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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평점 :
62년부터 단기대신 서기를 공용연호로 사용하게 된다. 61년 12월 31일 오후 7시, 국영 KBS TV가 개국한다. 당시에 TV 수상기는 5천대에서 만대 정도. 군사정권은 2월부터 총 2만 대의 TV를 공수해 월부로 배포한다. TV 수상기 신청서 한 장에 100원씩 팔았는데 신청서 판매한 대금만 650만원이 걷힐 정도로 경쟁이 심했다.
군사정권은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도 전개하였다. 이 덕분에 다 죽어가던 금성사가 살아났다. 금성사는 라디오 재고를 순식간에 해결한다. 5.16전까지 판 라디오는 1만 7천대 정도, 라디오 보내기 운동 이후, 농어촌에만 20만 대를 팔아치웠다.
3월 22일, 윤보선이 대통령직을 사임한다. 박정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를 꿰찬다. 박정희를 비롯한 쿠데타 세력들은 청와대 잔디 밭에 돗자리를 깔고 술판을 벌인다.
6월 1일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은 ‘구 민주당 반혁명음모사건’을 적발, 41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한다. 무력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것. 장면도 구속된다. 뭐, 당연한 일이지만 황당한 조작극이었다.
62년에도 미군의 한국인 학살은 계속된다. 1월 6일, 미군은 땔나무를 구하던 파주 주민들에 발포한다. 조선일보 김천수 기자의 취재로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미군은 나무꾼을 발가벗겨 놓고 도망가는 나무꾼을 향해 쏘았다. 총도 사냥용 엽총으로 쏘았다. 그야말로 인간 사냥이었다.
5월 16일엔 ‘양공주’을 윤간하고 머리를 깍은 사건 등 미군의 한국인에 대한 학살과 만행은 끝이 없었다.
1월 13일 군사정권은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장면 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고대로 실행한 것.
6월 10일 0시를 기해 3차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옛날 돈 10환은 새 돈 1원으로 평가절하되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했던 돈이 나오질 않았다. 미군은 분노했다. 이에 12월 17일 박정희는 화폐 개혁이 실패했음을 인정한다.
6월 9일 군사정권은 병역의무 불행자 자수 신고 기간을 발표해 신고 접수를 받았다. 2차 신고 기간에 나타난 자수자까지 무려 41만 명이 신고한다.
군사정권은 6.28 언론 정책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만 보이면 신문기자들을 잡아 가둔다. 62년부터 군사정권의 ‘<사상계> 죽이기’가 본격화된다. 62년 8월 장준하는 마닐라에서 개최된 ‘막사이사이상 언론 문화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자가 되지만 군사정권의 탄압은 날로 거세진다.
군사정권이 언론을 통제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63년 대선을 앞두고 62년 1월부터 비밀리에 정당을 조직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 정치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그건 바로 ‘부정부패’였다. 군사정권은 증권, 워커힐, 새나라, 빠찡꼬 등 이른바 4대 의혹 사건을 일으킨다.
증권파동은 중정이 개입한 주가조작 사건이다. 군사정권은 전국의 공무원들에게 증권 구매를 장려했다. 패가망신은 물론이요, 자살자가 속출했다. 당시 증권 조작으로 벌어들인 돈은 20억원. 오늘날로 치자면 2천억원이다.
군사정권은 워커힐을 준공하면서 공사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횡령해 공화당 정치자금으로 사용한다.
새나라 자동차 사건 역시 김종필이 주도한다. 군사정권은 새나라 조립 공장을 건설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성된 일본산 소형 자동차 2천대를 관세없이 시중 없자에게 팔아 넘겨 이익을 취했다. 벌어들인 약 2억 5천만원의 돈은 공화당 창당 자금으로 쓰인다.
빠찡꼬 사건은 빠찡꼬 기계 500대를 수입, 영업 허가를 내주는 대신 돈을 챙긴 사건이다. 이병주에 따르면 4대 의혹 사건은 군사정권 시대 벌어진 부패상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한다.
김지태는 5월 한국문화방송은 물론 부산문화방송과 <부산일보> 경영권을 재단법인 5.16 장학회(정수장학회)에 넘기고 물러난다. 박정희가 강탈한 것. 쿠데다 전에 박정희는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를 만나 김지태 사장에게 부탁해 돈을 융통해 달라고 부탁한다. 황 주필은 차마 김지태 사장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 5.16 쿠데타가 터진 것. 돈 안 빌려줬다고 전 재산을 강탈하다니, 심지어 김지태 사장은 무슨 사정인지도 전혀 몰랐을텐데. 오늘날까지 박정희가 강탈한 재산은 박근혜 것이 된다. 왜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도둑질을 묵인해야 하는 것일까.
61년의 인기가요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