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 기생충 >> 에서의 근세에 대하여







                                                               영화에서 " 지하실 : 지하 공간 " 은 대부분 은폐된 악덕이 사는 공간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 사이코 >> 에서 지하실은 아들이 죽은 어머니의 백골을 숨긴 장소이다. 배우 안소니 퍼킨스이 연기한 나약한 아들은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죽은 망령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 채 살인을 대리하는 캐릭터다. 그는 어머니라는 타자의 욕망을 실천하는 집행자'이다. 하지만 죽은 어머니라는 망령의 명령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청이기에 결국은 아들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아들은 어머니라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영화 << 기생충 >> 에서도 지하 공간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지하 인간, 근세(박명훈 분)는 박사장이 지하실에 가둔 자신의 원초적 욕망, id(이드)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이다.  박사장이 사회화 과정에 성공한 " 부르주아-자아 " 라면 근세는 구순기 이후의 사회화 과정에 실패한 " 원초적 본능(무의식의 욕망) " 에 가깝다(구순기 고착).  공갈 젖꼭지를 물고 바나나를 주식으로 삼는다는 캐릭터 설정은 그가 이유식에 머무는 갓난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퇴행이 아니라 고착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박사장이 사회에서 성공한 자아를 대표한다면 근세는 성공한 자아의 이드'이다. 자아와 이드의 대립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투쟁이다. 영화 << 기생충 >> 은 그것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시각화했을 뿐이다. 근세라는 캐릭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부호의 사용이다. 모스 부호는 점과 선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언어의 기표라기보다는 약호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라캉의 사유를 빌리자면 근세는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 진입에 실패한 채 상상계에 머문다. 이 영화가 인디언 패티쉬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인디언은 문자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 


공갈 젖꼭지, 바나나 이유식, 언어 습득 실패(옹알이)의 상징성을 종합하면 근세는 생후 6개월~18개월 사이의 어린아이'이다. 상상계가 언어와 주체가 형성되기 이전 무질서하고 불안정한 욕망이 들끓는 무의식의 세계이자 법과 규범의 지배에서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계적으로 사회화 과정을 학습하지 못한 채, 판도라 상자가 열리자마자 용수철처럼, 불쑥 야외 파티장에 튀어나온 근세에게 성문법의 질서에 순응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부르주아적 애티튜드에 익숙한 박사장에게 있어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근세는 자신의 쌍생아이자 


지킬 박사의 하이드이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nothing 이다. 근세는 인식의 세계로 뛰쳐나와 칼을 휘두른다. 물론 이 학살은 계획에 없는 일이다. 무의식의 다른 이름은 무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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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No.1243 : 2020.02.25 - <기생충> 스페셜 에디션
씨네21 편집부 지음 / 씨네21(주간지)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                               


기  생  충  과    화  엄   :










시각적 쾌락 너머 











- < 화엄 Majestic Splendor, 1997 > 이불









기 98마리의 물고기가 투명 비닐백에 담겨 미술관 전시실 벽에 걸려 있다. 바늘 달린 비즈 구슬( and 스팽글)이 물고기 몸에 촘촘히 박혀 있다.  그 무엇보다 화려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전시된 생선은 썩기 시작하고 이내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어제보다는 오늘의 전시가 더욱 고약한 악취를 발산한다.  설상가상 미술관은 악취를 감추기 위해 방향제와 탈취제와 향수를 살포한다.  악취와 향수가 겹쳐지는 순간,  더욱 고약한 악취로 되돌아온다.  은폐가 오히려 확산의 주범이 된다. 전시의 종착역은 명약관화하다.  생선의 몸은 결국 물과 휘발성 기체로 변하고 결국에는 뼈와 싸구려 인조 장식품들만 남는다. 설치 미술 작가 이불(LEE BUL)의 의도는 분명하다. 플라스틱 꽃으로 화장한 물고기의 시각적 쾌락 너머 썩어가는 몸의 후각적 본질을 보라 !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되었다가 악취로 인해 며칠 만에 강제 철거된 설치 미술 작품 << 화엄 Majestic Splendor >> 이야기'다1)


작가의 고백에 따르면   :    비즈 공예에 사용되는 구슬은 작가가 어릴 때 어머니가 부업으로 구슬백 만드는 일을 한 것에서 출발했다. 이 작품에 사용된 " 구슬 " 이라는 오브제는 가난한 여성에게는 생계 수단이지만 부유층에게는 부의 표식이었다. 또한 그것은 살의 비천함을 감추기 위한 코르셋이기도 하다. 영화 << 기생충 >> 을 다루면서 이불의 << 화엄 >> 을 소환하는 이유는 냄새라는 키워드로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 작품이라는 공통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작품은 욕망과 억압 그리고 폭로'라는 구조의 유사성 때문이기도 하다. 


기택(송강호 분) 가족에게 있어서 박사장 가족은 자신들이 욕망(하는 판타지의 재현)의 투사'이다. 그러므로 기택 가족은 박사장 가족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캉의 말을 빌리자면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7년 전 구상한 제목이 원래는 << 데칼코마니 >> 였다는 점은 " 나의 욕망은 곧 타자의 욕망 " 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영화에서 짜빠구리 못지않게 회자되었던 것은 박사장 집 인테리어 소품-들'이었다. 쓰레기통 가격은 250만 원이었고, 식탁 테이블 가격은 500만 원이었으며, 의자는 2500만 원짜리 소품이었다고 ??!!!!     바로 이 소품들은 << 화엄 >> 에서 죽은 물고기의 살을 파고들었던 바늘 달린 구슬이다. 


250만 원짜리 쓰레기통 소품은 시각적 쾌락을 극대화한 바늘 달린 플라스틱 오브제이면서 비천한 몸(본질)을 감추는 코르셋'이다. 우리는 흔히 지하실에 갇혀 사는 근세 가족과 기택 가족을 동일한 계급의 연장으로 보지만 사실 근세의 페르소나는 기택이 아니라 박사장'에 더 가깝다. 식구(食口)의 사전적 의미가 "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 이라는 점에서 근세는 박사장의 식구이자 동거인이며 불쑥 튀어나온 이드'이다. 그것은 박사장 집 지하실에 가둔 박사장의 리비도(무의식)'이다.  그렇다면 냄새의 주체는 누구인가 ?  당연히 그 냄새의 주체도 박사장이다. 


박사장은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코를 막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것이다. 냄새의 출현으로 인하여 기택이 깨닫는 것은 자신이 리스펙했던 타자의 정체다. 기택은 미쳐 날뛰는 근세의 사회화된 캐릭터가 박사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                   



1)   화엄 , 1997  :  이 작품은 죽은 생선을 구슬과 시퀸(sequin) 등 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비닐에 담아 벽을 빽빽하게 채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물고기들이 부패하는 과정을 작업의 과정으로 삼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선들은 부패하였고 비닐 속에는 생선 썩은 물이 고였으며 썩는 냄새는 온 미술관을 덮었다. 뉴욕현대 미술관은 전위적인 작품의 경연장이라 할 만큼 엽기 적인 소재의 작품도 흔히 전시를 하는 곳이나 이불의 [화엄]만큼은 그들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급기야 작품은 전시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철거되었다. 현대 미술은 썩은 생선이든 그 어떤 재료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반증적으로 보여준 전시이기도 했다. 생선의 몸은 결국 물과 휘발성 기체로 변했고 싸구려 인조 장식품들만 남았는데, 생선은 여성의 육체를 장식품으로 간주되는 한국 문화에서의 여성성을 함축적으로 의미한다. 그녀가 생선을 화려하게 꾸며 작품을 제작한 모티브는 유년시절 어머니가 가내 수공업으로 시퀸을 붙여 장식하는 수출용 가방을 만들었던 기억으로부터 연유되었다. 시퀸은 경제 발전에 공헌한 한국 여성의 값싼 노동력의 상징이고, 썩어가 는 생선은 몸 바쳐 희생하는 여성의 미덕과 그를 당 연시하고 강요하는 사회적인 관습에 대한 반기로서 작용한다. 노동으로 장식된 생선을 통해서 계급과 젠더에 있어서의 한국 여성의 환상과 무상함을 표상하려 하였다(채드웍 2006).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페미니스트이냐?” 라고 질문 하면 “과거에는 그랬으나 지금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페미니즘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 자신의 작품을 국한되고 한정되게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 음식을 소재로 한 현대 여성미술가의 작품 연구, 나정기 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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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여러 양상'에 대하여









숙대 레디칼 페미니스트의 트랜스젠더 A 씨 입학 반대 사태를 두고 리버럴 페미니스트가 성급하게 " 저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 라고 손절했을 때 꽤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새끼이듯이, 저 혐오의 페미니즘도 결국에는 페미니즘의 한 분파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혐오를 경계하되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나에게 서프러제트 운동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숙대 레디칼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것은 " 성깔의 모순 " 이라고 지적했는데,  나는 이 레디칼 페미니스트의 지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레디칼 페미니즘과 서프러제트 운동을 동일한 성향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익명이 보장되는 대자보라는 방식을 통해서 말로써 소수자를 혐오하는 폭력 방식과 여성 참정권을 위해서 몸으로 싸웠던 서프러제트의 폭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일까 ?   레디칼 페미니즘은 " 급진적 - " 이라기보다는 " 근본주의 - " 에 가깝다.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뽑힌 스티븐 핑커의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를 읽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욕을 한 적이 있다. 이웃 여러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욕을 하면 그 욕은 뭣이다 ?! 그렇습니다. 쌍욕'입니다.                  나는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쌍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그의 주장은 인간 본성은 원래 폭력적인데 역사와 과학의 진보로 인하여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폭력이 감소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온갖 통계 자료를 끌여들여서 폭력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감소했기에 현대는 폭력의 시대가 아니라 평화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은 폭력의 양상이다. 옛날에는 총과 칼로 사람을 죽여서 땅과 재산을 탈취했다면 현대는 합법적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예를 들면 노조의 복직 투쟁으로 인해 다시 복직한 노동자의 책상을 화장실 앞에 두고 그 어떤 일도 시키지 않는 사측의 평화로운 관용은 폭력적인가, 비폭력적인가 ?  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몽둥이로 뒤통수 때리는 것보다 이 행위가 더 폭력적이다. 과거에 비해 폭력이 감소하는 이유는 선한 천사의 숭고한 승리 때문이 아니라 폭력의 양상이 다른 얼굴로 둔갑을 했기 때문이다. 신체를 살해하는 방식보다 효과적인 것은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인격을 살해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진보의 결과가 아니라 진화의 결과다, 보다 더 나쁜 쪽으로 ! 스피븐 핑커는 팩트를 수집해서 나열한 후, 그것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이 과학적이라고 말한다.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라는 데 동의한다. 집이 돌로 지어지듯 과학은 사실로 이루어지니까. 그러나 돌로 쌓아 올렸다고 해서 반드시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실을 모았다고 해서 반드시 과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앙리 푸앵카레의 말씀이시다. 핑커야, 좀...... 새겨 들어 !










무시와 방관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창조한, 심박한, 대따 훌륭한 폭력의 방식이다. 옛날에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망치와 도끼, 총과 칼(혹은 몽둥이와 회초리 따위)을 들었지만 지금은 무시와 방관이 그 무엇보다도 폭력적인 도구가 되었다.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타격감과 상해 강도는 매우 높은 도구이다. 영화 << 기생충 >> 에는 눈에 보이는 폭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존재한다. 전자는 근세와 기택의 폭력이고 후자는 박사장(이선균)의 폭력이다. 죽어가는 두 사람(기정, 근세) 앞에서 코를 막고 인상을 쓰는 박사장의 비폭력적인 얼굴은 그 무엇보다 비인간적인 얼굴이며 폭력적인 얼굴이다. 그가 기택 가족과 근세 가족에게 보인 폭력의 이름은 무시'이다. 






영화 << 기생충 >> 이 부르주아 개인의 은밀한 무시와 방관을 다룬 영화라면 << 세월호 >> 는 국가라는 주권의 은밀한 무시와 방관을 다룬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국민의 S.O.S 요청에 대하여 국가가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막고 팔짱을 낀 채 무시와 방관으로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결과이다. 폭력의 방식이 역사를 관통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했듯이 국가의 지배 방식 또한 국민을 억압하는 쪽에서 방치하는 쪽으로 변했다. 이 시대에 주권의 역할은 국민을 보호,탄압,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모호한 곳에 두는 것이다. 팽목항은 한국의 아우슈비츠이자 관타나모 포로 수용소'다. 스피븐 핑커의 논리대로라면 박근혜가 침몰하는 세월호에 대해 보인 무시와 방관은 비폭력적 애티튜드'에 해당된다. 스티븐 핑커가 사이비 과학자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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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박에 줄 긋기 ?!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A씨 사건에서 레디칼페미니스트 집단이 A씨의 법대 입학을 반대하며 내세웠던 논리는 <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것은 아니다 > 라는 프레임이다. 쉽게 말해서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고 해서 XY 남성 염색체가 XX 여성 염색체로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A씨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A씨는 여성이 아니라 여장남자로 남성의 여성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정반대 상황을 연출해 보자. 여성 B는 성전환 수술을 해서 남성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격투기 선수였던 B씨는 성전환 수술을 해서 남성이 되었지만, 법원으로부터 성별 정정 허가를 받지 못해 법적으로는 여성이어서, 숙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면 레디칼페미니스트 단체는 B를 남성이 아닌 남장여인으로 여성의 남성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기에 B씨의 입학을 허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2  히틀러와 아우슈비츠 그리고 레디컬페미니스트 

유대계 독일인은 법적으로는 명백히 독일 국민이었으나 히틀러는 유대계 독일인을 독일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대인이 속지주의에 의해 독일인으로 신분 세탁을 했다고 해서 생물학적으로 유대인이 독일인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는 유대인이 독일 사회를 위협하기에 독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유대인을 추방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대인과 독일인의 생물학적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우생학과 골상학을 바탕으로 유대인을 타자로 명명했다. 그리고는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한다는 포고령을 선포한다. 결국 유대계 독일인은 국가의 주권 폭력에 의하여 난민 상태에 놓이게 된다. 조르주 아감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외상태에 놓인 호모사케르'이다. 난민이 된다는 것은 법의 보호로부터 제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종착역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아우슈비츠는 독일 지명이 아니라 폴란드 지명이다. 유대인은 독일에서 학살당한 것이 아니라 독일에서 추방된 폴란드에서 학살당했다). 숙대 트랜스젠더 A씨 사건도 이와 유사하다. A씨는 법적으로 명백히 숙대 학생이었으나 레디컬페미니스트에 의해 생물학적 차이를 이유로 여대라는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러니까 레디컬페미니스트는 나치의 방식으로 A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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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2-11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치는 장애인도 학살했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2-11 14:23   좋아요 0 | URL
하긴... 유대인보다 더 큰 학살은 장애인과 집시였죠..

2020-02-11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2-11 14:23   좋아요 1 | URL
대자보를 붙인 단체의 주장을 요약하면 : ˝ 성별은 임의로 바꿀 수 없으며, 여대는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공간이기에 트랜스잰더의 입학을 반대한다 ˝ 는 것인데, 이러한 억지주장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배제와 추방의 방식으로 공격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나치는 유대인에 대하여 ˝ 속지주의에 의하여 유대인이 독일 국민이 되었으나 출생(본적)은 임의로 바꿀 수 없으며, 독일은 오로지 게르만 민족을 위한 공간이므로 유대인을 쫓아내야 한다 !! ˝
 






1 교육과 언어 


국가 교육 때문에 국민의 언어 능력이 파괴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언어가 파괴된다고 ?!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가 다 있나. 그런데 지금은 그 우려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현대인이 높은 학력 수준에 비해 어휘력이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언어 사용 능력이 가장 탁월하다는 스웨덴은 8세 이하의 아동에게 언어 학습을 금지한다고 한다).  지금은 언어 능력이 떨어지는 차원이 아니라 언어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준말의 영역을 떠나서 초성만으로  나열된 신조어가 SNS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 ㅇㄱㄹㅇ " 은 " 이거 레알 ? " 의 초성 버전이다. 초성만 가지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냐고 반문할 이도 있겠으나 요즘 젊은이는 초성만으로 이루어진 문자질에 매우 익숙하다. << 90년생이 온다 >> 의 저자 임홍택은 이러한 극단적 언어 축약을 90년생의 특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는 이 문자질을 볼 때마다 국가 교육이 언어 능력을 파괴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그의 심미안에 감탄하게 된다. 그가 바로 이반 일리치'다. 당신이 언어에 대해 뭘 아슈 ? _ 라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 그 질문은 목구멍 속으로 삼키는 것이 좋다. 이반 일리치는 12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 천재였다. " ㅇㄱㄹㅇ ? " " ㅇㅇ ! "  역사 이래로 가방 끈이 가장 길다는 한국인은 점점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 초성만으로도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표현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고 편협하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현상의 임계점이 " 먹방 " 이다. 먹방이 언어에 의한 의미 전달을 거부한 채 의성어(쩝쩝거리는 소리)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언어를 제거한 채 감탄사(신음소리)에 집중하는 포르노와 닮았다는 점에서 먹방은 푸드포르노'다. 







2 페미니스트와 트랜스잰더


변희수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한 후 여군으로 복무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여군은 쌍수를 들고 환영 반대했다. 함께 생활하는 데 불편하다는 것이다. 인권보다 편리에 방점을 찍은 발언이다. 인권이고 나발이고 내가 생활하는데 불편한 것에는 쌍수를 들어 반대를 한다는 논리'이다. 참 좆같은 주장이다. 노동자가 노동자 권리를 위하여 파업을 했을 때 그 파업으로 인해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노동자의 파업권을 지지해야 하듯이 우리는 변희수 하사의 욕망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잰더 학생에 대하여 학내 레디컬페미니스트 집단에서 트랜스잰더 학생의 입학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나는 페미니스트를 열렬히 지지했으나 이번 일에 대해서는 쌍욕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다. 소수자가 소수자를 억압하는 방식이 정말 좆같다. 하여튼 나는 변희수 하사의 여군 복무를 희망하고, 숙명여대 입학한 학생의 분홍분홍한 여대 생활을 왕창 지지한다. 같이 삽시다. 지랄하지 마시고......


P.S 이 글을 작성하고 나서 1시간 후 숙대 트랜스젠더 합격생 결국 입학 포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그녀는 << 숙대 등록 포기에 부쳐 >> 라는 글에서 " 내 몇 안 되는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두려웠다 " 고 고백했다.



숙대 등록 포기에 부쳐

내게도 일상은 있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특별하지 않은 삶을 견뎌낸다. 꿈이 있고, 삶의 목표가 있으며, 희망이 있다. 그러니 내 삶은 남들에게 확인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가고자 하는 당연한 목표, 그 속의 꿈 조차 누군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고, 조사의 대상에 불과하다. 또한,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마저 빼앗겼다.


얼마 전 서점을 다녀왔다. 더는 볼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수험서를 다시금 뒤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금 수험서를 사러 와야만 했던 이유는, 올해 수능 점수에 불만족 해서도 아니고, 법전원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법전원이 설치된 대학 학부로 진학하는 것이 유리하다던 말을 들어서도 아닌, 작금의 사태가 무서워서였다. 내 몇 안 되는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두려웠다.


서점을 가는 길에는 전철을 탔었다. 전철역의 계단 앞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나는 사회적 다수자였고, 다양한 색으로 도배된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세 가지 색각을 전형적으로 지닌 나는 다수자였다. 그 누구도 항상 사회적 다수자일 수는 없으며, 그 누구도 항상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 사람 모두는 소수인 측면과 다수인 측면을 다층적으로 쌓아나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자신을 늘 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약자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을 늘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면에서는 강자일 수도 있음을 잊고, 다른 약자를 무시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고에서는 혐오만 재생산될 뿐이다.


나는 서점 나들이를 정말 좋아한다. 그 다양한 의견의 각축장을 통하여, 보다 나은 의견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떠한 근거를 갖는지를 찾아보는 행위가 재미있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숙한 사람에게 있어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이 되어야지, 무자비한 혐오여서는 안된다. 이러한 혐오는 진정한 문제를 가리고, 다층적인 해석을 일차원적인 논의로 한정시킨다. 이러한 무지를 멈추었을 때만,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이해하고,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의 일상을 보호해 주기를,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그런 길 만이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제 바람에 공감해주시고 지지를 보내주신 여러 개인, 단체에 감사를 표한다. 만약 그분들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연약한 개인은 쉬이 지치고야 말았을 것이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주시는 여러 사람들께 감사를 표한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일상은 일상일 수 있다.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또 감사한다.



2020. 02. 07.

하나의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이 되었음을 바라보며.

PS. 저를 지지해 주신 여러분께 일일이 감사의 말씀 전하지 못하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연대의 정신 잊지 않고, 또 다른 곳에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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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


믿음 교회 담임목사 K는 전국의 청년 교인을 대상으로 < 청년 크리스천 대회 > 를 개최했다. 청년 다윗으로 뽑힌 1인은 우승 상금으로 1000만 원을 받는다. 그해 대상인 청년 다윗 수상자로는 믿음 교회 담임목사 K의 첫째 아들이 선정되었다. 뭐, 그렇다고 치자. 담임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가재미 눈으로 그의 믿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믿슙니까 ? 넵 !!!!!!  그런데 다음해 청년 크리스천 대회에서도 청년 다윗 수상자로 K의 둘째 아들이 선정되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이라고 믿었던 신도들도 이제는 입장을 바꿔 < 가재는 게 편 >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주)문학사상과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최근 10년 동안,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 중에서 6명이 문예지 < 월간 문학사상 > 에 작품을 발표했다. 월간 문학사상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이상문학상 대상을 차지할 확률은 60% 다. 반면에 문학사상과 경쟁 관계에 놓인 대형 출판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 창작과비평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0% 다. 왜냐하면 최근 10년 동안 대형 출판사를 통해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윤이형의 < 첫 번째 두 번째 고양이..... > 도 << 월간 문학사상 11 >> 에 발표한 작품이었다. 누가 봐도 내 식구 챙기기 아닐까.  오구오구 내 새끼, 우쮸쮸 !  윤이형 작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 적어도 문단에서 밥 먹고 사는 이라면 문단 돌아가는 꼴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 ?  윤이형의 절필 선언문이 괘씸한 이유는 작가들의 금전적 불이익에만 분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절필을 선언하면서 부당함과 불공정함에 항의를 했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 태도로 일관했었던 이상문학상 심의 과정의 부당함과 불공정함에 대해서는 왜 항의를 하지 않는 것일까 ? 그리고 작가들은 왜 침묵하는 것일까 ? 프랑스 공쿠르상 상금은 고작 10유로(14,000원)이다. 돈으로 권위를 사지 않고 액수로 명예를 치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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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중 여섯 작품이 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이 내놓는 문예지 월간 문학사상에 게재된 작품이었다. 문학사상에 게재된 작품이 아닌 대상 수상작은 2012년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2011년 세계의 문학 봄호), 2013년 김애란 작가의 ‘침묵의 미래’(대산문화 2012년 겨울호), 2014년 편혜영 작가의 ‘몬순’(한국문학 2013년 12월호), 2015년 김숨 작가의 ‘뿌리 이야기’(작가세계 2014년 여름호) 등 네 작품뿐이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중에서는 4편이 월간 현대문학에 게재됐던 작품이었다. 대형 문학 출판사가 출간하는 주요 문예지에 게재된 작품에서 수상한 사례가 드문 것도 특징이다. 지난 10년간 계간 문학동네·계간 창작과비평·계간 문학과사회 등 주요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중·단편 중 수상한 사례가 있었는지 조사한 결과, 이상문학상 수상작 중에는 단 한 작품도 없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중에는 2018년 김성중 작가의 ‘상속’(문학동네 2017년 가을호)이 전부였다.

- 깜깜이 문학상, 그들만의 리그인가.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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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2-0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이형 작가의 절필과 관련된 다른 시각의 글이네요.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2-10 17:22   좋아요 0 | URL
절필을 선언하신 분이 왜 그렇게 트위터에 수많은 글을 쓰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cyrus 2020-02-08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후에 레드스타킹 단톡방에 어느 분이 트랜스젠더 합격생이 숙대 입학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기사를 공유했어요. 이 소식을 접하면서 슬프다고 느낀 멤버들이 많았어요.

‘레드스타킹’은 급진 페미니스트 단체명이에요. 대구 페미니즘 독서 클럽 이름도 이 ‘레드스타킹’에서 따온 것이에요. 이름만 ‘레드스타킹’이지 모임에 나오는 멤버들 모두 퀴어 페미니스트에 가까워요. 그렇다 보니 예전에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 워마드 회원(그 사람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워마드라고 공개했어요)이 메시지로 시비를 건 적이 있었어요. 시비를 건 이유가 웃겨요. 모임의 전체적인 진행 분위기는 ‘퀴어 페미니즘’에 가까운데 왜 모임명은 급진 페미니즘의 상징에 가까운 ‘레드스타킹’을 어딜 감히 함부로 쓰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페미니즘을 다시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더군요... ㅎㅎㅎㅎ

멤버들은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어요. 저는 그 워마드 회원이 학문의 계보를 따지는 것을 좋아하고 잘난척하는 남자들의 행동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2-10 17:22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레디컬은 마치 자신의 전유물이어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면 화가 나는가 봅니다..

다다 2020-02-08 0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를 참칭한 쓰레기들 머지않아 망할 겁니다. ‘여성기‘ 숭배 컬트집단을 누가 두려워하랴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0-02-10 17:22   좋아요 0 | URL
컬트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