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육과 언어 


국가 교육 때문에 국민의 언어 능력이 파괴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언어가 파괴된다고 ?!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가 다 있나. 그런데 지금은 그 우려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현대인이 높은 학력 수준에 비해 어휘력이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언어 사용 능력이 가장 탁월하다는 스웨덴은 8세 이하의 아동에게 언어 학습을 금지한다고 한다).  지금은 언어 능력이 떨어지는 차원이 아니라 언어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준말의 영역을 떠나서 초성만으로  나열된 신조어가 SNS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 ㅇㄱㄹㅇ " 은 " 이거 레알 ? " 의 초성 버전이다. 초성만 가지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냐고 반문할 이도 있겠으나 요즘 젊은이는 초성만으로 이루어진 문자질에 매우 익숙하다. << 90년생이 온다 >> 의 저자 임홍택은 이러한 극단적 언어 축약을 90년생의 특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는 이 문자질을 볼 때마다 국가 교육이 언어 능력을 파괴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그의 심미안에 감탄하게 된다. 그가 바로 이반 일리치'다. 당신이 언어에 대해 뭘 아슈 ? _ 라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 그 질문은 목구멍 속으로 삼키는 것이 좋다. 이반 일리치는 12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 천재였다. " ㅇㄱㄹㅇ ? " " ㅇㅇ ! "  역사 이래로 가방 끈이 가장 길다는 한국인은 점점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 초성만으로도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표현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고 편협하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현상의 임계점이 " 먹방 " 이다. 먹방이 언어에 의한 의미 전달을 거부한 채 의성어(쩝쩝거리는 소리)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언어를 제거한 채 감탄사(신음소리)에 집중하는 포르노와 닮았다는 점에서 먹방은 푸드포르노'다. 







2 페미니스트와 트랜스잰더


변희수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한 후 여군으로 복무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여군은 쌍수를 들고 환영 반대했다. 함께 생활하는 데 불편하다는 것이다. 인권보다 편리에 방점을 찍은 발언이다. 인권이고 나발이고 내가 생활하는데 불편한 것에는 쌍수를 들어 반대를 한다는 논리'이다. 참 좆같은 주장이다. 노동자가 노동자 권리를 위하여 파업을 했을 때 그 파업으로 인해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노동자의 파업권을 지지해야 하듯이 우리는 변희수 하사의 욕망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잰더 학생에 대하여 학내 레디컬페미니스트 집단에서 트랜스잰더 학생의 입학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나는 페미니스트를 열렬히 지지했으나 이번 일에 대해서는 쌍욕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다. 소수자가 소수자를 억압하는 방식이 정말 좆같다. 하여튼 나는 변희수 하사의 여군 복무를 희망하고, 숙명여대 입학한 학생의 분홍분홍한 여대 생활을 왕창 지지한다. 같이 삽시다. 지랄하지 마시고......


P.S 이 글을 작성하고 나서 1시간 후 숙대 트랜스젠더 합격생 결국 입학 포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그녀는 << 숙대 등록 포기에 부쳐 >> 라는 글에서 " 내 몇 안 되는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두려웠다 " 고 고백했다.



숙대 등록 포기에 부쳐

내게도 일상은 있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특별하지 않은 삶을 견뎌낸다. 꿈이 있고, 삶의 목표가 있으며, 희망이 있다. 그러니 내 삶은 남들에게 확인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가고자 하는 당연한 목표, 그 속의 꿈 조차 누군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고, 조사의 대상에 불과하다. 또한,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마저 빼앗겼다.


얼마 전 서점을 다녀왔다. 더는 볼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수험서를 다시금 뒤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금 수험서를 사러 와야만 했던 이유는, 올해 수능 점수에 불만족 해서도 아니고, 법전원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법전원이 설치된 대학 학부로 진학하는 것이 유리하다던 말을 들어서도 아닌, 작금의 사태가 무서워서였다. 내 몇 안 되는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두려웠다.


서점을 가는 길에는 전철을 탔었다. 전철역의 계단 앞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나는 사회적 다수자였고, 다양한 색으로 도배된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세 가지 색각을 전형적으로 지닌 나는 다수자였다. 그 누구도 항상 사회적 다수자일 수는 없으며, 그 누구도 항상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 사람 모두는 소수인 측면과 다수인 측면을 다층적으로 쌓아나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자신을 늘 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약자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을 늘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면에서는 강자일 수도 있음을 잊고, 다른 약자를 무시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고에서는 혐오만 재생산될 뿐이다.


나는 서점 나들이를 정말 좋아한다. 그 다양한 의견의 각축장을 통하여, 보다 나은 의견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떠한 근거를 갖는지를 찾아보는 행위가 재미있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숙한 사람에게 있어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이 되어야지, 무자비한 혐오여서는 안된다. 이러한 혐오는 진정한 문제를 가리고, 다층적인 해석을 일차원적인 논의로 한정시킨다. 이러한 무지를 멈추었을 때만,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이해하고,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의 일상을 보호해 주기를,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그런 길 만이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제 바람에 공감해주시고 지지를 보내주신 여러 개인, 단체에 감사를 표한다. 만약 그분들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연약한 개인은 쉬이 지치고야 말았을 것이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주시는 여러 사람들께 감사를 표한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일상은 일상일 수 있다.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또 감사한다.



2020. 02. 07.

하나의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이 되었음을 바라보며.

PS. 저를 지지해 주신 여러분께 일일이 감사의 말씀 전하지 못하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연대의 정신 잊지 않고, 또 다른 곳에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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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


믿음 교회 담임목사 K는 전국의 청년 교인을 대상으로 < 청년 크리스천 대회 > 를 개최했다. 청년 다윗으로 뽑힌 1인은 우승 상금으로 1000만 원을 받는다. 그해 대상인 청년 다윗 수상자로는 믿음 교회 담임목사 K의 첫째 아들이 선정되었다. 뭐, 그렇다고 치자. 담임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가재미 눈으로 그의 믿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믿슙니까 ? 넵 !!!!!!  그런데 다음해 청년 크리스천 대회에서도 청년 다윗 수상자로 K의 둘째 아들이 선정되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이라고 믿었던 신도들도 이제는 입장을 바꿔 < 가재는 게 편 >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주)문학사상과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최근 10년 동안,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 중에서 6명이 문예지 < 월간 문학사상 > 에 작품을 발표했다. 월간 문학사상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이상문학상 대상을 차지할 확률은 60% 다. 반면에 문학사상과 경쟁 관계에 놓인 대형 출판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 창작과비평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0% 다. 왜냐하면 최근 10년 동안 대형 출판사를 통해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윤이형의 < 첫 번째 두 번째 고양이..... > 도 << 월간 문학사상 11 >> 에 발표한 작품이었다. 누가 봐도 내 식구 챙기기 아닐까.  오구오구 내 새끼, 우쮸쮸 !  윤이형 작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 적어도 문단에서 밥 먹고 사는 이라면 문단 돌아가는 꼴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 ?  윤이형의 절필 선언문이 괘씸한 이유는 작가들의 금전적 불이익에만 분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절필을 선언하면서 부당함과 불공정함에 항의를 했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 태도로 일관했었던 이상문학상 심의 과정의 부당함과 불공정함에 대해서는 왜 항의를 하지 않는 것일까 ? 그리고 작가들은 왜 침묵하는 것일까 ? 프랑스 공쿠르상 상금은 고작 10유로(14,000원)이다. 돈으로 권위를 사지 않고 액수로 명예를 치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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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중 여섯 작품이 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이 내놓는 문예지 월간 문학사상에 게재된 작품이었다. 문학사상에 게재된 작품이 아닌 대상 수상작은 2012년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2011년 세계의 문학 봄호), 2013년 김애란 작가의 ‘침묵의 미래’(대산문화 2012년 겨울호), 2014년 편혜영 작가의 ‘몬순’(한국문학 2013년 12월호), 2015년 김숨 작가의 ‘뿌리 이야기’(작가세계 2014년 여름호) 등 네 작품뿐이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중에서는 4편이 월간 현대문학에 게재됐던 작품이었다. 대형 문학 출판사가 출간하는 주요 문예지에 게재된 작품에서 수상한 사례가 드문 것도 특징이다. 지난 10년간 계간 문학동네·계간 창작과비평·계간 문학과사회 등 주요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중·단편 중 수상한 사례가 있었는지 조사한 결과, 이상문학상 수상작 중에는 단 한 작품도 없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중에는 2018년 김성중 작가의 ‘상속’(문학동네 2017년 가을호)이 전부였다.

- 깜깜이 문학상, 그들만의 리그인가.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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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2-0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이형 작가의 절필과 관련된 다른 시각의 글이네요.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2-10 17:22   좋아요 0 | URL
절필을 선언하신 분이 왜 그렇게 트위터에 수많은 글을 쓰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cyrus 2020-02-08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후에 레드스타킹 단톡방에 어느 분이 트랜스젠더 합격생이 숙대 입학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기사를 공유했어요. 이 소식을 접하면서 슬프다고 느낀 멤버들이 많았어요.

‘레드스타킹’은 급진 페미니스트 단체명이에요. 대구 페미니즘 독서 클럽 이름도 이 ‘레드스타킹’에서 따온 것이에요. 이름만 ‘레드스타킹’이지 모임에 나오는 멤버들 모두 퀴어 페미니스트에 가까워요. 그렇다 보니 예전에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 워마드 회원(그 사람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워마드라고 공개했어요)이 메시지로 시비를 건 적이 있었어요. 시비를 건 이유가 웃겨요. 모임의 전체적인 진행 분위기는 ‘퀴어 페미니즘’에 가까운데 왜 모임명은 급진 페미니즘의 상징에 가까운 ‘레드스타킹’을 어딜 감히 함부로 쓰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페미니즘을 다시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더군요... ㅎㅎㅎㅎ

멤버들은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어요. 저는 그 워마드 회원이 학문의 계보를 따지는 것을 좋아하고 잘난척하는 남자들의 행동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2-10 17:22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레디컬은 마치 자신의 전유물이어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면 화가 나는가 봅니다..

다다 2020-02-08 0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를 참칭한 쓰레기들 머지않아 망할 겁니다. ‘여성기‘ 숭배 컬트집단을 누가 두려워하랴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0-02-10 17:22   좋아요 0 | URL
컬트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