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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takes a lot to change a 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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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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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그리스 신화나 설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공주가 되었다는 신데렐라 이야기도 일종의 변신이고,   마굿간에서 잠을 자던 허드렛 일꾼 소년이 복수를 위해 비바람이 치는 언덕을 떠났다가 몇 년 후에 근사한 신사가 되어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일종의 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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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한 사람을 변화시켰다는 것도 변신이라는 속성에 대한 매혹이며, 한 사람의 용기가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서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인간이 변화를 갈망하는 이유는 인간 본성이 어둡다는 데에서 오는 절망에서 비롯된 희망 사항이 아닐까 ?   나는 하루아침에 사람이 180도 변했다는 서사를 믿지 않는 편이다.   비바람 치는,  히스 꽃 피는 언덕을 떠난 허드레 일꾼 히스클리프는 겉모습만 근사하게 바뀌었을 뿐,  본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입은 검은 정장 양복만큼 그 마음도 검다.   생활에서 오는 오랜 습속과 선의와 악의가 섞인 본성과 풍진 세월을 겪느라 딱딱하게 굳은 근성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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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종교인의 간증 서사와 범죄인의 참회 서사'를 믿지 않는 쪽이다.  악인은 세월과는 관련 없이 늘 악인'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명박의 어린시절이 순수했을 거란 상상을 1도 한 적이 없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악마적 속성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가 믿었던 어린 날의 순수는 타락한 현실 속 자신을 근사하게 변명하기 위한 레트로 판타지인지도 모른다.  설령 변한다 한들, 인간은 조금씩 조금씩 변하여 먼 훗날에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고작 자신의 본성이,  근성이,  습속이 그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3도 정도의 방향타'만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게 될 뿐이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변신에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시 물거품이 되어 원상태로 돌아갈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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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금주를 실행했던 자의 결심이 딱 한 잔 술에 무너지고 30년 금연가가 빌린 담배 한 모금에 무너지듯이 변신의 다른 이면은 언제든지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복원력'이다.  영화 << 스타 탄생 >> 에서 브레들리 쿠퍼는 <  maybe it's time  > 이란 곡에서 "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it takes a lot to change a man "  라고 노래한다.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hell, it takes a lot to try.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물며 한 사람이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었던 천성을 바꾼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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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면, 연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랑의 힘이 상대방의 사소한 습속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큰 결점을 고치는 것보다 오히려 작고 사소한 습관일수록 고치기가 더 쉽지 않다. 사랑의 힘으로 상대를 변화시키겠다는 결의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과연, 사랑의 힘이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설령 많은 노력으로 오랜 습속을 바꿨다고 해도,  먹이를 주면 꼬리를 흔들며 왔다가도 이내 냉정한 얼굴로 돌아서서 달아나는 검은 개의 얼굴처럼,  바뀐 습속은 다시 원상태로 회귀하고자 하는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벽을 허물어 다시 세우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간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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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인간에 대한 환상도 사랑에 대한 환상도 모두 헛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 것. 그냥 그 사람이 가진 결점을 이해하는 방식. 그것이 사랑하는 타자에 대한 아름다운 포기가 아닐까 싶다.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브래들리 쿠퍼의 < maybe it's time > 이다.  그는 담담하게 부른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사람은 정말........ 씨발,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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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12-11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라며..
살다보니 이 문장이 맞는다는것을 증명해 보일때마다 씁쓸해지고..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1 15:42   좋아요 1 | URL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자주 오판하는 것 중 하나죠.
사랑의 힘으로 그 사람을 고쳐서 쓰겠다는 망상.....

2018-12-11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1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사람들이 ‘변신’하면서 놀고 즐기는 코스프레를 왜 좋아하지 않을까요? 이제 코스프레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었는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만화에 나올 법한 가발을 쓰고, 옷을 입는 코스프레를 싫어해요.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상대방의 변화를 낯설게 보거나 용납하지 못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심리를 가진 사람은 본인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잘 몰라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1 17:47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전 조금 다르게 생각했는데 한국인은 타인에 대한 무례한 관심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서 오히려 변화를 강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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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가 알맞게 익은 기간은 짧다. 숙성의 시간'이 지나면 알맞게 익은 김치는 이내 신 김치로 전락하고 만다. 손이 자주 갈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 다음부터는 밥상에 내놓아도 손이 가지 않는다.


시어 터진 김치는 손이 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냉장고 부피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보다 작은 김치통에 담겨 냉장고 속 구석에 박혀 있다가 이내 버려지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불꽃 같은,   숙성된 사랑은 짧다. 달콤한 연애 기간 시간이 지나면 신 김치처럼 시들어가고 점점 손이 가는 횟수도 줄어든다. 시들어진 사랑은 보다 작은 김치통에 담겨 냉장고 속 구석에 박혀 있다가 냉장고 정리를 할 때 버려지게 된다. 문제는 냉장고에 푹 익은 김치가 없을 때 발생하게 된다. 있을 때는 처치 곤란하지만 없으면 먹고 싶은 것이 시어 터진 김치다. 결 삭은 신 김치에 돼지고기 살점 넉넉히 넣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고, 비가 오면 김치 부침개도 먹고 싶다. 그리고 말린 호박에 멸치 넣고 끓인 칼칼한 김칫국도 먹고 싶다.

 

사랑도 이와 같나니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랑이 그립다. 옛 애인과의 연애 경험을 빗대서 설명하자면 가장 알맞게 숙성된 사랑은 1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이후는 무덤덤한 관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갔다. 신 맛에 입맛이 물리기도 해서 갓 담은 새 김치를 먹고 싶기도 했다. 여자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으리라. 여자는 군둥내 나는 김치에 질려서 관계의 파김치가 되었으리라.  파 ~ 이런 김치 이젠 싫어 !  어느 날, 그녀는 김치통에 담긴 나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아 밖에 버렸다. 여자는 말했다. " 이제 당신의 그 군둥내 참기 힘들어 ! "  그날, 나는 대문 밖에서 노란 쓰레기 봉투에 담긴 채 한없이 울었다. 긴긴밤,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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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마저도 날 지나쳐갔다. 저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더욱 갈기갈기 찢어주렴. 우우웅. 나는 쓰레기 청소차 탱크로리에 갇혀 난지도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쓰레기 차 안에서 탄력 없는 내 살결을 눌러보았다. 한번 들어간 결은 복원력을 잃은 채 움푹 파인 상태로 뚫렸다. 그리운 내 사랑이 나를 버렸네.         사랑은 늘 그렇다.  군둥내가 나기 시작하는 순간 달달했던 사랑도 군둥내를 풍기며 시들어지기 시작한다. 풍문으로 들었다. 젊은 남자를 만나 갓 담은 김치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아삭하며, 시큼하지만 달콤한 사랑.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사랑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는다. 갓 담은 김치 같은 사내와의 사랑은 다시 시어질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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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산길에 발길이 푹푹 빠지듯이 김치 결은 삭고 하얀 꽃이 필 거란 사실. 그리고 내 몸에서 났던 군둥내가 그 사내에게도 나리라는 사실. 군둥내가 나는 김치 냄새를 지울 방법은 없다.  김치의 회춘은 불가능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신 김치를 가지고 어떤 요리를 만드냐에 있다.  비가 오면 부침개를 만들어 먹고, 차가운 소주 한 잔 생각나면 저녁에 고기 살점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도 좋으리라.   바닥에 노릇노릇 눌러붙은 김치볶음밥도 좋다.  군둥내 난다고 함부로 버리지 마라. 당신은 단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시큼하고,  새큼하며,  달콤하고, 칼칼한 맛이었던가.  누군가에게 잘 익은 김치 같은 사내가 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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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풋풋한 세월 너머 군둥내 나는 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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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와 박근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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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가 당신을 속여도 박근혜는 결코 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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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도날드는 < 고객이 왕이다 > 를 < 고객은 일손이다 > 로 전복한 기업이다. 이 기업은 서빙 노동력(자)를 없애서 서빙 노동에 들어가는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대신에 서빙 노동을 고객에게 전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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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팔부터 걷어붙인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해서 밥상머리에서 양반다리를 하며 밥 타령이나 하던 어르신들도 주문대에서 음식을 받아오고 다 먹고 나면 테이블을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잔반 처리와 분리 작업을 한다. 평소 자신을 고객은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곳에서는 맥도날드의 일손을 거드는 1회용 서빙-노동자'일 뿐이다. 맥도날드 전략, 놀랍지 않은가 ?  맥도날드는 < 고객의 일손化 > 가 결국에는 < 고객의 이윤 > 으로 돌아간다고 선전한다. 비용 절감을 가격 절감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팔고 있는 코카콜라의 원가는 얼마일까 ? 대략 70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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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원짜리 콜라를 2000원에 팔면서 저렴한 가격에 판다는 소리는 개소리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는 이명박의 성대 모사가 필요한 지점이다. 여러분, 이거 다아 ~~~~~~~~~~~~~~~~ 거짓말인 거 아시죠 ?  그렇다면 맥도날드 매장에서 서빙 노동을 해야 했던 일손은 말 그대로 호구로 전락하고 만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은 모두 다아~~~~~~~~~~ 병신입니다.  이것이 바로 맥도날드의 기업 윤리'이다. 모든 언론은 연신내 맥도날드 사건을 고객의 갑질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본질은 맥도날드의 갑질'이다. 옛날 옛적 맥도날드가 서빙 노동력을 고객에게 전가시켰다면, 이제는 서빙 노동력과 함께 주문 노동력도 함께 고객에게 전가시켰다. 맥도날드는 고객의 주문을 받는 인력을 주문 자동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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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맥도날드 주문화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중년 남성의 불만이 갑질로 표현된 사건이 바로 연신내 맥도날드 사건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서빙 노동과 주문 노동의 몫도 고객 노동력으로 대체한다면 그 노동력에 대한 보상을 맥도날드는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  정답은 NO. 맥도날드를 이용한다는 것은 늘 불편하다. 맥도날드 매장에 배치된 플라스틱 의자는 의도적으로 고객이 오랫동안 앉아 있기 불편하도록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안한 발명품이다. 태어나서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지지해 본 적 없으나 다음 에피소드만큼은 박근혜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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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아, 하고 나서 무릎 탁, 치면 웃기잖아. 박근혜 유세단이 유세 도중 끼니를 때울 요량으로 맥도날드 매장에 들렀다고 한다. 이곳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일손이 되어야 하는 공간. 하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일손으로 산 경험이 없기에 공주는 맥도날드 시스템을 거부하고 망부석이 되었다고. 하지만 일행들이 스스로 공주의 시다바리가 되어서 그가 앉은 테이블 앞에 햄버거와 콜라 그리고 냅킨까지 세팅을 완료했다고 한다. 그래도 박근혜는 여전히 망부석. 누군가가 나서서 칼과 포크로 햄버거를 잘랐다고 한다. 그때 비로소, 박근혜는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는 에피소드(정확한 재현은 아니다 팟캐스트 방송에서 흘겨 들은 내용이다). 맥도날드의 고객 우민화 정책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명징한 정신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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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적 능력은 영구이나 맥도날드의 호구는 되지 않겠다는 결의 앞에서 나는 외쳤다. 브라보, 가시는 길에 영광 있으라.













■ 후일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 브라보, 가시는 길에 영광 있으라 ! " 라고 그네를 지지했으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 영광 > 대신 < 영어 > 의 몸이 되셨다고 한다. 인생무상을 지나 지존무상을 느낀다. 맥도날드에서조차 일손이 되기를 거부하셨던, 천민자본주의를 거부하셨던 분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식판을 받고 잔반을 처리하고 식판을 닦는 일을 손수 해야 하는 깜빵에서 생활을 하시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만...... 그래도 나는 아이조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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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신 내   맥 도 날 드   갑 질   논 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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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가 당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첫째, 노동 기술을 단순화시켜서 숙련 노동자를 고사시켰다. 이곳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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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서 내려온 매뉴얼에 따라 지시 사항을 잘 따르면 누구나 얼마든지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 이 말은 곧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 없기에 값 싼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손님에게도 일을 시킨다. 이곳에서 손님은 왕이 아니라 직원이다. 맥도날드 고객은 직접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배달하고 난 후에도 (먹고 나서) 식탁을 깨끗이 정리해야 하며,  먹고 남은 일회용품을 분리수거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맥도날드는 본사 노동력 일부를 고객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에 따른 명분은 다음과 같다. 고객의 셀프서비스로 인해 발생된 비용 절감은 제품 가격을 떨어뜨리게 되어 결국 고객의 이윤으로 돌아갑니다. 아름다운 기업,  빠라 ~ 빠랏 ↗ 빰 ! 맥도날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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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맥도날드 햄버거 가격을 두고 자신 있게 “ 싸다구 ” 말할 수 있을까 ?   매장에서 햄버거 하나 달랑 시킨 후에 컵에 수돗물 받아서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뜯는 고객은 없다. 세트 메뉴로 이것저것 시키다 보면, 주식이 아닌 부식으로 즐기기에는 결코 싼 값은 아니다.  맥도날드 햄버거가 “ 싸다구 ”  주장하다가는  정말 허리띠 졸라 맨 코주부 엄마에게 “ 싸다구 ” 맞을 수 있다.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는 결코 싼 음식이 아니다.  할인은 없다. 그렇다면 고객이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기 위해 자발적으로 행사한 자가 - 노동력’은 결국 맥도날드의 이윤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없다 ?   어려운 질문인가 ?  정답은 볼 수........................................ 있다.  네에, 그래요. 보고 싶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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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6일 포털 연관검색어를 하루 종일 장악한 단어는 “ 연신내 맥도날드 갑질 ” 이다. 연신내 맥도날드 논란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맥도날드化된 시스템 기업'의 특성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맥도날드 시스템 기업의 좋은 예는 바로 은행 자동화 창구‘이다. 옛날에는 직원이 고객과 일대일 대응으로 직접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제는 그것을 고객이 직접 처리하고 있다. 더군다나 자가 노동력 셀프서비스에 따른 보상은커녕 자동화기기 사용 수수료를 오히려 지불해야 한다. 이에 따른 이윤은 은행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인원이 절감되어 노동 강도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윤을 보는 쪽은 오로지 오너’다). 맥도날드 시스템은 높은 이윤 창출을 위해 서빙 노동자를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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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 노동을 고객에게 전가시킨다. 먹고 나서 치우지도 않고 나갔다가는 맥도날드 진상녀라는 동영상이 떠돈다. 위에서도 상기했다시피 : 맥도날드를 방문한 노동자는 자가-노동력’을 제공했으면서도 자신이 제공한 노동력을 보상받지 못한다. 또한 높은 이윤 창출을 위해 서빙 노동자를 두지 않는 본사 방침에 따라 모든 포장 제품은 일회용품이 사용하는데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도 결국은 맥도날드 이용자 몫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경향은 맥도날드화된 프랜차이즈 기업의 특징이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맥도날드화된 시스템은 매우 나쁜 시스템이다. 서빙 노동자를 없앴기에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으며 조삼모사 전략으로 고객의 노동력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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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당신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주문한 후 잔반 처리는 물론이요 분리수거까지 하고 나서 할인 없이 정가를 지불하고 식당을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호구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이제는 맥도날드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맥도날드 상술이 전혀 반갑지 않다. 서빙 노동자가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세팅하고 처리하는 옛날 시스템이 훌륭한 시스템‘이다. 연신내 맥도날도 폭행의 시발점은 자동화 기계 주문 시스템 때문이라고 한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받은 고객의 갑질을 옹호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맥도날드화된 자동 주문 시스템이 아니라 서빙 노동자가 직접 주문을 받는 시스템이었다면 이런 사태는 예방이 가능했으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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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속고 있다. 맥도날드 햄버거 가격 속에는 당신이 매장에서 피땀 흘린 수고료 할인 따위는 없다. 맥도날드 월드를 방문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호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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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리처의 <<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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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06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주문까지 기계에 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스타에선가 보았는데 나이 드신 어르신들
이 잘 모르셔서 서비스 스테이션 앞에서 발
걸음을 돌리셨다는 글을 읽고는 남의 이야기
처럼 들리지 않더군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적응하지 못할 환경
에 대한 나 자신의 모습처럼 보여서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7 14:18   좋아요 0 | URL
전 맥도날드 안 간지 10년은 된 것 같습니다.
자동화 주문 기기 디스플레이를 제가 능숙하게 처리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제는 현대화의 문맹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뭐 간단하지 않나요. 맥도날드가 혁신적이었던게
서빙 노동을 고객에게 강요한다는 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주문 노동마저 고객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격이 할인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사람들은 맥도날드 싸다고 말하는데 볼까요 ?
콜라 원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
제가 알기로는 70원 정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에 팔죠 ?
그 빵조각은 또 쌉니까 ?

이 새끼들 날강도예요..

2018-12-06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7 14:15   좋아요 0 | URL
저는 안 간지 10년은 된 것 같아서 제가 가면 정말 모르겠네요... 주문하느라 땀났지. 주문은 엉터리가 되었지. 평소 교양은 없었지. 욱했지. 에라이. 던졌지.. 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사태 말이에요.
아래 댓글처럼 주문조차 이제는 자가-노동을 제공했는데
이 주문 자가 노동을 제공한 것에 대한 값 할인이 있었나요 ? 없잖아요.
이 사태의 주범은 사실은 맥도날드 본사 시스템입니다..

시이소오 2018-12-07 0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항상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맥도날드및 셀프시스템은 노동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노동력까지 착취합니다. 정말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어요. 소비자의 노예화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7 14:13   좋아요 0 | URL
이 문제에는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주문을 받는 직원을 자동화 기계로 대체한 것인데 중년들은 이 시스템이 낯설어서 다루기 편치 않죠. 다시 말해서 맥도날드 고객은 주문까지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것도 자가-노동이죠. 그렇다면 주문 자가 노동에 대한 가격 할인은 이루어졌나 ? 아니거든요.. 이거완전히 생양아치 전략입니다. 이 사건의 발단이기도 해요..
 








왕년과 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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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이래 봬도 왕년(往年)엔 잘 나갔어! " 자주 듣는 소리이다. 주로 꾀죄죄한 남성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섹시한 구석이라고는 눈 뜨고도 찾을 수 없는 외모를 갖춘 꼰대들이 왕년으로 돌아가면 섹스 판타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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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것과 섹스한 것은 다른 차원이나 이들은 이것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냥 왕년에는 잘 나갔다고 한다, 믿을 수밖에 !  반면에 성공한 사람들은 왕년을 회상할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에 방점을 둔다. 이처럼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는 왕년을 다른 식으로 호명한다. 내가 보기엔 전자도 밥맛이고 후자도 밥맛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왕년을 호출하지 않는 편이다.  나란 사내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요요요용 ~                        잠시 삼천포로 빠지자. 백인과 흑인 간 인종 갈등이 극심했던 1960년대,  미국에서 인종 차별 문제를 놓고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80%의 백인은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설문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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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지 않은가 ?  최근의 설문 조사도 다르지 않다. 백인 절반 이상이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한술 더 떠서 흑인보다 백인에 대한 나쁜 편견이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응답했다. 백인은 자신이 그동안 누렸던 특권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이 누렸던 특권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버클리대 폴 피프 교수는 학생들을 갑과 을로 나눈 다음에 모노폴리 게임을 하게 했다. < 갑 > 은 을보다 두 배의 돈을 가지고 시작하고 < 을 > 은 갑보다 1/2 적은 돈을 가지고 시작하게 했다. 시작부터 갑이 유리한 게임인 것이다. 여기어 덧대 갑은 출발선을 통과할 때마다 두 배의 돈을 받고 을은 1/2 수준의 돈을 받았다. 누가 봐도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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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피프 교수는 게임이 끝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갑에 속했던 학생들은 이길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 전략을 써서 이겼는가에 대해서만 열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특권을 누린 자는 자신이 누렸던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심리 실험이 있다.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자 필립스와 라워리 교수는 백인 실험 대상자를 A와 B로 나눠 A와 B 그룹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  그리고 B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이 질문을 던지기 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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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다수 사회과학자는 학업, 거주지, 의료 서비스, 구직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혜택을 받고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B에 속한 백인 실험 대상자는 A 그룹에 속한 백인 실험자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더욱 힘들고 어려웠다고 강조한다. 백인이 흑인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한 결과이다. 이것을 두고  `불우한 어린 시절 효과(Hard-knock life effect)`라고 부른다. 이 실험을 진행한 연구진에 내린 결론은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지적을 일종의 위협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 파란만장, 아따 시바 졸라 개고생한 왕년의 서사 >> 를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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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온갖 특혜를 받으며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펼쳤으면서 말이다. 성공한 사업가가 왕년을 호출할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를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한국 여성들이 성불평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한국 남성들이 군대 이야기로 반격을 시도하는 이유도 바로 이 심리와 맥락이 동일하다. 내가 시바.... 군대에서 이등병 때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 이런 나에게 누가 돈을 던지냐. 나와라, 쌍년들아 !  이 말속에는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누렸던 특혜를 감추기 위한 교묘한 전략이 숨어 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구질구질한 변명인가. 입만 열었다 하면 군대와 왕년 이야기를 하는 사내는 대부분 후줄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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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은 거개가 건달이다. 눈빛도 건달이고, 걸음걸이도 건달이며, 밥 먹을 때도 건달이다. 철학자 김영민의 지적이다. 내 글에 대해 굳이 예의를 갖춰 반박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단호하게 응답할 것이다. 닥쳐, 시발놈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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