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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역류
김정란 지음 / 아웃사이더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인터넷 주소 http://www.rannie.net 을 치고 들어가면 샛파란 하늘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슬며시 땅이 나타나고 두 그루의 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오른쪽 한 켠을 보면 삶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부유하는 듯한 "허공의 집"이라는 네 글자가 흐멀거리고 " 몰가치적이고 표면적인 삶의 방식에 지친 영혼들이 모여 만든 집 . . . " 이라는 표현이 써 있다. 이 곳은 시인, 문학평론가, 불문학 번역가 등의 이름이 붙여진 김정란의 홈페이지다.
우연히 찾아든 홈피에서 "몰가치적이고 표면적인 삶의 방식에 지친~"이라는 표현에 잠시 멈칫거릴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을 꼬깃꼬깃 한켠에 간직하고 있었다. 몰가치적이고 표면적인 삶의 방식에 지친 것은 바로 내 영혼이었으니까....
김정란이라는 이름이 내게 익숙해 진 것은 시인으로의 김정란이 아니라 논쟁의 한가운데 휘말려버린 김정란 때문이었다. 90년 대 후반 '문단이 문학성보다는 언론 플레이를 통한 상업성 확보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하며 문학권력 논쟁의 포문을 연 김정란은 문학권력 논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당시 시인 박남철은 창비 게시판에서 성폭행적인 비방글을 남겼다.(이 사건은 문학권력 논쟁만큼 큰 이슈였다.) 김정란으로 시작된 문학권력 논쟁은, 결국 논쟁의 핵심과는상관없이 김정란에 대한 비방(문학권력 논쟁을 상업정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비방)과 그의 평론에 대한 악의적인 비평까지 계속되었다. 그 문학권력 논쟁에서 그의 우군이 되었던 것은 기득권을 가진 평론가가 아닌, 이명원 등(현재 비평과 전망 동인 들) 의 젊은 평론가와 진중권, 강준만 등이었다는 점도 아이러니 했다. 그런 김정란은 안티조선 운동이 본격적이었던 90년 대 末 그 운동의 한켠에 강하게 서 있었다. 그가 아웃사이더의 편집위원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안티조선운동으로도 그는 큰 상처를 입었다. 조선일보와의 유착관계를 의심받는 '문학동네'(요즘은 독자적인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가 그녀의 시집 출간을 거부한 사건까지...
이런 사회적 이슈들의 한 가운데서 큰 상처를 입었던 김정란이 새 책을 내었다. '분노의 역류''촛불집회의 촛불은 조용히 타고 있지만, 그 밑에서 흐르는 것은 분노의 역류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국민은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내가 내 몸을 역사의 필기구로 사용하지 않으면, 또 다시 3공화국의 비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근심 때문에 아이들을 동반하고 저항의 장소로 나가고 있다.촛불은 따라서 각성한 시민 각자의 인식의 불이다' (18쪽) 책은 1부 '희망이라는 반찬'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김정란의 칼럼들이 실려있다. 지난 대선과 관련되었던 그리고 탄핵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그 들의 몰상식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 자신의 말했듯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는 시간이 좀 지났기 때문에 한 물 간 내용들로 평가받을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한쪽만 비판하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김정란의 글들에서는 어떤 상식이라는 부분에서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전에 누군가(얼추 몇 명의 이름만 떠오를 뿐) 조선일보와의 싸움은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이라고 이야기 한 것 처럼, 김정란의 몰상식한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있다. 상식의 관점에서..
2부 '부러진 칼 조각 사이의 길'은 김정란의 에세이들이다. 김정란의 고정희에 대한 추억, 김현에 대한 추억들, 그리고 인문학자의 삶을 사는 자신의 의지 등이 담겨 있다. 혹은 김정란의 어린 시절까지... 김정란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2부를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투사처럼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김정란의 유약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인문학에 거는 희망도 엿볼 수 있다.
3부 '더 이상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은 외출'에서는 문학론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화속에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로 부터 시작해서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살며시 흘러나온다. 여러부문에서 문학의 위상이 약화되고는 있지만, 진정한 문학이야말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해 주는 영성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의 홈페이지에 있는 '몰가치적이고 표면적인 삶의 방식에 지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을 문학이라고 본다.
'분노의 역류'는 그의 정치적 내용들을 읽으려고 들면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다. 홍세화, 고종석, 박노자 처럼 예리하게 지적해내지 못하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점이 강점일 수도 있지만, 하지만, 김정란에 대해서 조금의 관심이 있고 그를 조금더 알고 싶다면 '분노의 역류'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정란에 대한 첫 독서이기는 하지만 사실 첫 책은 아니다. 책꽂이 한 구석을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두 권의 평론집 "영혼의 역사", "연두색 글쓰기"를 이미 3년전에 사다 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 김정란은 사실 좋은 시인이고, 평론가이다. 이제 그의 문학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시간의 타래를 한 올 한 올 앞질러 가다보면 그의 시와 평론에 빠져들 날이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