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아주 가끔씩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아!

 

물론 대개는 그럴 때 죽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때는 정녕 죽어도 좋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지, 결코 죽음으로 뛰어들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질투심이라는 격정에 휩쓸려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이고야 만 오셀로에게 가장 죽고 싶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런 질문은 하나마나다. 격분에 사로잡힌 그가 아무런 죄도 없는 아내를 죽이고 난 직후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탄에 빠졌을 때다. 그는 곧장 자결한다. 그러나 그는 원래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데스데모나를 죽인 직후 로도비코(베네치아 귀족)가 자신의 행적과 인간성을 베네치아 정부에 고할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라고 말한다.

 

무엇을 줄이거나

악의로 적지도 마시오. 그러면 당신은

분별없이 너무 많이 사랑했던 사람을

질투를 쉽게 하진 않지만 하도록 만들면

극도로 혼란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자기네 부족보다 더 값진 진주를 던져 버린

비천한 인도인 같은 자를, 차분한 두 눈은

기분 따라 쉬 녹진 않지만 아라비아 나무가

약용 진액 흘리듯 눈물을 줄줄 쏟는 사람을

말해야만 할 것이오.

 

 - 『오셀로』, 제5막 제2장 중에서

 

 

그는 함부로 질투심을 일으키는 시덥잖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갖춰야 할 용기와 위엄을 두루 지녔고, 정직성과 당당함뿐 아니라 다정다감한 감정까지 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 중이던 베네치아는 키프로스 섬을 지키기 위해 용병대장 오셀로를 총독으로 파견한다. 베네치아 함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던 오셀로 일행은 도중에 격렬한 태풍을 만나 뿔뿔이 흩어진다. 뒤늦게 간신히 그 섬에 당도한 오셀로는 아내 데스데모나가 자신들보더 도리어 먼저 키프로스 해안에 무사히 도착한 걸 알고는 좋아서 까무러칠 지경이다. 그때 오셀로가 느낀 황홀감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격정적인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오, 내 영혼의 기쁨이여,

폭풍 뒤에 언제나 이런 평온 깃든다면

바람은 죽음을 일으킬 때까지 불고 불어

고생하는 돛단배를 바다 언덕 저 위로

올림포스만큼 올렸다가 천국에서 지옥 가듯

다시 내리꽂아라. 난 지금 죽어도 지금이

가장 행복할 것이오, 왜냐하면 내 영혼은

절대 만족 맛봤기에 이 같은 안락이

미지의 운명 속에서도 이어질 것인지

염려하기 때문이오.

 

 - 『오셀로』, 제2막 1장 중에서

 

이 장면에서 오셀로가 느끼는 감정은 절정의 행복감이지만, 그 이면에는 벌써부터 미래에 심상찮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염려가 끼어든다. 이런 행복이 과연 '미지의 운명 속에서도 어어질 것인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결국, 오셀로는 이아고의 유혹 장면에서 너무 쉽게 질투심에 불타오르고, 전후 사정이나 자초지종을 자세히 살펴 보지도 않은 상태로, 이아고에게 휘둘린 끝에 아내인 데스데모나와 부하인 카시오 사이의 불륜을 갑자기(!) 확신한다.

 

물론 여기서 오셀로의 질투심이 빚은 비극은 그 책임이 전적으로 오셀로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아고가 오셀로의 질투심을 자극하기 위해 사용한 트릭이 너무나 교묘하고 그 효과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오셀로에게는 쉽게 파멸에 이르는 또 한 가지 약점을 더 지니고 있었다. 데스데모나와 자신의 결혼이 결코 탄탄한 바탕 위에 이뤄진 게 아니고, 갑작스런 유혹으로 이뤄진 허약한 기반 위에 있다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그는 피부조차 검은 나이 많은 무어인이었고, 데스데모나는 베네치아에서도 소문난 미모를 갖춘 고관대작의 딸이었으니 말이다. 이아고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사이의 틈을 벌이기 위해 그런 점까지도 교묘히 파고든다.

 

"데스데모나가 이 무어인을 계속 오래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중략) 그도 마찬가지고. 그녀로선 격정적인 출발이었으니까 그에 걸맞은 결별을 보게 될 거야.(중략) 이 무어인들은 욕심이 변하는 자들인데(중략) 지금은 그에게 캐롭처럼 맛있는 음식도 머지 않아 땡감처럼 떫은 맛이 날 거야. 그녀는 그를 젊은 남자와 바꿔야 해. 그의 몸에 물리게 되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알 테고 사람을 바꿔야만 해. 반드시."

 

이아고는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나쁜 악당이지만 그만큼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기도 했다. 인간의 마음은 늘상 변하게 마련이고, 그 변화는 욕망이 좌우하며,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관계처럼 서로 분명한 차이가 나는 결합은 그 열기가 식을 경우 언젠가는 깨어지기 마련이다. 이아고는 그걸 끊임없이 강조한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의심하여 마침내 스스로 파멸할 때까지. 이런 천하에 몹쓸 악당!!

 

 * * *

 

『댈러웨이 부인』의 주인공 클라리사는 런던에 사는 쉰두 살의 여성이다. 그녀는 유월 중순의 어느 화창한 날 아침에 꽃을 사러 집을 나선다. 그날 저녁에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날따라 그녀는 기분이 몹시 상쾌한 느낌을 받는다.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바닷가의 아이들에게나 찾아오던 아침처럼 신선했다.

 

그녀의 의식은 여기서 곧장 열여덟 소녀 시절로 날아간다.(소설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래 문장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소위 '의식의 흐름 기법' 때문이다. 문장 사이의 도약 덕분에 '과거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기분이 든다!)

 

얼마나 유쾌했는지!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다. 부어턴에서 프랑스식 유리문을 열어 젖히고 ㅡ 그 문의 경첩이 약간 삐걱대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다 ㅡ 활짝 열린 대기 속으로 뛰어들 때면 언제나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얼마나 신선하고, 얼마나 고요했던지. 물론 오늘 아침보다도 더 조용했었다. 파도의 찰싹임처럼, 파도의 입맞춤처럼, 싸늘하고 날카롭고 그러면서도 (당시 열여덟 살이던 소녀에게는) 엄숙했다. 거기 그렇게 열린 창문 앞에 서 있노라면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꽃들과, 나무들과, 나무들을 감돌아 지나가는 연기와, 갈까마귀들이 날아오르고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서 있노라면.(7∼8쪽)

 

 

유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에 꽃을 사러 집을 나선 클라리사가 맨 처음으로 떠올린 추억 속의 그 사람은 피터 월시였다. 한때 너무나 격정적으로 사랑했고, 벌써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와의 아픈 이별만 생각하면 가슴앓이를 겪어야만 하는 남자, 옥스퍼드를 중퇴하고 지금은 영락한 처지지만 늘 보고픈 남자가 피터였다. 

 

그가 곧 돌아온다지. 유월, 아니면 칠월? 잊어버렸다.

 

피터에 대한 추억들도 어느새 뇌리에서 사라지고 얼마쯤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 클라리사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옛 친구는 샐리 시튼이었다. 그녀는 여러모로 놀라운 능력을 지닌 여자 친구였다. 클라리사에게서는 도무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재능과 개성들을 지닌 그녀. 샐리는 정말이지 사람들을 너무 자주 놀라게 했다.

 

돌이켜 보면 신기한 것은 샐리에 대한 감정의 순수함, 그 완전함이었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감정과는 달랐다. 전혀 사심이 없고, 여자들, 막 사춘기를 지난 여자들 사이에나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 편에서는 다분히 보호자 같은 감정이기도 했다. 둘만의 연맹이라도 맺은 듯한 느낌, 자신들을 갈라 놓을 무엇인가에 대한 예감(그들은 결혼을 항상 파탄으로 이야기했다)에서 생겨난 이 기사도적인 감정은 샐리보다는 주로 그녀 편에서 느끼는 것이었지만. 그 시절 샐리는 정말이지 겁이 없어서, 허세를 부리느라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을 감행하곤 했다. 자전거를 타고 테라스 난간 위를 달린다든가, 여송연을 피운다든가, 묘한, 아주 기묘한 애였어. 하지만 그 매력은 대단했지.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랬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밤에 자기 침실에서 더운물이 든 병을 손에 든 채로 우두커니 서서 <그녀가 이 지붕 아래 있어 ……. 그녀가 이 지붕 아래 있는 거야!> 하고 소리 내어 말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했다.(48∼49쪽)

 

 

그녀가 세월의 변천에 따라 얼마만큼 많이 그녀와 멀어지고, 그 모습조차 서로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는지는 새삼 물어볼 필요도 없다. 소설의 말미에서 클라리사는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찾아 온 사람들을 일일이 신경쓰느라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나 마찬가지였던 옛 친구들인 피터 월시와 샐리 시튼과는 살가운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 클라리사가 피터와 샐리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이런 말들 뿐이었다. 「하지만 가봐야 해.」 「나중에 올게. 기다려.」 이 모든 사람들이 가버릴 때까지...

 

클라리사와 샐리 사이에 언제나 함께 하리라고 믿었던 그 옛날의 특별한 감정들이 언제 연기처럼 갑자기 사라졌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다만 그 두 사람 사이에 언젠가 한 순간 '지금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때라고 느꼈던 그런 순간이 분명 존재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아니, 그런 말들은 이제 아무 뜻도 없었다. 그 옛날 감정의 희미한 메아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흥분하여 몸이 떨리는 기분, 반쯤 취한 기분으로 머리를 빗던 것은 기억할 수 있었다(머리핀을 빼어 화장대 위에 놓고 머리를 빗기 시작하니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창밖의 분홍빛 저녁노을 속에서 갈까마귀들이 퍼덕이며 날던 것도.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홀을 가로지르면서 <만일 지금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때이리> 하는 심정이 들었다. 그것이 그녀의 느낌 ㅡ 오셀로의 느낌이었고, 그녀는 셰익스피어가 오셀로에게 불어넣었던 만큼이나 강렬하게 그런 심정을 느끼고 있다고 확신했다. 오로지 새햐얀 드레스를 입고 샐리 시튼을 만나러 저녁 식탁에 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49쪽)

 

 

 * * *

  

『댈러웨이 부인』의 주인공 클라리사는 샐리 시튼과 남녀간의 애정 비슷한 감정을 느낄 만큼 특별한 사이였다. 싱그러운 꽃처럼 모든 게 향기롭게 피어나던 시절엔 그랬다. 그녀는 샐리 시튼 때문에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결혼까지 할 뻔했던 피터조차도 그럴 땐 그녀와 샐리 사이를 가로막는 훼방꾼일 뿐이었다.)

 

그 모든 것이 샐리를 위한 배경일 뿐이었다. 샐리는 벽난로 곁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음성은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이 다정한 애무처럼 들리게 했다. 이야기를 듣던 아빠도(그는 그녀에게 빌려 준 책이 테라스에서 푹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 후로 쉬이 노여움을 풀지 못하고 있었는데도)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이런 날 집 안에 틀어박혀 있다니!」 그래서 그들은 모두 테라스로 나가 이리저리 걸었다. 피터 월시와 조지프 브라이트코프는 줄곧 바그너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그녀와 샐리는 조금 뒤에 처졌다. 그러고는 그녀의 평생 가장 황홀한 순간이 다가왔다. 꽃이 담긴 돌항아리 곁을 지날 때였다. 샐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꽃을 한 송이 꺾어 들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온 세상이 거꾸로 도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까마득히 멀어졌다. 그녀는 샐리와 단둘이 있었다. 선물을 받았는데, 꽁꽁 포장한 선물을 들여다보지 말고 그냥 가지고 있어,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이아몬드나 뭔가 무한히 소중한 것이 겹겹이 싸여 있었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동안 그녀는 살짝 그것을 열어 보았던가, 아니면 그 타는 듯한 광채가, 계시가, 종교적인 감정이, 뚫고 나왔던가! ㅡ 그때 조지프 노인과 피터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별을 보는 거야?」 피터가 말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화강암 벽에 얼굴을 찧은 것만 같았다! 난데 없고, 끔찍했다!(50∼51쪽)

 

 

그토록 소중한 친구였던 샐리가 언젠가부터 클라리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존재로, 또한 서로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삶의 표층 아래에 도사린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자 삶의 아이러니다.

 

「나중에 올게요.」 그녀는 서로 악수하고 있는 옛 친구 샐리와 피터를 보며 말했다. 샐리는 뭔가 옛날 기억이 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에는 그 옛날의 매혹적인 울림이 없었고, 그녀의 눈은 예전처럼 빛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스펀지 백을 가지러 간다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복도를 내달리던 그 시절처럼. 앨렌 엣킨스는 말했었다. 「신사분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러나 모두들 그녀를 용서했다. (중략) 대담하고 무모하고 자기가 모든 일에 중심이 되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능히 그럴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클라리사는 뭔가 무서운 비극이 일어나리라고, 때 아닌 죽음이라든가 순교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그녀는 결혼을 했고, 그것도 커다란 단춧구멍만큼 머리가 벗어진, 맨체스터의 방적 공장 주인과 결혼을 해서, 아들을 다섯이나 두었다고 한다!(236∼237쪽)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오셀로가 했던 말을 버지니아 울프가 클라리사에게 다시 부여한 것은 생각할수록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악당 이아고가 했던 "지금은 그에게 캐롭처럼 맛있는 음식도 머지 않아 땡감처럼 떫은 맛이 날 거야." 라는 말은 클라리사와 피터와 샐리 사이의 관계에서도 절묘하게 들어맞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땡감처럼 떫은 맛은 알겠는데 캐롭은 도대체 무슨 맛이냐고? 글쎄,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기가 막힌 맛이 아닐까. 아무튼 기분이 너무 좋을 땐 꼭 '죽여준다'는 느낌이 들 테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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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2-02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아고의 이간질이 오셀로의 파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작품에서 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아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가짜뉴스가 생각나네요... 시대를 넘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 위대한 문호의 힘이라 생각됩니다. 글을 읽다보니, 오셀로가 향하는 곳이 베네치아에게는 비극적인 ‘파마구스타 함락‘의 아픔이 있는 키프로스라는 점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베네치아의 아픔과 오셀로의 아픔을 같이 보이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oren님 항상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ren 2019-02-02 16:59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가 『오셀로』를 쓴 때가 1601∼1604년 무렵이었는데, 이때는 벌써 오스만 투르크가 전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을 정도로 세력을 떨칠 때였죠. 『오셀로』의 시대 배경이 1571년에 일어난 역대급 전쟁이었던 <레판토 해전> 직전의 어느 시기, 다시 말하자면 ‘파마구스타 함락‘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조차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한창 전운이 감돌던 위태로운 시기의 어느 한 때였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키프로스 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던 <레판토 해전>은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참전해서 왼팔을 잃는 바람에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쟁으로도 기억되는데, 문득 거기가 어디쯤인지 찾아보니 레판토는 그리스의 파트레 만 근처이며 현재는 나브팍토스라 불린다는군요.

겨울호랑이 2019-02-02 17: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제가 알기로는 레판토 해전 직전에 파마구스타가 함락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가 잘 못 알았나 봅니다. oren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oren 2019-02-02 17:04   좋아요 1 | URL
제 댓글이 약간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군요.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 순서는 겨울호랑이 말씀이 맞습니다. <레판토 해전>(1571년>이 있기 전에 ‘파마구스타 함락‘(1570년)이 일어났고, 그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어드메쯤이 『오셀로』의 시대 배경이 아닐까 하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2 17:13   좋아요 1 | URL
^^:) 네 oren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실 시대적 배경에 몇 년의 차이는 작품의 생명력에 비한다면 소소한 문제라 여겨집니다. ^^:) 세익스피어 작품 여러 곳에서 베네치아가 언급된 것을 보면, 베네치아는 지금과는 달리 강대국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oren 2019-02-02 17:32   좋아요 1 | URL
베네치아는 딱 한 번 가봤는데, 이름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정말 환상적인 도시더군요. 수많은 작가들이 베네치아(혹은 베니스)를 무대로 작품을 썼던 것도 이해할 만하고요. 나폴레옹이 거길 차지하고 앉아서 ‘유럽의 응접실‘로 불렀던 것도 그럴 듯하다 싶고요. 전 가끔씩 베네치아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도 한답니다. 어딜 가나 두루 아름답고, 한때 몹시 번창했고, 세련됐고, 매혹적이고, 역사적이고, 음악적이고, 종합적으로 너무 예술적인 도시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겨울호랑이 2019-02-02 17:39   좋아요 1 | URL
oren님 말씀을 듣고보니 베네치아에 꼭 가보고 싶어 집니다. 괴테도 「이탈리아 기행」에서 베네치아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것을 보면 많은 것을 품은 도시라 여겨집니다^^:)

oren 2019-02-02 17:54   좋아요 1 | URL
문득 궁금해서 방금 알라딘 도서 검색에서 ‘베니스‘를 검색해 보니 189종의 책이 나오네요.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 말고도 아주 흥미로운 책들이 많아 보입니다.^^

<릴케의 베네치아 여행>도 있고,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라는 유명한(!) 작품도 보이고, 국내 작가가 쓴 <베니스에서 죽다>라는 작품도 보이네요. 심지어는 <책공장 베네치아>라는 책도 있고요.^^

겨울호랑이 2019-02-02 18:21   좋아요 1 | URL
^^:) 이런. 이 정도면 유럽 지식인들에게 베네치아는 관광지가 아니라 순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네치아는 ‘유럽 문명의 성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oren 2019-02-02 19:20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베네치아는 ‘복식부기의 발상지‘로도 기억할 만하네요. 『1494 베니스 회계』라는 책을 보니 문득 그 책을 번역한 분이 제게도 한 권 선물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2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두 분 대화에 낄 수가 없네요 거장이란 고래 사이에 카알 새우 등 터지는 소리! 🎶

oren 2019-02-03 12:39   좋아요 1 | URL
카알 새우는 과연 어떤 맛을 지닌 새우일까요? 너무 궁금하네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9-02-03 13:27   좋아요 1 | URL
카알 새우는 맛 옵써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