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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평점 :
나는 지금 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냥이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쯤 키웠던 '점복이'랑 슈퍼 앞에서 힘없이 늘어져있던 턱시도 고양이다. 점복이랑 턱시도 고양이는 모두 엄마가 어딘가로 보내버렸다. 나는 그 때부터 내가 어른이 되면 절대 절대 고양이를 품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불쌍해서 데려오면 꼭 죽을 때까지 책임질 거라고 말이다. 결혼 하기 전에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는 데 스트레스를 좀 받긴 했는데, 결혼 하고 독립하고 나서는 정말 신났다. 남편도 고양이를 좋아해서 맨날 투덜대면서도 잘 돌봐준다. 심지어 자기가 몇 마리 데려오기까지!! 그래서 우리 부부와 함께 한 고양이가 지금 있는 6마리 외에도 3마리가 더 있는데, 다들 고양이별에서 잘 지내겠거니.. 아니 그냥 아프지 않고 행복하겠거니 한다. 난 사실 반려동물이 다음 세상을 준비하든 소멸하든 뭐 어떻든 이 세상에 미련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를 잊어도 좋고, 그저 그네들이 행복한 방향으로 사후세계가 펼쳐지면 좋겠다.
결혼하기 전에 이미 남자친구였던 남편 집에 고양이를 두 마리 들였었는데(불쌍하잖아. 날이 너무 추워!! 비가 많이 온대!! 이 명목으로 두 마리가 한 집에...) 쭈쭈와 누롱이였다. 둘 다 아프다 가서 마음이 아픈데 둘이 사이가 너무 너무 좋아서 1년 터울로 갔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고양이 털 날리고 그런데 계속 키울거냐고 그러시길래, "고양이는 털짐승인데 털이 날리는 게 당연하죵!" 그랬다.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그래? 그것도 그렇네." 이러시며 더 이상 암 말씀도 안 하셨다. 나 커피 좋아해서 많이 마시는 걸 보시고 "커피 많이 마시면 탈수 온다더라." 하시길래, "네 어머니. 그래서 저 커피 한 잔 마시면 꼭 물 한 잔 마셔요." 그랬다.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아! 그렇구나." 참 좋으신 분이었다. 솔직히 울 엄마가 시어머니 좀 닮았으면 좋았을텐데...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마냥 고양이가 좋아서였다. 물론 이 책 내용이 모두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지만,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냥 고양이라서 좋았다.
총 10명의 작가들이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데, 짧지만 재밌었다.
최은영 작가님의 <임보일기>는 반려묘 '팥빵이'에 대한 추모글이자 구조한 페르시안 장모종 고양이를 입양 보내면서 이별하는 방법을 알게 된 이야기이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는 나도 조마조마하면서 읽었다. 저 페르시안 장모종은 버려진걸까? '나'는 팥빵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자 다시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을 거라고, 그 헤어짐을 견딜 수 없을 거라 여겼는데, 입양을 원하는 그 부부가 기르던 '만두'의 이야기와 구조한 페르시안 장모종 고양이를 보며 마음은 아프지만 행복한 헤어짐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층 어른스러워진 '나'가 또 다른 반려묘를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동물을 키우는 게 정말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는 걸 키우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애기 때 키우다가 털이 날린다고, 애기가 생겼다고, 시끄럽다고 등의 이유로 버리지 않았으면.
조남주 작가님의 <테라스가 있는 집>은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실제로 유성이 고양이를 키웠을지 의심스럽기도 했고. 결혼을 앞두고 구한 신혼집은 테라스가 있는 집이다. 지나가 키우는 쿠키가 좋아할만한 집인데 청첩장 정리를 하는 와중에 쿠키가 집을 나간 사실을 알게 된다. 쿠키를 잃어버린 지나는 미친듯이 고양이를 찾고, 유성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유성의 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정하고 동물을 사랑할 것 같은 인물인데 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굳이 지금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 결혼 안 했으면 했는데, 지나 역시 그랬나보다. 결혼을 미루고 쿠키를 찾고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행복하길.
나도 고양이를 잃어버린 적이 두 번이나 있어서 쿠키를 못 찾을까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나는 운 좋게 며칠만에 다 찾아서 다 잘 데려왔지만,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짠하다.
정용준 작가님의 <세상의 모든 바다>는 고양이가 인연을 찾아준 이야기라고나 할까. 설이는 아이큐는 72 이지만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다. 세상을 이해하기 어려운 지능이 아니라 세상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다.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세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그녀는 산사태로 엄마를 잃었지만, 엄마가 바다에 갔다고 믿고 있다. 아빠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엄마를 데리러 갔기에 엄마를 데리고 금방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설이는 아빠가 돌아오는 모습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다고 해서 모요 톨게이트 요금소에서 일한다. 몰락해가는 마을이라 드나드는 차량도 별로 없고 일 할 사람도 없기에 그녀는 늘 그 곳에서 엄마를 데리고 오는 아빠를 기다린다. 화물트럭기사 무운은 자신의 반려묘인 파스칼이 설이를 좋아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무운은 이제 더 이상 모요에 올 일이 없게 되자 설에게 아빠를 찾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너무나 순수하고 맑은 그녀가 무운과 파스칼과 함께 행복하면 좋겠다.
때론 사랑받은 동물이 좋은 인연을 찾아주기도 한다. 동물이 좋아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는데 그게 맞으면 좋겠다.
이나경 작가님의 <너를 부른다>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길냥이도 사랑하고 동생도 사랑하고 동물도 사랑하는 씩씩한 심유진은 좋은 사람이었다. 당찬 면도 있고, 앞날도 창창했다. 그녀가 돌보는 길냥이들 중에 그림자라는 녀석이 있는데, 그 동네 고양이들의 수호신 내지는 대장이라고나 할까. 밥을 챙겨주는 유진에게 쥐도 선물해주고, 동네 길냥이를 학대하는 인간을 응징하기도 한다고. 유진의 말은 다 믿을 수 없다고 동생인 유선이 말하기를 유진이 낚시질을 잘 한다고 했다. 몇 년동안 그녀가 그림자에 대해 썰을 풀어놓은 건 다 유선을 놀리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범인이 아무나 죽일 셈으로 골목길 의류수거함 뒤에 숨어 있다가 남자 다섯 명이 지나간 뒤 지나가는 첫 번째 여자라서 유진을 칼로 찔렀다는 떡밥은 너무한 거 아니냐고. 유진이 그림자가 복수도 해주고 신기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 건 지금 이 순간 짜잔 나타나면서 "속았지롱" 하며 유선을 놀리기 위해서라고...
약자에게 강한 분노조절장애자들 정말 혐오한다.
강지영 작가님의 <덤덤한 식사>도 마음이 아팠다. 노랑 줄무늬를 가진 엄마에게서 태어난 여섯 남매 중 고동생 점박이 고양이와 노랑 줄무늬 고양이는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고 살아남았다. 길 위에서 혐오와 싸우며 사는 삶은 춥고 배고프고 힘겨웠다. 길고양이 수명이 겨우 2~3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건 그만큼 인간이 다른 생명체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기 때문이다. 하긴 인간은 같은 인간종도 조금 다르면 혐오하고 배척하기도 하니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모두가 우호적인 것도 아니다. 노랑 줄무늬 고양이를 비롯한 그 곳에 사는 고양이들은 모두 범백에 걸렸다. 하지만 고동색 점박이인 '장수'는 동물병원 직원에게 다나에게 발견되어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다나는 장수와 함께 다니던 '나'인 노랑 줄무늬 고양이를 기억해줬다. 그렇게 구조된 장수는 '공혈묘'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남은 건 다행인걸까.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 장수에게 응원을 보낸다.
박민정 작가님의 <질주>는 어이없는 이야기이다. 단편영화 제목인 <질주>는 영화 내용도 무슨 중2병 걸린 늙은 남자 이야기이자 쓸데없는 노출신을 요구하며 자신도 모르고 못하는 일들을 남이 하기를 바라는 감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갓 성인이 된 '나'는 윤성 선배와 진혁 선배의 학기 과제인 단편영화 <토이카메라>의 배우가 된다. 나오는 사람은 '나'인 그녀와 범석 두 사람 뿐. 하지만 주인공은 잘 나오지도 않는 범석이다. 범석의 모놀로그였던, '나'가 대부분 나왔던 영화. 그들이 '나'에게 가한 폭력은 예술이란 이름으로 선배란 이름으로 관례란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아 짜증나. 정말 이런 상황은 너무 자주 일어나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일들이라 너무 짜증이 났다.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피사체로만 보고 물건 취급하고... 마치 촬영에 도움이 안 된다고 빌린 장소에 살고 있는 고양이를 치워달라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영화 망해라!!!!! 물론 그 윤성 선배란 작자의 <질주>는 주인공인 톱스타의 강간 스캔들로 망했지만.
김선영 작가님의 <식초 한 병>은 은근한 이야기이다. 하선 씨는 도시 생활도 남편과의 생활도 너무 힘들어 혼자 울 데를 찾아 뒷산 편백나무 숲에 올랐다고 했다. 산골 생활이 싫었던 남편은 몇 년 뒤 홀연히 사라졌다고. 그런 그녀 옆에는 '얌이'라는 곁을 내주지 않는 고양이가 있다. 식초 한 병 주고 샀다는 얌이는 어떻게든 얌이를 책임지고픈 사람들의 마음을 알까.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무너질 것 같은 다리를 건너 간 그 사람은 잘 지낼까. 사라질 듯 아닐 듯 삶을 이어가고 있을지... 꽃나무를 잡고 자는 고양이와 따뜻한 듯 아닌 듯 '나'를 챙겨주는 하선 씨. 삶이 살아갈 만하다고 그렇게 잘 살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멜라 작가님의 <유메노유메>는 뭔가 유쾌하고 뭔가 슬프다. 빵집 앞에서 피 흘린 채 쓰러진 유메를 구한 빵집 주인이었던 프랑스인 피에르는 빵집 손님이었던 캐나다인 조셉에게 유메를 맡겼고, 조셉은 일본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인 미애에게 유메를 맡겼다. 그 때부터 유메는 미애와 함께였다. 작고 까맣던 유메는 갑자기 사람이 되어 좋아하던 닭가슴살도 맘껏 먹고 장어 덮밥도 먹고 미애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떻게 갑자기 유메가 사람이 되었는지는 마지막에 가면 알 수 있다. 가슴 아프게도 착하고 순수한 고양이는 집사를 위해, 그녀가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렇게 나타나준다.
고양이별로 돌아간 통통이, 쭈쭈, 누롱이, 오공아... 난 괜찮아. 그러니 아팠던 거 슬펐던 거 다 잊고 너희들이 행복하면 좋겠어. 만약 내가 보고 싶다면 꿈 속으로 찾아와도 좋아. 언제든 반겨줄게.
양원영 작가님의 <묘령이백>은 말 그대로 이백 살 된 고양이 이야기이다. <바이센테니얼 맨>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몸이 기계로 대체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 고양이 이야기라고나 할까. 저승사자들 중에서 동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차사들에게 숙제 같은 고양이 묘령이백. 이백년이나 살아서 가끔 사람 말도 할 줄 아는 그 요망한(?) 고양이는 여전히 한결같이 차사들을 홀려 이승에서의 삶을 이어나간다. 묘령이백을 만든 죄로 그녀의 영혼을 회수해야 차사일을 그만 둘 수 있는 '나'는 그녀가 건강해 보여서 좋고, 사랑 받는 모습이라 좋다. 묘령천이라 불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참 한심하다란 생각을 뒤로한 채 올해도 얼굴만 보고 가는구나. 과연 고양이란.
조예은 작가님의 <유니버설 캣샵의 비밀>은 유쾌하기도 하지만 비장하기도 하다. 갑자기 고양이들이 사라졌고, '나'인 은하의 반려묘인 체다도 사라졌다. 체다를 찾아헤매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발견한 유니버설 캣샵은 기상천외한 곳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챙겨줘야했던 고양이가 사실은 유능한 사령관이라면? 우주 어딘가에 있는 고양이별에서 파견되어 지구에 살며 지구의 정보를 전송하던 체다는 본국의 호출을 받고 지구에 파견왔던 고양이들을 이끌고 자신의 행성으로 떠나려고 한다. 위험할 수도 있는 길을 가는 체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기를. 나의 염원이 닿았던 것인지 마지막 우주선이 출발하던 날 잠깐의 그 1분을 비집고 체다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우주선이 고양이들의 고향별로 출발하던 날 세계 곳곳에서 날아오르는 별똥별이 관찰되었다고.
잘 해결되어 다시 돌아와서 게으른 은하의 냥이가 되어주길, 체다야.
인간은 그런 동물이다. 아니, 그럴 수 있는 동물이다. 배신할 수 있는 동물. 자신의 배신이 온전히 약한 생명에게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 있는 동물.(9/147)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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