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좌파와 우파 살림지식총서 1
이주영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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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에 들어서 출판계에서 주목할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총서의 발행이다. 예전의 삼중당 문고와 같은 소설 위주의 문고본이 아닌 약간은 디스커버리 총서와 유사한 총서에 대한 출판이다. 물론 1990년대 후반 문지사에서 '문지스펙트럼'이라는 이름으로 발간을 한 적이 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근간의 '살림지식총서'와 '책세상문고'는 다양한 주제와 가볍지 않은 내용과 성찰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살림지식총서는 첫 회분으로 미국을 선정하였고, 그 첫편이 이주영이 쓴 '미국의 좌파와 우파'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 책은 총서의 대표로는 부족한 것이 많아 아쉽다. 미국은 좌파와 우파로 나누기가 힘든 나라이다. 서구 유럽과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실재하는 좌파의 세력을 가져보지 못한 나라이다. 그러기에 미국에서 특정 세력을 좌파로 규정하는 일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유럽에서는 사회당이 꽤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회당이 있고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도 진보당이 존재했던 역사에 비추어 진보적인 정치집단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미국에서 좌파 운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한국미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미국 역사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듯 하지만 그의 지식적 성찰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할 만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제목과는 달리 신좌파와 신우파에 그 내용이 한정되어 있으며 실제로 좌파와 우파를 다룬 5개의 꼭지(총 7개의 꽂지)중에 좌파에는 1개의 꼭지만이 할당되었을 뿐이다. 미국의 진보와 보수를 아울리지 못하고 일부세력과 극단세력에 대해 고찰하고 있어 제목과는 달리 미국의 아주 작은 구석을 조망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책 초반에서 짚고 넘어가고 있듯이 기본적으로 미국은 개인의 자유와 프로테스탄트 윤리 그리고 자본에 대한 보장으로 생겨난 나라이다. 물론 저자는 평등의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미국 건국 초기 부자들만 정치를 해야한다는 등의 의견과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것을 보면 실재하는 평등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곧 미국은 애초부터 보수적인 배경속에서 출발하였고, 좌파가 발 디딜 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좌파의 대두를 소개하면서 대공황 시절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즉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절대 침해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에 정부가 손을 대기 시작한 시점부터 형성된 세력이 좌파이고, 1960년대 기존 사회에 대해 대항하며 특히 베트남 반전운동에 기수된 세대를 신좌파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경제 대공황 시절 심각한 가난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기업들의 경제활동은 보장받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역시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경제활동의 토대를 만들어주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고 본다면 당시 세력은 좌파세력이라기 보다는 보수우파내에서의 방법론의 충돌일 뿐이다. (수정주의 경제학의 대가인 케인즈 역시 보수적인 경제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이에 반해 대립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우파는 신우파와 극우파로 한정되어 있다. 저자가 잘 짚어내듯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은 신우파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들이 실제 백인 중산층에 대한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는 점 등에 불만을 느낀 그들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적 생활방식으로의 복귀를 추구하는 특징들을 짚어내고 있다.

 그리고 백인우월주의와 기독교적인 배경을 두고 있는 극우파에 대한 설명 또한 읽을 만 한 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저자는 심각하게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실제 미국의 보수 우파들은 이런 극우파에 대한 분명한 선긋기를 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무력진압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 한나라당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건강한 보수를 위해 극우파와의 분명한 선긋기를 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대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은 극우파와 보수사이의 구분이 불분명할 정도로 뒤섞여 있으니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말하고 있다시피 미국인의 72%가 자신의 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72%의 보수우파와 28%의 중도보수를 대변하는 것이다. (물론 소수의 좌파 지식인들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미국의 신우파와 극우파에 대해서 간단하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좌파와 우파를 동일한 선상에 놓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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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k 2007-10-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상당히 냉철한 분석이십니다. 미국내 좌파가 유럽이나 다른 나라의 좌파와는 괴를 달리하는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나 마지막 부분 72%의 보수우파와 28%의 중도보수라는 평에는 동의하기 힙들군요. 미국의 대부분이 중산층에 의해 구분되는데, 이중 상당수가 보수에 속한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중산층이 사안에 따라 좌파적인 사안에 지지를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소수의 좌파세력의 무던한 노력이 깔려있다고 믿습니다.

雨香 2007-10-03 23:51   좋아요 0 | URL
책에서 보면 72%의 미국인이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72%를 보수우파로 본 것이지요. 중산층이 개혁적인 사안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맞습니다만, 좌파적인 사안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미국내에 소수의 좌파가 있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0%라고 보면 됩니다. 세력이 아니라는 이야기이지요. 최소한의 소수 좌파세력은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포에 사라져버렸죠. 물론 중산층이 개혁적인 사안에 찬성합니다만 그 사안들을 보면 좌파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최소한의 것들이죠.
 
최초의 세계 제국, 미국 20세기 박물관 시리즈 4
피에르 제르베 지음, 소민영 옮김 / 부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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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박물관 시리즈>의 네번째 책인 이 책은 미국의 20세기를 다루고 있다. 일단 제목에서 정하는 바와 같이 '최초의 세계 제국'이라는 단정이 인상적이다. 물론 최초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미국은 가히 20세기의 제국이라는 부분에는 동의한다.
 
 이 책의 특징은 시리즈 제목에서도 주목하고 있듯이 첫째, 20세기의 미국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 흔히 볼 수 있는 연대기식이나 이야기식으로 전개하지 않고 주요사건과 인물별로 다루고 있다. 또한 참고서적과 같은 깔끔하게 구성된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20세기의 미국이지만(대공황, 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 실상 미국의 20세기를 우리는 모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고서적으로 삼을만 한 책이다.  물론 미국 20세기 전반을 다루고 있는 개괄서는 아니다. (미국사를 다룬 책과 함께 읽는 다면 굉장히 유익할 것이다.)
 
 잠깐 책 내용을 살펴보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20세기의 주요사건들. 2부, 20세기의 주요인물과 신화. 그리고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3부, 20세기의 정리와 21세기의 전망.
 
 1부는 20세기 초 부터 현재 부시 대통령까지의 기간을 중요한 사건들 중심으로 관찰하고 있다. 미국의 20세기는 정치적으로는 기업가들의 꼭두각시에서 벗어나 대통령 다운 대통령으로 20세기의 문을 연 프랭클린 루즈벨트로 시작하고 있고, 경제면에서는 미국의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포드식 경제시스템이 기반이 되었다. 20세기의 시작이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포드라는 점은 바로 20세기 미국의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미국 정치사에서 예외적으로 기업가들의 손에 휘둘리지 않았던 두 루즈벨트이기는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세계 제왕으로써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특히나 대서양과 태평양을 뚫어 동부해안과 서부해안을 연결해버린 파나마 운하(1904년)를 건설하고 그 권리를 갖는 과정은 약 90년 후 중동 석유에 대한 권리를 노린 전쟁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청교도적인 삶의 지향을 내세우며 바르고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낸 금주법시대는 자유주의의 겉모습속에 감춰진 집단주의와 밀주와 이를 더불어 성장한 뒷골목(알카포네가 성장한 시대) 사회는 20세기 미국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책의 2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 자본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록펠러가는 미국식 자본이 어떻게 사회에 화해하고 공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물론 미국 자본가들이 사회활동을 통해 사회와 어울리는 것은 19세기 말 노동자와의 전쟁을 통해 자본가들이 얻은 경험이다. 사회를 인정하지 않는 자본은 생존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경험을 무시한채 자본가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비난하는 언론과 교수들은 얼마나 무식한가? 인물편에서는 상당히 유익한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노동조합이나 지식인의 참 모습을 보여줬던 새뮤얼 곰파스와 윌리엄 듀보이스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디즈니의 이중적인 순수함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도심을 떠나 교외에 작은 앞마당 있는 미국식 중산층 주거문화를 만들어낸 레빗, 흑인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흑인임을 거부하고 싶어했던 성공한 마이클 잭슨을 통해 흑인의 이중성 등을 볼 수 있다.
 
 책의 3부에서 비로소 저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1, 2부에서 깔아놓은 미국의 여러 모습을 담은 역사와 인물이라는 사진들 속에서 미국을 정리하고 전망한다.
 [미국, 모델인가 재앙인가? / 자본주의 국가인가, 국가 자본주의인가? / 아메리칸 드림은 존재하는가? / 미국인들은 미국 모델을 믿는가? / 인종 차별주의인가, 다문화주의인가? / 세계에서 미국의 임무란 존재하는가?]
 특히 '자본주의 국가인가, 국가 자본주의인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 특히 배웠다는 사람일수록 -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야 말로 정부의 개입없이 기업들이 완전경쟁속에서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식 자본주의야 말로 국가와 기업간의 결탁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국가가 기업을 돕는 것 보다는 기업이 국가를 통제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미국 국방부의 연구산물임은 인터넷의 역사나 빌 게이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미국 기업들의 많은 강점들이 사실 국가의 막대한 지원속에 이루어진 성과물이고 이 성과물을 미국내 기업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완전경쟁과 시장경제체제이지만 국가의 막대한 지원과 간섭없이는 운영되지 않는 경제체제 자본주의라기 보다는 국가 자본주의라고 불러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따라야 할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나라이다. 뜯어보면 뜯어볼 수록 '이 따위 나라가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조화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로 보이지만 실상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나라이고, 인종차별이 심각한 나라이면서도(바로 며칠전 뉴올리올스 제나라는 곳에서 또 다시 인종차별사태가 발생했다.)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의 매력이 있는 나라이다. 물론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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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
이원복 책임제작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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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를 영어를 위한 책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상술에 눈이 먼 출판사가 제목으로 장난을 친 듯 하다. 영어에 대한 책이 아니라 미국의 주들에 대해 그리고 유명한 도시에 대해 설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주가 생겨난 배경, 주의 이름이 갖는 의미, 각 주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실 혹은 문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미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갖을 만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원복 감수이기는 하나 이원복의 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첫째,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려는 점이다. 만화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주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지식에 대한 검증작업이 없다는 점이다. 이 책에 대해 상당히 의존하고 있던 나에게 후반에 소개된 도시를 읽으면서 의아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상당량의 미국에 대한 원서를 읽었기에 몇 몇 도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정보가 과연 그 도시 혹은 주를 대표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시카고의 별명이 'windy city'인 것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니다. 

둘째, 그림이 너무 조잡하다. 책으로 펼쳐내어 사람들이 사가기에 그림의 수준은 너무 형편없다. 이는 독자에 대한 기만이다. 

미국에 대해 쉽게 개괄되어 있는 책을 찾기 힘들기에 반가운 마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 순간 부터는 책의 내용에 대해 의문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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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한국이다 - 한국 축구 124년사, 1882-2006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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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축구다. 신문을 펴들건, 거리를 나서건, TV를 켜건, 물건을 구매하려고 해도 월드컵의 포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즈음 축구의 사회문화적 위치를 다룬 책들이 출간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단순히 축구에 대해서만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축구속으로 쓰윽 들이밀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치는 사회문화사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축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축구사로 볼 수 있지만, 축구라는 프리즘을 통해 124년의 한국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도 있다.

은 근래의 한국적 교양만들기 작업과 언론에 비친 역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책은 그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된다.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우리에게 축구는 단순히 축구이상이기 때문에 축구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축구하면 언뜻 2002년 월드컵부터 광적인 응원문화가 형성되고, 우리의 관심이 고조된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축구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얼마되지 않은 때부터 축구는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1930년대 경평전(서울팀대 평양팀의 경기)이 있는 날이다. ‘경평전이 있는 날은 거의 가게 문을 닫았고 평양 기생들은 영업을 포기했다. -평간 세 시간 거리인 기차 속은 응원인파로 초만원이었으며 이기면 양조장들에선 행인에게 막걸리를 공짜로 퍼먹이기도 했다.’(39. 조선일보 98.11.10) 월드컵 16강 기념 안주 무료 하듯이 70년전에도 축구는 단순히 축구를 넘어 생활이었다. 1969년에는 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전 한일 경기가 개최되었다. ‘개막 4일 전에 한일전 입장권이 매진되자 대회위원장 은 입장권을 사지 못한 팬들을 위해 서울 운동장 앞, 남산 야외음악당 등 서울시내 13개소에 대형 텔레비전 스크린을 설치해 무료 관람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110. 조선일보 69.10.7) 지금 광화문에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경기를 관람한 것처럼 40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축구에 비상이 걸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1966년 영국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 기적을 이룬 것이다. 당시 남북간의 대결이 심하던 상황에서 아시아의 맹주역할을 하던 한국보다 북한의 성적이 좋다는 것은 한국에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곧 정부주도의 국가대표팀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국가대표팀은 중앙정보부(지금의 ) 소속이었고,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선수들은 군 미필자의 경우 모두 소위를 달아주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축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가늠해 볼만한 사건이다.

은 우리나라에 축구가 도입된 124년도부터 2006년 월드컵 바로 직전까지의 축구를 담아냈다. 한국적 축구에 대해 분석을 하는데, 의 여타책에서 보는 것과 같이 한국의 축구에 대한 시각은 볼만하다. 우리에게 축구는 축구자체를 넘어선다. 축구자체에 대한 관심은 적은데 반해 축구를 매개로 일종의 놀이판의 역할을 한다. 한국의 축구는 일종의 한풀이의 성격이 강했는데, 10여년 전부터는 놀이판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일부에서 비판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전통의 놀이문화의 측면에서 축구를 보자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놀이문화가 강했는데(전통적인 놀이수단 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관혼상제 모두 놀이문화를 안고 있었다. 다만 일제 식민지와 개발독재의 시간을 거치면서 노동이 강요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지금의 아파트 문화 등으로 대체되는 현실에서는 마땅한 놀이터를 찾기 힘들다. 그런점에서 축구는 그런 놀이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붉은악마라는 자발적인 동아리활동을 통해 전파된 열광의 문화가 2006년에는 자본의 손아귀에 넘아가버려 불만이다. 서울광장에 대한 사용도 붉은악마, KTF등 컨소시엄이 SKT,조선일보, KBS 컨소시엄에 지면서 붉은악마가 만든 응원문화와 월드컵공식후원업체 KTF SKT 컨소시엄이 제공한 응원대에 초청(?)되는 기괴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점은 책에서도 지적된다. 평소 축구에 관심을 가졌던 기업들은 월드컵에서 제외되어 버리고 축구에 전혀 투자도 안하던 기업이 월드컵의 효과를 독차지 해버리는 –SKT를 대표적으로 지적- 점은 축구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이 책은 축구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축구라는 프리즘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볼 수 있다. 축구의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읽어낼 수 있다. 역사를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역사의 한 부분을 축구라는 틀로 채워 입체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고, 축구팬이라면 한국의 축구에 대한 많은 지식과 잡다한 내용들을 알게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 하나의 오류가 발견된다. 1966년 영국월드컵에서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 3;4로 역전패하게 되는데 북한선수들은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대부분 숙청당했다.(106) 통제된 사회에서 풀려버린 북한 대표팀은 포르투갈과의 경기 전날 영국의 여성들과 환락의 밤을 보냈고 그로 인해 포르투갈 전 패배 후 모두 아오지탄광을 갔다고 이영만의 책(공하나에 얽힌 10만가지 사연 : 기자의 스포츠 X파일. 174)을 인용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를 다룬 다큐멘타리 영화 천리마축구단에서도 당시 남한에는 그런 소문이 돌았다고 지적하는데, 사실 포르투갈전 전날 북한팀은 숙소를 구하지 못해 수도원(교회에 소붙어 있는)에 간신히 머물렀는데 그곳의 시설이 북한선수들에게는 너무 생소했다고 한다. 여러명이서 숙박할 수 있었던 다른 숙소와는 달리 그곳은 개인 기숙사 시설 같은 곳이라 1인씩 생활하는데 문제는 방이나 숙소 곳곳에 걸려있는 성상(예수상, 성모상)들과 예배소리였다. 전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데다가, 세계최강 포르투갈은 맞아 먼저 3골을 넣었는데, 당시 북한팀은 축구선진국처럼 게임을 조절할 줄 몰랐다. 보통 3골정도 먼저 넣으면 수비위주로 전술을 바꾸게 되는데 북한팀은 그런 노련미가 부족했다. 당시 남북한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북한의 선전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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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그 빛과 그림자 - 개정증보판 예림신서 2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유왕무 옮김 / 예림기획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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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월드컵이 한국을 장악했다. 스포츠, 축구 뿐만 아니라, 축구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문화행사들도 축구와 관련된 행사 혹은 월드컵 기념 할인을 한다. 아직 서점까지 접수하지는 못했지만, 축구에 대한 서적이 책방 한 가운데를 차지 하고 있다. 6 12 KBS TV 책을 말하다의 주제도 축구였다.

축구에 대한 책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책을 말하다에서 소개한 축구, 그 빛과 그림자라는 책이야기를 접했다. 책에 대한 이야기의 독특성과, 책의 저자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에 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불의기억이라고 라틴아메리타의 역사를 서술한 그의 책을 소개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민중의 시선으로 라틴 민중의 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에 일단 그의 글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양장본으로 곱게 치장한 책의 가격은 16,000. 초판 발행은 2002, 개정증보판 2006. 출판사의 마케팅 냄새가 솔솔 풍긴다. 무수히 많은 꼭지들과 한꼭지에 보통 한두쪽 글(물론 대여섯쪽이 넘어가는 꼭지들도 많지만). 책의 모습은 완연한 에세이집이다.

책 첫머리를 열어들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글을 수년 전 칼레야 데 라 코스타에서 나와 마주쳤던 적이 있는 그 꼬마들에게 바친다. 그들은 축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었다.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 즐겁다.’

쭈욱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즐기는 축구에 대한 저자의 그리움이다.

책은 저자의 축구에 대한 짧은 생각과 추억(선수, 경기)로 채워져 있다. 1900년대 초반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산했던 축구 스타들의 추억들이 많이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펠레 이전의 축구스타들, 예를 들자면 펠레 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던 프리덴라이히, 축구장에서 써커스와 같은 현란한 기술을 선보인 가린샤 등 많은 남미의 축구선수들이 나온다. 책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현란한 기술 축구를 보여준다. 축구의 아름다움.. 저자가 그 선수들을 추억하는 것은 바로 그 때의 축구에 대한 미련때문이다.

축구의 역사는 즐거움애서 의무로 변해가는 서글픈 여행의 역사이다. 스포츠가 산업화되어 감에 따라, 경기를 하면서 맛볼 수 있는 아주 단순한 기쁨의 미학을 앗아가버렸다.’(75)

그런 축구의 즐거움이 사라지면서 축구는 이제 축구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고 설명한다. 1900년도 초반 2-3-5(수비수 2, 미드필더 3, 공격수 5) 이던 축구의 전술이 19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4-4-2 등 수비를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한 축구의 상업화가 선수들을 발노동자로 전락시켜(이전에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축구를 했던) 선수들의 수명을 약화시키고, 팀의 성적을 우선시하면서 축구의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지적한다. 1900년 초반에 비해 경기당 득점은 절반, 선수들의 수명도 절반으로 줄었음을 지적한다.

간혹 보여지는 FIFA에 대한 비판도 매섭다. 축구의 상업화, 성역화를 통해 FIFAcarcy(FIFA+Cracy)를 이룩해낸 아블란제와 블래터에 대한 비판은 축구팬이거나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이다.

98년 월드컵에 대해서는 1위 아디다스(프랑스), 2(브라질),4위 나이키라고 지적하는 점도 매섭다.

이외에도 첫 월드컵부터 98년 월드컵까지 간략하게 월드컵의 소역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축구안에 역사가 담겨있는 점도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1930년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승리하는데, 아르헨티나는 그 경기를 무효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루과이에는 2명의 흑인 선수가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해서 조금의 관심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이 책은 참 유용하다.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을 읽어낼 수 있고, 단순히 생각하는 축구가 가지는 정치적 함의를 알 수 있다. 축구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배후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축구를 소재로 한 에세이처럼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런데 내용에 비해서 가격은 비싼편이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구를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계속 자리잡은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문화이자, 생활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우루과이 출신이다.) 사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축구에 대한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보면 지속적으로 축구를 즐겼다는 점이다.

우루과이 사람들 모두가 그렇듯이, 나 또한 어렸을 적부터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나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축구를 꽤나 잘한 편이었다. 그러나 밤에 잠을 잘 때만 그랬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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