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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결정적 1%, 사소하지만 치명적 허점을 공략하라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 리더스북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폭설이 내렸다. 그러자, 한 철물점이 눈을 치우는 삽을 만 5천원에서 2만원으로 가격을 올렸다. 이러한 가격 인상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인정할만하다. 18퍼센트.
부당하다. 82퍼센트.
MBA 학생들은 뭐라고 했을까?
인정할만하다. 76퍼센트,
부당하다 24퍼센트.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가격 인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그리고 ‘일어나야만’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니 대다수 경제학자들, MBA 졸업자, 재벌들이 사악할 수밖에.
기존 경제학은 인간을 ‘이성적이고 감정이 없는’존재로 가정한다. 기존 경제학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라기보다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싸이코패스로 양성한다. 탈러는 기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가상의 존재를 ‘호모 이코노미쿠스’, 이른바 ‘이콘’이라 부른다.
기존 경제학은 크게 두 가지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합리성, 시장의 합리성. 여기에 인간의 감정 따위는 무시된다. 그러나 탈러를 비롯한 행동경제학들의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시장 역시 합리적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행동경제학의 시초는 <생각에 관한 생각>의 대니얼 카너먼, 아모스 트버스키다. 두 사람은 여러 실험을 통해 인간의 비합리성을 증명해냈고, ‘휴리스틱과 편향’으로 설명했다.
책에 소개된 여러 실험들 중 ‘공공재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깜짝 놀랐다. 경제학자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알지 못하는 열 명의 사람들을 실험실에 모아놓고 각각 1달러짜리 다섯 장을 지급한다고 해보자. 여기에서 피실험자들은 각각 모르게 빈 봉투에 돈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공공재’에 얼마나 많이 기여하기를 원하는지 결정한다. 그렇게 피실험자들이 공공재 봉투에 집어넣은 돈은 두 배가 되고, 그 돈은 다시 각각의 피실험자들에게로 공평하게 분배된다.
당신이라면 얼마를 낼 것인가? 나는 5달러 전부를 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도 협력할 경우 나는 10달러를 받게 될테니까.
기존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기부를 하면 안 된다. 실험에 따르면 대개의 사람들은 반 정도를 기부했다. 경제학 대학원생들은? 20%밖에 되지 않았다.
뛰어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마티아 센은 이런 게임에서 언제나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일컬어 맹목적으로 이기심만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바보들이라 불렀다. “‘전적으로’ 경제적인 인간은 사회적인 바보에 가깝다. 경제학 이론은 이런 합리적인 바보들만을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삼성과 같은 재벌, 경제학자들, 자칭 경제학자라 우기는 한국의 공 모씨, 최근에 환율에 관한 책을 낸 자칭 이코노미스트라는 홍 모 박사 같은 이들이 왜 그렇게 멍청하고 사악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주식이나 폐쇄형 펀드에 투자하는 분이 계시는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폐쇄형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에 대해 래리 서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 멍청이들이 있다.”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주주들의 관성과 우둔함에 대한 값비싼 기념비”라고 좀 더 우아한 방식으로 말했다.
폐쇄형 펀드에 대한 탈러의 의문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 6개월 만에 100달러에서 90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을 왜 107달러나 주고 사는가?”
나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행동경제학의 실험에 따르면 똑같은 사례를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은 달라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시아 질병 문제’ 실험이다.
아시아 질병 문제
두 그룹의 피실험자들에게 600명의 사람들이 어떤 아시아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두 가지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방안 a를 선택하면 200명의 환자를 확실하게 살릴 수 있다.
방안 b를 선택하면 3분의 1 확률로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3분의 2 확률로 600명 환자 모두가 죽게 된다.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a 안을 선택했다.
방안 c를 선택하면 확실하게 400명이 죽는다.
방안 d를 선택하면 3분의 1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지만 3분의 2 확률로 모든 환자들이 죽는다.
대다수는 위험한 d안을 선호했다.
자세히 보면 a와 c는 같은 말이다. 그런데도 문제를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전혀 상반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오늘날 빈번이 사용되는 ‘프레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일 ‘프레임’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진다면 좀 더 긍정적인 선택으로 이끌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이른바 <넛지>다. 한국에서 탈러의 <넛지>가 40만부나 팔렸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워낙에 심리학자들과 행동 경제학의 실험을 신뢰하지 않아서일까? 오늘날의 실험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 쉽게 읽히지도 않았다.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매몰비용이 아까워 거의 보름 만에 읽었다. 재독을 하고 필사를 하면서 탈러의 주장을 곡해했다는 걸 알았다. 재독하면서 여러 다양한 생각들이 떠올라 충분히 즐기며 읽었다. (이 책과 바우만의 <도덕적 불감증>, 이 두 권 때문에 일주일 간 다른 책은 한권도 읽지 못했다.)
장사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책을 통해 자신의 사업을 일으켜 세울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특히나 13장)
<넛지>는 도구일 뿐이다. <넛지>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단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선한 넛지’, ‘악한 넛지’가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가하는 ‘악한 넛지’에 당하고만 살지 않으려면,
이웃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한 넛지‘를 개발하고 싶은 분이라면
강추한다.
(몇 일간 고심했지만 결국 나는 이 책의 3분의 1도 담아내지 못했다. 출판사 주장처럼 책이 쉽지가 않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하노벡의 <부자들의 생각법>, 롤프 도벨리의 <스마트한 선택들>이나 여타의 행동경제학 입문서 격인 책을 읽고 나서 접근하시는 게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