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한다, 오디세우스, 놀라움에 지친 그가

사랑 때문에 곧장 다시 울었다고. 그의 이타카가

소박하고 푸르른 걸 보고서, 예술이란 마치 이타카,

단순한 놀라움이 아닌, 영원한 푸르름의 이타카 같은 것."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학』(1958)에서

 

 * * *

 

트로이 전쟁이 끝나자 그 전쟁에 참전했던 수많은 군사들은 마침내 귀국선에 서둘러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들뜬 항해가 무탈하게 마무리되어 오매불망 자신들을 기다리던 가족의 품에 안긴 채, 화려한 꽃다발과 팡파레가 울리는 가운데 <귀국선>과 같은 감동적인 노래까지 곁들여 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 얼마나 그렸던가  * * * 꽃을 / 얼마나 외쳤던가  * *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트로이를 완전히 파멸시키고 귀향길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는 승리의 주역이었던 오뒷세우스도 끼어 있었다.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외교관이자 웅변가이자 지략가였다. 힘으로만 따진다면 물론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 등에 뒤졌지만 말이다.

 

전쟁에서의 그의 무훈이 얼마나 뛰어났던가는 전사한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를 차지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저 유명한 아킬레우스가 마침내 파리스가 쏜 화살에 '아킬레스 건'을 맞아 죽은 뒤, 그가 지녔던 불후의 무구를 과연 누구에게 줘야 마땅한가에 대한 논쟁이 붙었을 때 가장 유력한 후보자는 용맹무쌍의 아이콘이었던 아이아스였다.(네덜란드 축구팀 '아약스'의 기원이 된 인물이다.) 그가 마침내 꾀많은 오뒷세우스에게 '전쟁에서의 공훈 경쟁'에서 밀려나고, 이내 광분에 빠져 자신의 군대 막사를 마구 짓밟은 끝에 자결하고 마는 이야기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를 낳았다. 이 불운한 장군의 내적 갈등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조직 내에서의 공훈 경쟁에서 억울하게 패한 사람이 과연 그 조직에 얼마만큼 충성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아이아스의 딜레마'다.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담긴 사진

 

 

그리스 군대가 맨처음 트로이 정벌을 위해 머나먼 항해를 하는 도중에 벌어진 특이한 사건 하나도 주목할 만하다. 무려(!) 헤라클레스로부터 활을 물려받은 그리스 최고의 특등 사수였던 필록테테스가 렘노스 섬에서 그만 독사에 물렸고, 독이 퍼진 그는 심한 악취를 풍기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스군의 핵심 전력이었지만 도저히 함대에 태울 형편이 되지 못하자 그는 결국 무인도에 홀로 버려졌다. 무려 10년 동안이나 렘노스 섬에서 비참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가 치른 고역들은 실로 끔찍했다. 그야말로 원조 로빈슨 크루소였던 셈이다.

영영 탈출할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았던 그에게도 기적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그를 버리고 트로이 원정을 떠났던 그리스군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그를 꼭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신탁에 따르면 '필록테테스와 그가 헤라클레스로부터 물려받은 활의 도움'이 없으면 트로이아는 결코 함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원한에 사무친 필록테테스를 교묘히 설득해서 전쟁터로 데려온 인물도 오뒷세우스였다. 아흔 살이 다 된 소포클레스가 비극 경연대회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필록테테스』라는 작품 덕분이었다.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

 

 


 - 기욤 기용 르티에르, <렘노스 섬의 필록테테스>, 18세기∼19세기, 루브르 박물관

 

 

트로이 전쟁의 백미였던 '트로이의 목마' 작전을 구사한 것도 오뒷세우스였다. 그가 트로이 전쟁에서 쌓아올린 온갖 활약상을 두루 접하고 보면 그에게 불가능할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토록 꾀많고 지혜로웠던 오뒤세우스도 귀향길에서는 결국 길을 잃고 방황한다. 아테네 여신이 크게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쟁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스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열심히 도왔지만, 트로이가 함락되고 나서 몇몇 그리스인들이 저지른 오만방자한 행동들을 보고는 분노를 느꼈다. 여신의 노여움은 잠잠하던 파도에게 전해졌고, 그리스 함대들은 이내 폭풍에 휘말려 산산조각나고 만다. 아테네 여신으로부터 열렬한 지지와 도움을 받았던 오뒷세우스조차 그 화를 피할 수 없었으니, 그가 고향인 이타케로 곧바로 돌아가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이렇게 해서 기나긴 10년 동안의 목숨을 건 귀향 이야기가 눈 먼 음유시인이었던 호메로스의 입으로 전해졌으니 그게 바로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노래한 『오뒷세이아』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누구나 다 아는 빤한 이야기를 너무나 길게 풀어놓았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그러나 오뒷세우스의 나머지 얘기를 조금이나마 더 흥미롭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밑자락은 깔아주는 게 마땅하다. 오뒷세우스는 그만큼 출중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귀향길에 오른 오뒷세우스가 온갖 고초를 다 겪는 동안에 끊임없이 마음 속으로 되뇌었던 질문 몇 가지는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과연 고향 이타케는 목숨을 걸고 되돌아갈 필요가 있는 곳인가." 등등. 천하를 쥐락펴락했던 그 꾀많던 오뒷세우스도 홀로 방랑하는 틈틈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했을까. 물론이다! 그 사람만큼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인물도 일찌기 없었다. 오랫동안 방랑하던 그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비로소 누군가에게 밝힐 기회를 얻었을 때는 '고된 방랑'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가 도착한 섬에는 아름다운 나우시카 공주가 살고 있었고, 그는 이내 궁정으로 초대된다. 파이아케스족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궁금해 하자 그는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좋아요. 무엇을 먼저 이야기하고 무엇을 나중에 이야기할까요? 

하늘의 신들께서 내게 너무 많은 고난을 주셨으니 말이오.

먼저 내 이름을 말씀드리겠소이다. 그대들도 내 이름을 알도록

그리고 내가 무자비한 날에서 벗어나 비록 멀리 떨어진

집에서 살더라도 여전히 그대들의 손님으로 남아 있도록 말이오.

나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뒷세우스올시다! 나는 온갖 지략으로

사람들에게 존경 받았고 내 명성은 이미 하늘에 닿았소.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14∼20행

 

그는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다시(!) 밝힐 수 있었다.(이게 포인트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던가.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있었던가. 삼척동자도 그의 존재를 모르는게 이상할 정도였는데, 오랜 방랑 끝에 이 평화로운 외딴 섬에 당도하고 보니 그의 영광스런 과거는 온데간데가 없었고 그의 이름조차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외눈박이 거인과 싸울 때처럼 자신의 이름을 속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마침내 위험은 끝나가고 이토록 마음씨 착하고 평화로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가 자신의 신분을 감출 필요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그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진다.

   

나로서는 자기 나라보다 달콤한 것은 달리 아무것도 볼 수 없소이다.

아닌게아니라 여신들 중에서도 고귀한 칼륍소는 나를 남편으로

삼으려고 자신의 속이 빈 동굴들 안에 나를 붙들어두려 했지요.

마찬가지로 아이아이에 섬의 교활한 키르케도 나를

남편으로 삼기를 열망하며 자신의 궁전에 나를 붙들어두려 했지요.

하지만 그들도 내 가슴속 마음을 설득할 수는 없었소.

이렇듯 누군가가 부모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낯선 나라의 풍요한 집에서 산다 해도

고향 땅과 부모보다 달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라오.

자, 나는 그대에게 내가 트로이아를 떠났을 때 제우스께서

내게 지우셨던 고난에 찬 귀향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겠소이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28∼36행

 

 

오뒷세우스는 맨 먼저 '로토스의 열매'를 먹고 사는 족속들을 만난 이야기부터 들려준다. 전우들은 그 달콤한 열매를 먹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잊어버린다. 그들은 한순간에 자신들의 귀향의 목적까지도 잊어 버리는 근본적인 위험에 처한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이들을 억지로 함선들에 태우고 묶어서 항해를 계속한다. 그 다음에 마주친 곳은 외눈박이 괴물들이 사는 '퀴클롭스들의 나라'였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비통한 마음으로 항해를 계속하여

오만불손한 무법자들인 퀴클롭스들의 나라에 닿았소.

그들은 불사신들을 믿고 아무것도 제 손으로

심거나 갈지 않았소. 밀이며 보리며 거대한 포도송이들로

포도주를 가져다주는 포도나무하며 이 모든 것이

씨를 뿌리거나 경작하지 않지만 그들을 위해 풍성하게 돋아나고,

그러면 제우스의 비가 그것들을 자라나게 해주지요.

그들은 의논하는 회의장도 없고 법규도 없으며

높은 산들의 꼭대기에 있는 속이 빈 동굴들 안에 살면서

각자 자기 자식들과 아내들에게 법규를 정해주고

자기들끼리는 서로 상관하지 않아요.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105∼115행

 

퀴클롭스의 나라들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신의 책에서 별도로 언급할 정도였다.

 

그러나 입법자들은 오직 스파르타 사람들의 폴리스에서만, 혹은 소수의 폴리스에서만 시민들의 교육과 종사해야 할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던 것 같다. 다른 대부분의 폴리스들에서는 이런 일들에 관해 소홀히 취급하였으며,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퀴클롭스들처럼 법을 부여하면서.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0권 <제9장 윤리학, 입법, 정치체제> 중에서

 

오뒷세우스 일행들은 그 섬에 당도해서 퀴클롭스가 사는 동굴로 들어간다. 거기엔 광주리마다 치즈가 가득하고 우리마다 새끼 양과 새끼 염소로 가득했다. 오뒷세우스는 젖과 치즈와 어린 짐승들을 훔쳐 달아나자는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출타 중인 주인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결국 그들은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의 포로가 되고, 동굴의 입구는 거대한 돌로 막히고, 끼니때마다 부하가 둘씩이나 잡아먹힌다. 그런 와중에도 오뒷세우스는 꾀를 내어 자신이 가져온 '포도주'로 괴물을 유혹한다. 포도주에 맛들인 폴뤼페모스는 점점 더 술이 땡기기 시작한다.

 

'너는 내게 자진하여 그것을 한 잔 더 주고 네 이름을 말하라,

지금 당장. 그러면 나는 너를 기쁘게 해줄 선물을 주겠다.

물론 퀴클롭스들에게도 풍요한 대지는 거대한 포도송이의

포도주를 가져다주고 제우스의 비가 그것을 자라게 해주지만

네가 준 이것이야말로 가히 암브로시아요, 넥타르로다.'

그자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반짝이는 포도주를 다시 건넸소.

나는 세 번이나 그자에게 포도주를 주고, 그자는 어리석게도 세 번이나

그것을 받아 마셨소. 마침내 포도주가 퀴클롭스의 마음을 에워쌌을 때

나는 그자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걸었소.

'퀴클롭스, 그대는 내 유명한 이름을 물었던가요? 그대에게

내 이름을 말할 테니 그대는 약속대로 내게 접대 선물을 주시오.

내 이름은 '아무도아니'요. 사람들은 나를 '아무도아니'라고

부르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다른 전우들도 모두.'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자는 즉시 비정하게 내게 대답했소.

'나는 전우들 중에서 맨 나중에 '아무도아니'를 먹고

다른 자들을 먼저 먹겠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줄 접대 선물이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355∼370행

 

 

방금 우리가 들은 '폴뤼페모스와 오뒷세우스의 동굴 속의 대화'야말로 이 글의 핵심이다. 이 짧은 대화 속에 실로 많은 시사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선, 괴물은 오뒷세우스에게 '네 이름'을 말하라고 요구하는데, 오뒷세우스는 '아무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아무도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이름이 그럴 수 있는가. 무슨 인디언식 이름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도 아니'는 그리스어로는 우티스(Outis)이고 영어로는 Nobody이다. 결국 '아무도 아니'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오뒷세우스로서는 그 괴물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줄 필요도 없었을 뿐더러, '아무도 아니'라는 이름만이 정말로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그런데 오뒷세우스가 임기응변식으로 얼렁뚱땅 내놓은 이 기막힌 이름이야말로 결국 '신의 한수'였음이 나중에 판명된다. 호메로스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서 빨리 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폴뤼페모스의 동굴 안에 갇힌 오뒷세우스

야콥 요르단스 (wikimedia commons, 1593∼1678), 17세기 전반경, 푸슈킨 미술관

 

 

여기서 잠깐 오뒷세우스 일행들이 그 바위에 갇힌 동굴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장면으로 살짝 되돌아 가자. 그 장면만큼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로부터 포도주를 연거푸 얻어 마신 외눈박이 퀴클롭스는 이내 잠들고, 그 순간을 위해 미리 올리브나무 말뚝을 준비한 오뒷세우스 일당은 끝이 벌겋게 단 말뚝을 움켜잡고 그자의 눈을 찌른다. 피투성이가 된 말뚝을 자신의 눈에서 뽑아 던진 괴물은 이내 주위의 동굴에 사는 퀴클롭스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퀴클롭스 살려! 퀴클롭스 살려!"

 

오뒷세우스가 폴뤼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장면을 보여주는 술잔(기원전 550년경)
(에우리피데스 지음 /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에서 인용)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사방에서 모여든 퀴클롭스들이

동굴 주위에 둘러서서 무엇이 그자를 괴롭혔히는지 물었소.

'폴뤼페모스! 무엇이 그대를 그토록 괴롭혔기에 그대는 신성한 밤에

이렇게 고함을 지르며 우리를 잠 못 들게 한단 말이오? 설마 어떤

인간이 그대의 뜻을 거슬러 작은 가축들을 몰고 가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 누가 꾀나 힘으로 그대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요?'

힘센 폴뤼페모스가 동굴 안에서 그들을 향해 말했소.

'오오, 친구들이여! 힘이 아니라 꾀로써 나를 죽이려는 자는 '아무도아니'요'

그들은 물 흐르듯 거침없이 이런 말로 대답했소.

'그대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이 아무도 아니고 그대가 혼자 있다면,

그대는 아마도 위대한 제우스가 보낸 그 병(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아버지 포세이돈 왕께 기도하시오."

이렇게 말하고 그들이 떠나가자 내 마음은 웃었소.

내 이름과 나무랄 데 없는 계략이 그들을 속였기 때문이지요.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401∼414행 

 

이렇게 해서 다른 퀴클롭스들을 교묘하게 뿌리친 오뒷세우스 일행은(그들은 여전히 동굴 속에 갇혀 있다!) 다음날 아침 폴뤼페모스가 동굴 안에 가둬 놓은 숫양들을 풀밭으로 내모는 틈을 이용하여 '양들의 배에 거꾸로 들러붙어' 그 동굴을 빠져나온다. 동굴의 입구를 단단히 지키고 있던 눈먼 폴뤼페모스가 오로지 숫양들만 좁은 틈으로 동굴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혹시나 인질들이 양들과 함께 도망치는 게 아닐까 싶어 숫양들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살아남은 전우들과 함께 서둘러 다시 배에 올라탄 일행들은 그 섬에서 멀어질 때 다시 한번 퀴클롭스를 조롱한다. '퀴클롭스! …… 그대는 제 집에서 손님들을 잡아먹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소. 그래서 제우스와 다른 신들께서 그대에게 벌을 내리신 것이오.' 화가 더욱 돋구친 그자는 큰 산의 봉우리 하나를 뜯어내 오뒷세우스 일행들에게 던져 보지만 배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폴뤼페모스를 조롱하는 오뒷세우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1829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전우들을 격려하면서 더욱 빨리 노를 젓도록 재촉하는 와중에도 오뒷세우스는 한 번 더 퀴클롭스를 조롱한다. 저 멀리 도망치는 오뒷세우스를 '눈으로는 보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던 폴뤼페모스는 마침내 신에게 기도한다.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자는 별 많은 하늘을 향해

두손을 들고 포세이돈 왕께 기도했소.

'내 말을 들으소서, 대지를 떠받치시는 검푸른 머리의 포세이돈이시여!

내가 진실로 그대의 아들이고 그대가 내 아버지이심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면 이타케에 있는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주소서.

그러나 그자가 가족들을 만나고

잘 지은 집과 제 고향 땅에 닿을 운명이라면

전우들을 다 잃고 나중에 아주 비참하게 남의 배를 타고

돌아가게 해주시고 집에 가서도 고통 받게 해주소서!'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526∼535행

 

이렇게 해서 외눈박이 거인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온 오뒷세우스는 다음 여정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물론 그의 앞에는 아직도 수많은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다. 폴뤼페모스 때문에 창졸간에 포세이돈과 철천지 원수가 되었으니 그의 앞길이 어찌 험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폴뤼페모스를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아니'었던 오뒷세우스는 차츰 자신의 고향에 가까워 지면서 원래의 이름을 되찾게 된다. 그는 외눈박이 거인이 포세이돈에게 부탁했던 대로 고향 이타케에 돌아와서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떳떳이 밝히지 못한다. 자신의 궁궐에는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하려는 구혼자들로 득실거렸고,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위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오뒷세우스는 다시금 '아무도 아니'라는 존재로 잠시 되돌아간 셈이었다.

 

고향 이타케에 도착한 이후로도 지난하게 이어지는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은 총 24권에 이르는 『오뒷세이아』의 절반인 12권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하다. 돼지를 키우던 에우마이오스가 맨 먼저 옛 주인이 돌아왔음을 알아 채고, 아들 텔레마코스도 마침내 자신의 아버지를 알아보지만 아내 페넬로페가 최종적으로 자신의 남편을 알아보는 대단원에 이르기까지는 여전히 수많은 난관들이 남아 있었다. 어찌보면 『오뒷세이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불세출의 영웅의 기나긴 '자아 회복 과정'이자 '자신의 존재 증명 과정'으로도 읽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니 한때 자신의 이름이 '아무도 아니'라고까지 말했던 오뒷세우스는 얼마나 의미심장한 가짜 이름을 내세운 것이며, 그 자신의 이름을 온전히 되찾았을 때의 그의 감격은 얼마나 벅찼겠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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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1-25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처음부터 철저히 카알벨루치 님의 글 <제 탓이 아니잖아요!>에 대한 ‘먼댓글‘ 형식으로 기획된(?) 글이다. 그래서 ‘알라딘 상품넣기‘에도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이 추가된 것이다. 나는 황정은 작가가 쓴 최신작인 『아무도 아닌』뿐 아니라 그 작가의 다른 어떤 작품도 읽은 적이 없다. 그런데 카알벨루치 님의 글을 통해 그 작품에 실린 8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짚이는 게 있었다. ‘아하, 이 작가는 틀림없이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구나‘ 싶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아무리 검색해 봐도 ‘아무도 아닌‘ 혹은 ‘아무도 아니‘와 ‘오뒷세이아‘의 연결 고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 방식대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내가 쓴 글에 담긴 생각은 ‘100% 순수 창작물‘은 아니다.(특히, 강대진 님의 『그리스 로마 서사시』라는 책에도 ‘아무도 아니‘라는 가짜 이름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올린 직후에 알라딘에서 ‘아무도 아닌‘으로 검색해 본 책들은 딱 세 권이었다.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
파울 첼란의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루이지 피란델로의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내가 쓴 글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 작품들을 왜 내가 굳이 일부러 거명하는 까닭은 단 하나다. 이 세 작품을 쓴 작가들도 틀림없이 『오뒷세이아』 속에 나오는 ‘아무도 아니‘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들어서다. 아니면 말고!

어쩌면 내가 ‘아무도 아닌‘ 걸 가지고 너무 심각하게 연관지어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어쩌랴.

아니면 말고!

카알벨루치 2019-01-25 17:46   좋아요 2 | URL
ㅎㅎㅎ제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셨다니 역시 산불이십니다 ㅎㅎ이 방대한 페이퍼, 오렌님의 모든 글은 페이퍼로 보기엔 너무 아까운데 출판의 계획은 없으신지요? ㅋㅋ추천합니다 책내실 것을~이미 작가이신 것은 아닌지...

한번 읽고 넘어가기 아까운 <아무도 아니>페이퍼~좋아요 백만개 보냅니다! 제가 이전에 쓴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란 페이퍼에서도 ‘아무것도 아닌’이란 의미가 나와 제가 쓴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페이퍼와 조금 연결되는 느낌도 있고...십자군전쟁의 <킹덤 어브 헤븐>의 마지막 장면도 계속 생각나고...오딧세이아의 이름없는 ‘아무도 아니’란 의미도 새삼 새롭게 다가오고...이래저래 흥분되는 페이퍼입니다 굿뜨👍👍👍

oren 2019-01-25 19:30   좋아요 0 | URL
카알벨루치 님께서 예전에 쓰셨던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라는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게 최승호 시인의 시집 제목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요. 그리고, 지금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니,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카알벨루치 님꼐서 소개해 주신 황정은 작가의 다음 말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

‘아무도 아닌‘은 Nobody인데, ‘아무것도 아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도로 들려서 그 어감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고, 결국 그 뉘앙스 차이 때문에 오뒷세우스까지 찾아 나서게 된 것이지요.
* * *
참고로 이 ‘아무것도 아닌 자Nobody‘ 트릭은 짐 자무시 감독이 <데드맨>이란 영화에서 사용한 적이 있다. 악당들에게 잡힌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가 누구와 함께 왔냐는 질문에 ‘노바디Nobody와 함께‘ 라고 답하는데, 악당들은 동행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사실 이 ‘노바디‘는 그와 동행하던 인디언의 이름이었다. 잠시 후 방심한 악당들은 이 노바디의 화살에 쓰러지게 된다. 하지만 이 트릭 역시 그냥 속임수는 아니다. 그가 동행하는 ‘노바디‘는 사실상 그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deadman이고,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니 말이다. 주인공이 쏘는 총에 유명한 총잡이들이 모두 쓰러지는 반면, 그들의 총알은 노상 빗나가는 것도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 강대진, 『그리스 로마 서사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중에서

hnine 2019-01-25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미 위에 써주셨듯이 오디세이라는 작품의 핵심은 오디세우스가 긴 여정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오디세우스가 자기를 Nobody라고 칭한 것은 oren님 말씀대로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는게, 자기의 신분과 정체를 드러내면 절대 위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라고 판단되었다면 ‘somebody‘가 싶은 명예와 신분욕을 포기하고 nobody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지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중에
I‘m nobody! Who are you?
Are you nobody, too?
라고 시작하는 시가 있어요.
책은 아니지만 nobody가 주제어로 등장하기에 덧붙여 봅니다.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은 읽었습니다만 읽으면서 저는 오디세우스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네요.)

oren 2019-01-25 19:32   좋아요 0 | URL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저런 대목이 있군요. 그녀의 시는 언뜻언뜻 접하기만 해도 몹시 심오해서,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hnine 님 덕분에 이렇게 또 자극을 받는군요.^^

겨울호랑이 2019-01-25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oren님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오뒷세이아>가 다시 떠오릅니다.^^˝) 동시에, 그때는 생각하지 않았던 몇 가지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오뒷세이아>라는 작품은 주인공 오뒷세우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과업‘의 기록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오뒷세우스는 죽기 싫어하는 아킬레우스를 전쟁에 끌어들여 죽게 만들었으며, 위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동료 아이아스를 자살하게 만들었고, 그의 계략으로 트로이의 수많은 시민을 죽음으로 끌어들였으니, 트로이를 지지한 신들의 노여움을 사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렇기에, 헤라가 내린 광기로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12과업을 수행해야 했던 헤라클레스처럼 <오윗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속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폴뤼페모스와의 일화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어 저주를 받게 되는데, 여기서는 필멸의 인간이 가진 ‘휘브리스‘가 보여진다고 여겨니다. 이렇게 본다면, 그 뒤에 일어난 행복한 결말은 그리스 비극에서 보여지는 ‘신-인간‘의 화해구도와도 유사점이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네요. 근거는 없습니다만, oren님 덕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oren 2019-01-25 21:16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오뒷세우스의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트로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미워 죽겠는‘ 웬수 같은 인물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겨울호랑이 님께서 지적해 주신 여러 죄과들 말고도 오뒷세우스가 벌인 ‘교활한 음모와 지략‘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인물들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겠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를 ‘라에르테스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교활한 시쉬포스의 아들‘이라고 자주 놀려대기도 했고요.(시쉬포스는 아우톨뤼코스의 딸 안티클레이아가 라에르테스에게 시집가기 전에 그녀를 범한다. 그래서 그가 오뒷세우스의 실부(實父)라는 주장도 있다. - 천병희 주석)

그런데,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나 오늘날 우리가 지니는 도덕감정과 유사한 ‘선과 악에 대한 가치 판단‘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싶어요.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이라는 게 결국은 신들의 보살핌이나 노여움의 결과이거나,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보니까요. 심지어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조차도 오뒷세우스에게 죽을 꺼라는 예언을 예전부터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고요.

그분은 이 모든 일들이 나중에 이루어져서
내가 오뒷세우스의 손에 시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
그래서 나는 늘 큰 용맹으로 무장한, 키카 크고
준수한 사내가 이리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지금 한 왜소하고 쓸모없고 허약한 자가 나를 포도주로
제압한 다음 눈멀게 했구나. 자! 이리로 오라, 오뒷세우스여!

‘휘브리스‘는 그리스 비극의 핵심주제이기도 한데, 제 생각으로는 오뒷세우스의 고난에서는 그런 요소가 덜하거나 거의 개입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가 아무리 심한 고초를 겪었다고 하더라도요. 비록 폴뤼페모스를 눈멀게 한 죄과로 포세이돈으로부터 노여움을 샀지만, 어쨌든 그는 파멸하지 않고 끝끝내 살아 돌아와 영광스런 과거를 되찾았으니까요.

겨울호랑이 2019-01-25 21:38   좋아요 1 | URL
oren님 말씀처럼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에 씌여진 그리스 비극의 요소들이 그보다 한참 앞선 시기에 생생하게 묘사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 합니다. 다만, 폴리페모스 눈을 찌르고 조용히 가면 그만인데, 굳이 자신의 명성을 떨치고자 교만한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오뒷세우스의 모습에서 인간의 교만이 느껴져 이를 연관지어 봤습니다. 그냥 스쳐가는 생각이기에 정확한 의견은 될 수 없겠지만, oren님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oren 2019-01-25 21:50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 말씀처럼,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와 그리스 비극이 쓰여진 시대 사이에는 엄청난 세월의 간극 만큼이나 ‘가치관의 변화‘도 컸고, 문학의 형식이나 주제까지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뒷세우스라는 인물도 그에 따라 당연히 ‘아주 훌륭한 영웅‘에서 ‘교활한 악당‘으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었겠고요.
* * *
『오뒷세이아』에서 그는 현명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많고 언변에 능한 탁월한 인물로 그려져 있고 그에 관한 비판적인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헤카베』, 『오레스테스』, 『트로이아의 여인들』과 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 등에서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하고 약삭빠른 인물로 그려져 있다.(천병희 번역, 『일리아스』, 718쪽)

timeroad 2019-02-07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히 총평]
어 명함이 없네! (오뒷세우스가)
나름 이유는 절실하지만 그것이 ‘노바디‘
-가끔 뵈요.
늘 고맙습니다.

oren 2019-02-07 22:39   좋아요 0 | URL
timeroad 님의 반갑습니다.
함축이 많은 댓글이라 뭐라 알맞은 대댓글을 달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암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