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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죽음이여, 내 너에게 뛰어들리라,
패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서!
- 버지니아 울프의 묘비명
버지니아 울프(1882∼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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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이야기할 게 아주 많은 작가이다. 그녀는 자신이 쓴 작품들보다 자신의 생애를 둘러싼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될 정도로, 그 이름만으로도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가다. 그녀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차 대전 중에 홀연히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리 오래된 작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21세기에 와서도 그녀가 쓴 작품을 바탕으로 꾸며낸 멋진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작품의 작가, 그 작품을 읽는 독자, 그 작품의 주인공이 동시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이야기는 니콜 키드먼 주연의 『디 아워스』라는 이름으로 개봉됐고. 그 영화의 원작을 쓴 마이클 커닝햄은 그 작품으로 퓰리처 상과 펜 포크너 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녀는 21세기 들어 더욱 확산되고 있는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도 유명하다. 여성이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은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그녀는 문학외적인 영향 보다는 문학 자체로도 커다란 업적을 남긴 탁월한 작가였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20세기 초반에 갑자기 터져 나온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프란츠 카프가(1883∼1924), 제임스 조이스(1882∼1941), T. S. 엘리엇(1888∼1965) 등으로 대표되는 쟁쟁한 거장들이 그녀와 함께 새로운 문학의 흐름을 주도했다.
그녀는 19세기의 보수적인 교육 풍토 탓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 학자이자 비평가였고 이름난 문필가였던 부친 덕분에 어려서부터 지적인 자극을 흠뻑 받으며 성장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집엔 당대를 대표하는 문사들의 출입이 잦았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토머스 헉슬리도 부친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왕립학회 회장을 지낸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 서문에도 등장한다.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손자다. 『댈러웨이 부인』에도 찰스 다윈과 토머스 헉슬리가 잠깐 등장한다.)
10대와 20대에 부모를 차례로 잃은 버지니아 울프는 언니 바네사를 따라 블룸즈버리로 이사했고, 여기서 그 유명한 블룸즈버리 그룹이 탄생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오빠의 친구들이 집으로 드나들었고, 버지니아 울프는 언니 바네사와 함께 그들이 나누던 예술과 철학과 문학 토론 모임의 안주인 역할을 떠맡았다. 여기엔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와 소설가 E.M. 포스터도 끼어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12년에 블룸즈버리 그룹의 멤버였던 레너드 울프와 결혼한다. 그는 작가이자 잡지 편집인이자 좋은 남편이 되었고, 결혼 후 재미 삼아 시작한 <호가스 출판사>는 점차 번성하여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출판하는 등 일류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발전했다.
비범한 성격과 용모를 지녔을 뿐만 이나라 화가인 언니 바네사와 함께 블룸즈버리 그룹의 중심 인물이 된 그녀는 문학과 예술의 첨단 조류를 이끌면서 활기찬 삶을 살았으나 끝내 만성적인 정신 분열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병약한 아내를 대신해서 살림을 떠맡고 창작을 격려해 줬던 남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속엔 그녀만의 깊은 고뇌가 담겨 있었다. <나는 정말로 다시 미쳐 가는 것 같아요. ……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인생을 망칠 수 없어요.>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그녀는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넣은 상태로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1941년 3월 28일이었다.
1925년에 발표한 『댈러웨이 부인』은 그녀의 실험 정신이 낳은 대표적 걸작이다. 이 작품은 1922년부터 오랜 시간 동안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역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대 작가들은 '쓸데없는 것들을 묘사하는데'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바람에 정작 가장 중요한 '인생의 진실'을 포착하는 데는 실패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마음속을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삶이란 전혀 <이러한> 게 아닌 듯합니다. 여느 때 여느 마음을 잠시 살펴보세요. 마음은 갖가지 인상들을 받아들입니다 ㅡ 사소한 것, 환상적인 것, 덧없는 것, 또는 날카로운 강철로 새긴 듯한 것. 사방에서 그런 인상들은 마치 무수한 원자들의 그치지 않는 소나기처럼 밀어닥치고, 그런 소나기가 월요일 또는 화요일의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니 강조점이 달라질 수밖에요. …… 그 가변적이고 알 수 없는, 한계가 지어져 있지 않은 영혼을, 비록 그것이 다소 상궤를 벗어나고 복잡하더라도, 가능한 한 외적이고 무관한 것과 뒤섞이지 않게끔 전달하는 것이 소설가의 임무가 아닐까요.(「현대 소설론」)
<새로운 소설을 위한 새로운 형식>으로 시도한 실험적 작품은 1921년 말에 완성하고 이듬해 10월에 출간된 『제이콥의 방』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해에는 공교롭게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T.S. 엘리엇의 『황무지』 등이 동시에 출간된 해였다.(프루스트는 같은 해 11월에 사망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5년 뒤에 출간됐다.)
새로운 방법에 확신을 얻은 버지니아 울프는 1922년 8월에 『댈러웨이 부인』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작업은 아주 더디게 진행되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을 그 작품에 집어넣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하나씩 해결책을 찾아 나갔다.
<나는 내 인물의 등 뒤에 아름다운 동굴을 판다. 그럼으로써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인간다움과 유머, 깊이 등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는 그 동굴들이 서로 이어지고, 각기 현재의 순간에 밝은 데로 나온다는 것이다.>
1925년 5월에 출간된 『댈러웨이 부인』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나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랐다. 3년 앞서 출간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의 비교를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제임스 조이스의 <사실주의적 활력>의 <유치한 아류>로 평가되기도 했다. 울프 또한 『율리시스』를 잘 알고 있었고, 「현대 소설론」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자기 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내세우며 인정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율리시스』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여드름을 긁어 대는 역겨운 학부생>에 대해 느끼듯 짜증이 나고 환멸을 느낀다거나, <실패작, 천재성은 있지만 질이 낮다. 산만하고 찝찔하고 젠체하며 상스럽다>는 악평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실제로 『댈러웨이 부인』과 『율리시스』는 많이 닮았다. 무엇보다도 '의식의 흐름 기법'과 '내적 독백'이라는 독특한 형식이 닮았다. 작품의 시공간적 구도도 닮았다. 『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의 더블린이 주무대다. 『댈러웨이 부인』은 1923년 6월 중순의 어느 하루, 런던에서의 아침부터 저녁까지가 배경이다. 『율리시스』의 남자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이 아내 몰리와의 옛 추억이 담긴 '호우드 언덕'을 자주 떠올리는 것과 『댈러웨이 부인』의 남자 주인공 피터 월시가 첫사랑 클라리사와의 추억이 담긴 '부어턴'을 자주 떠올리는 것도 닮았다.
『율리시스』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 대한 현대판 오마주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댈러웨이 부인』에서도 뚜렷하지는 않지면 호메로스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우선, 클라리사의 첫사랑인 피터 월시가 오랜 방랑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클라리사에게로 돌아오기 위해 애쓰는 점이 그렇다. 비록 남의 아내가 되어 있지만 피터의 '영원한 고향'은 언제나 클라리사한테 고정되어 있다. 이미 '댈러웨이 부인'이 된 지 오래인 클라리사도 마찬가지다. 마치 정절을 지키며 바느질로 소일하는 페넬로페처럼 그녀는 자신의 드레스를 고치며 피터 월시를 그리워한다. 클라리사는 그녀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자주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침대는 좁았고 …… 아이를 낳았는데도 여전한 처녀성이 새하얀 시트처럼 자신을 감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점들 말고도 『댈러웨이 부인』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닮은 점은 더 있다. 그 어떤 작가들보다 셰익스피어가 유난히 자주 인용된다든지, 주인공의 옛 애인이 작품 전체에서 골고루 출몰한다든지 하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그 두 작품 사이의 몇몇 유사성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과감한 문학적 시도에서 이 정도는 얼마든지 우연의 일치로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율리시스』와 『댈러웨이 부인』 사이의 차이점은 유사한 점들에 비해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벅찰 정도이다.
무엇보다 『율리시스』는 작품의 규모나 방대함, 주제의 다양함에서 『댈러웨이 부인』과 비교되지 않는다. 『율리시스』에는 인간의 삶을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들이 총망라된 느낌이 든다. 거기엔 탄생과 죽음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종교, 역사, 음악, 정치, 의학 등 온갖 분과 학문들이 한꺼번에 마구 뒤섞여 들끓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델러웨이 부인』은 그 주제가 오로지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로 오롯이 모아져 있다. 그걸 설명하는데 쓰이는 핵심 도구들은 피터 월시와 클라리사의 사랑, 클라리사가 준비한 파티, 전쟁에서 귀환한 셉티머스의 자살 등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난해하거나 과시적인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보면 『율리시스』보다는 훨씬 읽기 쉬운 작품이다. 독자가 겪는 유일한 어려움 한 가지는 '카메라의 앵글'이 너무나 자주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간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그저 단순히 등장 인물들의 어깨 위로만 옮겨 다니지는 않는다. 옮겨 간 사람의 머릿속으로 잠입하기도 한다.(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는 셉티머스에게서 이런 경향이 유독 두드러진다.) 그 점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하다. 가끔씩 카메라가 시공간을 통째로 옮겨갈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걸 따라가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댈러웨이 부인은 런던에 사는 쉰두 살의 여성이다. 최근에 심장병을 앓고 난 후로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부쩍 늙긴 했지만 영국 상류층의 부인다운 외모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꽃을 사러 집을 나선다. 그날 저녁 자신의 집에서 열릴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시작된 소설 속의 이야기는 클라리사의 행동 반경을 따라, 혹은 빅벤에서 매시각 울리는 종소리를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런던 시내의 평온한 일상들을 비추면서 아주 차분하게 진행된다. 이런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 우리의 삶이 된다는 것처럼.
그런 평온 속에서도 갑자기 삶을 뒤흔드는 건 뇌리에 깊이 박힌 어느 한 때의 잊지 못할 기억들이다. 한때 클리라사의 삶을 송두리째 차지했던 피터 월시와 샐리 시튼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며 사는지? 상쾌한 아침 공기를 느끼는 순간 그녀는 곧장 30여 년 전의 과거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그때만큼 삶의 에너지가 충만한 때는 다시 없었다.
얼마나 유쾌했는지!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다. 부어턴에서 프랑스식 유리문을 열어 젖히고 ㅡ 그 문의 경첩이 약간 삐걱대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다 ㅡ 활짝 열린 대기 속으로 뛰어들 때면 언제나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얼마나 신선하고, 얼마나 고요했던지. 물론 오늘 아침보다도 더 조용했었다. 파도의 찰싹임처럼, 파도의 입맞춤처럼. 싸늘하고 날카롭고 그러면서도 (당시 열려덟 살이던 소녀에게는) 엄숙했다. 저기 그렇게 열린 창문 앞에 서 있노라면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꽃들과, 나무들과, 나무들을 감돌아 지나가는 연기와, 갈까마귀들이 날아오르고 내리는 것을 바람보며 서 있노라면. 그때 피터 월시가 물었다. 「채소밭 가운데서 명상하는 거야?」ㅡ 그렇게 말했던가? ㅡ 「난 꽃양배추보다는 사람들이 더 좋아.」ㅡ 그렇게 말했던가?(7∼8쪽)
이렇게 갑자기 불려 나온 과거 속의 인물인 피터 월시는 한때 클라리사와 결혼할 뻔한,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는 첫사랑의 남자였다. 한때는 온 세상을 개혁할 것처럼 자신감이 넘쳤고, 언제나 클라리사를 너무 감상적이라고 몰아세웠던 당당한 남자, 나중엔 결국 옥스퍼드에서 퇴학 당하고 인도로 떠난 남자, 불행한 결혼 끝에 지금은 영락하고 만 불쌍한 처지의 남자가 피터 월시였다.
그녀는 세인트제임스 파크에서 여전히 논쟁을 벌이면서, 그와 결혼하지 않은 것이 옳았다고 ㅡ 또 그래야 했다고 ㅡ 결론을 내리곤 했다. 왜냐하면 결혼해서 날이면 날마다 한집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약간의 방임, 약간의 독립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처드는 그녀에게, 그녀는 그에게, 그런 여유를 허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터와는 모든 것이 공유되어야 했고 모든 것이 설명되어야 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그 작은 정원의 분수 곁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는 그와 절교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둘 다 파멸해 버렸을 것이다. 분명히 그랬다. 그 슬픔을, 그 고뇌를 여러 해 동안이나 가슴에 박힌 화살처럼 지녀야 하기는 했지만.(13∼14쪽)
부어턴을 떠올리면 클라리사는 언제나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열여덟 소녀 시절을 그토록 황홀하게 수놓았던 그 모든 것들과 함께. 첫사랑 피터 월시, 절친 샐리 시튼, 지금은 남편이 된 리처드 댈러웨이, 심지어 늙은 고모님까지도. 그런데 별다른 소식조차 없던 피터가 런던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그녀의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올랐다.
그가 곧 돌아온다지. 유월, 아니면 칠월? 잊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하필이면 파티 준비로 정신이 없던 와중에 피터가 불쑥 클라리사를 찾아 온다. <누구지 ㅡ 대체 누가> 파티를 여는 날 아침 11시에 이런 식으로 방해하는 사람이? 오, 맙소사! 그가 이렇게 아침 일찍 예고도 없이 찾아오다니! '그를 보자 그녀는 그렇게도 놀라고, 기쁘고, 수줍고, 어리둥절했다.'
불행한 처지로 런던에 되돌아온 첫사랑의 남자와 클라리사의 만남은 안타깝게도 그리 길지는 못했다. 열일곱 살 딸아이가 불쑥 끼어드는 바람에. 그러나 불쌍한 피터 월시가 클라리사 앞에서 까닭 모르게 한바탕 눈물을 왈칵 쏟아낼 틈마저 없었던 건 아니다.( <정말이지 자기도 모르게, 억누를 수 없이 솟구치는 힘에 북받쳐서, 그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울고 또 울었다. 아무 부끄러움 없이, 소파에 앉은 채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피터와의 짧은 만남 이전에 클라리사의 머릿속에 피터와 함께 떠오른 옛 친구는 샐리 시튼이었다. 그녀는 여러모로 놀라운 능력을 지닌 여자 친구였다. 클라리사에게서는 도무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재능과 개성들을 지닌 그녀. 샐리는 정말이지 사람들을 너무 자주 놀라게 했다.
돌이켜 보면 신기한 것은 샐리에 대한 감정의 순수함, 그 완전함이었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감정과는 달랐다. 전혀 사심이 없고, 여자들, 막 사춘기를 지난 여자들 사이에나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 편에서는 다분히 보호자 같은 감정이기도 했다. 둘만의 연맹이라도 맺은 듯한 느낌, 자신들을 갈라 놓을 무엇인가에 대한 예감(그들은 결혼을 항상 파탄으로 이야기했다)에서 생겨난 이 기사도적인 감정은 샐리보다는 주로 그녀 편에서 느끼는 것이었지만. (48∼49쪽)
샐리와 함께라면 클라리사는 심지어 이런 느낌까지 들곤 했다. <만일 지금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때이리> 그러나 그날 저녁 파티에서 다시 만난 샐리는 실제로 어땠는가. 까마득한 옛날 부어턴에서 함께 보았던 꽃양배추를 보고 '거친 청동 같다'고 말할 정도로 문학적이었던 그 소녀는?
이름이 뭐라고? 레이디 로시터? 도대체 레이디 로시터가 누구지?
「클라리사!」 아, 저 목소리! 샐리 시튼이었다! 샐리 시튼! 대체 몇 년 만인가! 그녀의 모습은 안개라도 통해 보듯 어슴푸레했다. 그녀가 아는 샐리 시튼은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클라리사가 더운 물병을 손에 쥐고서 그녀가 이 지붕 아래 있어, 이 지붕 아래! 하고 가슴 뛰며 생각하던 시절의 샐리는 저렇지 않았는데!
서로 얼싸안고, 당황하고, 웃어 대는 동안,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ㅡ 런던을 지나는 길이었어, 클라라 헤이든한테서 들었지. 널 만날 절호의 기회잖아! 그래서 불쑥 끼어들었어 ㅡ 초대도 안 받고 …….(223쪽)
클라리사가 그날 저녁 파티에 참석하는 손님들을 맞이할 때까지 얼마나 더 피터 월시와 샐리 시튼과 (남편인) 리처드 댈러웨이를 머릿속에 떠올렸는지, 혹은 파티에 초대한 사람들이 얼마만큼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지. 혹은 매시각 어김없이 울려퍼지는 빅밴의 종소리가 그날 하루 런던 시내를 오가는 뭇 사람들의 귓가에 어떤 색조로 들렸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삶이 클라리사와 피터와 샐리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난 바로 그 때문에 파티를 여는 거야.」 그녀는 삶을 향해 소리내어 말했다.
방 안에 갇혀 소파에 가만히 누워 있자니, 그처럼 명백하게 느꼈던 삶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듯 느껴졌다. 그것은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옷자락처럼 휘감고, 화창한 모습으로, 뜨거운 숨결로, 속삭이면서, 커튼을 휘날리게 했다. 그러나 만일 피터가 그녀에게 <좋아, 좋아. 하지만 당신의 파티들은, 대체 그 파티들은 무슨 의미가 있지?> 하고 묻는다면, 그녀는 (아무도 이해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그건 하나의 봉헌이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을 것이고, 그 말은 한심할 만큼 막연하게 들릴 것이었다. 하지만 피터가 무슨 자격으로 인생이란 그저 단조로운 항해라고 주장할 것인가? 당신 사랑은 어떻고요? 하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 그의 대답은 뻔했다. 그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여자들은 도저히 이해 못한다고. 뭐 그렇다고 해두자. 하지만 그렇다면 그녀가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떤 남자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160∼161쪽)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도 이런 것들이었다.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 사람들 사이의 고독, 서로의 눈에 비치는 그 인간적인 왜소함과 나약함 등.> 삶의 표층 아래에 도사린 온갖 모순들은 비단 주인공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레이디 브루턴의 무리한 이주 계획, 속물주의의 극치인 휴의 예법과 교양,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셉티머스에 대해 '권위'로 억압하는 닥터 훔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중 인물 가운데 가장 불행한 인물은 클라리사의 파티가 시작되려는 바로 그 시각에 홀연 창밖으로 몸을 던진 셉티머스다. 그의 자살은 결국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닥터 훔스의 잘못된 권위와 횡포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셉티머스의 죽음으로부터 도리어 삶을 긍정하는 미학을 얻는다. 셉티머스가 전쟁 후유증으로 삶에 적응하지 못해 고통받는 모습은 클라리사와는 전혀 별개로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 또한 매시각 늙어가는 중이며, 언젠가 마주칠 죽음이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두려움에서 그녀를 벗어나게 해 주는 유일한 방법은 살아있는 순간들 자체를 즐기는 것 뿐이다. 흩어져 가는 순간들과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살아 있는 그 순간들을 배합하는 파티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자 그녀의 유일한 재능이었다.
이제 블라인드를 내렸다. 시계가 종을 치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자살을 했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계가 시간을 알린다, 한 점, 두 점, 석 점. 그녀는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저기! 노부인이 불을 껐다! 온 집이 어두워졌다. 이 모든 것이 여전히 계속되는 가운데, 하고 그녀는 되뇌었다. 그러자 그 말이 떠올랐다. 태양의 열기를 더는 두려워 말라. 손님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얼마나 특별한 밤인가! 그녀는 왠지 그와 ㅡ 자살을 한 청년과 ㅡ 아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이,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린 것이 기뻤다. 시계가 종을 쳤다. 납처럼 둔중한 원이 공중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가봐야 했다. 손님들과 어울려야 했다. 샐리와 피터를 찾아야 했다.(243쪽)
『댈러웨이 부인』은 삶의 이면에 감춰진 꿈처럼 형체 없는 느낌들을 극도로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한 걸작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 번만 읽어서는 작가가 의도한 바를 충분히 음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놀랍도록 정교하게 직조해 놓은 아름다운 무늬들이 단번에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녀가 문장들 사이로 미묘하게 이어놓은 거미줄처럼 세밀한 가닥들은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칠 때만 아주 가끔씩 그 모습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의 깊게 읽는 독자들이라면 그녀의 문장들이 얼마나 섬세하며, 인물들 사이를 연결해 놓은 가느다란 거미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물방울들을 매달고 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