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의 여행을 이끄는 초대장
아킬레스의 무구를 두고 벌이는 아이약스와 울릭세스의 설전
오뒷세이아_11권 저승



















이 작품은 트로이아 전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일어난 일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이었던 아킬레우스가 마침내 죽고 난 뒤 그의 무구를 둘러싼 장수들 간의 쟁탈전에서 오뒷세우스에게 패한 아이아스가 심한 모멸감 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스스로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무구재판에 패한 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혹한 현실' 때문에 극도의 딜레마에 빠진 그는 결국 미친듯이 아군인 그리스 군 진영을 습격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다음날 아침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는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헥토르의 칼을 땅바닥에 거꾸로 꼽고 그 위에 엎어져 목슴을 끊는다.

이 작품의 초반에 나오는 한 대목인 "적들을 비웃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웃음이 아닐까?"(79행)라는 물음에서 오뒷세우스가 보여주는 놀라운 행동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기는커녕 추락한 적대자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며 그의 운명에서 자신의 운명을 본다.'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아는 것이야말로 신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곧 시인의 생각이고 또한 이 작품의 주제이다.

이 작품 속 인물들과 '무구재판'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호메로스가 쓴『일리아스』에도 풍성하게 담겨 있다. 여기서는 '아이아스의 죽음'을 이해하는 데 얼마간 필요하다싶은 대목, 즉 그의 빛나는 무용과 위상을 동시에 짐작해 볼 수 있게 하는 '아이아스와 헥토르의 대결 장면' 일부분을 인용해 본다. 헥토르는 훗날 아이아스에게서 선물로 받은 혁대로 전차 난간에 묶여 질질 끌려가다가 죽었고, 아이아스는 이 작품에서도 거듭 이야기되는 것처럼 '무구재판'에서 지고 난 뒤 헥토르가 건네준 '칼' 위에 엎어져 숨을 거둔다.


그에게 투구를 번쩍이는 위대한 헥토르가 말했다.

"아이아스여! 신은 그대에게 큰 체구와 힘과 지혜를 주셨고
또 창에서는 그대가 아카이오이족 중에서 가장 뛰어나니,
오늘은 전투와 결전을 중지하도록 합시다.
신이 우리를 심판하여 어느 한쪽에 승리를 내리실 때까지
우리는 차후에도 얼마든지 다시 싸울 수 있을 테니까요.
벌써 밤이 바가왔으니 밤에게 복종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
그러니 자, 우리 두 사람은 서로 훌륭한 선물을 교환하여
아카이오이족과 트로이아인들이 더러 이렇게 말하도록 해줍시다!
'두 사람은 마음을 좀먹는 불화 때문에 서로 싸웠지만
다시 화해하고 친구가 되어 헤어졌도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은못을 박은 자신의 칼을
칼집과 보기 좋게 자른 가죽 끈과 함께 건네주었다.
그래서 아이아스는 자줏빛 찬란한 혁대를 주었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7권

 
그리스의 이름난 장수 중에서도 아킬레우스 말고는 그 누구도 그에 비견되는 인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지략이 뛰어난 후발주자 오뒷세우스에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빼앗기고 만 아이아스는 과연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았을까? 대의를 위해서 개인의 이익이나 명예는 얼마만큼 희생되어야 하는가? 적장 헥토르가 선물로 건네준 칼이 자신의 죽음을 장식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이 슬픈 영웅은 '아이아스의 딜레마'라는 책 속에서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자신의 딜레마를 풀어 달라고 또다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담긴 사진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담긴 사진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담긴 사진



 - <아이아스의 자살> 에트루리아의 적색 상크라테르 도기, BC 400∼350년 



 
* * *
 

 

          아테나

오뒷세우스여, 신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대는 보고 있는가?
그대는 저자보다 더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을, 또는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저자보다 더 민첩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오뒷세우스

그런 사람을 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록 그가 내 적이긴 하지만 저는
사악한 미망에 빠져든 그의 불행을 동정합니다.
그의 운명이 내 운명으로 여겨지니까요.
제가 보기에,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환영이나
실체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테나

그대는 그런 통찰력을 지녔으니 신들에게
절대로 주제넘은 말을 내뱉지 말고,
체력과 재력에서 그대가 누군가를
능가한다 하여 우쭐대며 뻐기지 마라.

무릇 인간사란 하루아침에 넘어질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다시 일어설 수도 있느니라. 하지만 신들은
신중한 자들을 사랑하고 사악한 자들은 싫어하지.

 - 《아이아스》118∼133행


 

      아이아스

아아, 슬프도다!
너희들 바다의 물길들이여,
너희들 바닷가 동굴들과 해변의 작은 숲들이여!
오랫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너희들은
나를 이곳 트로이아에 붙들고 있었구나.
하지만 이제 더는 숨 쉬는 나를 붙들지 못할 것인즉,
아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리라.

 - 《아이아스》412∼417행




      아이아스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은 감추어진 모든 것을
드러내고, 이미 드러난 것은 도로 감추는 법.
세상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엄숙한 맹세도 철석같은 마음도 스러지고 마니까.

전에는 그토록 굳건하고 담금질한 무쇠처럼
단단하던 나도 저 여인의 말에 날이 무뎌졌어.
그녀를 내 적들 사이에 과부로, 그리고 내 아들을
고아로 남겨두자니 측은한 생각이 드는구나.

 - 《아이아스》646∼653행




            사자

예언자의 말인즉,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서는 과도한 생각을 품게 되면,
너무 웃자라 못 쓰게 된 그런 자들은 필시
하늘이 보낸 재앙에 쓰러진다고 했소.

 - 《아이아스》758∼761행


 

      아이아스

죽음이여, 죽음이여, 이제는 와서 나를 보라!
하지만 그대에게는 나중에 저승에 가서
말하리라. 지금은 찬란한 햇빛이여, 내 그대와,
마차를 모는 헬리오스에게 말하리라, 마지막으로.
그리고 다시는 말하지 않으리라.
오오, 햇빛이여, 내 조국 살라미스의 신성한
땅이여! 내 아버지의 화로가 놓인 터전이여,
이름난 아테나이여, 우리와 친척간인 도시여!
이곳의 샘들과 강물들이여, 트로이아의 들판들이여,
내 너희들에게 말하노라. 잘 있어라! 내 유모들이여!
이것이 아이아스가 너희들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다.
나머지는 하데스의 집에 가 있는 자들에게 말하리라!

 - 《아이아스》854∼865행




   테우크로스

이 광경이야말로 일찍이 내 눈으로 본 것
가운데 가장 고통스런 광경이로구나!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아이아스 형님! 형님의
발자국을 찾아다니다가 형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듣고는 지금 형님 곁으로 돌아온 이 길이 내게는
모든 길 가운데 가장 슬픈 길이었어요.


 - 《아이아스》992∼997행



 

   테우크로스

보세요, 헥토르는 죽었지만 결국 형님을 죽일 운명이었어요.
(코로스에게)
그대들은 제발 두 사람의 운명을 잘 살펴보구려!
헥토르는 여기 이분에게서 선물로 받은 혁대로
전차 난간에 묶여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에는
숨을 거두었소. 한편 이분은 헥토르한테서
이 칼을 선물로 받았다가 이 칼 위에 엎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소. 쇠를 불려 이 칼을 만든 것은
복수의 여신이고, 그 혁대를 만든 것은
잔혹한 장인인 하데스가 아니었을까?

 - 《아이아스》1027∼1035행




   오뒷세우스

한때 이 사람은 내게도 군대에서 가장 고약한 적이었소.
내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손에 넣은 뒤로 말이오.
그가 나를 그렇게 대했지만, 나는 트로이아에 온
모든 아르고스인들 중에 아킬레우스 말고는
그만이 가장 탁월한 전사임을 부인할 만큼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싶지는 않았소이다.

그대는 그의 명예를 정당하게 실추시킬 수 없소이다.
그대는 이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법도를 해코지하는
것이니까요. 용감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모욕하는 것은
옳지 못하오. 설사 그를 미워했다 하더라도 말이오.

 - 《아이아스》1336∼1345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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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뭉치들이 담긴 자루를 꺼내며 드는 생각
    from Value Investing 2014-01-25 15:22 
    고전을 읽다 보면 이상한 일을 자주 경험한다. 마치 옛 사람들이 빤히 알고나 있었다는듯이 천연덕스럽게 '지금' 막 우리들 눈 앞에서 벌이지고 있는 일들을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우리가 '헉. 과연 이 사람이 까마득한 옛날에 살았다는 그 사람이 맞아?'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정말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떨 땐 오늘날 우리들이 겪고 있는 여러 얽히고설킨 복잡한 사건들에 부닥쳐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고전을 쓴 저자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