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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그 빛과 그림자 - 개정증보판 ㅣ 예림신서 2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유왕무 옮김 / 예림기획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월드컵이 한국을 장악했다. 스포츠, 축구 뿐만 아니라, 축구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문화행사들도 축구와 관련된 행사 혹은 월드컵 기념 할인을 한다. 아직 서점까지 접수하지는 못했지만, 축구에 대한 서적이 책방 한 가운데를 차지 하고 있다. 6월 12일 KBS TV 책을 말하다의 주제도 축구였다.
축구에 대한 책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책을 말하다’에서 소개한 축구, 그 빛과 그림자라는 책이야기를 접했다. 책에 대한 이야기의 독특성과, 책의 저자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에 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불의기억’이라고 라틴아메리타의 역사를 서술한 그의 책을 소개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민중의 시선으로 라틴 민중의 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에 일단 그의 글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양장본으로 곱게 치장한 책의 가격은 16,000원. 초판 발행은 2002년, 개정증보판 2006년. 출판사의 마케팅 냄새가 솔솔 풍긴다. 무수히 많은 꼭지들과 한꼭지에 보통 한두쪽 글(물론 대여섯쪽이 넘어가는 꼭지들도 많지만). 책의 모습은 완연한 에세이집이다.
책 첫머리를 열어들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글을 수년 전 칼레야 데 라 코스타에서 나와 마주쳤던 적이 있는 그 꼬마들에게 바친다. 그들은 축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었다.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 즐겁다.’
쭈욱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즐기는 축구에 대한 저자의 그리움이다.
책은 저자의 축구에 대한 짧은 생각과 추억(선수, 경기)로 채워져 있다. 1900년대 초반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산했던 축구 스타들의 추억들이 많이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펠레 이전의 축구스타들, 예를 들자면 펠레 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던 프리덴라이히, 축구장에서 써커스와 같은 현란한 기술을 선보인 가린샤 등 많은 남미의 축구선수들이 나온다. 책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현란한 기술 축구를 보여준다. 축구의 아름다움.. 저자가 그 선수들을 추억하는 것은 바로 그 때의 축구에 대한 미련때문이다.
‘축구의 역사는 ‘즐거움’ 애서 ‘의무’로 변해가는 서글픈 여행의 역사이다. 스포츠가 산업화되어 감에 따라, 경기를 하면서 맛볼 수 있는 아주 단순한 기쁨의 미학을 앗아가버렸다.’(75쪽)
그런 축구의 즐거움이 사라지면서 축구는 이제 축구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고 설명한다. 1900년도 초반 2-3-5(수비수 2명, 미드필더 3명, 공격수 5명) 이던 축구의 전술이 19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4-4-2 등 수비를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한 축구의 상업화가 선수들을 발노동자로 전락시켜(이전에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축구를 했던) 선수들의 수명을 약화시키고, 팀의 성적을 우선시하면서 축구의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지적한다. 1900년 초반에 비해 경기당 득점은 절반, 선수들의 수명도 절반으로 줄었음을 지적한다.
간혹 보여지는 FIFA에 대한 비판도 매섭다. 축구의 상업화, 성역화를 통해 FIFAcarcy(FIFA+Cracy)를 이룩해낸 아블란제와 블래터에 대한 비판은 축구팬이거나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이다.
98년 월드컵에 대해서는 1위 아디다스(프랑스), 2(브라질),4위 나이키라고 지적하는 점도 매섭다.
이외에도 첫 월드컵부터 98년 월드컵까지 간략하게 월드컵의 소역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축구안에 역사가 담겨있는 점도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1930년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승리하는데, 아르헨티나는 그 경기를 무효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루과이에는 2명의 흑인 선수가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해서 조금의 관심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이 책은 참 유용하다.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을 읽어낼 수 있고, 단순히 생각하는 축구가 가지는 정치적 함의를 알 수 있다. 축구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배후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축구를 소재로 한 에세이처럼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런데 내용에 비해서 가격은 비싼편이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구를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계속 자리잡은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문화이자, 생활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우루과이 출신이다.) 사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축구에 대한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보면 지속적으로 축구를 즐겼다는 점이다.
‘우루과이 사람들 모두가 그렇듯이, 나 또한 어렸을 적부터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나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축구를 꽤나 잘한 편이었다. 그러나 밤에 잠을 잘 때만 그랬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