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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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해도 되는 건가? 누구는 모국어로 간신히 리뷰를 쓰고 있는 마당에 인도에서 태어난 줌파 라히리는 영어로 소설을 써 각종 문학상을 휩쓸더니 이번에는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냈다. 이탈리아에 대한 사랑의 은유라며.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한 적이 있다. 2층에 칸막이로 된 좌석이었다. 이탈리아 소년이 멀찍이 뒤에서 구경하길래 앞쪽으로 와서 보라고 얘기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소년은 계속 나에게 우호적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년은 일본인이냐고 묻고서는 두서없이 애니매이션 이야길 꺼냈다.

, 일본 애니매이션이 이탈리아에서도 인기구나!’

소년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나마 아는 이탈리아 어를 말했다.

 

부에노 쎄라

 

, 뭐지, 이 장중함은? 단지 인사말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가 장황했다. 요점만 말하자면 줌파 라히리의 20년간의 이탈리아어에 대한 애정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것이다. 내가 불어를 공부한 건 오로지 알랭 래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때문이었다. ‘, 이건 시잖아!’

 

현실에서 프랑스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어찌나 실망했던지. 이건 뭐 돼지들의 꿀꿀거림? 불어에 대한 환상이 처참히 깨졌다. 그 어떤 프랑스인도 <히로시마 내 사랑>의 주인공처럼 음절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시처럼 말하지 않았다.

 

불어를 공부하게 된 이유를 말하면 교수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영화 그저 그렇던대. 영화 속 불어가 딱히 뛰어난 것도 아니구.”

그 시나리오 뒤라스가 썼거든요. 교수님은 뒤라스를 읽어 보기는 했어요?”

라고 말하진 않았다. 굳이 뭐 하러??

 

언어는 쓰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 불어를 거의 모른다.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기 위해 20년간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외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쓸 정도였으니 가히 대단한 노력이고 열정이다.

 

단편 <변화>는 그녀의 이탈리아어에 대한 미칠듯한 열정과 사랑을 드러낸다. 낯선 도시에 어느 집안으로 들어간 번역가는 자신의 스웨터를 벗고 집주인이 권한 스웨터를 입어본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번역가는 원래의 스웨터를 찾을 수 없고 집주인은 번역가에게 낯선 스웨터를 내밀고 그것이 번역가의 스웨터라고 말한다. 할수없이 번역가는 남의 스웨터를 입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번역가는 스웨터를 입어보자 잃어버린 스웨터를 다시 찾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스웨터는 언어에 대한 은유다. 옷은 언어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스웨터(이탈리아어)는 이제 자신의 것이 된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더 이상 기존의 언어로 생각할 수 없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 그것은 변신이고 새로운 도약이다. 그 결정체가 이 작은 책이다.

그러므로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고 클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

 

p76.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삶은? 결국 같은 것이리라. 말이 여러 측면과 색조를 갖고 있고 그래서 복합적인 특성을 갖고 있듯 사람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거울, 중요한 은유다. 결국 말의 의미는 사람의 의미처럼 측정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128. 그는 이탈리아어를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갈망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썼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법과 고문이 당신을 바꾸고, 다른 논리와 감정으로 이끌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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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3-2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지에서 또 한국에 온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기본 세개 많으면 다섯개 언어를 하더군요. 기본 세개는 태어난 지역어, 힌두어, 영어인데, 인도 지역별 말들도 거의 다른 언어 수준이니,
정말 그들의 언어와 `수`에 대한 능력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시이소오 2016-03-26 12:54   좋아요 1 | URL
인도인들이 대체로 언어 감각이 뛰어난가 보군요. 부럽네요^^

아애 2016-03-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변화하는 큰 방법의 하나 중에 다른 언어로 사는 삶도 큰 것이겠지요. 전 모국어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질 못하니 맨날 같은 날이라 불평할 자격도 없지요.

시이소오 2016-03-26 13:43   좋아요 1 | URL
다른 언어를 공부하거나 문화를 공부해도 창의력이 상승한다고 하네요. 아프리카 역사책을 읽을려구요. 아애님은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면 어떨지요? ^^

프레이야 2016-03-2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경우, 다른 언어권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지긴 어렵겠지요ㅎㅎ

시이소오 2016-03-26 13:44   좋아요 1 | URL
여행을 가서 현지인과 사랑에 빠질수도. 안 되면 여행간걸로 만족하면 되니까요^^

룰루라떼 2016-03-2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이 책
멋질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3-26 21:12   좋아요 0 | URL
멋지지요? ㅋ ^^

룰루라떼 2016-03-26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듯이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ㅠㅠ^^ㅋㅋ

책벌레 2016-03-2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인도인들은 천재인가봐요 ㅠㅠ
한국어랑 영어 두가지도 잘 못하는 저에겐 ㅎㅎㅎ 캐나다에는 영어랑 불어 두가지를 사용해요 요즘 언어 배우기 삼매경입니다~^^
그런데 언어마다 표현법이 조금은 달라서
언어를 알아야 그 나라와 민족을 전부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시이소오 2016-03-26 21:13   좋아요 1 | URL
오옷. 캐나다. 부럽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할수록 창의력이 높아진다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3-27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라스는 저도 사랑합니다~^^

시이소오 2016-03-27 11:55   좋아요 0 | URL
저는 강요님을 사랑합니다^^

깊이에의강요 2016-03-2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급작스런 고백은 ㅋㅋㅋ
♥^^♥

시이소오 2016-03-27 12:23   좋아요 0 | URL
고백이 받아들여지다뉘!!!! ^^

큐브 2016-03-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로시마 내 사랑을 본 것도 같고.. 기억이 안 나네요. 뒤라스 책이 한 권 있는 것도 같고요.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볼까봐요..^^

시이소오 2016-03-28 20:54   좋아요 0 | URL
영화 좋아요 ^^

스텔라 2016-03-2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목 자체가 흡입력있네요. 작가가 역시 대단하군요. 멋지네요

시이소오 2016-03-28 21:15   좋아요 0 | URL
그쵸? 저 작은 책은 언제나 저보다 클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