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김치다






                                                                                                                   김치가 알맞게 익은 기간은 짧다. 숙성의 시간'이 지나면 알맞게 익은 김치는 이내 신 김치로 전락하고 만다. 손이 자주 갈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 다음부터는 밥상에 내놓아도 손이 가지 않는다.


시어 터진 김치는 손이 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냉장고 부피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보다 작은 김치통에 담겨 냉장고 속 구석에 박혀 있다가 이내 버려지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불꽃 같은,   숙성된 사랑은 짧다. 달콤한 연애 기간 시간이 지나면 신 김치처럼 시들어가고 점점 손이 가는 횟수도 줄어든다. 시들어진 사랑은 보다 작은 김치통에 담겨 냉장고 속 구석에 박혀 있다가 냉장고 정리를 할 때 버려지게 된다. 문제는 냉장고에 푹 익은 김치가 없을 때 발생하게 된다. 있을 때는 처치 곤란하지만 없으면 먹고 싶은 것이 시어 터진 김치다. 결 삭은 신 김치에 돼지고기 살점 넉넉히 넣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고, 비가 오면 김치 부침개도 먹고 싶다. 그리고 말린 호박에 멸치 넣고 끓인 칼칼한 김칫국도 먹고 싶다.

 

사랑도 이와 같나니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랑이 그립다. 옛 애인과의 연애 경험을 빗대서 설명하자면 가장 알맞게 숙성된 사랑은 1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이후는 무덤덤한 관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갔다. 신 맛에 입맛이 물리기도 해서 갓 담은 새 김치를 먹고 싶기도 했다. 여자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으리라. 여자는 군둥내 나는 김치에 질려서 관계의 파김치가 되었으리라.  파 ~ 이런 김치 이젠 싫어 !  어느 날, 그녀는 김치통에 담긴 나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아 밖에 버렸다. 여자는 말했다. " 이제 당신의 그 군둥내 참기 힘들어 ! "  그날, 나는 대문 밖에서 노란 쓰레기 봉투에 담긴 채 한없이 울었다. 긴긴밤,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길고양이마저도 날 지나쳐갔다. 저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더욱 갈기갈기 찢어주렴. 우우웅. 나는 쓰레기 청소차 탱크로리에 갇혀 난지도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쓰레기 차 안에서 탄력 없는 내 살결을 눌러보았다. 한번 들어간 결은 복원력을 잃은 채 움푹 파인 상태로 뚫렸다. 그리운 내 사랑이 나를 버렸네.         사랑은 늘 그렇다.  군둥내가 나기 시작하는 순간 달달했던 사랑도 군둥내를 풍기며 시들어지기 시작한다. 풍문으로 들었다. 젊은 남자를 만나 갓 담은 김치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아삭하며, 시큼하지만 달콤한 사랑.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사랑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는다. 갓 담은 김치 같은 사내와의 사랑은 다시 시어질 것이고,

눈 덮인 산길에 발길이 푹푹 빠지듯이 김치 결은 삭고 하얀 꽃이 필 거란 사실. 그리고 내 몸에서 났던 군둥내가 그 사내에게도 나리라는 사실. 군둥내가 나는 김치 냄새를 지울 방법은 없다.  김치의 회춘은 불가능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신 김치를 가지고 어떤 요리를 만드냐에 있다.  비가 오면 부침개를 만들어 먹고, 차가운 소주 한 잔 생각나면 저녁에 고기 살점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도 좋으리라.   바닥에 노릇노릇 눌러붙은 김치볶음밥도 좋다.  군둥내 난다고 함부로 버리지 마라. 당신은 단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시큼하고,  새큼하며,  달콤하고, 칼칼한 맛이었던가.  누군가에게 잘 익은 김치 같은 사내가 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이미 풋풋한 세월 너머 군둥내 나는 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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