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를 들락거리면서 최근에 저절로 듣고 보게 되는 글들은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여러 측면에서의 찬반 논쟁들이다. 이들 가운데 어느날 갑자기 툭 불거져 나온 듯한 '알라딘의 반대서명 동참 호소'를 바라보는 일은 여러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량에 속하지 않는 문제에서 어떤 명백한 입장을 취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애매한 일반성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아무튼 알라디너 입장에서는 이게 단순히 '강건너 불구경'으로만 머물지는 않을 듯한 다소 불길한 예감도 조금은 든다.

나는 '책값'에 관해서라면 오로지 '좋은 책을 적당한 값을 주고 사서 읽을 수 있기만 하다면' 충분한 줄로만 알고 지내왔다. 더군다나 나는 책을 비교적 매우 신중하게 골라 사들이는 편이라고 나 스스로 여기기 때문에 '책값'을 크게 따지지도 않는 편이다. 대개의 경우 꼭 사서 읽고 싶은 책들은 그 값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간혹 책값이 부담스러울 때가 없을 순 없다. 그럴땐 항상 '다른 재화 또는 서비스'의 가격과 비교해 보곤 한다. 그럴 경우 대개의 가치있는 책들은 사실상 그 책이 지니는 '엄청난 가치'에 비해 '책값'은 그저나 다름없다고 생각할 때조차 적지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에게 책값이 싸냐 비싸냐 하는 '체감물가'는 거의 언제나 정작 '책값'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오르내렸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니 책값이 '정가제'가 되든 말든 현재의 '나의 한가한(?) 독서생활'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일은 별로 없으리라고 여겼다. 나는 책을 사들이기 위해 그리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이 결코 아니므로.

더군다나 여태껏 책 한 권 쓰거나 번역해 본 일도 없으며 내 주위 사람들 가운데서도 '책의 출판과 유통'에 종사하는 분들이 몹시도 드문 형편이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도서정가제'의 입법 취지나 그에 대해 반대서명을 호소하는 어떤 종류의 도서 유통업체의 입장조차도 그 자세한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로서는 알라딘의 난데없는 '반대서명에 동참해 달라'는 호소를 더욱 의아한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내가 흥미와 우려를 동시에 느끼는 대목은 '반대서명 운동을 호소한 알라딘의 입장'이 과연 '알라딘 사용자'에게 적정했느냐는 점이다. 혹시라도 알라딘의 '반대서명 동참 호소'가 알라딘 사용자들에게 다소간 '우월적 지위 남용'과 같은 모습을 띄지는 않았는지 그게 궁금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자칫 알라딘이 이번 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는다면 그것도 또한 예사로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의 하나라도 '알라딘이 잘못될 경우' 나처럼 알라딘을 '매우 소중한 인터넷 공간'으로 여겨 미우나 고우나 이곳에 둥지를 틀고 '서재'를 꾸려온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지나친 기우이길 바라지만 늘 사태는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알라딘을 십 년쯤 이용하면서 느끼게 되는 건 '알게 모르게' 알라딘도 많이 변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방향성을 뚜렷이 보여준 것은 아닐지라도 몇 가지 생각나는 건 있다. 좋은 점은 더욱 좋아졌으나 좀처럼 쉽게 나아지지 않는 점들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다는 점. 가끔씩은 '기본을 심각하게 벗어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사고를 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매번 '사소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문제는 언제나 '그 사소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 문제인 것 같다. 『문명의 붕괴』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매일 댐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뿐이다.'라고 했는데, 매일 알라딘을 들락거리는 나같은 사람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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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천천히 악화되고 있을 경우

불규칙한 변동으로 인해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 현상을 정치학자들은 '잠행성 정상 상태(creeping normalcy)'라고 부른다. 경제 문제, 교육 문제, 교통 체증 문제, 혹은 그 어떤 문제가 매우 천천히 악화되고 있을 경우 한 해의 평균 수준이 그 전 해에 비해 아주 약간 낮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힘들며, 따라서 미세하지만 한 사람이 정상(normalcy)이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매년 조금씩 변동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까지 수십 년간 계속 진행되어 어느 순간 몇십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였으며, 현재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가 사실은 악화된 상태임을 알게 되고는 갑자기 놀라게 되는 것이다.

 

'잠행성 정상 상태'와 관련 있는 또 다른 용어는 '풍경 기억 상실(landscape amnesia)'이다. 이는 변화가 매년 매우 느리게 진행됨으로써 50년 전의 풍경이 지금과는 얼마나 달랐는지 깨닫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몬태나 빙하 및 설원의 용해 현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581쪽)


 

 

내부의 척력(斥力)와 외부의 인력(引力)

바이킹이 고향을 떠나 목숨을 걸고 전쟁을 벌이거나 그린란드처럼 가혹한 환경의 땅에서 살았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수천 년을 살았던 스칸디나비아 땅을 떠나서 793년 이후에 해외로 내달린 이유는 무엇이고, 그로부터 3세기도 지나지 않아 갑자기 중단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 역사를 어떤 식으로 설명하더라도 그 이유가 내부의 '척력'(斥力, 인구 압력과 기회의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외부의 '인력'(引力, 무한한 기회와 빈 땅)이었는지, 아니면 둘 모두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영토 확장에는 인력과 척력이 동시에 작용해 왔다.

자기촉매적 확장력이 힘을 잃고 고갈될 때까지, 요컨대 획득한 이점으로 그들에게 가능한 모든 땅을 차지할 때까지 이런 연쇄 반응은 계속된다. ...... 전리품을 안고, 새로운 섬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바이킹들은 고향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따라서 더 많은 바이킹들이 더 많은 전리품을 노리고 더 많은 무인도를 찾아서 고향을 떠났다.(263쪽)

 


 

공유의 비극

이해 충돌의 한 가지 특별한 형태는 '공유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 혹은 '집단 행동의 논리(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와 유사하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나 공동 목초지에서 양을 방목하는 목동들처럼 공동으로 소유한 자원을 많은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상황을 가정해보기로 하자. 만약 모든 이들이 자원을 과다하게 소비한다면, 즉 어부가 남획을 하거나 목동들이 너무 많은 풀을 양에게 뜯게 한다면 해당 자원이 고갈되어 결국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며, 이는 모든 소비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각 소비자가 절제를 발휘하여 과다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 모든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안겨준다. 하지만 각 소비자가 가져갈 수 있는 자원의 최대량을 제한하는 등 효과적인 규제가 없다면 각 소비자는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물고기를 잡지 않거나, 내 양에게 풀을 뜯어 먹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어부나 목동이 나 대신 가져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제심을 발휘해봤자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비록 결과적으로 공유 자원이 파괴되어 모든 소비자에게 해가 될지라도, 다른 소비자가 가져가기 전에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가 된다. (585쪽)


 

 

공유의 비극을 막는 마지막 해결책

공유의 비극을 막는 마지막 해결책은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공동 이익을 인식해 스스로 현명한 자원 채취량을 설정하고, 준수하고, 강제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 1) 소비자들이 동질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을 것, 2) 그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있어 의사소통이 원활할 것, 3) 구성원 간에 공통의 미래를 공유할 수 있고 후계자에게 자원을 물려줄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을 것, 4) 스스로 치안 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을 것, 5) 소비자가 공유하는 자원의 경계가 잘 정의되어 있을 것.(587쪽)


 

 

생존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누구나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던 핵심 가치가 이제 생존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그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실과 타협해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때는 언제인가? ...... 이와 같은 모든 결정들은 도박에 가깝다. 기존의 핵심 가치를 고수하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인지, 반대로 기존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면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592쪽)


 

심리적 부인

상류 지역에 댐이 건설되어 있어 만약 댐이 무너질 경우 상당히 먼 거리의 하류에 있는 사람들까지 익사할 수 있는 좁은 강 계곡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론조사원이 댐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 댐이 무너질까봐 걱정되지 않느냐고 질문했을 때 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가 가장 낮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두려움이 커져간다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댐에서 단 몇 킬로미터 정도만 떨어져 있는 사람들, 즉 유사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심리적 부인에 있다. 매일 댐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뿐이다. (5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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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감정들 : 좋아함, 노여움, 감사, 동정, 죄의식, 수치

트리버스는 도덕적 감정들을 호혜주의 게임의 전략으로 보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역설계했다. ·····

'노여움anger'은 친절함의 대가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막아 준다. 착취 행위가 발견되면 당사자는 그 불쾌한 행동을 불공정한 것으로 분류하고 분노와 도덕적 공격의 욕구-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그리고 때때로 사기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벌을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노여움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노여움이 정당한 노여움, 즉 의분이라는 것이다. 격노한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었고, 그래서 부당함을 시정해야 한다고 느낀다.(621쪽)


 

 

 

신뢰의 경제적 비용

현대세계에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사회적 협동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재산권, 계약, 상법 등은 시장지향적인 현대 경제체제를 이룩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제도이지만, 이런 제도가 '사회적 자본'과 '신뢰'로 보완된다면 경제활동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한편 신뢰는 공유되는 도덕규범이나 가치를 지닌, 그 전부터 있어 온 공동체의 산물이다. ...... 이런 공동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 번 책『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동기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실제로는 합리적인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구체화임을 다소 장황하게 주장한 바 있다. ......

경제생활이 가능한 한 최상의 물질적인 풍요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승인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상호 의존성은 더욱 명백해진다. ......

경제학자 알베르트 히르쉬만은 근대 부르주아의 등장을 귀족사회의 특징인 명예에 대한 '열정'을 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인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대치시킨 '윤리적 혁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대체는 최초의 자유주의적 정치이론가 토마스 홉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홉스가 보기에 시민사회란 종교적인 열정에서든 귀족적인 허영심에서든 간에 합리적인 부의 축적에 명예에 대한 욕망을 의식적으로 종속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트러스트』 中에서


 

 

실수와 신뢰

펩시사의 회장인 크레이그 웨더는 "사람들은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들의 신뢰를 망가뜨린다면 그들로부터 신뢰를 다시 얻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를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르만 슈바르츠코프 장군은 이에 대해 더욱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지휘란 전략과 신뢰를 견고하게 혼합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전략을 포기하라."



 

 

 

정당함과 부정

사기꾼, 겁장이, 군중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빠른 두뇌와 미래에 대한 안목을 지닌 사람은 그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정직이 최선의 방안이었기에 나는 무허가 증권거래소를 제외하고는 심한 거짓에 대하여 상대하지 않았다. 큰 돈은 정당함에 있지 부정에 있지 않다.
              

 

 

 

'합리적이지만 잘못된 나쁜 행위'

'합리적이지만 잘못된 나쁜 행위(rational bad behavior)'란 '나에겐 좋지만 너,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해로운' 행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이기적'인 행위다.(584쪽)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253쪽)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

결론적으로 초우량 기업에 있어 경영의 핵심은 다른 경쟁 기업과 비교해서 그저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는 정도가 아닌 것이다. 그들의 차별성은 경영학에서 상식으로 통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을, 실제 현장에서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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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의 '안위'가 걱정이다
    from Value Investing 2013-01-23 19:46 
    김영사.창비 등 줄줄이 알라딘과 거래 정지(종합) 연합뉴스 57분전 주요 출판사들, 줄줄이 알라딘과 거래 정지 연합뉴스 2시간전 도서정가제 전쟁! 창비, 알라딘에 “책 못 줘!” 미디어오늘 5시간전 출판계-인터넷서점, 도서정가제 둘러싸고 대립 격화 전자신문 2일전 "도서정가제 강화 반대" 알라딘의 반란 한국일보 2일전 * * *'도서정가제 강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들을 보며 자꾸만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그 가운데 가장 신경쓰이는
  2. 아무리 생각해도 책은 '가격'보다는 '가치'에 따라 움직여야......
    from Value Investing 2013-01-25 10:38 
    며칠째 '도서정가제 강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만이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수영 실력조차 갖추지 못한 채 '도서정가제'라는 이상하고도 낯선 강물에 뛰어든 꼴이다. 책값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도서정가제 강화' 추진 움직임은 여러 이해관계와 복잡한 문제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헤쳐나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뜨거운 찬반논쟁이 그걸 반증한다고도 볼 수
 
 
숲노래 2013-01-2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마음'이라든지 '밑마음'을
으레 정치꾼한테만 바라지만,
알라딘책방 또한 스스로
'책을 다루는 일'을 하는 줄
깨달아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책을 쓴 작가,
책을 낸 출판사,
책을 읽는 사람,
알라딘책방은 이 세 갈래 사람들한테
얼마나 이야기를 듣거나 귀를 기울이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낼까 참말 궁금해요...

oren 2013-01-21 22:41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이번 일을 둘러싸고 밖으로부터든 안으로부터든 왜 비난을 불필요하게 스스로 불러일으켰는지부터 솔직하게 되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심하게 꼬인 매듭들이 여간해선 쉽게 풀리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도 좀 드네요.

페크(pek0501) 2013-01-2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댐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뿐이다. (596쪽)
이 글을 보니 <악령>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인간이란 늘 남에게 속기보다 스스로 자신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싶어하는 존재지요. 그리고 물론 남의 거짓말보다는 자신의 거짓말에 더욱 잘 넘어가고요. -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령>에서.

각 책에서 뽑으신 글들을 보며 감탄하는 중입니다. ^^

oren 2013-01-23 11:31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워낙 유명해서 저도 여러번 봤는데 여기서도 또 보네요. ㅎㅎ

카스피 2013-01-2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중요한것은 알라딘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점이죠.독자들을 입장에서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알라딘 입장에선 당연히 반대하는 것이겠지요.

oren 2013-01-23 11:36   좋아요 0 | URL
알라딘의 '이윤 추구'를 무작정 나무랄 순 없겠지요.
다만 이번 일로 알라딘이 너무 쉽게 빠져 들었던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한번쯤 되돌아봤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신뢰'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