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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얼마 전 어떤 여배우가 자신이 4대째 이어내려오는 의사 집안 딸내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더랬다. 나는 순간 움찔했는데, 최초 양의라면 왠지 친일 행각을 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업적 같았으니까. 얼마나 집안에서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역사적 맥락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까. 씁쓸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어제'라는 제목으로 묶인 세 개의 소설이 떠올랐다.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인비인>,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 말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은 일본에 영혼을 판 히로타 마사히로의 가족사 일부를 보여준다. 1944년 '야스쿠니신사 영현께 바치는 글' 대회에서 우등을 받은 히로타 마사히로는 상으로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과 야스쿠니신사를 담은 사진 한 장을 받는다. 이 책상에는 누구도 새기지 않았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칼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밖에서 묻은 녹이 아니라 제 몸에서 오른 녹이다.'라는. 자업자득으로 귀결되는 이 말은 김아홍, 황보, 화자에 이르기까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중일지도 모른다. 문득 저 여배우를 보며 느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인비인>은 일제의 대표적인 만행 중 하나인 731부대에서 실험을 자행하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상상에서 비롯되었으나 일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고. 731부대 소속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한 요시무라 히사토와 이시이 시로가 그 실존 인물이다. 조선인이지만 일제에 충성하는 가즈오는 교토대 교수인 요시무라를 '오야지'라 부르며 따랐다. 세균학 교수였던 요시무라는 가즈오를 데리고 하얼빈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통나무라 부르며 생체 실험을 자행했다. 특히 바이러스 주입 실험을 하는데 임신한 여자가 페스트 균을 주입 받고 출산 후 즉사했다. 그녀가 낳은 아이는 '가타마리'라 불렸다. '덩어리'란 뜻이었다. 읽는 내내 드라마 <경성 크리처>가 생각났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들이 만든 생명체, 크리처나 가타마리나 모두 인격이 제거된 대상물일 뿐이었다. 듀퐁 만년필에 새겨진 이름은 자업자득, 그들이 지은 업보를 되돌려 줄 수 있을까.
세 번째 이야기는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이다. 핏줄과 문중을 끔찍이 위하는 할아버지는 TV 프로그램 <TV쇼 진품 명품>에 가보인 도검을 보내 유서 깊은 가문임을 증명하려고 했다. 고종이 하사한 검이라고 알고 있던 할아버지와 문중 어르신들에게 감별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작가가 말한 대로 청산되지 못한 친일 매국노 문제는 '가족'에게 기대고 있는 건가 싶다. 할아버지는 조부가 얼마나 자애롭고 선한 분인지 일장연설을 한다. 조선 최초의 양의이자 4대 째 의사 집안이라고 자랑하는 그 여배우의 모습이 겹쳐지는 부분이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매국노가 수치인 줄은 아는 가 보다. 애써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을 보면.
이 책은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각각 세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제가 우리가 청산하지 못한 과거 이야기라면,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이야기이다. <매일>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혹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완벽한 삶을 찾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보며 <파우스터>와 <마담 보바리>가 떠올랐는데, 무료와 권태가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사람은 항상 가지지 못한 것을 갈구하고,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모든 것에서 가벼운 삶이란 게 존재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돈이 많으니 별 짓을 다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앞선다.
<프랭크 오자와>는 마치 행운의 편지나 아마존 괴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선 이야기 <매일>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소가 바뀌어서인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경매에서 프랭크 오자와의 인생을 사게 된 채드는 갑자기 얻게 된 행운에 신이 났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삶을 얻게 된다 한들, 그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백날 인생을 바꿔봐라, 성품을 바꾸지 않으면 헛된 일이거늘. 프랭크 오자와는 채드가 그리던 다 가진 자일까, 그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윤회 (당한) 자들> 역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하다하다 윤회를 당했다고 믿고 윤회 전의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사이비의 냄새를 맡은 감독은 그 집단에 들어가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했다. 데뷔 이후 눈에 띄는 작품을 찍지 못해 잊힌 채 투명인간 같은 그는 이번 생에서 이 사이비 종교를 이용하여 다시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길 원했다. 윤회 전의 삶은 과연 완벽했을까, 그 삶을 회복한다 한들 그들은 만족할 수 있을까. 어제의 행동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만든다. 니르바남 가찬투(열반에 이르게 하소서)
내일은 SF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다. <아미고>는 <여름 기담 매운맛>에서 읽었는데, 카레 포장지 같은 책표지가 강렬했던 만큼 이야기들도 강렬했더랬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인공지능은 인간이 느끼는 의리나 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인공지능 아미고가 더 인간 같은 느낌이었고, 주인공인 인간은 좀 더 차가운 느낌이었다. 인공지능에 무감해진 인간은 감정을 잃어갈까, 주위에 인간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지쳐가는 걸까.
<#유령>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 미래에도 계속되는 무서운 이야기이다. SNS 상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영상들을 걸러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끔찍한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치료가 필요하기도 하다는 말을 들었다. '0'은 터크였는데 곧 태거로 승진할 거였다. 그런데 임신이 됐다. 태거가 된 0은 고객인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며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태그를 달았다. 이렇게 누가 지켜보면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이상해지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는데, 그건 여기서 다뤄지지는 않는다. 스키너였던가, 자신의 아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던 심리학자가.
AI나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간은 더 편리해지겠지만, 돌봄의 분야는 어떨지 모르겠다. 물리적인 돌봄은 해결될 지 모르겠으나 정서적인 돌봄은 어떻게 될까. 돌봄의 문제 뿐일까. 감정 노동 그리고 경력 단절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만연하는 혐오 표현은 여전히 집단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경계를 가르는 잣대가 될까.
마지막 이야기는 <고>다. 고는 염매와 더불어 금지된 주술 중 하나다. <이누야샤>에 나오는 나락 역시 '고'라고 할 수 있는데, 온갖 독충을 항아리에 넣어 뚜껑을 덮어두면 안에서 독충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결국 한 마리만 남게 되는데 그게 바로 '고'다. 살아남았으니 가장 강력한 독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고는 저주를 불러온다. 고를 만드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모두 액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익은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서 AI에게 고를 만들도록 시킨다. 이런 신박한 생각이라니... 탐욕에 눈이 먼 이익은 AI인 도윤을 이용한다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의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 이제 고의 주인은 누구인가. <윤회 (당한) 자들>에서 떠올렸던 문장을 여기서도 할 수 있겠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그리하여 쳇바퀴처럼 꼬리를 무는 탐욕이야말로 진정한 고의 주인일까.
더운 여름밤 역시 인간이 제일 무섭다는 생각에 으스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