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특성상, 상반기는 참 많이 바쁘다.

 

덕분에 책도 잘 못 읽고, 서평이나 자잘한 일상글들을 쓰기도 어렵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일이 산더미니 맘에 걸려서 못 읽고, 글을 쓰려 해도 생각이 정리가 안 되니 안 써지고... 더군다나 일 할 때는 머리속이 하얗다. 일하는 데도 가끔 내가 뭘 하지? 이럴 때도 있다. 늙었나보다.. 갑자기 확 우울..해지다가도 중간 중간 쉬는 때가 오면 또 너무 좋다.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

 

정신없이 바쁘다가 어느 정도 일이 끝나가니 정신이 든다.

 

 한창 희곡 읽는 게 재미있어서 사 둔 책인데, 얇기도 하고 날도 좋아서 꺼내들었다.

 

짧지만, 여운이 길다. 내가 프랑스어를 잘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테판 츠바이크 때문에 독일어를 잘 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번엔 이 책 때문에 프랑스어를 잘 하고 싶네. 원어로 읽으면 그 느낌이 어떨까.

 

시라노가 쏟아내는 말들은 모두 아름다운 시다. 어떻게 이런 말들을 자아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한 마디 한 마디 뜻이 담기지 않은 말이 없고, 한 마디 한 마디 영혼이 담기지 않은 게 없다.

 

여주인공인 록산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저 남자들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인물은 아닌 듯 하다. 저 시대에 이 정도면...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다. 외모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사랑한다는데, 록산은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다.

 

책을 읽다보면 여주인공 대부분이 예쁘다. 아니면 똑똑하거나. 아니면 예쁘고 똑똑하거나. 게다가 착하기까지 하다. 남자 작가들의 환상인건지, 이런 여성상을 만들어 세뇌시키고 싶은건지.

 

그래도 이 책은 외모보다 아름다운 시구들에 정이 간다. 이런 말을 듣고 이런 편지를 받으면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못 견딜지도 모른다.

 

용감한 시라노. 사랑의 정령 시라노. 생각한대로 살다간 시라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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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심은 마흔 두 살이다. '나'는 스물 한 살.

어른 남자인 맥심은 '나'가 반할 만큼 멋지다. 운전도.. 넋이 나갈 만큼 잘 할 거 같다. 특히 후진...

 

정장이 잘 어울리고, 정돈된 가르마와 무심한 눈빛이 매력적인 남자. 그리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작은 몸짓만으로도, 혹은 상황만으로도 '나'가 알 것이라고 믿는 남자. 말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아~

 

내면에 불안을 품고 파도 소리에 진저리치기도 하는 여린 남자. 그래서 옆에서 안아주고 싶기도 한 남자. 그런 남자가 의지해오면 어떤 여자가 마다할까.

 

후반부에 '나'가 쓰러지자 "누가 제 아내 좀 데리고 나가주시겠습니까?"라고 할 때 진짜 멋졌다. 아아.. 제 아내를.. 그래.. 맥심 드 윈터.. 난 이미 그대에게 빠져버린 걸. 저런 남자의 시선을 받는 건 어떤 느낌일까.

 

제루샤. 그 이름이 싫어 스스로를 주디라고 부르는 그녀는 어떤 평의원의 도움으로 고아원을 탈출하여 대학에 가게 된다. 그 후원자는 학비 및 생활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자신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후훗. 로맨틱하기도 하여라. 손편지는 받아 본 사람은 다 알듯이 사람을 한껏 설레게 한다.

 

어찌됐건 우리의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진가를 알아 본 참으로 멋진 사람이다. 귀족이지만 속물이 아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혼자서 해보려는 귀여운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 주디를 너무 사랑한다. 지미 맥브라이드에게 대놓고 질투하는 모습을 그려줬더라면 더 신났을텐데.

 

 

여기, '나'나 '주디'같은 소녀가 또 있다. 너무나 유명한 제인 에어.

 

그녀는 로우드를 떠나 숀필드 저택의 가정교사로 갔다가 로체스터를 만난다. 음울한 눈빛을 가진, 음.. 내 취향은 아니지만, 어쨌든 귀족의 멋진 남자이다.

 

나이나 신분은 상관없었다. 사랑하니까. 그래서 기꺼이 그와 결혼하려 했는데, 알고보니 유부남...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 덕분에 로체스터는 나에게 미운털이 박힌 상태다. 하지만 처음 제인 에어를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만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는 아름답다. 로체스터의 상태가 어떻든 제인은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

 

레베카의 '나'가 좀 더 밧세바 같았더라면 좋았을걸. 물론 오크 역시 밧세바와 결혼하기로 하자 그녀를 '소유'한다는 느낌이 들게 행동하지만, 그래도 밧세바는 당차다. 아마 오크를 잘 설득해서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을테다. 아쉬운 게 있다면 볼드우드를 대할 때의 모습이었달까... 시대적 한계가 있겠지만, 혹은 감정적으로 무너진 상태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볼드우드.. 솔직히 그런 남자 무섭다. 트로이는 나쁜 놈이고.

 

그녀는 스스로 농장을 경영하고자 한다. 당연히 경험이나 연륜이 없으니 실패할 수도 있지. 누구는 처음부터 잘하나. 여자라서가 아니라 처음이라서 실수하는 거다. 여자라서 자신을 추켜세우고 환심 사는 말을 하는 사람을 고른 게 아니다. 누구나 그런 사람을 고를 수 있다.

 

누구든 실수하고 실패한다. 그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뒤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지.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

 

아아.. 카턴...

 

루시 마네뜨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이다. 그녀는 찰스 다네이를 만났고, 사랑했다. 다네이보다 카턴을 먼저 만나 알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네이의 심성이 훨씬 고우니 먼저든 아니든 다네이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당시 파리는 혼돈 그 자체였다. 들끓는 분노와 인간답게 살고픈 욕망, 자유롭고 싶은 갈망... 그 중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분노였다. 더 이상은 억울하게 짓밟히며 살지 않겠다는.

 

아아, 다네이는 심성이 곱고 의리 있는 사람이었다. 부당하게 잡혀 있는 예전의 하인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파리로 향했고... 자신의 장인인 마네뜨 박사가 남긴 글로 인해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리고... 카턴은 숭고한 결심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이제까지 내가 한 어떤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취하러 가는 휴식은 내가 이제까지 알던 어떤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좋은 휴식이다."(p.567)

 

 

마지막은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도 아깝지 않다는... 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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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에서 친구가 왔다. 오랜만이라 광안리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기로 했고, 가볍게 걷기로 했다.

날이 너무 좋았다. 햇살은 눈부시고-선글라스를 깜박했다-, 백사장과 해변길은 한산했다. 우리는 웃으며 걸었다. 편했다. 친구란... 그런게지.

며칠 전, 신랑이 그런다. 혼자 공연 보러 가고 하는데, 뭔가 재미가 없다고. 너가 없으니까 같이 뭔가를 할 때보다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보니까 뭘 하든 너가 없으면 안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하는데,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 그저 사랑한다는 얘기보다 훨씬 더 와 닿았다. 부부란 그런걸까... 죽는 날까지 이런 마음 변치 않았으면... 생각했다.

함께 있으면 편하고, 재미있고, 같이 있고픈 대상이 되었다는 게, 그런 대상이 있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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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게 없다지만, 요즘은 좀 많이 어렵네...

 

할 일은 산더미인데 자료가 다 안 와서 진도도 안 나가고 기일은 정해져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은데 일에 잡혀서 아무것도 못하고..ㅠㅠ

 

오늘도 텅 빈 사무실에 앉아서 밥버거 먹으면서 목운동 좀 하다가 신세한탄...

 

낮에 날씨가 참~ 좋던데.. 잠시 걸으니 봄이 온 것만 같더라.

 

이왕 이렇게 쉬는 김에 좀 더 주저리주저리 해보자면...

 

꼭 가고 싶은 콘서트가 있는데, 오늘이 예매일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열 일 제쳐두고 '참전'했다가 비참하게 패배했다.

 

바쁜 와중에 하고 싶은 일 하려니 아침부터 밤까지, 주말에도 일하는데!!

 

왜 티켓팅을 성공하지 못하는가.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은 다 뻥이었어!!!

 

  불확실성 시대를 사는 개인들의 불안이란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이 분의 말이 참 와 닿았다.

 

  컵이 흔들려 물이 찰랑거리면 컵을 붙잡으면 되지만, 컵이 놓인 탁자가 흔들리면 컵만 잡아서는 안된다고...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다.

 

  문득, 일 하느라 지치고 티켓팅에 실패한 내가 우울해졌다가 -이 분에 따르면 불안은 미래를 걱정해서, 우울은 과거의 나를 통해 현재의 나를 규정하다보니 생기는 거라고- 급 밝아졌다.

 

좋은 자리 표를 사지 못한 건... 내 탓이 아냐. 응?

 

이렇게 나를 읽어가다 보면, 내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난다.

 

나는. 남 탓을. 엄청. 잘 한다는 것.

 

어릴 때부터 겪어왔던 일들 때문인지, 나랑 동생들은 모두 남 탓 하는 병을 가지고 있다.

 

미치도록 싫은데, 가끔 나도 모르게 남 탓을 하고 만다.

 

어느 정도 고쳤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좀 더 수양이 필요한 듯 하다.

 

아니야... 완벽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내가 가진 남 탓은 완벽을 추구하다보니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으면 칭찬받지 못하니까.

 

하지만 굳이 꼭 칭찬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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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3-2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쟁 치열한 공연 경우, 티켓팅 고수들에 의하면 카드결제 노노노~ 무통장입금으로 빨리 표를 확보하고 이후 고객센터 통해서 할인되는 카드결제로 바꾼다고 하더라는^^...
요즘은 할인 많이 되는 조기 예매 시스템으로 세팅된 게 많아 정말 피곤합니다^^;

꼬마요정 2017-03-22 01:00   좋아요 1 | URL
일단 무조건 무통장으로 해야 빠르죠. 다음날 자정까지 입금 안 하면 취소 되는데, 각 사이트마다 이 취소표 잡는 경쟁도 치열하답니다. 취켓팅이라고 하죠. 인기 공연은 피 터진다고 피켓팅이라고 하구요. ㅎㅎ 근데 이번 콘서트는 플미충이라 불리는 암표상들도 개입해서 표가 순식간에 사라졌어요ㅠㅠ 십만원은 더 얹어서 팔더군요. 안 사야 없어질텐데ㅜㅜ 이들이 매크로를 이용해 표를 쓸어가니 제가 건질 표가 없었던거죠ㅜㅠ 손도 느린데ㅜㅜ

다락방 2017-03-22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은 결국 자기객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걸요. 아, 내가 이런 사람이지 이러면 안되는데.. 라고요. 칭찬받지 않아도 되고 칭찬을 받을 필요도 없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파악하고 단점을 고치려 애쓰는 부분은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며 칭찬 받아 마땅하다 생각됩니다. 꼬마요정님께 칭찬 오백개 드려요. (쓰담쓰담 궁디팡팡)

꼬마요정 2017-03-22 10:30   좋아요 0 | URL
꺄악~ 어느 누가 그랬지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ㅎㅎ 다락방님의 엄청난 칭찬에 저도 모르게 맘보 춤이 나온다는 ㅎㅎㅎ 아침부터 이렇게 기분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ㅎㅎ 힘을 내서 열심히 일해야겠어요..^^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너무 떨려서 방송이고 뭐고 못 보다가 동생의 탄핵인용! 카톡에 그제서야 크게 숨을 내 쉬었다.

한 걸음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기분에 행복하다.

오늘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싶다. 길이 길이 기리도록.

이 노래가 생각난다.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
비록 감춰져있을지라도~
함께 싸우자 하나 되어~

뮤지컬 <삼총사> 중에서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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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주말을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어서 좋습니다. ^^

꼬마요정 2017-03-10 13:10   좋아요 1 | URL
아.. 정말입니다. 촛불 집회 못 가던 주말은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는 쉴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