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 지친 영혼을 위한 여유로운 삶
피에르 쌍소 지음, 강주헌 옮김 / 공명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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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느림’은 부드럽고 치유적이며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라는 언급에 공감한다. 느림은 “나만의 속도에 맞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운명의 여신이 나를 위해 미리 정해둔 속도에 맞추어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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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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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_정민 / 김영사



을사년(1785) 봄, 이승훈과 정약전, 정약용 등이 장례원(掌禮院)앞 중인(中人) 김범우의 집에서 설법하였다. 이벽이란 자가 푸른 두건을 머리에 쓰고 어깨에 드리운 채 정 가운데 앉아 있었고, 이승훈과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삼형제와 권일신 부자가 모두 제자를 일컬으며 책을 낀 채 모시고 앉아 있었다. 이벽이 설법하며 가르치는 것이 우리 유가에서의 사제의 예법에 비하더라도 더욱 엄격하였다. 날짜를 약속해서 모인 것이 거의 몇 달이 지났으므로, 사대부와 중인으로 참석한 자가 수십 인이었다. 추조(秋曹)의 금리(禁吏)가 그 모임을 도박판으로 의심해서 들어가 보니, 대부분 낯에 분을 바르고 푸른 두건을 썼는데, 손가락을 드는 것이 해괴하고 이상했다.

_《벽위편》에 실린 이만채(李晩采)의 글


이 모임에 다산 삼형제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설법’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를테면 미사의 집전과 강론을 말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모임은 ‘을사추조적발’ 사건으로 기록된다. 명례방 집회 적발 현장에서 정작 당황한 것은 형조의 포졸들이었다. 얼굴에 분까지 바른 양반가의 자제들이 푸른 두건을 쓴 채, 푸른 제건을 한 키 큰 사내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있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십자가가 놓였고, 벽에는 이상한 서양 사내의 화상이 걸려 있었다. 포졸들은 노름판인줄 알고 덮쳤다가 싸한 현장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허둥댔다. 뭐지? 방 안의 사내들은 당황한 포졸들과 달리 도리어 침착했다. 수십 명을 줄줄이 묶어 체포하고, 현장의 이상한 물건들을 압수한 뒤 보고가 올라갔다. 이제 막 형조판서로 부임한지 며칠 되지 않았던 김화진(金華鎭, 1728~1803)은 이 일로 몹시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실로 미묘한 타이밍에 난감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붙들려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다하는 남인 명문가의 자손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평생 처음 포승줄에 묶여 와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미묘한 타이밍이라는 것은 이 무렵 《정감록(鄭鑑錄)》역모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조정은 역모 관련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상황에서, 전혀 다른 심각한 문제 하나를 더 얹을 여력이 없었다. 판서 김화진은 다산 삼형제를 포함한 수십 명의 명례방 집회 참석자들을 훈방 조치했다. 단, 장소 제공자인 김범우만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러나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숨을 죽이고 근신해야 마땅할 당사자들이, 압수해간 예수 성상과 십자가 및 책자를 돌려달라고 집단으로 형조까지 항의 방문을 한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을 주목한다. 백서(帛書)의 황사영이다. 정민 교수는 황사영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보석처럼 빛났던 소년 황사영’이라고 소개한다. 황사영의 소년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790년 9월 12일로 돌아간다. 이 날은 증광시(增廣試)가 열려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국왕 정조는 이문원(摛文院)에 납시어 합격자를 소견했다. 임금은 그들 중 70세 이상 고령 합격자 5인과 20세 이하 합격자 5명을 따로 불렀다. 그들은 임금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차례 더 시험을 치렀다. 노인은 ‘노인성(老人星)’을 제목 삼아 부(賦)를 짓고, 소년들은 ‘소년행(少年行)’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임금은 이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직접 채점했다. 황사영은 이날 16세의 최연소 합격자로 이 자리에 참석했고, 임금이 손수 점수를 매긴 두 번째 답안지로 다시 1등의 영예를 안았다. 정조는 황사영에게 “네 나이가 스무살이 넘으면 바로 벼슬길에 나와 나를 섬기도록 하라”고 명했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주요순교자약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국왕은 그를 각별히 아껴 환대의 표시로 그의 손을 잡기까지 했다. 그런 일은 이 나라에서는 이례적인 총애였다. 그 일이 있은 뒤 알렉시오(황사영)는 항상 손목에 띠를 두르고 있어야 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함부로 그의 손을 만질 수 없었다.” 임금은 그를 아껴 각별한 총애를 내렸고, 그는 감격해서 평생 어수(御手)가 닿았던 그 손목에 비단을 감았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몇 해 뒤 그는 임금 대신 천주의 길을 택했다.


황사영은 스무 살이 되던 1794년 천주교에 입교했다. 20대 초반, 그는 이미 조선 교회를 대표하는 중심인물로 자리 잡는다. 1795년 이후 천주교의 확산세가 가팔랐지만, 탄압도 만만치 않았다. 황사영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의금부의 집요한 추적에도 황사영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다 체포된 충북 제천의 배론 토굴은 현재 천주교 성지로 남아있다. 그는 이곳에서 백서(帛書)를 작성했다. 그가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백서를 본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글의 말미, 황사영이 북경 주교에게 요청한 사항 중, 교황이 중국 황제에게 편지를 써서 조선 국왕을 협박하고, 청나라가 조선을 부마의 나라로 삼아 내정을 감호(監護), 즉 감독, 보호해달라면서, 수백 척의 서양 선박에 수만 명의 군대를 끌고 와 조선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도록 강박해달라고 요청한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이 편지로 인해 천주교도는 이전 무부무군(無父無君), 패륜멸상(敗倫滅常)의 무리에서 순식간에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역모집단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것은 두고두고 천주교 박해의 근거가 되었다. 황사영은 이 백서로 인해 대역죄인(大逆罪人)이 되어 1801년에 능지처참을 당한다.


초기 교회사 연구에 매진했던 이 책의 저자 정민 교수는 1770년대 중반 이후 조선 천주교회 태동기부터 1801년 신유박해까지 길지 않은 시기를 치밀한 고증과 자료 수집으로 정리했다. 조선을 관통한 서학(천주교 또는 천주학)이 일으킨 소용돌이와 그 와중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서 살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서학의 실험은 정치사의 힘겨루기와 맞물린 톱니바퀴에 끼여 모두에게 깊은 상처만 안겼다. 서학과의 접촉과 접속은 내부의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지 못했다. 위정척사의 명분 아래 세도정치에 날개만 달아주었다. 그 결과 수많은 ‘서학죄인’의 순교의 피가 산하를 붉게 적셨다. 이 책을 한국 교회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과 천주교인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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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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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천구교 또는 천주학)이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의 여러 정황이 저자 정민 교수의 치밀한 고증과 사료수집으로 잘 정리되어있다.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역사이기도 하다. 천주교신자들의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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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역사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1
리쿤우 지음, 김택규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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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역사 | 북멘토 그래픽노블

_리쿤우 / 북멘토

원제 : 傷痕 (2012)

 

 

해묵은 감정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건드릴 수 없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중국의 전직기자이자 만화가인 저자 리쿤우는 우연히 골동품상에 들렀다가 일본인이 그린 지나정벌(支那征伐)그림을 보게 된다. 39폭의 그 그림은 컬러로 되어있었다. 그림에는 일본군, 일장기, 신식소총, 청나라군을 칼로 베는 병사 등등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명치 27(1894)에 제작된 그림이었다. 청일전쟁이 주제였다. 그리고 이런 설명도 있었다. “19세기 말 일본은 명치유신, 즉 메이지유신의 개혁을 진행하며 국가 재정의 60%를 국방비로 사용했다. 천황도 앞장서서 함선 건조에 기부했고 관리들도 그 뒤를 따랐다. (....) 그래서 1892년에 예정보다 10년 일찍 군비 강화 계획을 달성했다.” “그때 청나라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했다. 서태후는 심지어 북양(北洋, 베이양)함대에 쓸 군비로 이화원을 건축해 자신의 회갑연을 경축했다.” 그림들은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청나라군과 일본군의 전사숫자도 적혀있었다. 7개월 넘게 끈 이 전쟁은 청의 패배로 끝났다. 청나라 정부는 일본의 무력시위에 굴복해 굴욕적인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중국은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을 일본에 넘기고 배상금 2억 냥을 지불하는 한편,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했다. 이 전쟁은 중국 사회에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 정치 판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면서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 청일전쟁에 관한 과거의 그림들은 전부 중국인이 그린 거지만 이 그림은 일본인들이 그린 것이다. 둘째, 예술적 가치를 보면 백 년 전 일본 회화 속 동양과 서양 화풍의 융합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백묘(白描. 선의 강약과 굵기만으로 대상을 묘사하는 표현 수법)와 유화의 중후함이 다 있다. 세 번째, 중국과 일본 국민들에게 다 교훈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 중국인은 이걸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고, 일본인이 이걸 보면 남을 유린하면 그 결과가 어떤지 알게 될 것이라는 것. “탐욕이 클수록 빨리 몰락하는 법

 

항일 전쟁 시 사진들

 

저자 리쿤우는 뜻밖에 만난 그림을 보면서 깊은 상념에 젖어 있던 중, 골동품상으로부터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본의 중국 침략(항일전쟁을 의미한다. 중일전쟁의 중국식 명칭이다)에 관한 옛날 사진들이 있는데 보고 싶지 않냐고 물은 것이다. 골동품상에 의하면 그 사진들은 전부 일본인이 찍었다. 사진집도 있고 기념 책자도 있다. 전쟁 관련 화보집에 실린 것도 있다. 사진들은 중국 신문에서는 본 적이 없다. 아마 천장은 될 것이다. 무게만 해도 5kg이 넘는다. 그러나 그 사진들은 골동품상에게 없다. 골동품상의 스승이 갖고 있다고 한다. ,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에 붙여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며칠 후 스승이 좋아한다는 술과 담배를 사갖고 길을 나섰다. 골동품상의 스승은 쿤밍시 골동품업계의 대선배라고 한다. 해방(중국공산당이 1949년 국민당을 타이완으로 몰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 사건)전에 가게를 냈다가 해방 후에 하방으로 문을 닫았고 문화대혁명 때 또 수난을 당했다. 개혁개방(1978년 이후 덩샤오핑이 추진한 대내외적 실용주의, 자본주의 노선)때 도시로 돌아와 다시 골동품가게를 열었다. 스승은 그 일본사진들을 얻기 위해 골동품가게를 팔았다. 그러나 그 사진들을 손에 넣은 뒤로 형편이 계속 안 좋아져서 지금은 철거를 앞둔 빈민가의 낡은 월세집에 숨어 살고 있었다. 골동품상이 스승에게 양해를 얻어 그 사진들을 집밖으로 들고 나왔다. 어마어마했다. 사진의 양과 그 내용들이 저자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중국의 지도와 일본군이 탱크를 타고 전진하는 모습, 보병들의 돌격 준비, 일본장교들의 단독사진과 단체사진, 기차, 일본 육해공군, 도시와 농촌 속 일본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이 책에도 그 사진들이 적지 않게 실려 있다). 노인은 왜 그 사진들을 전 재산과 맞바꾸었을까? 그 사진들은 어떻게 그 노인과 인연이 닿았을까? 저자가 그 사진들을 만나기 몇 해 전 어떻게 알았는지 일본인들이 노인을 찾아와 고가에 그 사진들을 사 가려 했다는데 노인은 절대 못 넘긴다고 버텼다고 한다. 저자는 아마도 노인이 그 사진들을 무덤까지 갖고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집과 화보는 193777일의 루거우차오(盧溝橋)전투에서 비롯된다. 루거우차오 전투는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1931년 만주를 침략한 일본은 점차 점령지를 확대해 1937년에는 베이징 지역가지 포위했다. 당시 베이징 남서쪽 루거우차오라는 다리를 경계로 중국군과 대치중이던 일본군은 77, 자기 진영으로 중국군의 총탄이 몇 발 날아왔고 일본군 병사 한 명이 실종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루거우차오를 공격해 점령했다. 일본군이 중국에서 세를 확장시키기 위한 잔머리작전으로 짐작되는 부분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대규모 병력을 중국으로 파견해 총공격을 개시했다.

 

일본군이 남긴 사진과 자료들을 보던 저자는 어느 한 대목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1938928. ‘쿤밍(昆明)공습에 관한 기사였다. 저자는 어렸을 때 일본군의 공습으로 다리를 잃으신 장인이 생각났다. 일본군이 남긴 자료, 같은 날짜엔 일본 해군항공부대의 쿤밍공습부대의 감상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저자는 인터넷에서 기자로 재직하고 있던 1998년 쿤밍 폭격 60주년 기념일에 장인의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던 것을 다시 찾아봤다. 그 기사는 “1938년 가을, 나는 열한두 살이었다.”로 시작된다. 공습경보가 울리자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값나가는 물건을 싸서 짊어지고 대문을 걸어 잠근 뒤 피난길에 나섰다. 일본군의 대형 쌍발폭격기 9대가 민간피난민들을 향해 폭격을 시작했다. 중국 국민들을 위협해 향후 내륙을 침공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 폭격으로 일곱 식구 중 세 사람이 목숨을 잃고, 네 사람이 중경상을 입었다. 저자의 장인은 이때 한쪽 다리를 잃었다. 문화대혁명 때는 조반파가 의족 속에 적의 무선통신기를 숨기지 않았냐며 의족을 떼버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저자 리쿤우는 중국의 식민지화를 가속화한 청일전쟁과 수백만 중국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중일전쟁에 관한 4백여 장의 사진자료와 장인의 체험담을 통해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올바른 기억은 현실을 딛고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이 된다. 그 현실은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로 바뀔 것이다. 아울러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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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8-25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읽었지만.기억이ㅡ생생한, 책을 쎄인트님.리뷰로 다시.떠올리네요

쎄인트saint 2022-08-25 20:58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책이 좀 오래되긴 했지요..

mini74 2022-09-08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축하드립니다.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쎄인트saint 2022-09-08 10: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 평안하신 한가위 되셔요~^^

thkang1001 2022-09-08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aint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쎄인트saint 2022-09-08 10: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포근한 추석명절 되셔요~^^

이하라 2022-09-08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쎄인트님 축하드립니다.
추석연휴 즐거우시고 기쁜 소식 이어지시길 바라겠습니다.^^

쎄인트saint 2022-09-08 16: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추석연휴 잘 지내시고...
멋진 가을 맞이하셔요~^^

thkang1001 2022-09-08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9-08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쎄인트saint 2022-09-08 21:3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해피 추석 잘 지내셔요~^^

러블리땡 2022-09-14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쎄인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쎄인트saint 2022-09-15 09: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 평안하신 날 되셔요~^^
 
어린이 자존감 - 한번 배우면 평생 가는,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거센 카우프만.레브 라파엘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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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자부심을 갖는 것)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자질이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 자존감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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