현재 상연중인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학생들이 그의 시를 암송하는 게 아닌가? (항상 겪는 일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들은 계속 반복되어 여기저기 출몰하곤 하는데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암시가 아닐까?) 혼비는 글쓰기에 대한 라킨의 ‘멋들어진’ 글을 소개하기도 한다.
시란(어쨌든 내게 있어서는) 잊어버린 곡조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수정하는 작업은 모두, 잊어버린 곡조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이 문득, 1초도 채 안 되어 사라지는 환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그 환상이 일부를 차지하는 전체를 표현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쓰자면 끝이 없겠다.
아무튼 그가 소개한 책들을 새로이 독서 목록에 올려놔야겠다.
그러나, 그의 제안대로 읽고 있는 책이 재미없어 죽을 지경이라면 내려놓고 다른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의 리스트는 끝이 없는데 왜 의무감에 책을 읽어야 한 단 말인가?
책이 내 얼어붙은 감성을 깨부수는 도끼가 아니라면
책이 내 굳어버린 이성을 깨부수는 망치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뭐라 하든 그 책은 던져버려도 좋다.
의무감에 살아가기에 인생은 짧으니까.
(2014. 4. 17. 작성.)
2년이 지난 이제야 필립 라킨 시를 읽고 있다니.
하긴 메릴린 로빈슨 책은 아직 다 읽지도 못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