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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을 걸어가는 달 - 그림자 없는 성자 水月의 삶을 찾아
김진태 지음 / 학고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65인의 큰스님이 남긴 열반송'이라는 제목 밑의 문구에 혹해 금방 나온 책을
주문해 읽은 것이 추석 무렵이었다.(<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
선사들이 남긴 심오한 말씀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만
본문 중 어느 스님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가 가슴을 쳤다.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
오늘 낮, 궂은 날씨에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시계를 보며 급히
학원 영어숙제를 하고 있던 딸아이에게 "우리 예쁜이 공부하느라 힘들지?"하고
궁둥이를 두드렸더니 순간 그 큰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토록 좋아하던 태권도를 때려치운 게 10개월 전.
이젠 또 바둑이 싫어졌단다.
무릇 좋은 것보다 싫은 게 많아지면 인생 살기가 고달파지는 법이다.
나는 딸아이의 눈물을 못본척했다.
--과연 난 무엇이었을까. 적당히 마음 편한 곳만 찾아 방황했을 뿐,
정말로 중요한 진실에는 끝내 다가가지 못했다.(최준식 <죽음, 또 하나의 세계>)
<죽음, 또 하나의 세계>는 그 무렵 함께 읽은 책인데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마음 편한 곳만 찾아 방황'.
그 방황도 어쩌면 포즈가 아니었을까.
특별히 내가 몰랐던 엄청난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더라도,
불투명한 막으로 여러 겹 겹쳐서 도무지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는 나의 실상을
"이러이러한 게 아닐까" 슬쩍 귀띔해 주는 책만 해도 반갑고 고마운 법인데.
<물 속을 걸어가는 달>을 통해 그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던 수월 스님을 만났다.
(몇 년 전 나왔을 때의 원제가 더 좋다. <달을 듣는 강물>)
출가 전에는 어느 집 머슴이었고, 또 까막눈이어서 멋진 법문이나 그럴듯한 말씀이
전해져 오는 것도 없으며, 절에서도 땔감을 구하러 산을 헤매거나 밭을 매고,
또 간도 초막 시절에는 밤낮으로 짚신을 삼고 주먹밥을 만들어
큰 바위 위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일제의 탐학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오던 동포들에게 이보다 반갑고 요긴한 게 있었을까.
수행중 몇 가지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갖게 되어 본의 아니게 유명해진 스님이건만
그는 자신의 그런 능력을 마치 코로 숨쉬는 만큼이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올해 내가 제법 간절한 의문을 품고 골라 읽었던 책들에서 만났던 가장 중요하면서도
공통적인 단어를 한 개 고르라면 '경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거지 여인으로 분한 문수보살의 이야기(137쪽)를 들으며
구멍 숭숭난 여러 겹의 막 중 몇 개가 스르르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수월도 스승인 경허의 본디 면목의 풍광 속을 일없이 지나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스승에게 매이지도 않았고, 걸리적거리는 스승을 갖고 싶지도 않았다.(161쪽)
'본디 면목의 풍광 속을 일없이 지나치고 싶었던'이라는 구절이 좋아 수첩에 옮겨 적었다.
백봉, 효당, 무천 스님에게서 불교와 주역을 배운 현직 검사인 저자는
'20여 년 전 시대의 어둠에 밀려 지리산 자락을 떠돌다가 어느 산사에서
수월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한다.
그는 수월 스님이 출가한 충남의 천장암부터 지리산의 천은사, 금강산의 마하연,
8년을 머물렀다는 간도 땅에까지 몇 년 동안 수월 스님의 행적을 좇았다.
이 책은 그 충실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