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의 역사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1
리쿤우 지음, 김택규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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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역사 | 북멘토 그래픽노블

_리쿤우 / 북멘토

원제 : 傷痕 (2012)

 

 

해묵은 감정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건드릴 수 없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중국의 전직기자이자 만화가인 저자 리쿤우는 우연히 골동품상에 들렀다가 일본인이 그린 지나정벌(支那征伐)그림을 보게 된다. 39폭의 그 그림은 컬러로 되어있었다. 그림에는 일본군, 일장기, 신식소총, 청나라군을 칼로 베는 병사 등등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명치 27(1894)에 제작된 그림이었다. 청일전쟁이 주제였다. 그리고 이런 설명도 있었다. “19세기 말 일본은 명치유신, 즉 메이지유신의 개혁을 진행하며 국가 재정의 60%를 국방비로 사용했다. 천황도 앞장서서 함선 건조에 기부했고 관리들도 그 뒤를 따랐다. (....) 그래서 1892년에 예정보다 10년 일찍 군비 강화 계획을 달성했다.” “그때 청나라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했다. 서태후는 심지어 북양(北洋, 베이양)함대에 쓸 군비로 이화원을 건축해 자신의 회갑연을 경축했다.” 그림들은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청나라군과 일본군의 전사숫자도 적혀있었다. 7개월 넘게 끈 이 전쟁은 청의 패배로 끝났다. 청나라 정부는 일본의 무력시위에 굴복해 굴욕적인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중국은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을 일본에 넘기고 배상금 2억 냥을 지불하는 한편,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했다. 이 전쟁은 중국 사회에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 정치 판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면서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 청일전쟁에 관한 과거의 그림들은 전부 중국인이 그린 거지만 이 그림은 일본인들이 그린 것이다. 둘째, 예술적 가치를 보면 백 년 전 일본 회화 속 동양과 서양 화풍의 융합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백묘(白描. 선의 강약과 굵기만으로 대상을 묘사하는 표현 수법)와 유화의 중후함이 다 있다. 세 번째, 중국과 일본 국민들에게 다 교훈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 중국인은 이걸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고, 일본인이 이걸 보면 남을 유린하면 그 결과가 어떤지 알게 될 것이라는 것. “탐욕이 클수록 빨리 몰락하는 법

 

항일 전쟁 시 사진들

 

저자 리쿤우는 뜻밖에 만난 그림을 보면서 깊은 상념에 젖어 있던 중, 골동품상으로부터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본의 중국 침략(항일전쟁을 의미한다. 중일전쟁의 중국식 명칭이다)에 관한 옛날 사진들이 있는데 보고 싶지 않냐고 물은 것이다. 골동품상에 의하면 그 사진들은 전부 일본인이 찍었다. 사진집도 있고 기념 책자도 있다. 전쟁 관련 화보집에 실린 것도 있다. 사진들은 중국 신문에서는 본 적이 없다. 아마 천장은 될 것이다. 무게만 해도 5kg이 넘는다. 그러나 그 사진들은 골동품상에게 없다. 골동품상의 스승이 갖고 있다고 한다. ,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에 붙여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며칠 후 스승이 좋아한다는 술과 담배를 사갖고 길을 나섰다. 골동품상의 스승은 쿤밍시 골동품업계의 대선배라고 한다. 해방(중국공산당이 1949년 국민당을 타이완으로 몰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 사건)전에 가게를 냈다가 해방 후에 하방으로 문을 닫았고 문화대혁명 때 또 수난을 당했다. 개혁개방(1978년 이후 덩샤오핑이 추진한 대내외적 실용주의, 자본주의 노선)때 도시로 돌아와 다시 골동품가게를 열었다. 스승은 그 일본사진들을 얻기 위해 골동품가게를 팔았다. 그러나 그 사진들을 손에 넣은 뒤로 형편이 계속 안 좋아져서 지금은 철거를 앞둔 빈민가의 낡은 월세집에 숨어 살고 있었다. 골동품상이 스승에게 양해를 얻어 그 사진들을 집밖으로 들고 나왔다. 어마어마했다. 사진의 양과 그 내용들이 저자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중국의 지도와 일본군이 탱크를 타고 전진하는 모습, 보병들의 돌격 준비, 일본장교들의 단독사진과 단체사진, 기차, 일본 육해공군, 도시와 농촌 속 일본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이 책에도 그 사진들이 적지 않게 실려 있다). 노인은 왜 그 사진들을 전 재산과 맞바꾸었을까? 그 사진들은 어떻게 그 노인과 인연이 닿았을까? 저자가 그 사진들을 만나기 몇 해 전 어떻게 알았는지 일본인들이 노인을 찾아와 고가에 그 사진들을 사 가려 했다는데 노인은 절대 못 넘긴다고 버텼다고 한다. 저자는 아마도 노인이 그 사진들을 무덤까지 갖고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집과 화보는 193777일의 루거우차오(盧溝橋)전투에서 비롯된다. 루거우차오 전투는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1931년 만주를 침략한 일본은 점차 점령지를 확대해 1937년에는 베이징 지역가지 포위했다. 당시 베이징 남서쪽 루거우차오라는 다리를 경계로 중국군과 대치중이던 일본군은 77, 자기 진영으로 중국군의 총탄이 몇 발 날아왔고 일본군 병사 한 명이 실종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루거우차오를 공격해 점령했다. 일본군이 중국에서 세를 확장시키기 위한 잔머리작전으로 짐작되는 부분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대규모 병력을 중국으로 파견해 총공격을 개시했다.

 

일본군이 남긴 사진과 자료들을 보던 저자는 어느 한 대목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1938928. ‘쿤밍(昆明)공습에 관한 기사였다. 저자는 어렸을 때 일본군의 공습으로 다리를 잃으신 장인이 생각났다. 일본군이 남긴 자료, 같은 날짜엔 일본 해군항공부대의 쿤밍공습부대의 감상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저자는 인터넷에서 기자로 재직하고 있던 1998년 쿤밍 폭격 60주년 기념일에 장인의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던 것을 다시 찾아봤다. 그 기사는 “1938년 가을, 나는 열한두 살이었다.”로 시작된다. 공습경보가 울리자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값나가는 물건을 싸서 짊어지고 대문을 걸어 잠근 뒤 피난길에 나섰다. 일본군의 대형 쌍발폭격기 9대가 민간피난민들을 향해 폭격을 시작했다. 중국 국민들을 위협해 향후 내륙을 침공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 폭격으로 일곱 식구 중 세 사람이 목숨을 잃고, 네 사람이 중경상을 입었다. 저자의 장인은 이때 한쪽 다리를 잃었다. 문화대혁명 때는 조반파가 의족 속에 적의 무선통신기를 숨기지 않았냐며 의족을 떼버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저자 리쿤우는 중국의 식민지화를 가속화한 청일전쟁과 수백만 중국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중일전쟁에 관한 4백여 장의 사진자료와 장인의 체험담을 통해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올바른 기억은 현실을 딛고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이 된다. 그 현실은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로 바뀔 것이다. 아울러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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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8-25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읽었지만.기억이ㅡ생생한, 책을 쎄인트님.리뷰로 다시.떠올리네요

쎄인트saint 2022-08-25 20:58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책이 좀 오래되긴 했지요..

mini74 2022-09-08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축하드립니다.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쎄인트saint 2022-09-08 10: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 평안하신 한가위 되셔요~^^

thkang1001 2022-09-08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aint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쎄인트saint 2022-09-08 10: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포근한 추석명절 되셔요~^^

이하라 2022-09-08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쎄인트님 축하드립니다.
추석연휴 즐거우시고 기쁜 소식 이어지시길 바라겠습니다.^^

쎄인트saint 2022-09-08 16: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추석연휴 잘 지내시고...
멋진 가을 맞이하셔요~^^

thkang1001 2022-09-08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9-08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쎄인트saint 2022-09-08 21:3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해피 추석 잘 지내셔요~^^

러블리땡 2022-09-14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쎄인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쎄인트saint 2022-09-15 09: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 평안하신 날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