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던 고도는 오늘도 오지 않는다
1
웃을 수 있겠어? 내가 물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내가 대답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울 수 있다면, 우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울려면 울 수는 있겠지만, 이게 울 일인지 모르겠어. 울 일이 아니더라도, 그저 울고 싶을 일이기만 해도 아낌없이 펑펑 울 수 있을 텐데, 이게 울고 싶을 일인지도 모르겠어. 나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어 먼 어둠 쪽으로 던졌다. 가까운 어둠에는 내가 있었고 나에게는 어둠이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숨어서 어둠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종종 그게 궁금했다. 내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그런 거구나. 그건 나한테 물으면 안 되는 거구나. 그렇지만 그건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는 거였다. 정말로 궁금한 것은 항상 아무데도 물어 볼 수가 없게 되어 있어. 내가 말했다. 진짜 궁금한 질문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나는 질문하는 법 자체를 잊어버리게 될 거야. 내가 말했다.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리면, 언젠가는 질문도 잊어버리게 되겠지. 내가 말했다. 모든 질문을 잊어버리면, 모든 사랑도 사라지겠지. 내가 말했다. 모든 사랑이 사라지면, 지구는 점점 작아질 거야. 내가 말했다. 우리 동네만큼 작아질 거야. 내가 말했다. 우리 집 만큼 작아질 거야. 내가 말했다. 내 방만큼 작아지고, 결국 내 마음만큼 작아질 거야. 내가 말했다. 지구가 내 마음만큼 작아지면, 나는 결국 내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으로 나오지 않을 거야. 내가 말했다. 바깥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 내가 말했다. 내 말이 중력처럼 공간을 잡아당겼다. 어둠이 넘실거렸다. 말을 그쳤지만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어때, 이제는 웃을 수 있겠어? 내가 물었다. 역시 그건 어려울 것 같아. 내가 대답했다. 나는 잠깐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금이라도 울 수 있다면, 우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거야. 나는 고개를 젓기가 어려웠다.
우리에게 더 큰 기억을 남기는 것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잠시나마 엿보게 해주는, 그 흔치 않은 깨달음의 순간들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창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낭비된 시간들도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의 삶은 대단치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삶의 이야기를 관통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품고 있는 가치의 한 조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 수평선 너머로 흩어지고 갈라지기 전까지, 우리의 손아귀를 영원히 벗어나기 전까지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중 하나를 따라갈 수 있다.
일과를 마치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둘 다인 것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만약 이 경우라면 오늘은 별일 없었다고 써도 된다.
상관없다.
_ 로만 무라도프,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이 같은 현실의 글쓰기를 모색해야 한다. 견고하게 자국을 남기는 규칙적인 발걸음의 연장 속에서만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생각을 할 때도 오직 견고한 것만을 찾게 된다. 이것은 오직 강렬하게 체험한 것만을 쓴다는 뜻이다. 오직 견고한 토대로 체험한 것만을 자신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_ 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삶 속에서 나는 언제나 쉽게 지치고 쉽게 실망했다.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앗다. 계획한 대로 성실히 살아간다고 해서 원하는 목표가 모두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인생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지금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고,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바라던 모습이 된다는 걸 일본 서점 여행이 알려 주었다. 그 깨달음이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바꾸었다. 1년 뒤, 3년 뒤, 5년 뒤, 또 어떤 놀라운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까.
_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2
우리가 그곳에서 보낸 하루가 이윽고 저물었다. 여름 해가 서쪽 산맥 너머로 떨어졌고, 멀리서 폭죽이 펑펑 터졌다. 우리는 밤을 보내기 위해서 고속도로 옆에 있는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호텔로 숨어들었다. 이튿날 버락은 미주리로 떠나고 아이들과 나는 시카고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모두 지쳤다. 그날 우리는 퍼레이드를 구경했고, 피크닉을 즐겼다. 뷰트 주민 전체를 다 만난 기분이었다. 그런 하루 끝에, 마침내 우리는 말리아만을 위한 작은 파티를 열었다.
그 순간 누가 내게 물었다면, 나는 우리가 말리아를 제대로 챙기는 데 결국 실패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말리아의 생일이 선거운동의 정신없는 소용돌이 끝에 덧붙은 부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형광등이 켜져 있고 천장이 낮은 호텔 지하 회의실에 모였다. 마야와 콘래드 부부와 수하일라가 있었고, 선거운동본부 직원들 중 말리아와 친한 몇몇이 있었고, 상황을 불문하고 늘 곁에 붙어 있는 경호 요원들도 있었다. 풍선이 있었고, 식료품점에서 산 케이크가 있었고, 초 열 개가 있었고, 아이스크림 한 통이 있었다. 내가 아닌 딴 사람이 구입해서 대충 포장한 선물도 몇 개 있었다. 영 생뚱맞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딱히 파티 같은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냥 그날 하루가 너무 길었다. 버락과 나는 실패했다는 생각으로 우울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이, 결국에는 그것도 인식의 문제였다. 우리가 눈앞의 풍경을 어떻게 보기로 결정하는가에 달린 문제였다. 버락과 나는 우리의 실수와 부족함에 집중한 나머지 그 칙칙한 방과 급조한 파티에서도 그런 것만 보았다. 하지만 말리아는 다른 것을 찾아보았고, 자기가 찾는 것을 보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정한 얼굴을 보았고, 프로스팅이 두껍게 발린 케이크를 보았고, 곁에 있는 동생과 사촌을 보았고, 새롭게 한 해가 펼쳐진 것을 보았다. 말리아는 그날 종일 밖에서 놀았다. 퍼레이드도 구경했다. 내일은 비행기를 탈 터였다.
말리아는 버락이 앉아 있는 곳으로 씩씩하게 걸어가서 그의 무릎에 폴짝 올라앉았다. 그리고 선언했다. "이때까지 중에서 최고의 생일이에요!"
말리아는 엄마와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도, 방에 있던 사람 절반쯤이 목이 메려 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말리아가 옳았다. 갑자기 우리도 다 알게 되었다. 말리아는 그날 열 살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최고였다.
_ 미셸 오바마, 『비커밍』, 363-364쪽
눈이 마음의 모양을 결정하듯, 마음이 눈의 기능을 여닫는다. 우리의 눈은 그저 있는 것을 보는데 쓰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고, 당연히 보일 것이라 믿는 것을 보여주는 물건이다. 그래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한 시간이 행복하지 않은 시간보다는 많아야 잘 볼 수 있는 동물이며, 잘 볼수록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는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행복할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을 때, 생각하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보이지 않아서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물론 늘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하지 않다는 기분이 행복하다는 기분을 넘어서는 경우는 그 반대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 그렇지만, 행복하자는 마음은 먹을 수 있으니까, 지금보다 더 행복하자는 마음은 먹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다. 그 마음이 보여주는 풍경만으로는 절대로 불행의 끓는 냄비를 식힐 수는 없겠으나, 불유쾌하고 불필요한 감정의 거품이 나를 넘치지 못하도록 계속 걷어주는 정도의 도움은 될 테니,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뭐라도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도 기다린다. 기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혜택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는 운명이라고 우겨볼 수도 있겠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글쓰기는 일종의 자기중심주의를 전개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자기애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거의 익명의 형태다.
비록 어둠 속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계속 글을 쓰려면, 결국 약간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어렴풋이 그렇게 느껴야 한다.
_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3
어느 날 아침 이런 화제를 쏟아내던 딸들의 얘기를 듣고는 베넷 씨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얘기하는 태도를 보니 너희 둘이 이곳에서 가장 멍청한 아가씨들이 틀림없구나. 얼마 전부터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확신이 든다.” _ 42쪽
“콜린스 씨와 리지 얘기예요. 리지가 콜린스 씨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콜린스 씨도 리지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려고 한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가망 없는 일 같은데.”
“당신이 직접 리지에게 말씀 좀 해보세요. 콜린스 씨와 결혼하라고요.”
“리지를 내려오라고 해요. 내가 할말이 있다고.”
베넷 부인이 벨을 울렸고, 엘리자베스가 서재로 불려왔다.
“이리 와라, 얘야.” 딸이 나타나자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중요한 일로 널 불렀다. 콜린스 씨가 네게 청혼했다던데, 그게 사실이냐?” 엘리자베스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잘 알겠다. 그래, 그 청혼을 거절했다고?”
“네, 그랬어요, 아버지.”
“잘 알겠다. 이제 본론을 말하마. 네 엄마는 네가 그 청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고집하지. 안 그래요, 베넷 부인?”
“그래요. 아니면 앞으로 저애를 다시는 안 보겠어요.”
“불행한 선택이 네 앞에 놓여 있구나, 엘리자베스. 오늘 이후로 넌 부모 중 한 사람과 남남이 되는구나. 만약 네가 콜린스 씨와 결혼을 안 한다면 네 엄마가 너를 다시는 안 볼 테고, 만약 그 결혼을 한다면 내가 널 다시는 안 볼 테니.” _ 148쪽
위컴 씨의 작별 인사는 아내보다 더 살가웠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멋진 태도로 꽤나 그럴듯한 인사말을 참 많이도 건넸다.
“늘 봐왔지만 역시 우리 사위는 아주 멋쟁이라니까.” 리디아 부부가 떠나자마자 베넷 씨가 말했다. “억지웃음도 잘 짓고, 능글맞고, 우리 식구를 다 꾀려 드는구나. 그가 엄청나게 자랑스러워. 이보다 더 값진 사위를 얻은 장인이 있다면, 윌리엄 루커스 경이든 누구든 나와 보라고 해라.” _ 417쪽
_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오만과 편견』
나는 이 책에서 아빠가 제일 좋다. 아빠가 입만 열었다 하면, syo는 그냥 빵빵 터진다. 아쉽게도 아빠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느라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주인공인 둘째 딸 엘리자베스가 아빠를 참 많이도 닮아서 다행이다. 게다가 비록 그들 부녀처럼 말로 웃기지는 못하지만, 머저리 같은 행실로 못지않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인 오스틴이 순전히 200년 뒤에 읽을 syo의 배꼽을 훔치려는 의도로 이 책을 쓴 것 같다.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4
어려서부터 읽은 책이 몇 권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뭐라 답하기가 퍽 곤란하다. 워낙 책을 많이 읽어 일종의 속독법을 터득한 터라 난이도가 낮은 책, 특히 소설이나 수필 종류는 앉은 자리에서 서너 권을 쉽게 읽는다. 거기에다 잡지나 만화 등까지 포함한다면 읽은 양이 수직상승할 것이다. 그래서 총 몇 권을 읽었는지 정확하게 헤아리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최근 3~4년을 돌이켜보면, A4 한 장 분량이 넘는 독서평을 남긴 책이 1년에 50여 권 정도 되니, 연간 적어도 150권 이상 읽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_ 홍춘욱, 『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 20쪽
도대체 속독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저게 맞는 일인지도 역시 잘 모르겠다. syo의 짧은 생각으로는, 속독이라는 기술이 가장 마지막으로 겨냥해야 할 장르가 시고, 그 바로 직전이 소설일 것 같다. 물론 앉은 자리에서 서너 권을 쉽게 읽는 속도로 읽어도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은 '오만이 오만하고 편견이 편견하다 마침내는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줄거리 파악 정도는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것들, 천천히 읽고, 음미하고, 등장인물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들어갔다 나왔더니 내 감정 역시 일렁거리기도 하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챙기면서도 앉은 자리에서 서너 권을 읽어낼 수 있다고? 혹시 그냥 소설이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다종다양한 선물들 가운데 특정한 한두 가지 것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다 반납하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 이게 선생님의 오만입니까, 아니면 syo의 편견입니까?
‘이코노미스트’라는 버젓한 직업을 지닌 이가 1년에 150권 이상 읽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읽는 일이긴 한데, 어쨌든 1년에 150권, 그게 칭찬받을 양일 수는 있어도 자랑할 만한 양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이 동네에는 저자가 10년 동안 읽을 양을 한 해만에 읽어내면서도 특별한 자랑 한 줄 남기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자랑 같다. 자랑은 이 대목 뿐 아니라 책 전반에 깔려있는 기본 태도로서 까먹을 만하면 스멀스멀 느껴진다. 숨기려고 했는데 드러났다면 필력 부족일 것이요, 자랑이 목적이고 겸사겸사 겸손까지 자랑해보고 싶어서 책을 냈다면, 역시 언론 출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칭송할 밖에.
그래도 마저 읽는다. 그래도 경제 책이라니까, 경제만 보고 계속 읽어봅니다.
--- 읽은 ---
프랑스어의 실종 / 아시아 제바르 지음 / 장진영 옮김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 정지혜 지음
소설처럼 / 다니엘 페나크 지음 / 이정임 옮김
키 재기 외 / 히구치 이치요 지음 / 임경화 옮김
--- 읽는 ---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지음 / 류경희 옮김
나이트 우드 / 주나 반스 지음 / 이예원 옮김
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 / 홍춘욱 지음
태도에 관하여 / 임경선 지음
흄 / 최희봉 지음
30분 경제학 / 이호리 도시히로 지음 / 신은주 옮김 / 김미애 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