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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평점 :
거의 보름 만에야 읽었다. 성경 <창세기>가 ‘누가 누구를 낳고’에서 멘붕에 빠진다면 <일리아드>는 ‘누가 누구를 죽이고’에서 잠속으로 빠져든다. ‘에고, 언제까지 죽일 셈인가’하다 잠들었다. 다음 날,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하는 회의감과 싸우며 읽다 또 다시 잠든다.
‘에고 아직도 죽이고 있네......근데 이 죽는 사람은 누구냐?’ (<일리아드>를 꼭 구입하시길 추천한다. 불면증이 있으신 분들은 끊임없이 죽이는 장을 선택해 읽으면 죽은 듯이 잘 수 있다)
아, 드디어 다 읽었도다. 840페이지를. 어릴 때 물론 <일리아드>를 읽었었다. 블로그에 올해는 클리프던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 리스트의 책들을 읽고 리뷰 쓰기로 선언했었기에 약속을 지키고자 다시 읽었다. (왜 그랬을까)
어릴 때도 <오딧세이아>는 재밌었지만 <일리아드>는 지루했다. 나이가 먹으면 달라질거라 생각했건만 착각이었다. <일리아드>는 고전이라고 하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왜 트로이 전쟁은 일어났을까.
어차피 버린 몸. 이 몸을 제물로 바쳐 누구나 <일리아드>를 읽지 않아도 말할 수 있게끔 정리해보기로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리아드>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아를 침공해 그리스가 승리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전쟁이 터졌을까. 트로이 전쟁이 여자 때문에 터졌다는 건 반 쯤 진실이다.
일단은 아가멤논 때문이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의 왕이다. 그리스는 테베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전리품과 여자를 나눠가졌다. 아가멤논은 그때 크뤼세스의 딸 크뤼세이스를 선택했다. 크뤼세스가 딸의 몸값을 들고 아가멤논을 찾아간다. 다들 몸값을 받기를 찬성하지만 아가멤논은 사제를 내쫓는다.
크뤼세스는 아폴론의 사제였다. 크뤼세스는 아폴론에게 딸을 되돌려줄 것을 간청하고 그리스인들이 ‘눈물 값을 치르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그러자 아폴론이 그리스 쪽으로 9일 동안 ‘신의 화살’을 쏘아대니 그리스인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당장 대책회의가 소집된다. 다들 크뤼세이스를 크뤼세로 돌려보내자고 하자, 아가멤논은 빈정이 상한다.
“그래? 좋아. 내 여자 내놓을게. 대신 니들 여자를 날 줘. 난 왕이니까. 음핫핫”
이 말에 그리스 연합군 최고 전사인 아킬레우스가 빡 돈다.
‘감히 내가 사랑하는 브리세이스를 내놓으라고! 이걸 죽여 버려’ 하고는 아킬레우스가 칼을 뽑으려는 찰나 아테나 여신이 아킬레우스를 달랜다. 이 모욕을 참으면 좋은 선물을 주겠다고.
여신의 말에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죽이지 못하고 사랑하는 브리세이스를 내주고는 바닷가에 앉아 펑펑 울며 엄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에게 신세한탄을 한다.
“엄마, 아가멤논이 내 여자를 뺏어갔어. 엉~~”
“그런 나쁜 놈을 봤나. 알았어, 엄마가 아가멤논 혼내줄게. 뚝. 울지 마, 에고 귀여운 내 새끼.”
크뤼세이스가 딸을 돌려받자 아폴론도 더 이상 그리스 쪽으로 화살을 쏘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전쟁이 벌어질 이유가 없었다.
다 꺼진 도화선에 또 다시 불을 지핀 건 테티스의 치맛바람 때문이다.
테티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부탁한다.
“아카이오이족(그리스인)이 우리 애(아킬레우스)를 존중하기 전까지는
트로이아인들이 이기게 해주세요, 네?”
제우스는 헤라에게 눈치가 보여 한때 사랑하던 테티스를 얼른 쫓아낸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마누라 보면 난리난다. 의처증인가봐, 얼른 가.”
“진짜죠?”
“알았다니까.”
제우스는 어떻게 할까 잠을 설치며 궁리를 하다 아가멤논의 꿈에 거짓된 환상을 심어준다.
‘이제야말로 트로이아를 함락할 때가 왔도다.’
아가멤논은 꿈에서 깨자마자 긴급히 회의를 소집한다. 그런데, 트로이아를 공략하자고 외치던 아가멤논이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홀 때문인지 제정신으로 돌아와서는 각자 고향 땅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아가멤논의 말에 연합군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들 귀향준비를 서두른다. 전쟁은 무슨!
이대로라면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헤라와 아테나가 개입한다. 헤라랑 아테나가 왜? 이 두 여신이 개입한 이유는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과 관련되어 있다.
이해를 위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우스와 포세이돈 둘 다 테티스를 좋아했다. 테티스는 자신과 결혼하면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신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자, 제우스와 포세이돈 둘 다 겁을 집어 먹고 물러난다. ‘그럼, 형이 ’, ‘아니, 동생이’
겁에 질린 제우스는 비겁하게 테티스를 인간과 결혼시키려고 하고, 심통이 난 테티스는 죽어도 인간이랑은 결혼 안 할려고 물, 불, 짐승으로 변신하면서 버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레우스는 지고지순하게 테티스에게 구애해 결국 둘이 결혼을 하게 되는데.......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아들이 바로 아킬레우스다)
이 결혼식에 에리스 여신이 초대를 못 받는다. 에리스. 불화의 여신. ‘감히 나를 초대 안 해’가만있을 순 없다. 에리스는 결혼식 잔칫상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여진 사과를 던져놓는다.
“어머, 이거 내거잖아” 하고 달려든 세 여신이 있었으니,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였다.
세 여신은 인간 중에 가장 미남인 파리스에게 심판받기로 하고 파리스를 찾아간다. 세 여신은 몰래 파리스에게 선물을 약속 한다. 헤라는 ‘아시아에 대한 통치권’을,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미인’을 주겠다고 파리스를 꼬신다.
파리스는 누구에게 사과를 줬을까. 당연히 아프로디테에게 주었다.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준 절세미인이 바로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다. 헤라와 아테나 입장에선 파리스가 죽도로 미웠다. 근데 이 파리스가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었던 것.
손 안대고 코풀 기회를 놓칠쏘냐.
아테나는 오딧세우스에게 말한다.
“어머, 헬레네 때문에 그렇게 그리스인들이 죽어 나가고, 헬레네를 다시 찾을 생각도 안 하고 고향으로 도망치다니 남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오딧세우스의 일장 연설에 그리스 연합군은 곧장 트로이아로 진격하고 바야흐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삐쳐서 안 간다.
여기까지가 24권 중 1,2권까지의 내용이다. 3권부터 24권까지는 안 읽어도 상관없다.
불안하다면 9권, 16권, 19권, 20권, 22권, 24권을 읽으시길.
3권부터 24권의 내용은 단순하다.
싸우는 것이다. 죽이고 죽고.
전쟁 중 한쪽이 밀릴 때마다 신들이 개입한다. 그리스 측이 밀리자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돌려주고 재물을 미끼로 아킬레우스에게 사절을 보내지만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뾰로퉁이다. 그리스 군이 거의 전멸할 무렵 아킬레우스의 시종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하여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갖추고 전투에 출정한다. 그러나, 헥토르에 의해 죽는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사이에 두고 트로이아와 그리스는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아킬레우스가 또 엉엉 운다.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 테티스가 또 다시 바람을 가르며 아킬레우스에게 달려온다.
“엄마, 싸우러 나가고 싶은데 옷이 없어요. 엉엉~~”
“알았어. 뚝, 울지 마. 엄마가 옷 만들어다 주께.”
테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해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제작해주자 드디어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전한다. 신들은 애초부터 전쟁에 관여하더니 이제는 아예 양편으로 갈라져 자기들 끼리 싸운다. 결국 아테나의 도움으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헥토르를 죽인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몸값을 대신해 헥토르의 시신을 되돌려 줄 것을 간청하고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내준다. 프리아모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찾아 트로이아로 돌아오며 거대한 서사시가 막을 내린다.
(줄거리 상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헥토르의 아내가 헬레네가 아니라는 것이다. 헥토르는 헬레네의 시아주버니다. 헥토르의 아내는 앙드로마케다. 헬레네의 남편인 파리스의 다른 이름은 알렉산드로스다.)
어떤 신들이 그리스를 지원하는지 알아두면 <일리아드>는 훨씬 읽기가 수월하다. 포세이돈은 트로이아 왕 라우메돈이 성벽을 쌓아 준 보수를 주지 않아 삐쳐 트로이 전쟁 중 그리스 편에 가담한다. 헤라, 아테나, 포세이돈, 헤라의 아들인 헤파이스토스, 이들이 그리스 편이고 나머지 신들은 거의 트로이아 편이다. 표로 정리 해볼까.
| 트로이아 | 그리스 (아카이이오족, 다나오스 족) |
왕 | 프리아모스 (아들 파리스) | 아가멤논 (동생 메넬라오스) |
중요 인물 | 헥토르 (프리아모스 아들) | 아킬레우스 (테티스의 아들) |
신 | 아폴론, 아레스,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크산토스, 등등 | 헤라, 아테나, 포세이돈, 헤파이스토스 |
주요 인물 | 아이네이아스(아프로디테의 아들), 사르페돈(제우스의 아들), 글라우코스 | 오딧세우스, 파트로클로스, 디오메데스, 안틸로코스, 네스토르, 메리오네스, 아이아스 ,이도메네우스 |
마리오네트 인간
낮과 밤이 엇갈리는 장기판 위에
하나님이 놀며 두는 힘없는 말들,
이리저리 옮기면서 장군 멍군 찾다가
하나씩 죽어서는 골방으로 들어가네.
- 오마르 하이얌, <루바이야트> 중에서
<일리아드>에서 인간들은 신들의 꼭두각시, 마리오네트에 불과하다. 신들은 콜로세움의 상좌에 앉아 노예들의 결투를 즐기는 황제마냥 올림포스 위에 앉아 인간들의 전쟁을 관전한다. 이 당시 <일리아드>는 귀족들, 혹은 왕 앞에서만 불려졌다. 귀족들과 왕은 영웅들과 혹은 더 나아가 신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신자유주의 사회도 <일리아드>와 구조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가진 자들은 고층의 타워 팰리스 위에 앉아 고급 와인을 마시며 창밖의 노예들을 내려다본다. 우리 노예들은 돈 몇 푼 더 벌자고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며 살아가지 않던가.
비유법 : 동물과 자연
<일리아드>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21세기 전의 작품이고 <길가메시 서사시>를 제외하면 전승된 인류 최초의 작품인지라 비유법을 유심히 살펴봤다. 역자인 천병희씨도 똑같은 궁금증을 품었나 보다. 작품해설에 호메로스의 비유법을 언급한다.
비유법은 주로 전쟁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쓰였다. 역자의 말처럼 크게 동물과 자연의 힘에 대한 비유법이 많다. 자연의 힘은 홍수, 파도, 폭풍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동물들은 주로 사냥에 관계한 비유로 멧돼지, 사자, 사슴, 독수리, 뱀, 파리 등이 주로 등장한다.
동물들의 비유 중 기억할 만한 구절이 있다.
그것은 높이 나는 독수리로, 백성들의 앞을 지나 왼쪽으로 날았는데, 발톱에는 아직도 살아서 버둥대는 크고 시뻘건 뱀을 차고 있었다. 그러나 뱀은 결코 전의를 잃지 않고 머리를 뒤로 틀더니 자기를 움켜잡고 있는 독수리의 목 바로 옆 가슴을 깨물었다. 그러자 독수리가 고통을 참다못해 뱀을 땅에 내던져 무리들 한가운데로 떨어뜨리고는 소리 내어 울며 바람의 입김을 타고 날아가버렸다.
제 12권 p357
이 장면을 보고 폴뤼다마스가 불길한 징조라고 헥토르에게 말한다. 헥토르가 대답한다.
나는 새 같은 것은 개의치도 아랑곳하지도 않소.
그것들이 새벽과 태양을 향해 오른쪽으로 날든
아니면 침침한 어둠을 향해 왼쪽으로 날든
자, 우리는 위대한 제우스의 조언을 따릅시다!
그분이야말로 모든 인간들과 불사신들을 다스리니까요
이 뱀을 물고 가는 독수리를 어디서 본 기억이 나지 않는지.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비유다.
정확히 어느 부분이었는지 찾아봐야겠다.
자, 이제 고전 읽기의 다음 타자는 <오딧세이아>다.
밑줄 친 문장
p417. 이렇게 말하고 그녀(아프로디테)는 가슴에서 다채롭게 수놓은 띠(케스토스 히마스) 를 풀었다. 그 안에 그녀의 모든 매력이 들어 있으니, 그 안에는 곧 애정과 욕망과 아무리 현명한 자의 마음도 호리는 사랑의 밀어와 설득이 들어 있었다.
p514. “저런, 가련한 것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너희를 어쩌자고 우리가 필멸의 펠레우스 왕에게 주었던고? 불행한 인간들 사이에서 고통받게 하기 위함이었던가? 대지 위에서 숨쉬며 기어다니는 만물 중에서도 진실로 인간보다 비참한 것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