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엔 무조건 마흔여섯 권을 읽어야 했습니다. 30일 저녁, 마흔 여섯권을 읽었으리라 예상하고 카운팅을 했더니 마흔 세 권. 이럴수가. 여러 책을 번갈아 읽고, 중간에 읽다 만 책들이 있다 보니 예상과 달리 세 권이 모자랐어요.
아침 6시까지, 읽고 있던 <캐럴>과 <축복받은 집>을 완독했습니다. 마흔 다섯 권.
이제 한 권만 읽으면...... 일단은 잤어요.
자고 일어나, 책 세 권을 가방에 집어넣고 미팅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인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미팅 날이 내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젠장. 날짜로 말해주지. 요일로 말해 줘가지고는, 헷갈리게.’
3.31일과 4월 1일을 어느 누가 헷갈려하겠습니까?
목요일과 금요일을 헷갈린 자기 잘못인줄 알면서도 엉뚱한 소릴 지껄여가며 집으로 돌아가려다 아무래도 억울했습니다. 교통비가 얼만데요?!
억울해서 서점엘 갔습니다.
책들을 둘러보다 굿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여기서 한 권을 마저 읽자.’
교보문고에 새로 설치된 큰 책상 앞에 앉아, 돈 주고 사긴 아까운 책들을 골라 읽었습니다.
몇 권 읽었냐구요. 다섯 권 읽었습니다. 두둥 ^^

<나이 서른에, 책 3,000권을 읽어봤더니> 같은 책들은 30분이면 읽을 수 있습니다.
‘와, 건질 게 하나도 없는 책도 있다니!’
김 모 작가는 3년에 만권 읽었다고 우깁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 아무것도 담을 게 없는’ 이런 책들만 읽었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만권은 무슨, 2만권도 읽겠어요.
이 달에 꼭 마흔여섯 권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흔 여섯 권을 읽으면 24개월, 2년 동안 총 700권 독서가 되거든요.
‘2년 699’권이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습니다.
이게 무슨 백화점 세일 가격표가 아니잖아요?
미팅 날짜를 오해한 건 신의 계시였을까요?
‘그래, 옛다, 700권?’
이 달 읽은 50권 중에 사서 읽은 책은 쉼보르스카의 <충분하다>가 유일하네요.
책을 사서 읽으란 주장들이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작가를 위해서도 출판사를 위해서도
사서 읽어야죠. 잡지 <뿌리깊은 나무> 대표 고 한창기 사장님은 생전에 이렇게 말하셨다죠.
“ 남자가 뜻을 품었으면 돈을 낙엽처럼 태워라!”
아, 어찌나 멋있던지. 돈을 낙엽 태우듯 책을 사 읽었습니다. 돈은 낙엽보다 빨리 없어지더군요. 저 역시 계속 사서 읽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 700권의 책들을 전부 사서 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혼이죠. 가뜩이나 돈도 못 버는데. 우리 사장님, 임금 삼개월 째 체불 중인데 오늘 계좌로 또 3.3프로 뗀 50만원 보내셨네요. 이게 몇 번짼지.
사장님, 새 모이주시나요?? 사장님 나빠요.
(알라딘 중고 서점가서 간서치 이덕무 마냥 맹자 팔아서 쌀 사려고 했어요. 맹자 하나 갖고 어림없겠죠? 공자님도 끼워 팔구, 장자님도 소유욕이 없으시니 덩달아 팔구..... )
또 이야기가 곁가지로 샜네요. 돈을 낙엽처럼 태워 책을 사 읽으시되 저처럼 만권이 목표이신 분들은 주변 도서관도 활용해 보시라구요. (도서관 대출 권수 840권이네요. 사서님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년동안 목표율 0.7프로 달성했습니다. ^^
이달의 책 후보는 김용규의 <데칼로그>, 매튜 퀵의 <러브 메이 페일>,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입니다. 객관적으론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을 뽑아야겠죠? <저지대>를 읽고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웃님들 칭찬 릴레이가 펼쳐지길래 궁금해서 읽었습니다. ‘경이적인 데뷔작’이란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줌파 라히리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위주로 왜 대다수 한국 단편 소설들이 ‘신춘문예용’ 소설인지 비교, 분석하는 글을 쓰고 싶어지네요.)
그럼에도 이달의 책으로 매튜 퀵의 <러브 메이 페일>을 뽑고 싶어요.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절로 입 밖으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매튜 퀵, 이 미친 새끼!”
그 순간 저는 울고 있었죠.
매튜 퀵 소설을 읽을 땐 연신 낄낄대다 마지막장을 덮을 땐 언제나 눈물이 납니다.
다른 분들도 그러신지? 궁금하네요. ^^
이달엔 ‘어디 니가 얼마나 읽나 보자’할 정도로 도서관에서 끊임없이 책 찾아가라고 연락이 오더군요. 신청도서, 예약도서 읽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음 달엔 도로 고전에 도전해야겠습니다. ^^
4월이네요. 책 읽기엔 잔인한 달이죠.
독서보다는 봄을 즐기시는 게 어떨지요?
행복한 봄날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