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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여행하는 법 -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장석훈 옮김 / 유유 / 2016년 3월
평점 :
드 메스트르는 토리노에서 결투를 벌였다. 토리노에서 결투는 불법이었기에 그는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는다. 드 메스트르는 여행을 다닐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드 메스트르는 가택연금형을 받지 않았더라도 ‘내 방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지만, 설마 그랬겠는가. 책은 전반적으로 익살과 해학이 넘친다. 내 방 여행의 좋은 점? 우선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단다. 도둑을 만날 걱정도 없고 낭떠러지나 웅덩이를 만날 위험도 없다.
<내 방 여행 하는 법>엔 두 가지 형태의 여행 방법이 있다. 첫째로 실제로 방을 여행하는 것이다. 방에 놓여 있는 의자로, 침대로,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로. 책 속의 인물들로. 방에서 마주치는 하인 조아네티나 애견 로진처럼 여행중에 만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소회를 적기도 한다.
두 번째로 영혼이, 혹은 동물성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흔히 영혼과 육체로 구분짓는데, 드 메스트르는 영혼과 동물성, 혹은 영혼과 타자로 구분한다. 육체와 동물성은 엄연히 다르다.
“수많은 문제의 원인을 육체 탓으로 돌리곤 한다. 거기에 감정과 사고가 깃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의 육체가 아닌 인간의 동물성에 있다. 영혼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면서 감각적 실체인 동물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동물성은 거기엔 나름의 취향과 기질과 의지가 있다. ”
영혼이 어떤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드 메스트르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사랑하는 드 오카스텔 부인 저택 현관 앞에 다다른 경험을 이야기한다. 영혼과는 별개로 동물성은 자신만의 길을 간 것이다. 혹은 영혼이 홀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다른 나라로, 다른 행성으로. 그럴 경우 동물성은 뜨거운 부집개를 잡아 손을 데거나, 의자에서 자빠지기도 한다.
영혼과 동물성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예상외로 ‘동물성 부인’의 논리 앞에서 ‘영혼 부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 혹은 저자는 페리클레스, 플라톤, 아스파시아, 히포크라테스 같은 고대 영웅들의 영혼을 자신의 벽난로 주변으로 불러와 한담을 나누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니, 이상훈의 <1만 시간의 법칙>에 소개된 강익중 화가가 떠올랐다. 강익중 화가는 유학 중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빼앗겨 그림을 그릴 여력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대신, 고민 끝에 캔버스를 가로 세로 3인치 크기로 잘라 지하철로 이동 중에 그림을 그렸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3인치 회화’ 탄생의 순간이다. 전시할 기회가 오자 그는 그가 그렸던 3인치 작품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냈고, 이 획기적인 회화 앞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오늘날 강익중 화가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즉, 성공한 사람들은 불리한 환경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한계를 받아들이고 한계 안에서 대안을 찾는다. 드 메스트르 역시 그러했다.
폴 서루는 “여행은 내면의 상태”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시대.
영혼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이곳에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여행은 구경이 아니라 발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