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뉴스는 악을 응징하는 수단보다는 모멸감을 주는 수단에 가깝다. 뉴스가 모멸감을 생산하는 방식은 주로 " 양치기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것 " 이다. 거짓(말)이 클수록 모멸감도 커지고 모멸감이 클수록 시청률도 크게 오른다. 농담을 섞어 말하자면,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은 쪽을 사고 파는 기관인 셈이다.

그렇기에 언론인들이 정의의 사도 운운하며 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며 비장한 목소리로 직업 윤리 강령을 강조할 때마다 웃게 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기관이다 ?! 가짜 뉴스'다. 권력을 감시하는 곳은 사정 기관이지 언론이 아니다. 언론의 주요 임무는 사실 보도'에 있다. 얼핏 보면 쪽(을) 팔린 일은 죽어도 하지 않으려는 양아치와 쪽을 사고 파는 일을 하는 언론인은 서로 상극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엇비슷한 점도 많다. 뉴스가 특정인에게 모욕감을 주는 방식은 비단 악당만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이 노무현을 소비한 방식이 좋은 예이다. 논두렁 시계는 사건 본질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가짜 뉴스였지만 쪽을 사는 쪽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오브제'였다.

논두렁 시계는 노무현에게 모욕감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노무현은 뉴스가 생산한 거대한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치와 염치를 아는 인간일수록 모욕감에 취약하다. 그렇기에 나쁜 정치와 결탁한 언론은 특정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모욕감을 생산한다. 언론사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소비한 방식도 모욕감'이다. 언론은 김부선의 말을 " 팩트 체크 "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김부선의 자극적인 말'을 여과 없이 보도하고 그 뉴스를 해석하는 단계에서 억측을 재생산한다. 김부선의 말(메시지)은 대부분 앞뒤가 틀리다. 김부선은 이재명을 불륜을 즐기기 위해서 따로 오피스텔을 얻었다고 폭로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불륜을 즐겼다고 말을 바꿨다. 또한 그와 뜨거운 밤을 보내느라 아파트 난방비가 많이 나왔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확인하니 정반대였다. 그녀는 이 지적을 의식한 듯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 한겨울에도 이재명에게 파카를 입혔다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언론은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오로지 김부선의 폭로에 집중했다. 화룡점점은 한때 사랑했던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어서 남을 만들었던 김부선의 폭로'다. 이 상황에서 공지영의 개입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공지영은 이재명의 크고 까만 점이 그에게 망신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오히려 망신을 당하는 쪽은 당신으로 기우는 형국이 되었다.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흐르자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었다고 폭로한 김부선은 침묵하고 있지만, 공지영은 여전히 트위트에서 말의 성찬을 쏟아내고 있다.  반성도 없고 사과도 없다.  입만 열었다 하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고 인권과 정의를 위해 싸울아비를 자청했던 그녀가 왜 이 사태에 대해서는 반성을 모르는 것일까 ?   그녀에게 묻고 싶다.  먼 훗날, 그때 그 일에 대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었나 _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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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10-18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공지영 소설가의 인격의 깊이와 창작가로서의 재주가 얕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인간성에 흠결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어느 남자가 (상대의 간음 여부를 밝히겠다면서) 여자의 특정 신체 부위에 무언가가 있다는 식으로 육성 발언을 했다면, 공지영은 어떠한 태도를 보였을까요. 진위 여부를 밝히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특정인에게 함부로 신체적/인격적 모독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작가적 재능이야 높건 낮건 간에 비판의 문제이지 비난의 쟁점으로 가서는 안되지만, 어떻게든 타인을 모욕하고 악인으로 낙인 찍으려고 드는 인간성이라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0-19 22:42   좋아요 0 | URL
공지영은 여전히 트윗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더군요. 마광수가 제자였던 공지영에 대한 평가가 딱 맞습니다. 공지영 이상문학상 수상했을 때의 어이없음은... 정말 최고였죠...
 

 

 

 

 

 

 

 

 

 

 

 

 

 

                                        

 

소 설   쓰 고    앉 아 있 네   :


 




공지영은 성실한 사람 !







뉴스는  우둔한  자를  무장시키고

 바보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짓이다

- 플로베르 







 

                                                                                                                           사기(꾼)은 성실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직업군에 속한다. 남을 속여서 이득을 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사기꾼은 사기를 칠 대상에게 집중하게 된다. 칠(7)과 성의로도 부족하고, 팔(8)과 성의로도 부족하며, 구(9)와 성의로도 태부족이다. 오로지 열과 성의를 다해 성실한 태도를 취한다. 간이고 쓸개고 나발이고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 

비록, 이 연출이 교활한 연기이기는 하나 타인을 감쪽같이 속인다는 점에서 성실한 연기'다. 그래서 나는 성실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게으른 사람이거나 타인에게 무심한 사람'을 신뢰하는 편이다. 영화 << 밀양 >> 에서 아들을 잃은 신애(전도연 분)가 느꼈던 분노는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 신애 앞에서 보인 < 성실한 태도 > 때문이다.  영화 속 유괴 살인범은 속죄를 통해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하지만 신애는 신이 인간에게 응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신은 본래 인간에 대하여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신애가 부정하고 싶었던 것은 神이 아니라 어쩌면 信( : 성실할 신)과 愛( : 사랑 애 )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애가 보기에 자신이 처한 곤경에 대하여 슬퍼하는 사람 대부분은 모두 위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로는 진짜가 아니라 가짜 위로'이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은  나이 서른에 교수가 된 금수저 여자와 나이 스물일곱에 세 여자를 죽여 사형수'가 된 남자가 서로 대화를 통해 사랑과 구원 그리고 용서를 얻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읽는 내내 기가 차서 백석의 당나귀처럼 흐엉흐엉 웃기만 했다. 세 번의 살해 행위와 세 번의 자해 행위1) 를 동일선상에 놓고서는 두 인물을 동일한 경험과 아픔을 공유한 운명론적 쌍생아로 설정한 대목에서 웃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싸구려 통속극에 우네부네하는 얼치기요, 신파에 놀아나는 띨띨이'다.

내 몸에 상처를 입힌 것과 네 몸에 상처를 입힌 것을 똑같은 행위라고 말하는 것은 죄책감의 문제가 아니라 법 해석의 무지에 있다. 기초 얼개가 이토록 부실하니 마무리 공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사상누각인 셈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 운운하며 세 여자를 죽인 사형수도 용서해야 마땅하지 않느냐 _ 며 우네부네하는 공지영은 왜 이재명 따위는 용서 받지 못할 자로 낙인을 찍는 것일까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산 그녀가 보기에 이재명의 한 점은 부끄러움의 결정적 증거'라고 판단한 것일까 ? 그깟, 한 점이 뭐라고.  김부선의 주장이 모두 진실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그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요, 사기를 쳐서 불로소득을 얻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살인죄는 용서할 수 있지만 사소한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다 ?!  나는 공지영이 실력이 형편없는 소설가'라고 생각하지만 매우 성실한 소설가'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는 성실하다. 그는 지금도 방구석에 앉아 정의가 승리하는 소설이나 쓰고 앉아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                                  


1)       남자는 여자를 세 번 죽인 사형수이고 여자는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서른의 교수'다. 삶에 미련이 없어서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여자는 나이 서른에 그토록 얻기 힘들다는 교수 자리를 얻는다. 교수 자리 따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는 소리인데, 아니... 삶에 의욕이 없어서 자살을 세 번이나 했던 주인공은 왜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을까나 ? 무기력과 닥치고 열공은 성격이 다르지 않나 ?  주인공은 밝은 미래를 위해 너무 열심히 열공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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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김부선 그리고 이재명




 


                                                                                                              옆집에 세 들어 살던 남자는 문청'이었다. 사회 초년생이었는데 작가의 꿈은 잠시 접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그는 책은 내지 않았으나 등단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종종 그 남자에게서 책을 빌리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공지영의 첫 번째 장편소설 <<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 였다.

일종의 운동권 문학'이었는데 멋은 잔뜩 부렸는데 졸라 촌스러웠던 소설로 기억하고 있다. 그 소설 이후, 내가 오랫동안 공지영 소설을 읽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싹수가 노랗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내가 그의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는 신경숙과 함께 공지영이라는 브랜드가 명성을 떨치고 있던 때였다. 두 번째 손에 든 책은 << 고등어 >> 였다. 운동권 후일담 문학이었는데 아아, 그 촌스러움이 그지같았다. 결정타는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이었다. 이 소설은 대참사에 가까웠다. 내가 남긴 기록을 살펴보니 이 책에 대한 20자평은 " 젊은 나이에 성공한 금수저 주인공이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면 짜증 이빠이 " 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0932692652

 

세 작품을 읽고 나서 내린 최종 결론은 소설 쓰고 자빠졌네 _ 였다. 문장도 촌스러운데 감성도 촌스러우니 촌제적 난국처럼 보였다. 그가 단편 << 맨발로 글목을 돌다 >> 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나는 공지영의 이상문학상 수상은 이상문학상이 없어져야 하는 결정적 증거'라는 글을 남겼다. 신경숙과 더불어 공지영은 나으 쉰밥이요, 좆밥이었다. 이 경멸은 그의 문학에 대한 애티튜드였지 그에 대한 애티튜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 대한 예의 바른 애티튜드도 거둬들이기로 했다. 공지영과 김부선의 오고가는말풍선'을 듣고 있자니 욕지기가 쏟아진다. 불알과 똥구멍 사이에 난 점을 이야기하며 낄낄거리는 대화를 듣다 보면 그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과 김부선,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김부선의 폭로는 김부선의 폭로로 반박이 가능할 정도로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가를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설령, 이재명이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그 거짓의 대가로 만천하가 보는 앞에서 불알을 까 보여야 하는 것일까 ?  이 잔인한 커밍아웃이 공지영이 시간 날 때마다 외쳤던 인간에 대한 예의인지 시발 존나게 묻고 싶다. 다음은 마광수가 공지영을 회상하며 적었던 글이다.



공지영은 대학시절에 운동권인 '척'하다가, 시에서 소설로 전향하여 처녀작 <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 라는 소설을 썼다. 말하자면 운동권과 결별했단 얘긴데, 지금은 진보인 척하며 시대의 양심인냥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 그녀는 대학시절 감옥에 가본 일도 없는 지적 사치를 즐긴 운동권 학생이었다. 또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는 책으로 독신주의 페미니즘을 팔아먹으면서, 많은 여성들을 잘못된 결혼관으로 혼란시키다가 정작 자신은 세 번이나 결혼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여주고, 또 그걸 팔아먹으며 돈을 벌고 있다. 사이비 얼치기 페미나치에다가 위장된 진보일 뿐, 그녀가 사회 진짜 민중에게 도움을 준 적은 없다


-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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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6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6년 동안 맛과 간을 born   :

 

 

 


 

 

 




혀준 백종원 선생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국정감사 참고인 자격으로 국회에 참석했다. 국회가 백종원을 참고인으로 부른 이유는 골목상권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청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깜짝 놀랐다. 골목상권을 파괴하는 프렌차이즈 대표를 불러 자영업자의 어려운 현실을 듣는다는 것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듣고자 이재용 삼성 그룹 부회장을 불러 제도적 개선 방안을 청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백종원은 소상공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 

국회는 혀준 백종원이 예능 프로그램 << 골목식당 >> 에 나와서 죽은 식당 주인의 허파에 바람을 넣어 불씨를 살리는 행위를 예능이 아니라 다큐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다큐가 아니라 퍽큐인데 말이다. 궁금하다, 백종원을 초청한 국회의원의 아이큐. 이제는 약자의 대표성마저 강자가 획득하는 걸 보니 맛 간 세상, 막가는 세상인 것 같다. 백종원은 예능계의 슈퍼스타답게 능수능란하게 자영업자의 비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술 더 떠 국회의원을 혼내기도 한다. 여러분, 아래 동영상 한 번 보시죠.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참고인에게 찍소리도 못 내고 혼나는 꼴을 보니 가히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없지 아니할 수 없다. 시바, 참..... 뷰리풀해서 원더풀하다.








백종원의 방어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 << 골목식당 >> 에서 방송의 힘을 빌려 특정 골목이 회춘하여 상권이 살아났다고 한들 그것이 지속되기란 쉽지 않다. 죽었던 골목이 방송의 힘으로 살아나면 발생하게 되는 첫 번째 역경은 임대료 상승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니 인기 상권이 된 골목을 건물주가 그냥 놔둘 리 없다. 임대료가 뛰면 영세 세입자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 한때 핫플레이스로 인기가 높았던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을 보라. 맛(있는 집)이고 멋(진 가게)이고 임대료 앞에서는 나가떨어지게 된다. 지금, 경리단길에는 빈 점포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영세 세입자의 노력으로 건물과 거리의 위상을 높이면, 이곳에 대기업 프렌차이즈 가게가 들어와 임대료가 치솟게 되고 결국에는 골목의 원주민이었던 영세 세입자는 쫓겨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 골목식당 >> 에 나왔던 골목이 방송의 힘을 빌려서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고 치자. 이 현상이 과연 영세 세입자에게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 흐를까 ?  개미 주인의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한들 치솟는 임대료를 이길 대안은 없다. 핫플레이스의 빈 점포를 접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가게는 인지도 높은 브랜드 식당밖에는 없다. 그러니까 백종원이 방송에 나와서 살린 골목 상권은 결국에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해 가게 임대료가 치솟게 되고, 그곳을 점령하는 곳은 다시 백종원 가게라는 소리이다.

다시 말해서, 골목 상권이 죽는 진짜 이유는 주인의 실력 탓이 아니다. 연남동에서 입소문을 타고 맛집으로 등극했던 가게들이 모두 손해를 보고 그곳을 떠난 이유는 주인의 실력 탓이 아니라 치솟는 임대료에 있다. 그리고 자영업자들이 떠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게들이다. 조물주와 대기업 외식업체는 공생 관계인 것이다. 과연, 백종원은 골목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아무 책임도 없는 것일까 ?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뜨는 골목의 흥망성쇠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16년 동안 맛과 간을 연구하셔서 맛 간 혀준 백종원 선생의 호통에 찍소리도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부 좀 해라, 씹새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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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10-14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가를 불러서 노동자의 현실적 어려움과 근본적인 타개책을 알아보겠다는 행위와 진배없네요. 명색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0-15 16:18   좋아요 0 | URL
무뇌아 ?
 

 

 





문재인의 패션 외교



 



                                                                                                                  어릴 때는 어른의 세계가 궁금한 법이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콘돔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했던 적은 없다. 이미 콘돔이 피임 도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아이가 집에서 콘돔을 가지고 와서 풍선 놀이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담임 샘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이의 뺨을 때린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풍선 놀이 가지고 그토록 화를 내는 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당시 미혼이었던 샘을 이해했던 최초의 아이'였다. 멍청한 새끼들, 기름 바른 풍선과 아닌 풍선은 구별 좀 하자 !  나는 쉬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풍선은 입으로 부는 것이 아니라 고추에 끼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경잡이 반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외쳤다. " 고추에서도 바람이 나와 ? "  오, 주여 !  이 철딱서니 없는 무지렁이들을 용서하소서.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어른용 물건은 넥타이'였다.

어른들은 왜 넥타이를 매는 것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의복에서 넥타이는 아무 효용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날이 더운 날에는 체열을 올리는 주범이기도 했으니까. 그것은 기의 없는 기표였다. 쉽게 말해서 기능을 상실한 흔적 기관처럼 보였다. 마치 남자의 젖꼭지처럼 말이다(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남성에게 젖꼭지라니...... ) 그러던 어느 날 하얀색 슈트와 화이트 셔츠와 흰 넥타이와 흰 양말과 백구두를 신은 남자를 보게 되었다. 백의민족이어서 백의를 사랑했던 곤드레 김 패션의 재현이랄까. 오, 퐌타스틱해요 ~ 하지만 특수복이 아닌 일상복을 " 머리부터발끝까지색을하나로통일한옷 " 을 입는다는 것은 꽤나 쪽팔린 일이다(올블랙패션은 제외).

설령 어느 용자가 머리부터발끝까지색을하나로통일한옷을 입을 용기가 있다 한들 머리부터발끝까지색을하나로통일한옷이 아무에게나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패션스타만이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이어서 뱁새가 우아한 황새를 따라 하다가는 다리 찢어지기 십상이다. 뱁새인 우리가 커버할 수 있는 색깔은 최소 두 가지 색이다. 흰색 라운드 티에 파란 청바지 그리고 하얀 운동화 정도 ! 기본에 충실한 색의 조합이지만 무난하다고 해서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색동저고리처럼 알록달록한 색으로 도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촌스러워 보인다. 각각의 색이 통일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따로 놀아서 안정적인 색의 배합이라 할 수 없다. 각설이를 보라 ! 

사견을 전제로 기술하자면  :  삼색패션이야말로 단조롭지도 않고 산만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조화라는 생각이 든다. 양복은 보통 두 가지 색(와이셔츠 색 + 슈트 색)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덧대어 넥타이가 합류하면 삼색 패션이 완성되는 것이다.  단조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산만하지도 않은 배색이 완성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비로소 넥타이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깨닫게 되었다.  삼색패션은 단조로운 것도 아니라 산만한 것도 아닌 균형 감각을 보여주는데, 넥타이'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슈트의 우울하며 내성적인 한계를 보완한, 가교 역할을 담당한 소품이라 할 수 있다. 넥타이는 조화, 균형, 비례, 강조의 역할을 담당한다.

넥타이를 잘 고르는 사람이 정장을 잘 입는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술은 넥타이의 기능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하얀 제국과 검은 제국 사이에서 한쪽으로 기우는 색의 편향을 바로잡는 넥타이'다. 이것이야말로 패션 외교의 정석인 셈이다. 넥타이를 잘 고르는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다.  패션 외교라거나 패션 정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정권 때이다. 그는 한 번 입은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기로 유명한, 돈 세탁은 알아도 옷 세탁은 이해하지 못하는,  옷 떼부자였으나 그의 패션 외교는 외교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실패했다. 두 가지 색 배합을 기본으로 하는 박근혜 패션은 단조로울 뿐만 아니라 색의 배치도 엉망이어서 촌스럽기 졸라 거지없다. 503호, 당신을 최악의 워스트로 선정합니다아.





+


 

※ 12가지 색연필 이미지 사진이 필요해서 골랐는데, 나중에 안경을 끼고 다시 살펴보니 색연필 사진이 아니라 박근혜 사진이었다. 원색을 즐겨 입는 그에게 원색적인 비난 한 마디 : 우리 근혜는 꼭 색연필 같아. 어쩜 그리도 컬러풀하니. 이십싸가지 총천연 크레파스 같은 인간아. 참, 지랄이 색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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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0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8-10-10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기름바른 풍선
ㅋㅋㅋㅋㅋㅋ 바람 나오는 고추
ㅋㅋㅋㅋㅋㅋ 아이구야 사라진 내 배꼽...

곰곰생각하는발 2018-10-10 17:03   좋아요 0 | URL
그냥 구운 김과 기름 발라서 구운 김의 맛이 다르듯이..
풍선도 그렇습니다.. 맛이 다르죠.. ㅎㅎ

akardo 2018-10-1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아서 보니 더 괴랄하네요 ㅋㅋㅋㅋ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울어무이보다 못한 패션 감각이라니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8-10-10 20:12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생각했씁니다. 제 어머님보다도 옷을 못 입더라고요... 신기한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