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의 '안위'가 걱정이다



파괴적이 되어라. 다만 세상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든다는 대의는 지켜져야 한다.
(니클라스 젠스트롬 스카이프 공동 창업자) 


 * * *



   (출처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자료)


 

 * * *


① 출판사 사장들의 얘기

 

  
도서정가제에 대한 어느 소형출판사 사장의 고민   2013. 01.29


“도서정가제 안하면 작은 출판사 죽고 책 다양성 사라져”  2012.07.15




② '피라미 한 마리'로 변신한 알라딘? 혹은 여전히 불편한 진실?


피라미 한 마리 살리려고 출판이 망할 수는 없다  2013.01.29



③ 음모론에 이어 '묵시론적 망상'까지 등장


알라딘의 <도서정가제> 반대 서명이 불러온 '묵시론적 망상'  2013.01.28



※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통해 살펴본 《예스24》의 2012년 3분기 보고서

 

접힌 부분 펼치기 ▼

 


나. 회사의 현황

   (1) 영업개황 및 사업부문의 구분

     (가) 영업개황

예스24는 도서, 음반, DVD, 기프트, 티켓예매(영화, 공연), e-러닝, eBook 등의 다양한 문화교육상품을 최고의 시스템과 서비스로 제공하여 1999년 창사이래 13년째 인터넷서점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고 있는 대표적인 인터넷 전문쇼핑몰입니다.


지난 2011년 4,479억원의 거래매출과 51억원의 영업이익으로 흑자전환 이래 꾸준히 이익을 창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터넷서점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예스24의 주요 매출 분야는 주력사업인 도서 분야이며, 점차 eBook, e-러닝, 북러닝 등 디지털 상품 분야의 매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상품 분야에서는 2009년 9월 국내 최초의 마켓 플레이스 형태의 e-러닝 2.0을 오픈 하여 현재 100여개 업체의 5,000여 강좌들이 입점되어 있고, <어학>, <자격증/편입/입문>, <직무/공무원/고시>, <초/중/고등>등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2010년 4월 eBook 서비스를 런칭한 후 현재 약 6만 여종의 전자책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가 직접 책에 대해 설명하는 동영상 서비스인 ‘북러닝’을 런칭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주력사업의 성장과 더불어 2007년 8월부터 시작한 공연, 영화 등 티켓 매출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작년 2010년 6월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업 ENT24를 인수 합병함으로써 티켓사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2012년 9월을 기준으로 예스24 회원은 약 810만명, 예스24가 보유하고 있는 도서, 음반, 기프트, eBook, e-러닝, 공연, 영화 등의 상품DB는 약 503만종 이릅니다. 또한 회원들이 직접 작성한 생생한 감상평 및 사용후기인 리뷰는 100만 건에 이르며, 이는 예스24의 차별화된 컨텐츠로 판매상품에 대한 추천 및 구매유도 기능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예스24는 지난 2006년 서비스품질지수1위(한국표준협회, 4년 연속)를 수상하고 2007년에는 대한민국 신뢰받는 CEO대상, 한국유통대상 산업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2008년에는 KSQI 한국의 우수 콜센터 인증, 대한민국 인터넷대상(방송통신위원장상)을 수상하였으며, 2009년에는 2년 연속 한국표준협회 주관 한국서비스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4년 연속 퍼스트브랜드 대상 수상, 한국유통대상 국무총리상(종합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2011년 4월 국가브랜드대상(National Brand Awards)의 인터넷서점, 인터넷예매 등 2개 부문 동시 수상, 6월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대상 인터넷서점 부분 수상, 산업정책연구원 선정 슈퍼브랜드에 선정됨에 이어 2012년 9월 4년 연속 한국능률협회컨설팅선정 KCSI(Korea Customer Satisfaction Index: 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 인터넷서점 부문 1위로 선정되어 명실상부한 인터넷서점의 최고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 시장점유율 등

전체 출판시장은 정체/감소 상태에 있지만, 인터넷서점의 매출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오프라인 서점과 비교하여 구매의 편리함, 저렴한 가격, 배송시간 단축등의 장점을 둔 인터넷서점의 매출은 오프라인 대비 더욱 확대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펴낸 '2011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도서시장(2조 8천억원 추정)에서 2010년 인터넷 서점의 매출은 약 9,270억원으로 33.1%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매출 비중은 지난 2002년에는 9.7%에 불과했으나, 2006년 24.2%로 처음으로 20%를 넘어서는 등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도서 시장 내 인터넷서점 매출 비중
     
                                                                                                              (단위: 억원, %)

구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전체도서시장 26,939 23,657 25,054 25,804 27,244 28,000
인터넷서점 4,497 5,727 6,896 7,253 8,938 9,270
인터넷서점비중   16.7%    24.2%    27.5%    28.1%    32.8%    33.1%

                                                                                                           <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특히, 인터넷 서점 중에서도 상위 5개사의 매출 증대가 두드러졌습니다. 이중 업계 1위인 예스24는 전체 시장에서 4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단일매장을 기준으로는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전체1위의 규모입니다.또한, 예스24는 인터넷 기업의 주요 지표인 트래픽(방문자)과 페이지뷰에서도 경쟁사와 큰 격차를 보이며 창사이래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넷서점 트래픽 및 로열티 분석
                                                                                                                    (단위: 명,페이지, 초)
사이트명 일 평균방문자수 일 평균페이지뷰 일인당 페이지뷰 체류시간
예스24 738,754 5,902,653 12.46 0:07:29
인터파크 도서 264,159 2,143,738 12.35 0:05:56
교보문고 215,678 3,162,709 22.04 0:07:38
알라딘 205,799 2,466,189 19.74 0:07:13
리브로 38,287 248,695 8.69 0:04:03

                                                                                                  <출처: 랭키닷컴, 2012년 9월기준>
※ 일 평균 방문자수는 Session Visits으로 이는 1시간 기준으로 이후의 재방문을 인정하는 방문자수입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와 생산비 절감, 빠른 배송 등의 서비스 경쟁력은 상위 업체인 예스24의 차별적 요소이며, 오랫동안 축척해 온 고급 문화 컨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제휴채널을 확대, 경쟁사가 갖지 못하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펼친 부분 접기 ▲




 * * *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 156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가한 해악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분노 이외에는,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해칠 수 있는 정당한 동기가 있을 수 없고, 만인의 공감을 받으면서 우리가 남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유인(誘因)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 자신의 행복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나, 어떤 것이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유용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로 유용한 것을 빼앗는 행위나, 또는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공정한 방관자로서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것
158

부와 영예와 높은 지위를 향한 경주에서 사람들은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온힘을 다하여 달리고,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자기 경쟁자들 중 어느 누구를 밀어제치거나 넘어뜨린다면, 방관자들의 관용은 거기서 완전히 끝난다. 그것은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것으로, 방관자들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방관자들에게는 그의 방해를 받은 사람도 모든 면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즉, 방관자들은 이 방해자가 자신을 남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애(自愛)에 공감하지 않으며, 그가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된 동기에 공감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피해자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분개의 감정에 기꺼이 동감하고, 가해자는 그들의 증오와 분개의 대상이 된다.


불의의 만연 163, 167

사회는 항상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침해를 입히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존립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가해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 서로에 대한 분개와 증오가 나타나는 순간, 사회의 모든 유대관계는 산산 조각나고,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들 간의 불화 감정이 야기한 폭력과 대립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지고 국외로 달아나게 된다.

······
불의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파괴한다. 따라서 불의가 나타날 때마다 인간은 놀라고, 그대로 놓아두면 그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급속하게 파괴시켜 버릴 불의한 사건의 진행을, 중지시키려 달려든다. 만약 그가 온당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그것을 중지시킬 수 없다면, 그는 힘과 폭력에 의지해서라도 그것을 타도해야 한다. 여하튼 그는 불의가 지속되는 것을 중지시켜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종종 정의의 법을 위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심지어 극형에 처해 가면서까지 정의의 법을 시행하는 것을 시인(是認)한다고 한다. 공공의 평화를 방해하는 자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제거되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보고 겁이 나서 감히 그의 행위를 모방하지 못하게 된다.


독점은 공공의 풍요를 파괴한다 689-690

아담 스미스의 적극적 자유방임론은 자유스럽고 공정한 경쟁시장의 메커니즘의 작동을 전제로 한 방임이고, 자유·공정경쟁이 제한·방해되는 현실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의미의 방임은 아니다.  ······  따라서 자유·공적 경쟁시장을 전제하지 않는 이기심, 환언하면 사적 이윤추구 동기는 결코 사회적 선이 될 수 없다. 그는 『법학강의』제2부에서 이미 <독점은 공공의 풍요를 파괴한다(Monopolies destroy public opulence)>, <기업의 배타적 특권을 인정하는 것도 동일한 효과가 있다>라고 주장하고, 『국부론』의 제1편 11장 결론에서도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항상 상인과 제조업자의 이익이 된다. ······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항상 공공의 이익과 충돌한다. 왜냐하면, 경쟁을 제한하면 상인과 제조업자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 시민들에게 불리한 세금(예: 상품의 가격인상)을 부과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상인과 제조업자의 이윤은 자연적인 수준 이상으로 증대하기 때문이다.  ······ 결국 이러한 의미에서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의 주장은 <반독점(反獨占)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방임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무조건적 불개입(즉, 放任)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개입과 불개입(不介入)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다.

 * * *

나는 콜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생 시절 벤저민 그레이엄에게서 들었던 충고를 지금까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남들이 나에게 동의한다고 해서 내가 옳은 것은 아니다. 내가 옳은 것은 내가 파악하고 있는 사실이 옳고 내 추론이 옳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옳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워렌 버핏)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1-30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귀중한 자료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나저나 한기호 씨는 '도서정가제를 바탕으로 책마을 살리기'로 나설 마음은 하나도 없이,
'알라딘 하나 때려잡으며 뒷소리 떠들기'로만 나아가는군요.
참 딱한 양반입니다.

저도 1인출판을 하고, 둘레에서 1인출판 하는 분들이 힘내는 길을 찾습니다만,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할 일이란,
'언론에서 안 다루는' 아름답고 즐거운 책을
'우리들이 알라딘서재나 여러 자리'에서 신나게 글을 써서 나누는 일이지 싶어요.
그래서 저는 하루에 한 가지 책은 이야기하자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oren 2013-01-30 19:25   좋아요 0 | URL
댓글이 너무 늦었네요.. 제기 가족들과 함께 이웃나라 일본에 와있거든요.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함께살기님께서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알라딘 서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시길 기대할께요~~

사마천 2013-01-3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이 부각됩니다. 현상과 이론,철학의 금언이 잘 모아진(큐레이트 된) 글이네요. 안목을 드러내주네요.. ^^

oren 2013-01-30 19:30   좋아요 0 | URL
큐레이션이라는 것도 있군요. 사마천님이야말 로 늘 최일선을 달리시는 분이니 새롭게 떠오르는 경향만큼은 누구보다 더 빠르시리라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댓글로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찰스 다윈도 진화론을 강자의 논리로 둔갑시킨 ‘다윈주의’의 피해자였다. 다윈은 ‘종의 기원’이 나오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힘이 곧 정의임을 증명했고, 따라서 나폴레옹도 옳고 사기꾼 상인들 모두가 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고 얘기하더군”이라며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인간이 동물적 속성을 이어받아 진화한 결과이며, 진화 과정에는 경쟁(이기주의)과 협력(이타주의)이 공존한다고 적시했다. ‘적자생존’을 경쟁 승리자의 윤리적 근거로 왜곡한 ‘사회적 진화론’은 다윈과 무관한 다윈주의인 셈이다.

애덤 스미스도 광대무변한 사상의 폭만큼이나 오독(誤讀)되기 쉬운 사상가다. 그는 ‘국부론’에서 이기심이 경제행위의 동기며, 그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복지에 기여하게 된다고 설파했다. 이것이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스미스의 반쪽이다. 스미스는 국부론보다 17년 앞서 쓴 ‘도덕감정론’에서 “이기적 경제인의 행동은 근면·신중·절약·조심하는 것”이라며 이기심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할 브레이크로 공감(empathy) 즉, 이타심을 강조했다. 경제행위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두 날개를 지녔다는 것이다.

영국이 20파운드 새 지폐에 애덤 스미스의 초상을 실었다. ‘고전경제학의 아버지’가 이제야 파운드화에서 대접받은 것은 그가 잉글랜드와 견원지간이었던 스코틀랜드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돈에 실린 스미스의 초상이 정면이 아니라 옆모습이라는 점이다. 혹여 경제적 불평등을 보다 못한 스미스가 도안자의 꿈에 나타나 “제발 한 쪽(이기심)만 보고 나를 교조화하지 마시게, 그간 오독했다면 다른 쪽도 봐주시게”라고 한 것은 아닐까. 스미스는 공감을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다.
(2007. 3.14 경향신문 칼럼 중에서 인용)

 * * *


다른 사람의 유사한 관능을 판단할 때의 척도
24

한 사람의 각종 감각기관의 기능, 즉 관능(官能:faculty)은 그가 다른 사람의 유사한 관능을 판단할 때의 척도가 된다. 나는 나의 시각으로써 당신의 시각을 판단하고, 나의 청각으로써 당신의 청각을 판단하며, 나의 이성으로써 당신의 이성을 판단하고, 나의 분개로써 당신의 분개를 판단하며, 나의 애정으로써 당신의 애정을 판단한다. 그것들을 판단할 이외의 다른 어떤 방법도 나에게는 없으며, 또 가질 수도 없다.





경이와 경악, 감탄과 갈채
26


그러나 우리 동료의 감정이 우리 자신의 감정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감정을 지도하고 지시할 때에는, 그리고 감정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동료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많은 것들에도 주의를 기울였으며 그리고 서로 다른 정황에 근거하여 서로 다른 대상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감정을 조정했을 때에는, 우리는 그의 감정을 시인할 뿐만 아니라 그의 감정이 특이하고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예리하고 종합적인 데 경이(驚異)와 경악(驚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그는 고도의 감탄과 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이와 경악에 의해 강화된 시인(是認)은 감탄(感歎)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한 감정을 구성하는데, 갈채(喝采)는 이것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분개를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29

사고(思考)나 추측(推測)의 문제에 관한 판단이나 취향의 문제에 관한 감정에서 당신과 내가 완전히 상반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쉽게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내가 어느 정도 불만이 있더라도, 나는 여전히 당신과의 대화에서, 심지어는 나와 당신의 견해가 상반되는 바로 그 주제에 관한 당신과의 대화에서도, 어떤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내가 당한 재난에 대하여 어떠한 동류의식도 가지지 않거나 또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 슬픔을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또는 당신이 내가 당한 침해에 대해 전혀 의분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를 화나게 만드는 분개를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주제로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할 수 없다. 우리는 피차 서로를 용납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없고, 당신 역시 더 이상 나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당신읜 나의 분노와 격정에 당황하게 될 것이고, 나는 당신의 얼음처럼 차가운 무감각과 감정의 결핍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천성을 완미(完美)하게 만드는 길 36-37

이처럼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많이 느끼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적게 느끼는 것,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위하는 사심은 억제하고 남을 위하는 자애심(慈愛心)은 방임하는 것이 곧 인간의 천성을 완미(完美)하게 만드는 길이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비로소 감정(sentiments)과 격정(passions)의 조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인류의 모든 행위를 고상하고 적절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기독교의 위대한 율법인 것처럼, 다만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또는 같은 뜻이지만, 우리 이웃이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은 자연계의 위대한 계율이다.


미덕이란 탁월함이며, 상스럽거나 평범한 것을 훨씬 뛰어넘는 비상하게 위대한 어떤 것 37

보통 수준의 지력(知力)에서는 어떤 재능도 있을 수 없듯이, 보통 수준의 도덕에서는 어떤 미덕도 있을 수 없다. 미덕이란 탁월함이며, 상스럽거나 평범한 것을 훨씬 뛰어넘는 비상하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이다. 상냥하고 친근함의 미덕은 정교하고 기대밖의 섬세함과 따뜻함으로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의 감수성으로 이루어진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미덕은 인간의 본성에서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격정에 대해서까지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의 자기제어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특수한 혐오감의 진정한 원인 45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육체적 욕망이 강렬하게 표현되는 것을 볼 때 속으로 느끼게 되는 특수한 혐오감의 진정한 원인은 우리가 그것을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욕망을 느꼈던 사람에게도 그 욕망이 채워지자마자 그것을 불러일으켰던 대상은 더 이상 유쾌한 것이 될 수 없고, 심지어 그 대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흔히 불쾌해질 수 있다. 그는 그 대상에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정신까지 흘렸던 매력을 이모저모 찾아보지만, 헛일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방금 전의 자기 자신의 격정에 대해서도 거의 공감할 수 없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식기(食器)를 치우라고 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에는 가장 강렬하고 격정적이었던 욕망의 대상들을, 만약 이들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육체에서 기원하는 격정의 대상들이라면, 이와 똑같은 태도로 취급할 것이다.


되풀이되는 엄중한 도발의 결과 때문이라는 것 65∼66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때 비로소 분개심을 표출하는 우리의 행위가 방관자에게 완전히 유쾌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방관자로 하여금 우리의 분개에 완전히 동감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분개를 격발시킨 원인이, 만약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분개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비열한 인간으로 되어버리고 그리고 두고두고 모욕을 받게 될 그런 것이어야 한다. 사소한 침해에 대해서는 무시해 버리는 편이 오히려 낫다. 사소한 시빗거리가 있을 때마다 흥분하는 심술궂고 남의 말꼬리 잡고 시비하기 좋아하는 성격만큼 비열한 것도 없다. 우리가 분개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불쾌한 격정으로 화가 나서가 아니라, 분개하는 것이 적절하고 또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분개하기를 기대하고 또 요구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어야 한다.

인류가 느낄 수 있는 격정들 중에서 이 분개의 격정만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의 정당성에 대하여 재삼 의문을 가져보게 하고, 우리가 그것을 표출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우리의 본래의 적정성 감각에 비추어 보게 하고, 또한 냉정하고 공정한 방관자가 우리가 표출하는 분개를 보고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관대함이나 우리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존엄을 유지하고자 하는 관심만이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이 격정의 표현들을 고상한 것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동기이다. 이 동기가 우리의 전체 품격과 태도를 특징짓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소박·소탈하고, 감추는 것이 없고, 솔직해야만 한다. 과단성이 있되 독단적이 아니어야 하고, 고결하되 오만(傲慢)하지 않아야 하며, 무례하고 상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상해를 가한 자에 대해서조차 너그럽고 솔직하면서도 모든 적절한 배려를 다해 주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분노의 격정 때문에 인간의 선한 본성이 훼손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만약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복수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마지못해서,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되풀이되는 엄중한 도발의 결과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가 그것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전체 행동에서 저절로 드러나야 한다.

분노가 이런 방식으로 억제되고 진정된다면 그것은 심지어 관대하고 고상하기까지 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심의 기원 91∼92

이 세상 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탐욕과 야심, 부와 권력 및 최고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

인류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경쟁심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과 호의와 시인(是認)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안락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허영이다. 그러나 허영이란 항상 자신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시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념에 기초한다.
부유한 사람이 그의 부유함을 자랑하는 것은 그 부유함이 자연히 세간의 이목을 끈다는 것, 그리고 부유함이 그에게 제공한 모든 유쾌한 감정에 인간들이 쉽게 공감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부유함이 가져다주는 다른 어떤 이익보다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지위를 얻는 과정에 사용된 수단의 비열함에 의해서 더렵혀지는 것 116

야심에 찬 사람이 진실로 추구하는 것은 안락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비록 매우 잘못 이해되고 있지만, 항상 이런 저런 종류의 영예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얻은 높은 지위와 영예는, 자신의 눈으로 보건 타인의 눈으로 보건 간에, 그가 그 지위를 얻는 과정에 사용된 수단의 비열함에 의해서 더렵혀지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대로 지출하는 낭비에 의해서, 타락한 인간들의 파멸적 성격이 통상 그렇듯이 각종 방탕한 쾌락에의 극도의 몰입에 의해서, 그리고 바쁜 공적 업무에 의해서, 또는 보다 자랑스럽고 보다 소란스러운 전쟁에 의해서, 그는 자신의 기억과 타인들이 기억으로부터 자신이 과거에 행하였던 추행(醜行)들의 기억을 지워 버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끝까지 그를 쫓아다닌다. 그는 건망증과 망각이라는 어둡고 우울한 힘에 호소해 보지만 실패한다. 그는 스스로 행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의 기억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가 행했던 바를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그에게 일깨워 준다.


수치심과 양심의 가책이란 보복의 화염 116

가장 그럴 듯한 상류사회의 모든 화려한 허식 속에서도, 돈에 매수된 고위 인사들과 저명한 학자들의 비열한 아첨 속에서도, 일반 민중들의 어리석지만 천진난만한 환호 속에서도, 그리고 모든 정복과 전쟁에서의 승리로 교만해진 가운데서도, 내심에서 은밀하게 솟아나는 수치심과 양심의 가책이란 보복의 화염은 그를 휩싸서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영예가 사방팔방으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때에도 그 자신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어둡고 추악한 불명예가 그를 바짝 뒤쫓고 있으며 언제라도 그를 덮치려고 하는 것처럼 느낀다.


분개(憤慨)의 감정 149

분개(憤慨)는 방어를 위해서, 그리고 오직 방어만을 위해서, 천성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감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정의를 지키는 보호장치이자 죄없는 사람을 지키는 안전장치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가해지려는 해악을 물리치고 이미 가해진 것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도록 촉구한다. 그리하여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반성하도록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움을 갖도록 함으로써 유사한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 156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가한 해악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분노 이외에는,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해칠 수 잇는 정당한 동기가 있을 수 없고, 만인의 공감을 받으면서 우리가 남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유인(誘因)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 자신의 행복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나, 어떤 것이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유용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로 유용한 것을 빼앗는 행위나, 또는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공정한 방관자로서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것 158

부와 영예와 높은 지위를 향한 경주에서 사람들은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온힘을 다하여 달리고,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자기 경쟁자들 중 어느 누구를 밀어제치거나 넘어뜨린다면, 방관자들의 관용은 거기서 완전히 끝난다. 그것은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것으로, 방관자들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방관자들에게는 그의 방해를 받은 사람도 모든 면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즉, 방관자들은 이 방해자가 자신을 남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애(自愛)에 공감하지 않으며, 그가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된 동기에 공감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피해자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분개의 감정에 기꺼이 동감하고, 가해자는 그들의 증오와 분개의 대상이 된다.


불의의 만연 163, 167

사회는 항상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침해를 입히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존립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가해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 서로에 대한 분개와 증오가 나타나는 순간, 사회의 모든 유대관계는 산산 조각나고,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들 간의 불화 감정이 야기한 폭력과 대립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지고 국외로 달아나게 된다.

만약 강도와 살인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회가 존재하려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적어도 그들 간에 서로 강탈하거나 살해하는 것을 자제해야만 한다. 따라서 자혜(慈惠)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정의(正義: justice)보다 덜 중요하다. 비록 최선의 상태는 아닐지라도, 사회는 자혜 없이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의의 만연은 사회를 철저히 파괴시켜 버린다.
······
불의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파괴한다. 따라서 불의가 나타날 때마다 인간은 놀라고, 그대로 놓아두면 그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급속하게 파괴시켜 버릴 불의한 사건의 진행을, 중지시키려 달려든다. 만약 그가 온당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그것을 중지시킬 수 없다면, 그는 힘과 폭력에 의지해서라도 그것을 타도해야 한다. 여하튼 그는 불의가 지속되는 것을 중지시켜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종종 정의의 법을 위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심지어 극형에 처해 가면서까지 정의의 법을 시행하는 것을 시인(是認)한다고 한다. 공공의 평화를 방해하는 자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제거되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보고 겁이 나서 감히 그의 행위를 모방하지 못하게 된다.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 181∼182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은 우리의 적으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의 과거의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또한 그로 하여금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도록 만들고, 그로 하여금 그가 해악을 가한 그 사람이 그와 같은 식으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드는 데 있다. 우리를 해치거나 모욕을 준 사람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분개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우리를 무시하는 태도, 우리보다 자기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불합리한 태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의 편의에 따라 또는 기분에 따라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의 터무니없는 자애(自愛: self-love) 등이다. 그의 행동에 나타난 두드러진 도덕적 부적정성, 그의 행동에 담겨 있는 큰 오만과 불의는 종종 우리에게 우리가 당한 해악 그 자체보다도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우리를 격분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 응당 받아야 할 몫에 대한 보다 올바른 감각을 그에게 심어주는 것, 그가 우리에게 지고 있는 빚이나 그가 우리에게 행한 잘못을 그가 깨닫도록 해 주는 것 등이 우리가 보복하려는 주요 목적이다. 만약 이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다면 보복은 항상 불완전하다.


조심성 없는 행동 197

우리는, 한 사람의 조심성 없는 행동에 의해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되며, 비난받을 만한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부주의한 행위를 한 사람에 의해 배상되어야 한다는 것보다 더 공정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덕과 악덕, 행복과 불행
214-215

친근감을 주고 찬사를 받을 만한 것, 즉 사랑을 받을 만하고 보답을 받을 만한 것은 미덕의 큰 특징이다. 또 가증스럽고 처벌을 받을 만한 것은 악덕의 큰 특징이다. 그러나 이 모든 특징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덕은, 그 행위자 자신의 사랑이나 감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나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친근감을 주고 찬사를 받는 것이다. 자신은 이처럼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인식은 그것에 자연적으로 수반되는 내심의 평온과 자기만족의 원천이 되는데, 이는 마치 자신은 이와 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악덕으로 인한 고통의 원천이 되는 것과 같다.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우리는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미움을 받고 있고 또 우리는 미움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불행인가?


근거 없는 칭찬에 기뻐하는 것 219

근거 없는 칭찬에 기뻐하는 것은 결코 있지도 않았던 모험담을 이야기하면서 동료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하는 우매한 거짓말쟁이, 자기에게는 그럴 자격조차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높은 신분인 체하고 기품 있는 체하는 난봉꾼(coxcomb)들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자신들은 갈채를 받고 있다는 공상에서 기뻐한다. 그러나 그들의 허영은 어떤 이성적인 사람이 어떻게 속아 넘어갈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황된 환상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자신을 놓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가장 큰 감탄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동료들에게 실제로 어떻게 보이고 있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동료들이 자신들을 본다고 그들이 믿고 있는 그러한 관점에서 자신들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피상적인 나약함과 우매함 때문에 자신의 눈을 내부로 돌리지도 못하고, 또한 만약 진실이 알려진다면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경멸스런 인간으로 보일 것인지 그들의 양심이 말해 줄 그런 경멸스런 관점에서 그들 자신을 바라보지도 못한다.



시인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
222

인간들 중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천박한 자들만이 자신들이 전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칭찬에 의해 크게 기뻐할 수 있다. 약한 사람은 때때로 그러한 칭찬을 기뻐할지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경우에 그것을 거부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으나 칭찬을 받는 경우 그러한 칭찬으로부터 전혀 기쁨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자신이 행했을 때에는, 비록 그것에 대하여 결코 칭찬이 부여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지라도, 그는 흔히 최고의 기쁨을 느낀다, 시인을 받을 만하지 못한 경우 인류의 시인을 얻는 것은 그에게 결코 중요한 목적이 될 수 없다. 정말로 시인을 받을 만한 경우 사람들의 시인을 얻는 것은 때로는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목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시인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언제나 최고로 중요한 목적임에 틀림없다.


칭찬과 비난 238

칭찬과 비난은 우리의 성격이나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를 나타내고, 칭찬받을 만하다거나 비난받을 만하다거나 하는 것은 우리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자연스런 감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 형제들의 호의적인 감정을 얻고자 갈망하는 감정이다.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이 그러한 감정의 정당한 대상이 되고자 하는 갈망이다. 이 점에서 두 가지 원리는 서로 비슷하고 피차 동류(同類)이다. 피차 동류라는 것과 서로 비슷하다는 것 사이의 관계는 실제로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비난받을 만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도 성립한다.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253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

많은 경우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신성한 미덕을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 생기는 것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강력한 애정, 즉 명예스럽고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 우리 자신의 성격의 숭고함, 존엄성, 탁월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275-276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중(愼重)이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지도(指導)하지 않고, 정의가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허용하지 않는데도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모든 위험한 게임들 가운데서 가장 불평등한 게임을 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으로서, 그가 장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피루스(Epirus) 국왕의 총애하는 신하가 국왕에게 말한 것은 인생의 일상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국왕은 그 신하에게 자신이 예정하고 있는 모든 정복 계획들을 차례대로 설명해 주었는데 그 최후의 정복계획에 이르렀을 때 그 신하가 말했다. "그런 다음에 폐하께서는 무엇을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러자 국왕이 대답했다. "그런 다음 나는 나의 친구들과 더불어 즐겁게 지낼 거야.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과 사귀도록 노력할 거야 ······ ." 그 신하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폐하께서 지금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탐욕의 대상과 야심의 대상
324

탐욕의 대상과 야심의 대상은 단지 그 대상이 위대한 것인지 아닌지에 있어 차이가 날 뿐이다. 구두쇠는 반 푼의 동전을 획득하기 위해 큰 야심을 가진 사람이 한 왕국을 정복하려고 할 때만큼이나 맹렬하다.



사람들의 성격 351

사람들의 성격도, 기예(技藝)의 창작물이나 정부기구와 마찬가지로,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촉진하는 데 적합할 수도 있고 방해하는 데 적합할 수도 있다. 신중, 공정(公正), 적극적, 과단(果斷), 진지한 성격은 그 사람 자신과 그와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번영과 만족을 약속한다. 반대로 경솔, 오만, 나태, 유약(柔弱), 방탕한 성격은 그 개인에게는 파멸을,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재난(災難)을 예고한다. 첫 번째의 심리상태는 적어도 가장 유쾌한 목적을 촉진하기 위해 발명되었던 가장 완전한 기계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미(美)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의 심리상태는 가장 어색하고 졸렬한 발명품이 갖고 있는 모든 결함들을 다 가지고 있다.


견인불발(堅忍不拔) 356

우리가 장래의 더 큰 쾌락을 획득하기 위해 눈앞의 쾌락을 포기할 때, 우리가 요원한 장래의 대상에 대하여 현재 우리 눈앞에서 우리의 감관(感官)에 직접 작용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것과 똑같이 흥미를 가지고 행동할 때에는, 우리의 감정과 방관자의 감정이 정확히 서로 일치하므로, 방관자는 우리의 행위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방관자는 경험에 의하여 이러한 자기통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의 행위를 상당한 정도의 경이(驚異)와 찬탄으로 지켜보게 된다. 장기간 꾸준히 근검절약하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한 가지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람을, 비록 그의 목적이 단지 재부(財富)의 획득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자연히 높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식으로 행동하고, 요원한 장래의 일이지만 큰 이익을 획득하기 위해서 현재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할 뿐 아니라 심신(心身)의 최대의 노고를 참아내는 사람의 견인불발(堅忍不拔)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시인을 얻게 된다. 그의 행위를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자기 이익과 행복에 관한 그의 관점은 우리가 그의 행위를 보고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관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감정들과 우리의 감정들 사이에는 가장 완전한 일치가 존재하며, 동시에 인간 본성의 공통된 약점에 관한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이러한 일치는 우리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일치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행위를 시인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감탄해 마지않으며, 그의 행위는 상당한 정도의 칭찬과 갈채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시인(是認) 및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식만이 우리로 하여금 그 행위자의 그러한 행위 경향을 지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정이라는 신성하고 존경할 만한 이름 427

젊은이들의 성급하고 맹목적이며 어리석은 친교(親交)는 통상 상격상의 사소한 유사성에 근거하고 있고, 품행과는 전혀 관계없이 서로 같은 학습, 같은 오락, 같은 취미, 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특이한 원리나 관점에 대한 같은 의견에 근거하고 있다. 변덕이 죽 끓듯이 반복되는 이러한 친교들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비록 그것들이 아무리 좋은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결코 우정(友情: friendship)이라는 신성하고 존경할 만한 이름으로 불릴 가치가 없다.



황금률 428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비루한 행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보편적인 분개는 심지어 때로는 시혜자(施惠者)의 공로에 관한 보편적인 감각을 증대시키기까지 한다. 은혜를 베푼 사람은 자신이 베푼 은혜의 결실을 전부 다 잃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 만약 그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그 사람에게서 그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열 배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자혜(慈惠)는 자혜를 낳는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형제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최대 목적이라면, 그것을 획득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플라톤의 신성한 잠언 442

인도주의나 인자(仁慈)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공익정신을 가진 사람은 이미 확립된 권력이나 특권을, 심지어 그것이 개인들의 특권이라 하더라도, 존중할 것이고, 만약 그 특권이 국가를 구성하는 주요 계층이나 사회단체의 것일 때에는 더욱 존중할 것이다. 그 중의 일부 특권들이 어느 정도 남용되고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만약 그가 그러한 특권들을 거대한 폭력의 행사 없이는 없앨 수 없을 때에는, 그는 자기 스스로 절제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이성(理性)과 설득(設得)을 통해서는 사람들에게 뿌리박힌 편견을 없앨 수 없을 때에도, 그는 그들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려 하지 않고, 플라톤의 신성한 잠언(箴言)이라고 키케로(Cicero)가 정확하게 부른 것, 즉 자기 부모에 대해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자기 조국에 대해서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말을, 경건하게 준수할 것이다. 그는 공적인 일들을 가능한 한 국민들 속에 이미 단단히 뿌리내려져 있는 습관(習慣)과 편견에 적응시키려 할 것이고, 또 국민들이 복종하기 싫어하는 규제가 없음으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들을 최대한 제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옳은 것을 건립할 수 없을 때에는 틀린 것을 개선하는 것을 무가치한 일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솔론(Solon)이 그랬듯이, 최선의 법률체계를 세울 수 없을 때에는 국민이 참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의 것을 세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군주들이 가장 위험한 인물 444

정치가의 관점을 지도하는 데에는 자신들이 제안하는 정책과 법률의 완전성에 대한 일종의 보편적이고 심지어 체계적이기까지 한 관념이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일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러한 관념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수립하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그것도 즉각 수립하고자 하는 것은, 흔히 최고도의 오만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자신의 판단을 최고의 표준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총명하고 고상한 사람이며, 따라서 동포들이 자기에게 맞추어야지 자기가 동포들에게 맞출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모든 정치 이론가들 중에서 군주(君主)들이 가장 위험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이러한 오만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그들은 자신의 판단이 무한히 우월하다는 것에 대하여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혁적인 황제나 국왕들이 자신들의 통치하에 있는 국가의 체제에 대해 생각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실행하는 데 반대되는 장애물들만큼 잘못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플라톤의 신성한 잠언을 경멸하면서, 국가가 자신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자신들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총명한 사람이라면 449

최대의 국가적 재난(災難)을 당해서도 개인적 재난을 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총명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즉, 자기 자신과 친구들 및 동포들은 우주에서 생환(生還)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장 절망적인 진지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그리고 만약 전 우주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들에게 그러한 명령이 내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자신들의 임무는 이러한 지시를 체념하고 감수할 뿐 아니라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이를 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총명한 사람이라면 훌륭한 병사가 언제나 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배당되어 있는 일 450

그러나 우주(宇宙)라는 이 거대한 체계를 관리하고 모든 이성적이고 지각 있는 생물들의 보편적 행복을 돌보는 것은 신의 일이지 인간의 일이 아니다. 인간에게 배당되어 있는 일은 훨씬 하찮은 부문이지만, 그의 미약한 능력이나 편협한 이해력에 견주어 보면, 이러한 배당은 매우 적합한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의 행복, 자기 가족과 자기 친구와 자기 나라의 행복을 돌보는 것이 그것이다. 그가 더욱 숭고한 것을 사색하는 데 빠져 있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사소한 부문의 일을 무시해도 된다는 핑계는 될 수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대하여 아비디우스 카시우스(Avidius Cassius)가 했다고 전해지는 아마도 부당한 질책에, 즉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적 명상에 깊이 빠져 우주의 번영을 사색하면서도 로마제국의 번영은 무시했다고 하는 그러한 질책에, 자신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명상적인 철학자의 가장 숭고한 사색도 가장 하찮은 현행 의무(義務)를 소홀히 하는 것을 보상할 수는 없다.



우리 자신의 존엄과 지위를 지킬 필요가 있다.
463

질투(嫉妬)란,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우월한 것을, 그들이 정말로 그처럼 우월할 자격이 있는 경우에도, 그들의 우월함에 대하여 악의적으로 혐오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격정이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에서, 어떤 우월함을 누릴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자신을 능가(凌駕)하거나 자기보다 앞서 가도록 순순히 용인하는 사람은, 비열한 소인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나약함은 통상 태만에 기원(起源)하고, 때로는 선량한 성품에, 싸우기 싫어하고 소란 떨고 사정하기 싫어하는 성품에 기원하며, 그리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일종의 아량(雅量)에 기원하기도 하는데, 이런 아량은, 그 당시에 무시하는 이익들을 언제나 계속 무시할 수 있으며, 따라서 쉽게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나약함에는 통상 많은 후회와 회한이 뒤따른다. 그리고 처음에 보여주었던 어느 정도의 아량은 흔히 끝에 가서는 극도로 악의적인 투기(妬忌)로 변하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아량을 베풀어 주었던 자의 우월함에 대한 증오로 변하게 된다. 일단 그의 아량 덕에 우월한 지위를 누리게 된 사람은, 그의 아량에 의해 양보를 받아냈던 바로 그 환경에 의해, 정말로 그 우월한 지위를 누릴 자격을 갖추게 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필요가 있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존엄(尊嚴)과 지위(地位)를 지킬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총명한 사람 480

진정으로 자신에게 속한 공적(功積)이 아닌 것을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는 사람은 창피를 당할까봐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의 실체가 발각(發覺)될까봐 두려워하지도 않고, 다만 자기 자신의 성품의 진실성과 견고성(堅固性)에 대하여 만족하고 느긋해할 뿐이다. 그를 칭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도 않고, 그렇게 요란하게 갈채를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그를 가장 잘 아는 총명한 사람은 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진정으로 총명한 사람에게는 총명한 한 사람의 사려 깊고 신중한 시인(是認)이 수천 명의 무지한 열광자들의 요란한 갈채보다 더욱 충심(衷心)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만족감을 준다. 파르메니데스가 아테네의 군중집회에서 한 편의 철학논문을 읽을 때, 플라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서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그것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플라톤 혼자만 들어줘도 자기는 충분히 만족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 481

그러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매우 총명한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가장 적게 감탄한다. 그가 성공에 도취되어 있을 때 총명한 사람들의 그에 대한 냉정하고 공정한 평가는 그의 자기 자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대평가에 비해 너무나 낮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냉정하고 공정한 평가를 단지 악의(惡意)와 질투심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들을 의심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그들이 자기 앞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내쫓고, 또는 흔히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그들에게 보은(報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잔인(殘忍)하고 불의(不義)하게도 은혜를 원수로 갚기도 한다. 오히려 그는 아첨꾼과 배신자들을 신뢰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의 허영(虛榮)과 허세(虛勢)를 숭배하는 척 가장한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어떤 면에서는 결함이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친근감도 있고 존경할 만하기도 하던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는 경멸스럽고 혐오스러운 인물로 변해 버린다.


 우리는 그것을 오만 혹은 허영이라 부른다 483

인류의 보통 수준보다 위대하고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러한 걸출한 인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훌륭한 성품을 과대평가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철저히 공감(共感)할 뿐 아니라 동감(同感)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들을 용감하고, 관대하며, 고상한 사람들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러한 말들 속에는 상당한 정도의 칭찬과 찬사의 뜻이 들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 두드러지게 뛰어난 면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에는 공감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과도한 자아평가(自我評價)에 혐오감과 반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양해하거나 참아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오만(傲慢) 혹은 허영(虛榮)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단어 중에서, 후자는 언제나, 전자는 대부분, 그 속에 어느 정도의 비난의 뜻이 들어 있다.


오만(傲慢)한 사람 483

오만(傲慢)한 사람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지 않고, 마음속 깊숙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알아맞히기는 흔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는 당신이, 그가 당신의 입장에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바라볼 그런 눈으로, 자기를 보아주기를 바란다. 그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공정(公正)함이다. 만일 그가 자기 자신을 존경하는 것만큼 당신이 자기를 존경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는 모욕(侮辱)을 당한 것 이상으로, 마치 그가 정말로 어떤 침해를 당한 것처럼 화를 내고 분개한다. 그러나 그런 때조차도 그는 자신이 당신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당신에게 존경을 간청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런 행동을 경멸하는 척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우월함을 당신으로 하여금 느끼도록 하기보다는 당신 자신의 비천함을 스스로 느끼도록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상정(想定)한 지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한 당신의 존경심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신 자신에 대해 당신이 굴욕감을 느끼도록 자극하기를 더욱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허영심이 많은 사람 484

그러나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여, 자기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의 우월성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우월성이 있다고 당신이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당신이, 그가 당신의 입장에 있고,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이 알고 있을 때, 그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의 그런 색채보다 더욱 찬란한 색채로 자기를 보아 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그것과는 다른 색채로 그를 보거나 또는 그가 지닌 본래의 색채로 그를 보아주게 되면, 그는 모욕을 당한 것 이상으로 침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은 당신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그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가장 거짓되고 가장 불필요한 수법들까지 동원하여, 때로는 그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나 또는 심지어 그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까지 거짓으로 자랑함으로써, 자신에게 어느 정도 있는 양호한 성품과 재능들을 자랑한다. 그는 당신의 존경을 경멸하기는커녕 당신의 존경을 얻으려고 전전긍긍한다. 그는 당신의 자아평가를 폄하(貶下)하여 상처를 주기는커녕 도리어 그것을 기꺼이 존중해 주면서, 그 대신에 당신도 자신의 그것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아첨을 받기 위해 아첨을 한다. 그는, 공손하고 정중하게 행동함으로써, 그리고 때로는 당신에게 실제로 중요한 도움을 줌으로써(비록 흔히 그것을 쓸데없이 자랑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당신의 환심을 사려고 연구하거나 당신을 매수해서 당신이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한낱 2펜스짜리 내기에 불과 534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이에 수반될 수 있는 많은 유익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한낱 2펜스짜리 내기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어떤 심각한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전혀 없는 소소한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내기에 걸린 판돈의 액수가 아니라 게임의 적절한 방법이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내기에 걸린 판돈을 따는 데 둔다면, 결국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원인(原因)에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영원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빈번한 비통과 수치스러운 실망에 맡기는 셈이 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훌륭하게, 공평하게, 그리고 영리하고 능숙하게 게임을 치르는 데 둔다면,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행위의 적정성에 둔다면, 우리는 그것을 적절한 규율(規律), 교육, 그리고 주의력에 의해 우리의 능력과 통제 범위 내에 두는 것이 된다. 우리의 행복은 완전히 안전하고, 운(運)과는 무관하게 된다.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우리의 능력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우리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 되고, 따라서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어떤 두려움이나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또한 어떤 비통한 실망이나 심각한 절망으로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자애심 :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는 천성
580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자애심(自愛心: self-love)은 어떤 정도로도, 어떤 방면에 있어서도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는 천성이다. 그것이 공동의 이익(利益)을 방해할 때에는, 그것은 언제나 악덕(惡德)이 된다. 그것이 각 개인으로 하여금 오직 자기 자신의 행복만을 돌보도록 할 때에는, 그것은 단지 무죄(無罪)일 따름이며, 따라서 그것은 칭찬받을 가치도 없지만, 그렇다고 어떤 비난을 받아서도 안 된다. 자애적(慈愛的)인 행동들에는, 비록 그것이 다소 강한 자리(自利: self-interrst)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이런 이유에서 더 많은 미덕(美德)이 있다, 그들은 자애적(慈愛的)인 천성의 힘과 활력을 나타낸다.


배반(背叛)과 기만(欺瞞) 641

배반(背叛)과 기만(欺瞞)은 극히 위험하고 극히 두려운 악덕이다. 그리고 동시에 매우 용이하게, 그리고 많은 경우 매우 안전하게 빠져들게 되는 악덕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어떤 악덕들보다 이것에 대해 더 많은 경계심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력은 모든 사정과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들에 대하여 치욕의 관념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여성에게 있어서의 정절(貞節)의 상실과 유사하다. 정절은,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극도로 조심하는 미덕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은 양쪽 모두에 관해서 똑같이 민감하다. 정절의 파기는 회복할 수 없는 불명예를 준다. 어떤 상황이나 어떤 유혹도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어떠한 슬픔이나 또는 어떠한 후회도 그것을 속죄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너무나 민감하기 때문에, 심지어 강간(强姦)당한 것까지도 수치스럽게 여기며, 마음속으로 스스로 무고(無辜)함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상상 속에서 더럽혀진 육체를 씻어 주지는 못한다.


맹세의 위반, 신의의 파기
641

맹세(faith)의 위반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만약 그 맹세가 엄숙하게 선서된 후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비록 그것이 가장 무가치한 인간에 대하여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그렇다. 신의(信義: fidelty)는 너무나도 필요한 미덕이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른 어떤 것도 빚진 일이 없는 사람이나, 우리가 합법적으로 죽여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조차 신의는 지켜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정도이다. 신의를 파기한 사람이, 자신이 약속을 했던 이유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하거나, 그 약속을 지키는 것과 다른 어떤 존경할 만한 의무의 이행이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파기했다고 주장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러한 사정들은 그 불명예를 경감시켜 주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완전히 씻어 주지는 못한다. 그는 어느 정도의 수치심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어떤 떳떳치 못한 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스로 엄숙하게 지키겠다고 공언(公言)했던 약속을 어겼다, 그리고 그의 성격은, 비록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오점을 갖게 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조롱거리가 되는데, 그것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의 모든 본능적인 욕망들 중에서 가장 강한 것들 중의 하나
648

신뢰를 받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지휘하고 싶은 욕망은 우리의 모든 본능적인 욕망들 중에서 가장 강한 것들 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욕망들은 아마도 본능(本能)으로서, 이 본능 위에 언어(言語)의 관능(官能), 즉 인성 특유의 관능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다른 어떤 동물도 이런 종류의 관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다른 어떤 동물들에게서도 자기 동류(同類)들의 판단과 행위를 지도·지휘하고 싶어 하는 어떤 욕망도 발견할 수 없다. 위대한 야심, 남들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욕망, 남들을 지도·지휘하고자 하는 욕망은 전적으로 인류 특유(特有)의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언어는 야심을 위한, 남들보다 우월하기 위한, 남들의 판단과 행위를 지도·지휘하기 위한 위대한 도구이다.


대화와 교제의 큰 즐거움 651

대화와 교제의 큰 즐거움은 감정과 의견이 어느 정도 일치하고 속마음들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는 데서 생겨나는데, 그것은 수많은 악기(樂器)들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고 또한 서로 박자가 맞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쾌한 조화는 감정과 의견의 자유로운 교류(交流)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모두는 서로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자 하고, 서로의 가슴속 깊이 들어가서 그 진실한 감정과 정서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이 천연의 격정에 탐닉하게 하는 사람, 자신의 가슴 속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는 사람, 말하자면 자신의 가슴의 문을 활짝 열어 주는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더 즐겁게 해주는 일종의 후한 대접을 베풀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양호한 기질(氣質)을 가진 사람은, 만약 그가 자신이 느끼는 진실한 감정을, 그리고 그가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용기가 있다면,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유쾌하게 할 수밖에 없다.


아담 스미스의 경우 662

아담 스미스는 일반적으로 『국부론(國富論: 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로서 근대경제학의 창시자로서만 알려져 있으나, 실은 그는 결코 인간사회의 경제활동의 측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협의(狹意)의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근대 시민사회 형성기에 있어서 인간과 사회의 기본문제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노력하였던 사회철학자(社會哲學者)였다. 그는 과학 방법론, 수사학(修辭學), 신학, 문학, 윤리학, 법학, 역사 이론, 국가론, 정치경제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하나의 거대한 학제적(學際的) 체계를 수립하려고 노력하였던 철학자였다. 당시는 학문이 아직 각각의 독립분야로 완전히 분화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근대 사상가들의 경우 학제적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아담 스미스의 경우처럼 거대한 학제적 체계수립에 어느 정도 성공한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겠다.


도덕감정의 기초는 동감의 능력 672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의 기초 내지 내용은 인애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가 속한 계층이나 계급에 관계없이 가지고 있는 동감(sympathy)의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의 『도덕감정론』의 서두에서, <아무리 인간이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행·불행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요인·원리가 인간의 본성 속에 명백히 내재하여 있다. ······ 타인의 슬픔을 보고 슬픔을 함께 느끼는 감정의 존재는 증명을 요하지 않는 하나의 명백한 사실이고, 그 사람이 얼마나 선하냐 유덕하냐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본원적 감정의 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동감(同感)이란 자기를 타인의 입장과 동일한 입장에 놓고, 타인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 환언하면 상상에서의 역지사지(易地思之: imaginery change of situation) 능력을 전제한다.


상호동감의 즐거움
673

상호동감(相互同感)의 즐거움(pleasure of mutual sympathy)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이다. 아담 스미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감정과 동일한 이웃의 동감(fellow-feeling)을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고, 그 반대로 이웃의 동감의 부재(不在)를 느끼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없다.>


보통 사람들이 정의를 판단하는 근거는 효용이 아니라 동감 681

아담 스미스는 결코 일상의 부정의에 대한 처벌을 시인하는 근거가 정의의 공공적 효용성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은, 가장 우매하고 사려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사기·배신·부정을 혐오하고 그런 자들이 처벌받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고 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정의를 판단하는 근거는 효용(效用)이 아니라 동감(同感)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동감정의론(同感正義論)이 실은 중상주의적인 각종 정책·법에 대한 비판이라는 실천적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음은 지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공공복리, 효용이 정의의 근거라고 하는 사고야말로 국가에 의해 강제할 만한 법의 범위를 부당하게 확대시켜, 중상주의적인 각종 정책·법의 존재를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고, 종국적으로 <자유의 체계>에 대한 부정을 결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면 문제 698

단순상품생산 양식의 시대가 끝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본격화되면서, 한쪽에는 노동만을 가지고 생산에 참가하는 노동자와 다른 쪽에는 생산수단만을 제공하며 생산에 참가하는, 즉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資本家)가 등장하여, 자본과 노동의 완전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재화는 더 이상 노동의 생산물이라고만 보기 어렵게 되고, 노동가치설은 더 이상 자유(自由)와 공정(公正)의 양립을 증명하는 이론으로서의 설득력을 잃게 된다. 결국 아담 스미스의 낙관론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다. 그리하여 아담 스미스 이후 200여년의 역사는 실은 자유와 공정(즉, 配分的 正義)의 양립 문제를 둘러싼 고뇌의 역사였다고 볼 수 있고, 오늘날에도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자유인의 창의를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존중하고, 자유경쟁 시장질서의 조화와 효율을 믿는, 모든 <자유의 체계>의 신봉자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당면 문제가 바로 자유(自由)와 공정(公正)의 양립을 가능케 하는 사회구성 원리, 사회조직 원리의 제시이다.


(끝)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1-29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글이 조금 더 쉽고 부드럽다면 한결 아름답겠지만,
이만큼으로도 요즈음 사람들한테는
생각을 넓히는 좋은 이야기가 되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oren 2013-01-29 11:35   좋아요 0 | URL
번역에 아쉬움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때마다 번역하신 분들의 노고에 머리숙여 고마워하면서 읽었답니다. '역자후기'에 보니 번역하신 분들도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느라 엄청난 고생을 하셨더라구요.

이 책은 찰스 다윈이 쓴『종의 기원』에도 심대한 영향을 줬는데(이 책이 『종의 기원』보다 무려 100년 먼저 나왔지요), 애덤 스미스가 그만큼 인간본연의 '천성'을 날카롭게 꿰뚫어봤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어요.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도 이 책을 인용하면서 '베풂'이나 '상생' 혹은 '경제민주화'를 언급한 걸 본 적이 있답니다.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bytylp&folder=26&list_id=10828265

페크pek0501 2013-01-2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 덕분에 제가 이 책을 샀잖아요. 이 책을 사고 얼마나 뿌듯하고 즐거웠는지 몰라요.
마치 세상을 얻은 기분이랄까요?(좀 과장해서 말하면요...ㅋ)
제 책에도 군데군데 밑줄이 그어져 있고 군데군데 접혀져 있고 그래요.
인간을 이해하는 또는 인간에 대해 배우는 참고서로 생각합니다.
이 책을 두 번 읽는 게 목표인데, 그게 되려나 모르겠어요.
아직 전부를 읽지 못했거든요. 그러나 언젠간 다 읽게 될 것 같아요.
뽑아 놓으신 글을 읽으니 제가 읽었던 것도 많네요. ^^

oren 2013-01-29 23:31   좋아요 0 | URL
우와~ 페크님께서 이 책을 사신 후에 그렇게 좋아라 하셨는지는 미처 몰랐군요.

저도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다소 생경한 한자어와 읽기에 다소 껄끄러운 번역문체 때문에 고생을 좀 했는데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술술 넘어가더군요. 페크님께서도 아마 이 책을 두 번째 읽으실 때는 틀림없이 빠른 속도로 읽기를 끝내실 수 있으리라 믿어요.

다크아이즈 2013-01-3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페크언냐님 믿고 따라서(?!) 저도 일단 보관함에 담습니다. 오렌님은 알라디너의 보배. 왜냐면 철학서적들 가끔 읽고 싶어도 두루뭉술하게 짚어주시는 분들은 많아도 이렇게 섬세하게 안내해주시는 분은 드물잖아요.
번역의 한계를 넘어서서 반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설사 이해 다 못해도 건질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인간 전반을 이해하기 전에 전 저 스스로를 모르겠다는 게 요즘 제 딜레마입니다.ㅠ
철학책 읽다 보면 하나하나 깨치게 될까요? 오렌님 오래오래 알라딘을 지켜주세요. 격하게 님 서재 아끼옵니다^*

oren 2013-01-30 01:16   좋아요 0 | URL
아이고... 너무 과분한 말씀만 남겨주셨네요..
팜므님께서도 어려운 철학책들을 평소에 두루 읽으시는 줄 익히 알고 있습니다. ㅎㅎ 그러니 애덤 스미스의 책에 대해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편히 읽어보셔도 좋을 듯해요. 읽다보면 '인간 전반'이 아니라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 자신'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ㅎㅎ
 
문제는 언제나 '그 사소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



며칠째 '도서정가제 강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만이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수영 실력조차 갖추지 못한 채 '도서정가제'라는 이상하고도 낯선 강물에 뛰어든 꼴이다.

책값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도서정가제 강화' 추진 움직임은 여러 이해관계와 복잡한 문제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헤쳐나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뜨거운 찬반논쟁이 그걸 반증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와류가 소용돌이치는 듯한 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책'은 '다른 물건'과는 다르다는 것이고, 그래서 단순히 '가격'에 따라 책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더 많이 팔리고 또 더 많이 읽혀져서는 안 되겠다 싶다. 무엇보다도 책은 그 책이 지니는 '고유한 가치'에 따라 만들어지고 팔리고 읽혀져야 맞겠다 싶다.

어서 빨리 문제 해결의 당사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 '도서정가제'라는 강물을 보기좋게 함께 건넜으면 좋겠다. 더이상 끌다가는 누군가 힘도 딸리고 물(?)도 너무 많이 먹게 될 듯싶다.


 * * *


① 알라딘 애용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럽겠지만 그래도 읽어볼 필요가 있는 글

알라딘의 도서정가제 반대 서명에 참여하기 전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 
http://blog.naver.com/rhl1234/40177975337


② 오늘도 계속 이어지는 뉴스들

"출판시장 황폐화 막는 길" 출판계 찬성, 알라딘 "가격할인은 독자 서비스" 반대 2013.01.24 21:57
'출판연구소' 백원근, "도서정가제, 고래·새우 '공존' 위한 제도"  2013.01.24 21:01

김영사·창비 등 출판사, 알라딘과 거래 정지 이유는? 2013.01.24 16:22

 

접힌 부분 펼치기 ▼

 

입력 2013.01.24 15:15:39 | 최종수정 2013.01.24 15:15:39 

 


도서정가제 논란으로 김영사 등 주요 출판사 10여 곳이 온라인 서점 알라딘과 거래를 중단하고 있다.


김영사와 창비, 해냄사, 돌베개, 마음산책 등 출판사 10여 곳은 최근 추진되고 있는 도서정가제 강화에 반대 입장을 보인 알라딘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이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김영사 관계자는 24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23일 알라딘 측에 거래 정지 통보를 했다"며 "통보 다음날인 오늘(24일)부터 알라딘에 출고가 정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출판사들의 숙원사업이던 도서정가제 정립을 위해 대의에 동참하기로 했다"며 "출판시장의 불황으로 도서의 경쟁력이 책의 '질'이 아닌 '가격'으로 결정되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책의 질로 서로가 경쟁하는 문화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돌베개 관계자 역시 "도서정가제는 10여 년 넘게 출판계가 공들인 일이다"며 "도서 할인경쟁으로 양질의 출판사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서정가제가 입법화돼 가는 과정에 출판계와 한 마디 상의 없이 알라딘 측이 반대 성명을 내는 등의 행동을 한 것에 의아함을 느낀다"며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알라딘에 출판계 측의 강력한 의지를 전하고자 거래 정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출판사들의 '거래정지' 조치에 알라딘 측은 우선 "출판사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며 "우선 고객이 주문한 서적을 받는 것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알라딘은 지난 17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도서정가제 대폭 확대를 골자로 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성명을 게재하고 누리꾼들의 서명을 받았다.


성명을 통해 알라딘은 "책 판매가를 올려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도서정가제에는 찬성할 수 없다"며 "판매가격 통제로 출판시장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산업의 혁신을 저해하는 과보호가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알라딘은 또 "출간 18개월이 지난 구간에 대해서도 신간처럼 할인율을 10%로 제한하겠다는 도서정가제 대폭 강화법안이 지난 9일 국회에 상정됐다"며 "이번 개정안에는 '10% 할인에 마일리지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상 마일리지를 금지하는 조항까지 포함됐다"고 전했다.


알라딘 측은 "신간에 대한 할인 제한을 구간에까지 확대하면 독자의 손해는 물론이고 판매 권수 감소로 저자의 인세수입도 감소한다"며 "독자와 저자에게 돌아갈 피해는 명백한 것에 비해 일부 대형서점을 제외한 소형서점과 출판사에 돌아갈 이득은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 18개월 미만인 신간에만 할인율을 10%까지 제한하고, 18개월이 지나면 할인율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개정안은 기간에 상관없이 신간과 구간 모두에 할인율을 10%로 제한하도록 했으며 도서관에 판매하는 책도 정가제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


출판사와 온라인 서점과의 이같은 갈등에 대해 백원근 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도서정가제 논란이 20여 년 넘게 계속되는 동안 출판사들은 당사자이면서도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해왔었다"며 "그러나 근래들어 전체 출판 시장의 매출이 감소하자 출판사들이 행동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책임연구원은 "도서정가제는 고래와 새우가 함께 숨쉬는 바다, 즉 소형서점과 대형 서점의 공존을 위한 것"이라며 "도서자유가격제는 소수의 승자 독식 구조를 만들 뿐이다"고 밝혔다. 그는 또 "독자들은 일반적으로 도서정가제로 도서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오해를 한다""그러나 정가제로 판매하면 도서의 거품 가격이 빠지기 때문에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

백 책임연구원은 "한국처럼 시장규모가 작고 해외에 책을 수출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며 "비영미권 대부분의 국가들은 도서정가제를 특별법으로 정해 자국의 출판 시장 유통 질서를 보호한다"고 말했다.


또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와 서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가 다양한 책을 다양한 경로로 접할 수 있게 하는 제도"라며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독서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서정가제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펼친 부분 접기 ▲

 

 

③ '도서정가제'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글

왜 도서정가제여야 하는가? MBC 라디오 인터뷰 (2) 2013.01.24
도서정가제, 독자에게 손해인가? 이득인가?  (1) 2013.01.24
지나치게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8) 2013.01.24
완전도서정가제를 안착시킬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좌담 (8) 2013.01.23
70여 출판사, 이미 줄줄이 알라딘과 거래 정지 결정  (4) 2013.01.23
알라딘의 회원을 탈퇴한 사람들의 격려 덕분에 마음이 진정되다  (26) 2013.01.22
도서정가제에 매달리는 내 인생이 정말 서럽다  (25) 2013.01.22
도서정가제 확립을 위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개정(안) 공청회  (4) 2013.01.21
도서정가제는 1석 10조의 좋은 정책  (6) 2013.01.21
격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들은 도서정가제를 지지한다  (8) 2013.01.20

외톨이가 되어가는 알라딘  (27) 2013.01.20
알라딘에 대한 출판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14) 2013. 19.19




④ [도서정가제 찬반을 묻습니다]에 올라온 <찬성 의견> 가운데 일부 내용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1-25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작에 알라딘이나 교보문고하고 거래정지를 한 '작은 출판사'가 꽤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 출판사 책은 도매상을 거쳐 알라딘이나 교보문고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들 작은 출판사 책은 알라딘이나 교보문고에 소개되는 일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구간할인이 되어야 '독자도 책을 사'고 '작가 인세 수입이 늘어난다'는 주장은 참으로 터무니없어요.

읽을 만하기에 살 만한 책이기에 사는 책이지, 값이 싸대서 사들이는 책이란 없으니까요. 더구나, 반값할인을 해서 두 권을 판들, 작가 인세 수입이 늘어나지 않아요. 이렇게 되면, 출판사는 인터넷책방이랑 작가한테 두 차례 제살깎기를 해야 하는데, 출판사 스스로 문닫을 생각이 아니라면, 작가 인세를 깎거나 인터넷책방 출고율을 높이거나 해야겠지요.

반값할인으로 책을 판대서 유통비라든지 창고비 또한 반값으로 줄어들지 않거든요.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한 대목이 있어요. 반값할인을 해서 책을 사는 독자들은, 이렇게 해서 사들인 책으로 '스스로 사서 읽는 책'을 쓴 작가와 이 책을 낸 출판사가 제살깎기를 하면서 굶주리더라도 '즐겁게 책읽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요. 독자는 그저 '책만 사서 보면 그만'인 사람일까요. 작가는 굶고 출판사는 문을 닫아도, 독자는 그저 '책을 싸게 살 수 있으면 그만'일까요.

우리들이 정작 나눌 이야기는 '책을 사랑하는 길'일 텐데, 자꾸자꾸 엉뚱한 데로 끄달리도록 하는 요즈음 흐름 아닌가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oren 2013-01-25 10:29   좋아요 0 | URL
'책의 가치'와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에 비해, '가격'이라는 또다른 잣대 앞에 그 '가치'가 한없이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마는 현실이 참 어이가 없고 딱한 것 같아요.

교묘한 편법을 통해 '반값'에 쏟아지는 세계문학전집들은 '차마' 도저히 살 맘이 내키지 않던데, 그런 책들을 열광적으로 사들이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고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걸 사람들은 왜 모르는 걸까요?

이번 '도서정가제 강화'를 둘러싸고 알라딘이 '말도 안되는 근거들'을 내세워 알라딘 사용자들에게 '반대 서명'을 유도한 것도 속상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책만 사서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거기에 동조하는 모습들도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가격'을 무기로 '무한경쟁'을 벌인 결과 '생태계'가 복원하기 힘들 정도로까지 무너져 가고 있는데, 그걸 되살려 보자는 최소한의 장치마저 거부하겠다는 '알라딘의 주장'은 너무 '자멸적'인 듯해요.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문명의 붕괴>를 통해 '환경 파괴'는 결국 '자멸'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그토록 강조했는데도 말이지요.

'무한경쟁'을 신봉하는 미국과 영국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이 '가격 경쟁'과 '시장 원리'에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책값 문제'에 대해 엄격한 '정부 통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되살펴 봤으면 좋겠어요.

북극곰 2013-01-2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오렌님!
알라딘에서도 반대글들이 많아서 의외이기도 하고,
좀 서운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

oren 2013-01-25 11:13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반갑습니다~
알라딘의 주장이 아무리 살펴봐도 좀처럼 '당위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사마천 2013-01-2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민주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보듯.. 작은 관심과 배려에서 이루어지리라 생각됩니다 ^^

oren 2013-01-25 14:35   좋아요 0 | URL
'상생'이나 '공정한 사회'나 '경제 민주화'나 모두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얘기겠지요.

감은빛 2013-01-25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융감독원에서 재무제표까지 찾아보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여러가지 글들을 모아주셔서 읽기도 편하네요.
고맙습니다!

oren 2013-01-28 13:3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댓글이 너무 늦어 죄송하구요.

사실 온라인 서점들의 재무제표를 모두 들여다봤으면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교보문고와 인터파크는 '온·오프라인 서점'을 겸업하거나 '다른 상품'까지도 취급하는 회사들이어서 비교가능한 '온라인 서점 부문'만 따로 떼어낸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산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또 지금 현재는 2012년 재무제표에 대한 '결산'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결산을 마친 재무제표는 4월 내지 5월쯤은 되어야 확인 가능) 부득불 2011년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할 수밖에 없는 등의 여러 한계점이 있어서 포기했습니다. 또 굳이 그렇게까지 멀리 나아가봐야 무슨 소득이 있겠나 싶기도 하구요. ㅎㅎ

페크pek0501 2013-01-2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의 댓글 - 여러가지 글들을 모아주셔서 읽기도 편하네요. - 에 저도 동의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분들이 글을 썼더군요. 많아서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읽어 본 글들은
다 옳은 생각 같았어요. ^^

저는 개인적으로 영세한 출판사와 영세한 서점, 그리고 책 인세만으로 생활하는 가난한 작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책값은 다른 물건들에 비해 그 가치를 따지면 비싸지 않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oren 2013-01-28 16:37   좋아요 0 | URL
저 또한 페크님의 생각과 같아요. '책'을 다른 일반 상품들과 똑같이 취급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다함께 '공감'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그렇지 못할 때 '법'이 필요한 것이고, 그 '법'이 유명무실하여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하자는 움직임에 대해 알라딘이 덥썩 '반대 서명'부터 추진한 건 너무 '졸속'이 아니었나 싶어요.

알라딘 스스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좀 더 좋은 '대안'을 내놓으려는 시도조차 보인 적도 없고, 또 처음엔 '법 개정'에 찬성하는 의견들조차 외면한 채 '반대'부터 외쳤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뒤늦게 '엎질러진 물'을 쓸어담으려 애쓰고 있는 형국이지만, 사면초가에 다름 아닌 처지가 되고 말았지요. 알라딘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니 누구에게 하소연조차 하기 힘들게 되었고요. 참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어요.
 
문제는 언제나 '그 사소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



김영사.창비 등 줄줄이
알라딘과 거래 정지(종합)
  연합뉴스 57분전

주요 출판사들, 줄줄이 알라딘과 거래 정지  연합뉴스 2시간전

도서정가제 전쟁! 창비, 알라딘에 “책 못 줘!”  미디어오늘 5시간전

출판계-인터넷서점, 도서정가제 둘러싸고 대립 격화  전자신문 2일전

"도서정가제 강화 반대" 알라딘의 반란  한국일보 2일전

 

 * * *


'도서정가제 강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들을 보며 자꾸만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그 가운데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은 아무래도 '알라딘의 안위'에 관한 문제이다. 나는 이번 문제로 인해 알라딘이 알라딘 사용자들에게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울 듯한 '대형 사고'를 쳤다고 생각한다. 알라딘을 다소 거칠게 성토하는 분위기는 밖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알라딘 사용자들로까지 빠르게 번져가는 듯하다. [도서정가제법 강화에 대한 의견을 듣습니다]에 마련된 <찬성 의견> 가운데 벌써부터 '알라딘을 탈퇴하겠다'는 의견들도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

알라딘이 '자사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자신의 고객들에게 직접 '도서정가제 강화에 반대하는 서명'을 촉구한 일만 가지고 탓하는 게 아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법인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알라딘이 처음부터 자신의 고객들인 알라딘 사용자들에게 '어느 한 쪽 편만을 위한 서명'을 호소한 게 결정적인 잘못이었다. 알라딘 사용자라고 해서 반드시 알라딘의 입장만을 옹호해 주길 바랐다면 알라딘이 너무 순진했던 것이고, 그 반대 입장을 고의적으로든 미필적 고의로든 아예 외면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면 아무리 욕을 먹어도 별로 할 말이 없지 싶다.

뒤늦게 [반대의견] [찬성의견] [기타의견]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발빠르게 대처한 것은 옳았으나, 그래도 역시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 알라딘에서 뒤늦게나마 손수 제공한 '찬성 관련자료'를 살펴보면 굳이 알라딘이 온갖 욕을 먹으면서까지 반대할 뚜렷한 이유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도서정가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법을 시행해 오다 보니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번에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정'하자는 게 '찬성 관련자료'의 주요 내용임에 비춰보면 뭔가 이번 '강화 법안'이 알라딘에 '여간 불리한 게 아닌' 속사정이 있음을 미뤄 짐작케 한다.



※ 알라딘에서 제공한 도서정가제 찬성 관련자료

접힌 부분 펼치기 ▼

 



 

도서정가제 확립 위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 발의
도서정가제 유명무실로 신간출간 감소, 출판사 경영악화, 동네서점 폐업
최재천 의원 대표발의, 민주·새누리·진보당 문방위원 등 공동발의
 


최재천 의원이 유명무실화된 도서정가제를 확립하기 위해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소속 최재천 의원(민주통합당)은 9일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하 ‘출판법’) 제22조를 일부 개정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 법률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도종환, 윤관석, 신경민, 남경필, 강동원 의원 등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진보신당 문방위원 등이 공동발의했다.

현행법상 도서정가제는 입법취지와 다르게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규정에 의해 재판매가격유지 대상저작물의 종류와 유통범위를 제한하고 있고, 예외가 지나치게 넓게 인정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발행일로부터 18개월 미만 도서(신간도서)는 19%까지 할인이 가능하고,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경과한 도서(구간도서)와 실용서·초등학습참고서 및 국가기관 등에서 구입하는 도서는 무제한 할인이 가능함으로써 도서정가제가 유명무실해진 실정이다.

지난해 신간출간 종수는 2008년에 비해 23% 감소했고, 2012년 8월까지 출판사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1%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형서점과 유통사 폐업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8년간 서점 수는 29.3%가 줄었고, 대교 리브로가 지난해 말 폐업을 선언하는 등 온라인서점의 경영도 악화되고 있다.

개정 법률안은 제22조 제3항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9조 제2항과 관련된 부분을 삭제하고, 간행물을 판매하는 자는 정가의 10퍼센트 이내에서만 할인해 판매할 수 있도록 바꿨다. 또한 현행법 제22조 제4항에서 도서정가제의 예외로 정하고 있는 간행물 가운데 ①발행일부터 18개월이 지난 간행물, ②도서관에 판매하는 간행물, ③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종이 간행물과 내용이 같은 전자출판물을 삭제하여 이들에도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도록 했다.

최재천 의원은 “정가제 대상이 아닌 도서와 할인율이 높은 도서만이 판매되면서 신간도서 시장이 위축되고 출판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출판의 다양성이 제한되고 구매접근성이 저하되면서 독자는 값싸고 잘 팔리는 책에 편향되는 악순환이 초래되고 있다”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출판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서 불합리한 예외조항을 개정할 필요성이 크다”고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게 된 취지를 밝혔다.

최재천 의원은 또한 최근 국회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전액 삭감된 출판진흥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법률 개정에도 나설 계획이다.

 

펼친 부분 접기 ▲

 

 

나로서는 알라딘의 그 '속깊은 속사정'까지 알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다만 나는 알라딘이 참 좋은 '인터넷 서점'인 줄만 알고 11년째 변함없이 이용해 온 '애용자' 입장에서 이번 일이 몹시도 서운하고 또 속이 상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여태껏 애용해 온 알라딘이 고작 이런 회사였나 싶은 것이다.(나는 2011년 12월에 지역도서관에 기증하기 위해 429권의 책을 한꺼번에 '신간'으로 구매할 때조차 굳이 출판사를 외면하고 알라딘을 이용했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고객의 입장'은 얼마든지 무시해도 좋다는 모습을 그동안 한두 번 봐온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때마다 사태는 무사히 수습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엔 나도 좀 생각을 달리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알라딘이 언제나 제일 좋은 인터넷 서점인 줄만 알고 열심히 애용해 온 나는 어쩌면 '알라딘이 끼친 해악(?)'을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해 온 셈이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게 된다.

내가 알라딘을 포기해야 옳은지, 아니면 혹시라도 알라딘이 '도서정가제 강화 반대 입장'에서 한발 물러날 가능성은 없는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이와 같은 모든 결정들은 도박에 가깝다. '기존의 핵심 가치를 고수하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인지, 반대로 기존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면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알라딘을 떠나갔다. 그런데 그들은 대개 '자신의 입장 또는 소신'이 문제가 되었던 듯싶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알라딘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유는 '알라딘의 입장'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개별성 보다는 개연성을 띤 측면도 있다고 본다. 이번 일로 알라딘을 탈퇴하시는 분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분들의 신속한 결단력이 부럽다. 나는 좀 더 꾸물거릴 것 같다. '일단 행동을 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선택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으니까.

 * * *

 

 

 

생존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누구나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던 핵심 가치가 이제 생존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그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실과 타협해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때는 언제인가? ...... 이와 같은 모든 결정들은 도박에 가깝다. 기존의 핵심 가치를 고수하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인지, 반대로 기존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면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592쪽)

 

 

 

 

분노와 졸속

 

생각건대 분노와 졸속은 깊고 신중한 생각과 전혀 상반된 것으로, 분노는 어리석음을 동반하기 쉽고, 졸속은 조잡함과 짧은 생각을 낳기 쉽습니다. 또 토론이 실제 행동의 지침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혹은 뭔가 개인적인 이익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장래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지 않은 채 뭔가 다른 방법으로 장래의 지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그들이 사리사욕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불명예스런 일을 설득하려 하며, 좋지 않은 일에 관해 교묘하게 잘 둘러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의 반대자나 청중을 놀라게 하거나 위협하기 때문입니다.(271쪽)

 

 

 

 

햄릿(Hamlet)은 불확실한 결과 앞에서 너무 많이 주저하는 것은 나쁘다고 투덜거렸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결심의 본질적 색조가 사고의 희미한 색조로 흐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히 중요한 실행욕이 행위의 명분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일단 행동을 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선택권을 상실한다. 결과적으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결과가 불확실할수록 그만큼 지연(꾸물거림)의 가치는 커진다는 뜻이다. 햄릿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주저하는 자는 목표달성에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댓글(4) 먼댓글(2)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대의는 어디에 있을까?
    from Value Investing 2013-01-30 01:10 
    파괴적이 되어라. 다만 세상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든다는 대의는 지켜져야 한다. (니클라스 젠스트롬 스카이프 공동 창업자) * * * (출처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자료) * * *① 출판사 사장들의 얘기 도서정가제에 대한 어느 소형출판사 사장의 고민“도서정가제 안하면 작은 출판사 죽고 책 다양성 사라져”② '피라미 한 마리'로 변신한 알라딘? 혹은 여전히 불편한 진실?피라미 한 마리 살리려고 출판이 망할 수는 없다③ 음모론에 이어
  2. 빌어먹을~~
    from Value Investing 2015-12-24 23:28 
    주식시장을 오래 관찰하다 보면 가끔씩 '불안한 징후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실마리들은 기업들마다 각양각색이어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경영진의 엉뚱한 짓'을 포함하는 '느닷없는 변화'다. 그런 변화들 가운데 가끔 긍정적인 변화도 없진 않지만 대개는 '부정적인 변화'로 귀결되는 경우가 훨씬 더 흔하다. 예측 가능한 변화는 좋지만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급작스런 변화는 대개 '나쁜 조짐'으로 해석된다.
 
 
사마천 2013-01-23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율도 좋지만 많은 동네서점의 몰락을 보면 안타까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구글의 모토가 don't be evil이라고 하는데 기업이 커질수록 사회적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경제민주화는 아주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죠. 그냥 함께 가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을 거론했을 뿐입니다.
네이버를 보면 원망스러울 때가 많고 그러다가 카카오의 돌출에 환호하게 되었습니다
초창기 인터넷 산업이 태동할 때 사정과는 다르게 이제 몇 안남은 서점으로서 무언가 자신의 위치를 고민해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

oren 2013-01-24 14:34   좋아요 0 | URL
'상생'이 참 어려운가 봅니다. 특히나 좀 더 멀리 내다보며 오래도록 함께 가는 일 말입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애'를 강조한 말도 생각납니다. "기업은 그 제품과 서비스로 곧바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 기업이 가진 인간애로 더 엄격하게 평가된다."

숲노래 2013-01-24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서재에서 여러 사람이 이래저래 따지고 하니, 비로소 '여러 자료'를 알라딘에서 걸친 듯하기는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자료를 걸쳐 주지도 않았어요. 이렇게 되면, '참과 거짓을 아는' 사람들은 알라딘책방 행태를 더 속속들이 깨달으며, 조용히 떠나겠지요.

장사를 하는 일이 나쁠 까닭 없어요. 누군가를 속이면서 장사를 한다든지, 다른 이웃장사꾼을 등친다든지, 혼자만 살아남고 어깨동무할 마음이 없다든지, 이렇게 나아가면 스스로 무너지겠지요.

oren 2013-01-24 11:41   좋아요 0 | URL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알라딘'에 속는 기분 또는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가장 위험한 CEO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떠오르고, "앞이 안 보일수록 더욱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 먼 곳을 보면 경치가 선명하고 가까운 곳을 보려고 하면 배멀미가 심해진다. 나는 300년 앞을 내다보면서 사업을 해왔다."고 말했던 손정의씨의 말도 떠오릅니다.
 


알라딘 서재를 들락거리면서 최근에 저절로 듣고 보게 되는 글들은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여러 측면에서의 찬반 논쟁들이다. 이들 가운데 어느날 갑자기 툭 불거져 나온 듯한 '알라딘의 반대서명 동참 호소'를 바라보는 일은 여러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량에 속하지 않는 문제에서 어떤 명백한 입장을 취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애매한 일반성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아무튼 알라디너 입장에서는 이게 단순히 '강건너 불구경'으로만 머물지는 않을 듯한 다소 불길한 예감도 조금은 든다.

나는 '책값'에 관해서라면 오로지 '좋은 책을 적당한 값을 주고 사서 읽을 수 있기만 하다면' 충분한 줄로만 알고 지내왔다. 더군다나 나는 책을 비교적 매우 신중하게 골라 사들이는 편이라고 나 스스로 여기기 때문에 '책값'을 크게 따지지도 않는 편이다. 대개의 경우 꼭 사서 읽고 싶은 책들은 그 값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간혹 책값이 부담스러울 때가 없을 순 없다. 그럴땐 항상 '다른 재화 또는 서비스'의 가격과 비교해 보곤 한다. 그럴 경우 대개의 가치있는 책들은 사실상 그 책이 지니는 '엄청난 가치'에 비해 '책값'은 그저나 다름없다고 생각할 때조차 적지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에게 책값이 싸냐 비싸냐 하는 '체감물가'는 거의 언제나 정작 '책값'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오르내렸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니 책값이 '정가제'가 되든 말든 현재의 '나의 한가한(?) 독서생활'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일은 별로 없으리라고 여겼다. 나는 책을 사들이기 위해 그리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이 결코 아니므로.

더군다나 여태껏 책 한 권 쓰거나 번역해 본 일도 없으며 내 주위 사람들 가운데서도 '책의 출판과 유통'에 종사하는 분들이 몹시도 드문 형편이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도서정가제'의 입법 취지나 그에 대해 반대서명을 호소하는 어떤 종류의 도서 유통업체의 입장조차도 그 자세한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로서는 알라딘의 난데없는 '반대서명에 동참해 달라'는 호소를 더욱 의아한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내가 흥미와 우려를 동시에 느끼는 대목은 '반대서명 운동을 호소한 알라딘의 입장'이 과연 '알라딘 사용자'에게 적정했느냐는 점이다. 혹시라도 알라딘의 '반대서명 동참 호소'가 알라딘 사용자들에게 다소간 '우월적 지위 남용'과 같은 모습을 띄지는 않았는지 그게 궁금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자칫 알라딘이 이번 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는다면 그것도 또한 예사로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의 하나라도 '알라딘이 잘못될 경우' 나처럼 알라딘을 '매우 소중한 인터넷 공간'으로 여겨 미우나 고우나 이곳에 둥지를 틀고 '서재'를 꾸려온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지나친 기우이길 바라지만 늘 사태는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알라딘을 십 년쯤 이용하면서 느끼게 되는 건 '알게 모르게' 알라딘도 많이 변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방향성을 뚜렷이 보여준 것은 아닐지라도 몇 가지 생각나는 건 있다. 좋은 점은 더욱 좋아졌으나 좀처럼 쉽게 나아지지 않는 점들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다는 점. 가끔씩은 '기본을 심각하게 벗어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사고를 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매번 '사소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문제는 언제나 '그 사소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 문제인 것 같다. 『문명의 붕괴』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매일 댐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뿐이다.'라고 했는데, 매일 알라딘을 들락거리는 나같은 사람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싶다.

 * * *

 

매우 천천히 악화되고 있을 경우

불규칙한 변동으로 인해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 현상을 정치학자들은 '잠행성 정상 상태(creeping normalcy)'라고 부른다. 경제 문제, 교육 문제, 교통 체증 문제, 혹은 그 어떤 문제가 매우 천천히 악화되고 있을 경우 한 해의 평균 수준이 그 전 해에 비해 아주 약간 낮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힘들며, 따라서 미세하지만 한 사람이 정상(normalcy)이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매년 조금씩 변동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까지 수십 년간 계속 진행되어 어느 순간 몇십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였으며, 현재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가 사실은 악화된 상태임을 알게 되고는 갑자기 놀라게 되는 것이다.

 

'잠행성 정상 상태'와 관련 있는 또 다른 용어는 '풍경 기억 상실(landscape amnesia)'이다. 이는 변화가 매년 매우 느리게 진행됨으로써 50년 전의 풍경이 지금과는 얼마나 달랐는지 깨닫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몬태나 빙하 및 설원의 용해 현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581쪽)


 

 

내부의 척력(斥力)와 외부의 인력(引力)

바이킹이 고향을 떠나 목숨을 걸고 전쟁을 벌이거나 그린란드처럼 가혹한 환경의 땅에서 살았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수천 년을 살았던 스칸디나비아 땅을 떠나서 793년 이후에 해외로 내달린 이유는 무엇이고, 그로부터 3세기도 지나지 않아 갑자기 중단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 역사를 어떤 식으로 설명하더라도 그 이유가 내부의 '척력'(斥力, 인구 압력과 기회의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외부의 '인력'(引力, 무한한 기회와 빈 땅)이었는지, 아니면 둘 모두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영토 확장에는 인력과 척력이 동시에 작용해 왔다.

자기촉매적 확장력이 힘을 잃고 고갈될 때까지, 요컨대 획득한 이점으로 그들에게 가능한 모든 땅을 차지할 때까지 이런 연쇄 반응은 계속된다. ...... 전리품을 안고, 새로운 섬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바이킹들은 고향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따라서 더 많은 바이킹들이 더 많은 전리품을 노리고 더 많은 무인도를 찾아서 고향을 떠났다.(263쪽)

 


 

공유의 비극

이해 충돌의 한 가지 특별한 형태는 '공유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 혹은 '집단 행동의 논리(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와 유사하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나 공동 목초지에서 양을 방목하는 목동들처럼 공동으로 소유한 자원을 많은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상황을 가정해보기로 하자. 만약 모든 이들이 자원을 과다하게 소비한다면, 즉 어부가 남획을 하거나 목동들이 너무 많은 풀을 양에게 뜯게 한다면 해당 자원이 고갈되어 결국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며, 이는 모든 소비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각 소비자가 절제를 발휘하여 과다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 모든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안겨준다. 하지만 각 소비자가 가져갈 수 있는 자원의 최대량을 제한하는 등 효과적인 규제가 없다면 각 소비자는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물고기를 잡지 않거나, 내 양에게 풀을 뜯어 먹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어부나 목동이 나 대신 가져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제심을 발휘해봤자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비록 결과적으로 공유 자원이 파괴되어 모든 소비자에게 해가 될지라도, 다른 소비자가 가져가기 전에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가 된다. (585쪽)


 

 

공유의 비극을 막는 마지막 해결책

공유의 비극을 막는 마지막 해결책은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공동 이익을 인식해 스스로 현명한 자원 채취량을 설정하고, 준수하고, 강제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 1) 소비자들이 동질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을 것, 2) 그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있어 의사소통이 원활할 것, 3) 구성원 간에 공통의 미래를 공유할 수 있고 후계자에게 자원을 물려줄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을 것, 4) 스스로 치안 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을 것, 5) 소비자가 공유하는 자원의 경계가 잘 정의되어 있을 것.(587쪽)


 

 

생존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누구나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던 핵심 가치가 이제 생존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그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실과 타협해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때는 언제인가? ...... 이와 같은 모든 결정들은 도박에 가깝다. 기존의 핵심 가치를 고수하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인지, 반대로 기존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면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592쪽)


 

심리적 부인

상류 지역에 댐이 건설되어 있어 만약 댐이 무너질 경우 상당히 먼 거리의 하류에 있는 사람들까지 익사할 수 있는 좁은 강 계곡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론조사원이 댐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 댐이 무너질까봐 걱정되지 않느냐고 질문했을 때 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가 가장 낮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두려움이 커져간다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댐에서 단 몇 킬로미터 정도만 떨어져 있는 사람들, 즉 유사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심리적 부인에 있다. 매일 댐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뿐이다. (596쪽)



 * * *

 

도덕적 감정들 : 좋아함, 노여움, 감사, 동정, 죄의식, 수치

트리버스는 도덕적 감정들을 호혜주의 게임의 전략으로 보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역설계했다. ·····

'노여움anger'은 친절함의 대가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막아 준다. 착취 행위가 발견되면 당사자는 그 불쾌한 행동을 불공정한 것으로 분류하고 분노와 도덕적 공격의 욕구-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그리고 때때로 사기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벌을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노여움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노여움이 정당한 노여움, 즉 의분이라는 것이다. 격노한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었고, 그래서 부당함을 시정해야 한다고 느낀다.(621쪽)


 

 

 

신뢰의 경제적 비용

현대세계에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사회적 협동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재산권, 계약, 상법 등은 시장지향적인 현대 경제체제를 이룩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제도이지만, 이런 제도가 '사회적 자본'과 '신뢰'로 보완된다면 경제활동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한편 신뢰는 공유되는 도덕규범이나 가치를 지닌, 그 전부터 있어 온 공동체의 산물이다. ...... 이런 공동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 번 책『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동기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실제로는 합리적인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구체화임을 다소 장황하게 주장한 바 있다. ......

경제생활이 가능한 한 최상의 물질적인 풍요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승인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상호 의존성은 더욱 명백해진다. ......

경제학자 알베르트 히르쉬만은 근대 부르주아의 등장을 귀족사회의 특징인 명예에 대한 '열정'을 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인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대치시킨 '윤리적 혁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대체는 최초의 자유주의적 정치이론가 토마스 홉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홉스가 보기에 시민사회란 종교적인 열정에서든 귀족적인 허영심에서든 간에 합리적인 부의 축적에 명예에 대한 욕망을 의식적으로 종속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트러스트』 中에서


 

 

실수와 신뢰

펩시사의 회장인 크레이그 웨더는 "사람들은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들의 신뢰를 망가뜨린다면 그들로부터 신뢰를 다시 얻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를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르만 슈바르츠코프 장군은 이에 대해 더욱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지휘란 전략과 신뢰를 견고하게 혼합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전략을 포기하라."



 

 

 

정당함과 부정

사기꾼, 겁장이, 군중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빠른 두뇌와 미래에 대한 안목을 지닌 사람은 그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정직이 최선의 방안이었기에 나는 무허가 증권거래소를 제외하고는 심한 거짓에 대하여 상대하지 않았다. 큰 돈은 정당함에 있지 부정에 있지 않다.
              

 

 

 

'합리적이지만 잘못된 나쁜 행위'

'합리적이지만 잘못된 나쁜 행위(rational bad behavior)'란 '나에겐 좋지만 너,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해로운' 행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이기적'인 행위다.(584쪽)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253쪽)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

결론적으로 초우량 기업에 있어 경영의 핵심은 다른 경쟁 기업과 비교해서 그저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는 정도가 아닌 것이다. 그들의 차별성은 경영학에서 상식으로 통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을, 실제 현장에서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댓글(6) 먼댓글(2)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알라딘의 '안위'가 걱정이다
    from Value Investing 2013-01-23 19:46 
    김영사.창비 등 줄줄이 알라딘과 거래 정지(종합) 연합뉴스 57분전 주요 출판사들, 줄줄이 알라딘과 거래 정지 연합뉴스 2시간전 도서정가제 전쟁! 창비, 알라딘에 “책 못 줘!” 미디어오늘 5시간전 출판계-인터넷서점, 도서정가제 둘러싸고 대립 격화 전자신문 2일전 "도서정가제 강화 반대" 알라딘의 반란 한국일보 2일전 * * *'도서정가제 강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들을 보며 자꾸만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그 가운데 가장 신경쓰이는
  2. 아무리 생각해도 책은 '가격'보다는 '가치'에 따라 움직여야......
    from Value Investing 2013-01-25 10:38 
    며칠째 '도서정가제 강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만이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수영 실력조차 갖추지 못한 채 '도서정가제'라는 이상하고도 낯선 강물에 뛰어든 꼴이다. 책값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도서정가제 강화' 추진 움직임은 여러 이해관계와 복잡한 문제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헤쳐나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뜨거운 찬반논쟁이 그걸 반증한다고도 볼 수
 
 
숲노래 2013-01-2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마음'이라든지 '밑마음'을
으레 정치꾼한테만 바라지만,
알라딘책방 또한 스스로
'책을 다루는 일'을 하는 줄
깨달아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책을 쓴 작가,
책을 낸 출판사,
책을 읽는 사람,
알라딘책방은 이 세 갈래 사람들한테
얼마나 이야기를 듣거나 귀를 기울이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낼까 참말 궁금해요...

oren 2013-01-21 22:41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이번 일을 둘러싸고 밖으로부터든 안으로부터든 왜 비난을 불필요하게 스스로 불러일으켰는지부터 솔직하게 되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심하게 꼬인 매듭들이 여간해선 쉽게 풀리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도 좀 드네요.

페크pek0501 2013-01-2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댐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뿐이다. (596쪽)
이 글을 보니 <악령>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인간이란 늘 남에게 속기보다 스스로 자신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싶어하는 존재지요. 그리고 물론 남의 거짓말보다는 자신의 거짓말에 더욱 잘 넘어가고요. -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령>에서.

각 책에서 뽑으신 글들을 보며 감탄하는 중입니다. ^^

oren 2013-01-23 11:31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워낙 유명해서 저도 여러번 봤는데 여기서도 또 보네요. ㅎㅎ

카스피 2013-01-2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중요한것은 알라딘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점이죠.독자들을 입장에서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알라딘 입장에선 당연히 반대하는 것이겠지요.

oren 2013-01-23 11:36   좋아요 0 | URL
알라딘의 '이윤 추구'를 무작정 나무랄 순 없겠지요.
다만 이번 일로 알라딘이 너무 쉽게 빠져 들었던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한번쯤 되돌아봤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신뢰'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