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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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읽는 윤대녕 소설인지. 단점도 보이고 장점도 보인다. <피에로의 집>은 도시 난민들이 마마의 아몬드 나무 하우스에 입주해 살게 되면서, 자기안의 고독과 공허함을 응시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타인과 유대를 맺는다는 이야기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을 보던 중, 에로 연극 연출을 하다 퇴출된 연극 연출가 명우는 마마를 만난다. 명우는 마마의 제안대로 아몬드 나무 하우스에 입주해 1층의 북 까페를 떠맡는다. (혹시 저에게 북까페 맡겨주실 분 누구 없나요?)



 

명우는 아몬드 나무 하우스에서 사진 작가인 윤정, 영화 제작을 하겠다는 현주, 대학생인 윤태, 고등학생인 정민을 만난다. 명우와 윤정, 명우와 현주, 혹은 명우와 헤어져 프랑스에 체류중인 난희와의 이야기에 나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고, 쓸 것도 없다.



 

명우와 윤태, 명우와 정민의 이야기만이 읽을 만 했다. 명우는 윤태와는 대화를 통해, 정민과는 침묵을 통해 소통한다. 윤태와의 대화 중, 명우의 의견에 나는 격렬히 동감한다.

 

알다시피 오늘날까지 이념 논쟁은 되풀이되고 있고. 게다가 권력을 쥔 자들이 생존권을 담보로 늘 이를 악용하고 있지.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면서까지 말이야. 그러니 삶의 다른 가치들은 돌아볼 겨를 없이 여전히 생존만이 목표일 수밖에 없는 거지. 때문에 타인에 대해 본능적으로 적대적이고 관용이라든가 선의는 개입할 여지가 없는 거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데도 말이야. “

 

하지만 동시에 어른으로서 지혜와 관용을 베풀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사회에서나 현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존재들이 필요하거든. 하물며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 외에는 거들떠보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지. 게다가 우리 사회는 이제 타인에 대한 태도가 적대감을 넘어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자네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종종 확인했겠지. 또 엄연히 우리 사회의 일원인데도 불구하고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해서 이웃인 그들을 우리가 얼마나 천대하고 있는지도. 그때마다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져 중간에 채널을 돌리게 되지.”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다음의 뉴스 기사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 댓글을 볼 때면, 정말 얼굴이 뜨거워진다. 자국의 외국인을 혐오하면서 미국이나 유럽에 나가서는 인종차별을 부르짖다니. 파렴치한 짓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민 정책으로 미국 유권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인들이 트럼프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트럼프 헤어 스타일이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윤태는 명우에게 자신이 꾸는 악몽에 대해 털어놓는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어둡고 거대한 공간이에요. 공기 속에서는 늘 녹슨 냄새가 나고요. 이따금 철판을 두드리는 망치 소리 같은 게 들려오기도 해요. 처음에는 저 혼자만 그곳에 갇혀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죠. 주위에 저와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을요. 그들은 한결같이 좀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죠.....그러다 얼마 전이었을 거예요. 잠결에 귓전에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꽝!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이어 소용돌이라도 치듯 공간이 옆으로 기울기 시작하더군요. 십 도, 이십 도, 이십오 도......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물이 스며들더군요. 뒤미처 걷잡을 수 없이 안으로 물이 쏟아져들어올 때서야 저는 깨달았죠. 내가 그동안 커다란 배에 갇혀 있었구나. 그제야 다들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지만 굳게 잠긴 쇠문을 열리지 않아요. ”

 

익사당하는 심정.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악몽이 아닐까. 어느 날 부터인지 명우는 정민과 함께 아무 말 없이 그냥 걷는다. 어느 날, 정민은 명우 옆에서 눈물을 흘린다. 격렬한 포옹이 없어도 함께 걷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말미를 현주의 출생의 비밀로 끌고 간 것은 이 소설의 패착이라고 본다. 너무 너무 지겹다. 지겨워 죽을 것만 같다. 50년대, 60년대 출생한 한국 소설가들은 왜들 그렇게 출생의 비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까.

 

회화를 형상화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카라바초>나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들. 소설 속에 소개된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호퍼의 그림을 영상화한 영화다. 아직 못 봤다. 나는 <밤샘하는 사람들> 천 피스 짜리 직소퍼즐을 할 만큼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호퍼를 만나는 건 이제 진부하지 않나?



 

소설은 중견 작가의 참신함과 진부함이 뒤섞여 있다. 제목 <피에로들의 집>은 누가 지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보다 진부한 제목을 상상해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뇌를 어디 서랍 속에 넣어두지 않고서야.....

 

소설의 제목이나 제재들이 진부하더라도 소설의 주제마저 진부한 건 아니다. 혹은 진부하더라도 되새길만 한다. 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이 진부한 진리를 유전자에, 혹은 뼈마디 마디마다 새겨질 정도로 반복하고 반복하기를.




다음날 아침, 나는 목표역에서 부전으로 가는 아홉시 육분 무궁화호 열차, 즉 경전선 열차에 올라탔다.......종착역인 부전까지는 일곱 시간 십육 분이 걸릴 예정이었다.
목포를 출발해 나주 광주 송정 명봉 보성 벌교 순천 광양 하동 진주 함안 진영 삼랑진 구포를 지나야 마침내 종착역인 부전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거 타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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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5-2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저두 타보고 싶었어요

시이소오 2016-05-29 16:02   좋아요 1 | URL
왠지 보물선님이 저보다 먼저 타보실듯 ^^

우끼 2016-05-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을 괴물이라고 말하는 시대, 그렇게 느끼는 시대... 함께있어도 홀로라고 느끼고. 왜 일까요. 종종 저도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서 제 스스로가 어떤 공간에 남아있을 자격없다고 한탄하게 되고.. 아직은 답이 없이 부유하고 있습니다.
호퍼의 그림 정말 좋네요 ㅎㅎ 저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5-29 16:12   좋아요 1 | URL
한병철ㅇㅔ 따르면 신자유시대,
사회가 사랑을 허용ㅎㅏ지않으니까요
죽도록 사랑하시길 ^^

표맥(漂麥) 2016-05-29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과는 관계없이, 고호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보니 웬지 반갑(?)습니다...^^

시이소오 2016-05-29 16:28   좋아요 0 | URL
고흐그림 정말 좋죠? ^^

stella.K 2016-06-0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용과 상관없이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본적이 있는데, 내용은
그닥 기억엔 없는데 어떻게 호퍼의 그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놀랍기도 하고, 깜짝하기도 하고. 암튼 그 발상만으로도 좋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걸 CF가 퍼러디하고...ㅎ

왠지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 좀 했습니다.^^

시이소오 2016-06-01 19:32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저도영화 보고싶네요^^

stella.K 2016-06-01 19:37   좋아요 0 | URL
헉, 보신 줄 알았슴다.
한 번쯤 보셔도 좋을 듯한데 책 읽으시느라 짬이 없으실까요...?ㅋ

시이소오 2016-06-01 19:40   좋아요 0 | URL
함 볼게요ㆍ요즘 영화도 잘 안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