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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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가족 서사(극) : 두근두근 내인생, 삼부자.

 


 

애란 장편소설 < 두근두근내인생 > 에 대한 반응이 좋다.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평단 또한 칭찬 일색이다. 놀라 다시 본다, 라는 성석제의 기막힌 40자 평이 있는가 하면 요즘 잘 나가는 젊은 평론가는 역시 김애란이라며 엄지 세 개‘를 올린다. 하지만 이 착한 가족극은 몇몇 눈에 띄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많은 작품이다. 그녀가 내놓은  단편집에 비하면 이번 장편소설은 기대 이하’다 !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보인다. 주인공 부모에게는 세월에 따른 자각의 과정이 없다. 17살 때 고속버스에 올라타서 34살 때 버스에서 내려온 인물 같다. 그뿐인가 ? 이웃집 할아버지는 항문기에 집착하는 꼬마 한스 같다. 공교롭게도 유일한 어른은 조로에 걸린 주인공 소년’이다. 그들은 모두 항문기로 퇴행 중인 노인이거나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문 철없는 부모이거나 혹은 너무 늙은 애어른‘이다. 자기 나이에 맞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한 편의 명랑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문제는 고착으로 인하여 이 아이들의 사회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성이 결여되었으니 등장인물들은 모두 명랑하고, 유쾌하며, 긍정적이다. 사회에 대한 인식은 계급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명랑한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성숙한 비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대책 없는 무비판성‘은 작가로써 치명적 결점이다. 그녀는 거리’를 은폐한다. 꼴랑 보여주는 것은 골목길이다. 거리가 사회화된 영역이라면 골목길은 사회화가 거세된 낭만적 장소이다.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 당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 소설에는 그것이 없다. 명랑’하기만 하면 장땡인가 ? 심각할 때 심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심각할 때도 주인공들은 웃는다. 으, 하하하하하 !  내가 보기엔, 김애란의 < 두근두근... > 은 3분 발성법으로 1시간짜리 창‘에 도전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마치 3분짜리 콩트를 60분 분량으로 늘린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다.   

뷰, 티블 마인드- 하다.

 

 

 

 

 

 


 

 

 

 

면 손창섭의 < 삼부녀 > 는 나쁜 가족극‘이다. 근친 욕망이라는 이름의 총천연색 만화경’처럼 화려하다. 일본 도까이 에이브이 성인 공작소‘라면 이 원작을 입수해서 근사한 포르노를 찍었을 것이 분명하다. 주인공은 소라 아오이 ? 손창섭은 이 소설에서 에둘러 이야기하는 법‘ 이 없다. 읽다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이 작품은 1970년 주간여성에 연재된 장편소설인데 과연 이러한 내용의 소설이 검열 없이 연재되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점은 생생하다는 것이다. 40년이나 지난 작품이 2010년의 당대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그러니깐 손창섭은 40년 앞을 내다보고 이 소설을 쓴 것이다. 그는 너무 앞서간 인물이었다.


간단하게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가족은 해체된다. 아내는 바람나서 도망가고, 딸들도 모두 아버지를 부정하고 집을 나간다. 이제 남은 것은 늙은 수컷‘과 텅 빈 집이다. 소설은 해체된 가족’을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한다. 위기를 겪은 가족의 복원이 아닌,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하는 것이다. 스폰서를 하는 조건으로 아내의 빈자리‘를 젊은 여자가 채우고, 딸의 빈자리 또한 다른 젊은 여자’가 채우는 방식이다. 계약 가족이다. 문제는 두 여자 모두 아버지의 남근을 빨고 싶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끊임없이 유혹한다. 가짜 아내는 딸의 욕망을 견제하지만 나무라지는 않는다. 가짜 딸은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의 침실을 노린다 !


하지만 유사 가족 관계 안에서 불협화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유사 가족 제도는 평화‘ 롭다, 놀랍게도 ! 손창섭이 보기에 혈연 중심적 가족주의’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해체를 주장한다.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안가족의 탄생이다. 박정희가 군화발로 동토를 철권통치하는 시대에 손창섭은 성적으로 도발을 한다. 엿 먹어라,  페니스 !


그는 남근 중심의 숨 막히는 한국 유교 사회‘를 혐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남근과 대한민국을 동일시했고, 그 속에서 광기의 소국’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국을 야반도주했는지도 모른다. 이 위대한 소설가는 끝끝내 조국을 등진 채 일본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


 

김애란 장편소설이 후진 이유는 한심할 만큼 무비판적 태도에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한심한 것은 김애란 소설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 평단의 알 수 없는 침묵‘이다. 정, 말 이 소설은 놀라서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인가 ? 많이 팔리면 장땡인가 ? 김애란을 손창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손창섭의 치열한 현실 인식에 비하면 김애란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뻔뻔하다.

 

 

착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소설은 좋은 소설이 아니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등이 없으니 봉합이 없고, 봉합이 없으니 트라우마가 없다. 대충 그까이꺼 대강 웃으면 이와요. 그, 런 겁니까 ?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겁니까 ? 물론 나쁜 사람만 등장하는 소설 또한 좋은 서사'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쁜 사람만 등장하는 서사가 차라리 좋은 사람들만 등장하는 서사보다는 훌륭한 작품이 나올 확률이 높다. 소설이란 근본적으로 어두운 면을 집요하게 탐구하려고 하는 만화경이 아니었던가 ? 김애란은 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는 김애란이 잘 팔리는 소설가가 되어 신경숙을 따르기보다는 당대의 현실에 고민하는 공선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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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한국 소설.

 

 

 

 

 

 

 

 

 

 

우리는 일본 소설을 할리퀸 로맨스 문고 시리즈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저질 소설의 대명사로 판단해인지, 내가 일본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많고 많은 책 중에 그런 책 을 읽는다고 타박을 한다. 많고 많은 책의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일본 소설 대부분을 싸구려 대중 소설로 간주하는 경향이 높다.

그들은 태백산맥, 아리랑, 토지와 같은 좋은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다. 혹은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수상집을 사서 읽는 것은 교양인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이 즈음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기준은 명확하다. 순문학은 좋은 책이고, 장르문학은 나쁜 책이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나는 그해의 이상문학상 후보 명단에 오른 단편()을 읽을 때마다 < 참고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한 참치의 울화통 > 이 되어서 책을 집어 던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누군가 이 참치의 울화통이 기초적인 소양과 교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독해력에 문제가 발생해서 생긴 심리적 자격지심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한국 단편 소설이 지나치게 지적 허영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화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트라우마가 전적으로 아버지/어머니 부재에 기초한다는 것은 단순한 가족 억압 서사에서 벗어나려하지 않으려는한국 소설가들의 게으른 천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소설가만큼 상상력이 빈곤한 창작 집단을 본 적이 없다. 무조건 아버지 때문이라고 징징거리는 단편을 읽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그들은 담당 교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학생처럼 보인다. 문학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학교 안의 문학 담당 교수가 아니라 시장의 독자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프랑코 모레티의 말이다.

현대 일본 소설은 집단적 요구에 의한 개인의 욕망을 다루지 않는다. “ 가족과 나 의 연대가 불러오는 트라우마는 없다. 그보다는 순수한 개인의 욕망과 취향을 다룬다. ( 류는 재즈로 빠지고, 하루키는 와인에 빠진다. ) 신경숙은 현대인의 결핍을 엄마의 부재로 읽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새빨간 사기극이며,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의 부재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인은 엄마가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대체할 케어 시스템/사회 복지 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국가의 복지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회 안전망인데, 대한민국은 이 대체 어머니가 부재한다.

국가 복지 시스템이 잘 된 나라일수록 가족 서사에 목숨을 걸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에 가족 말고 믿을 놈이 생각보다 꽤 많기 때문이다. 복지가 케어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후진국들은 이 세상에 믿을 놈은 < 가족 >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신경숙이 문제를 제기했어야 할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다. 그녀는 개인의 <케어>를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으로만 판단한다. 그것은 소설가가 사회를 읽는 눈이 부족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엄마는 만병통치약인가 ? 엄마만 있으면 행복은 민들레 홀씨처럼 착박한 황무지에도 꽃을 피우는가 ? 이런 가족 신파는 좋은 소설이 될 수 없다.

순문학의 대표주자인 신경숙의 한심한 사회 인식보다는 장르문학의 미야베미유키의 소설이 더 사회 비판적이며 날카롭다. < 화차 > 는 그 정점에 다다른 소설이다. 그녀는 추리 장르라는 대중적 친화력과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사회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파고든다. 한국 작가들이 엄마 없어, 아빠 없어, 고양이도 없어, 다 없어. 어떡해 ! 라며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말투로 징징거릴 때, 일본 작가들은 사회 곳곳에 침투한 병폐를 읽는다. 미유베는 신용 사회와 소비 사회가 개인을 파멸시키는 무간지옥을 화차를 타고 주위를 돌며 서술한다. 이 소설 속 이야기는 정확히 십 년 후의 한국 사회를그대로 반영한다.

 

 

 

 

 

 

 

그런데 한국 소설가는 대중에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아니면 대중에게 읽히는 소설을 쓸 능력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편혜영의 소설들이 현대인의 불안을 다룬 훌륭한 단편이라는 평단의 판단에는 동의하지만 대중적 친화력에는 완벽하게 실패한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장편 소설 < 재와 빨강 > 을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과연 이 작가가 대중적 소통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작품도 형편없었지만, 재미도 형편없었다. 쉽게 말해서 평단과 흥행 모두에 실패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훌륭한 작가는 많다. 김연수는 선전할 것이고, 박민규 또한 건재할 것이며, 김애란은 첫번째 장편 < 두근두근...> 의 완벽한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천명관도 좋은 소설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작가는 김중혁이다. 그의 소설은 늘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백민석은 고집을 꺾고 다시 소설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 윤대녕은 여행 가서 묘령의 아가씨와 < 하는 > 서사는 이제 그만 썼으면 하고, 신경숙은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지독한 탐미주의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은희경은 적당히 쿨했으면 하고, 공지영 소설은 솔직히 왜 잘 팔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작가라 생각한다. 그리고 조경란은 제발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너무 고고한 척하지 말았으면 한다.

 

+

오츠이치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작품은 기괴하고, 유치하며, 때론 무섭기도 하다. < 작가는 불안과 고뇌가 팔 할이야! > 라고 외치는 순문학 지망생들이 보면 참... 한심한 작품만 쓰는 작가. 제목도 얼마나 유치하냐면<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 < 암흑 동화 >, 리스트컷 사건 >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중에 <평면개> 라는 중편이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다가 박장대소했다.

주인공인 여고생은 엄마가 6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 아빠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 결과를 받는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마지막 남은 남동생마저 불치병으로 6개월 후면 죽는다. 그러니깐 6개월 후면 주인공 말고는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회의를 통해서 서로가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된다. 얼마나 우울한가!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들이 모두 시한부 인생이라고 밝혀졌으니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겠네 !, , ....

그런데 이러한 나의 생각은 뒤통수를 맞는다. 가족들은 다음날부터 신나게 웃고 떠든다.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 두고 집안에 쳐박혀서 책만 읽을 결심에 기뻐하고, 엄마도 이 기간을 6개월의 휴가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남동생은 아주 긴 방학이라며 기뻐한다. ... 함께 뿅 하고 사라질 것이니 그리 억울한 것도 아닌 것이다. 주인공 소녀는 그들 사이에서 소외를 느낀다. 가족은 발랄하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 아아아아니... 이건 우리가 익히 보았던 가족의 풍경이 아닌 것이다. < 억압받는 한국 가족 서사 > 에 익숙했던 한국 독자들은 이런 식의 반전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오츠이치는 가족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쓴다.“ 반년 뒤. 세 사람 모두 죽었다. “이 간단한 문장은 가족 서사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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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ogs 2013-03-1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지만 우리에게도 훌륭한 작가는 많다. 김연수는 선전할 것이고, 박민규 또한 건재할 것이며, 김애란은 첫번째 장편 < 두근두근...> 의 완벽한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천명관도 좋은 소설’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작가는 김중혁이다. 그의 소설은 늘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백민석은 고집을 꺾고 다시 소설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 윤대녕은 여행 가서 묘령의 아가씨와 < 하는 > 서사’는 이제 그만 썼으면 하고, 신경숙은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지독한 탐미주의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은희경은 적당히 쿨했으면 하고, 공지영 소설은 솔직히 왜 잘 팔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작가라 생각한다. 그리고 조경란은 제발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너무 고고한 척하지 말았으면 한다."

정성일 문체?

곰곰생각하는발 2013-03-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문체로 보이시나요 ? 성동일 스타일로 썼습니다.

모리 2013-03-2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좋아서 페이스북에 링크걸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1 02: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꾸벅..

이진 2013-03-21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소에 늘 갖고 있던 생각이라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저는 한국소설만 읽지만 그때문에 종종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지요. 저의 이 슬럼프(?)를 뛰넘게 해준 책들이 님께서 언급하신 몇명을 포함한 젊은작가들입니다. 저는 김중혁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황정은과 손보미는 반드니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김성중이나 김혜나 또한 그럴것이라 봅니다. 황정은이야 이미 그럭저럭 성공한 작가고 손보미나 김성중, 특히 김혜나는 인지도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손보미는 글을 잘 쓰고, 김성중은 재밌게 쓰며 기발하고 풍부하며, 김혜나는 기존의 한국소설과 분위기는 닮았다고 생각되나(그러니까 편혜영쯤이랄까요...음) 좀더 현실적이면서 날카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폰으로 치다보니 앞에 뭐라고 쳤는지 까먹어서 더는 못하겠네요. 전적으로 님의 말에 공감함을 밝히며 (저는 신경숙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요. 편혜영에 관한 것은 크게 동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1 14:43   좋아요 1 | URL
황정은은 확실히 요즘 뜨시더군요. 황정은 좋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봄날에 꽃 터지듯 들려옵니다.
사실 전 한국소설을 잘 안 읽습니다. 안 맞더라고요...ㅎㅎㅎㅎㅎ
하여튼 황정은은 크게 성공할 사람처럼 보이고, 김혜나'는 솔직히좀 의심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사과'와 김숨 눈여거 보고 있습니다.

김성중은 아직 안 읽어보았어요. 이번 기회에 함 보아야겠습니다.

이진 2013-03-21 21:52   좋아요 0 | URL
황정은은 개성이면 개성 기발함이면 기발함 문장이면 문장 구조의 탄탄함이면 탄탄함... 모두를 골고루 갖춘 작가인 듯합니다.
그렇긴하죠 김혜나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요.
김사과와 김숨, 맞네요. 말고도 젊은 작가가 많은데 더 생각을 못해내겠네요.
배명훈도 뭐랄까, 눈 여겨 볼만합니다.
(댓글에 신경숙 작가를 언급한 부분에 대해 조금 달리 말하자면 저도 곰곰님께서 바라시는 탐미주의적 소설을 좋아한답니다. 벚꽃잎 같은 소설들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1 22:07   좋아요 0 | URL
아, 배명훈이 있어군요 ! 마자요. 배명훈... 최제훈과 더불어 아주 독특한 분위기가 감지 됩니다. 뭔가 문단 먹물스럽지가 않아서 좋습니다.

전 신경숙 초기작들을 아주 좋아해요. 아, 이렇게 그냥 주구장창 아름다운게 좋아,,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구나 했거든요.

희극인조르바 2013-03-2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츠이치라는 작가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언급하신 '평면개' 재미있군요. 황당한 것 같지만 황당하지만도 않은것은 역시 죽음을 기억하는 자는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뭐 그런 주제의식을 희극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3 23:08   좋아요 0 | URL
오츠이치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만만한 작가는 절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예요. 반갑습니다. 방긋.
제가 여긴 거의 초면이어서.. ㅎㅎ

samadhi(眞我) 2017-03-0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혜영 소설 검색하다 들어왔더니 곰발님 글이 딱! 아, 읽지 말아야겠다. 합니다. ㅋㅋㅋㅋ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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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랍 속 잡동사니

축구는 한심한 스포츠다, 농구도 한심한 스포츠다, 골프도 한심한 스포츠다, 체조도 한심한 스포츠다, 피겨스케이팅도 한심한 스포츠다. 오직 야구만이 위대한 스포츠다! 그렇다, 야구는 위대한 스포츠다. 나는 줄곧 보스턴 레드삭스 팀을 응원했는데 내가 레드삭스 팀을 응원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빨간양말이라는 앙증맞은 팀 토템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1에는 보스톤레드삭스 대신 템파베이를 응원했다. 나는 템파베이를 늘 < 서랍 > 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왜냐하면 서랍 속에는 온갖 싸구려 잡동사니가 다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를 서랍 속에 넣어두지는 않지 않은가 ? 서랍은 잠시 넣어두는 곳이지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서랍 속에서 잡동사니와 뒹굴다가 다이아몬드가 된 놈은 고급 쥬얼리 케이스를 요구하고는 했다. 고급 장식의 쥬얼리 케이스를 살 수 없는 템파베이는 몸값이 오른 선수를 시장에 팔아서 그 돈으로 무명이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영입하거나 구단 운영비로 쓰고는 했다. 한 마디로 명문 구단은 아니다. 템파베이는 메이저리그 구단 중 가장 가난한 구단이다.

 

2. 0.1%의 한계.

템파베이는 예상대로 <존나> 못했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다. 투수들은 템파베이와 상대하면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이길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8월이 끝날 때까지 템파베이의 팀 성적은 초라했다. 그해템파베이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0.1%였고 보스턴은 87%’였다.하지만 템파베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놓은 시점에서템파베이와보스톤의 승패는 똑같았다.리그 1위는 영원한 우승 후보 양키스였다. 전체 2위에게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를 얻기 위해서는 두 팀은 마지막 남은 경기에서 사력을 다해 싸워야 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템파베이를 응원하기로 했다. 약자에 대한 본능적 지지가 발동한 것이다. 당시 보스톤은 꼴찌였던 볼티모어와 경기를 했고, 템파베이는 영원한 우승 후보 양키스와 마지막 경기를치뤘다. 이미 템파베이는양키스와의 마지막 3연전에서 기적의 2연승을 한 터였다. 당시에 메이저리그 최강 팀이자 리그 1위인 양키스는 3연패를 당한 경험은 있어도 같은 팀에게 3연패를 당한 기록은 없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8회말까지)보스톤은 32로 이기고 있었고 템파베이는 70으로 지고 있었다.템파베이 0.1%의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

 

 

3. 우우 하지 맙시다. 와와합시다 !

- 라고 판단할 때 일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7 0’으로 지고 있던 템파베이는8회에 몸값이 가장 비싼 친구였던 상대 팀 투수에게서 무려 6점을 얻었고 9회엔 1점을 추가해서 동점을 만들었다. 아나운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리고 연장 12회에서는 굿바이 홈런을 터트려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아나운서는 또 다시 기적이라고 울부짖었다. 그 시각 보스톤은 9회에 2점을 헌납하고 역전패한다. 최종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친구는 템파베이였다.

나는 이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면서 펑펑 울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 시부럴..... 야구는 정말 위대한 스포츠야. 템파베이의 기적은 싸구려 스포츠 서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었다. 그것은 원숭이도 찍을 수 있도록 만든 십만 원 똑딱이 자동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대한민국 사진대전에서 대상을 먹은 꼴과 같았다.

 

4. 망토와 바바리

메이저리그에 템파베이가 있다면 코리안리그에는 삼미슈퍼스타즈가 있었다. 박민규의 놀라운 데뷔작 <삼미슈퍼스타즈 마지막 팬클럽 > 은 우승할 확률 0.1%를 가진 대책 없는 삼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 구단의 토템이 곰,,사자,호랑이, 거인등 용맹스러운 전사 이미지라면, 삼미의 토템은 망토 입은 사람이었다. 얼핏 보면 슈퍼맨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냥 사람이 망토 입은 모습이다. 망토 입은 사람이라... 망토 입은 사람이라....뚫어지게 쳐다보니 망토는 마치 바바리 외투처럼 보였다. 어라?!착시현상인가 ? 방망이는 우람한 남근 같다. 맙소사, 삼미의 토템은 정신이 오락가락 삼천포로 빠지는 골목길 바바리맨이 아닌가 !한나라당 윤리 심의 위원들이 대노할 장면이었지만 그들은 무식해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5. 단골 고객님에게 감사용 선물을 드립니다.

더군다나 슈퍼스타즈에 슈퍼스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프로야구 팀이기보다는 취미로 즐기는사회인 야구 팀에 가까웠다. 선수 이름도 슈퍼스타에 어울리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최강타, 전태풍, 백두산 같은 멋진 이름 대신 금광옥과장명부 그리고 감사용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금광옥은 새로운 사과 품종 이름 같고, 장명부는인기 만화 데쓰노트를 한국식 이름으로 지으면 어울릴 만한 이름 같았다. 그리고감사용은 감사용 다음에 선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얼굴도 까무잡잡해서 십 원에 열두 개 주는 아주공갈염소똥을 닮았다. 그런데도 슈퍼스타들이란다. 슈퍼맨 망토 입고 야구를 하는 정신 없는 구단답게 꼴찌는 삼미의 몫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좋지 않은 기록은 모두 삼미가 기록했다. 한 시즌 최다 연패, 한 시즌 최소 승률, 한 경기 최대 점수차 역전패,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한 경기 최다 홈런 허용, 한 경기 최다 사사구 허용, 특정 구단 상대 최다 연패, 최소 몸값 등등.

 

 

6. 소설도 만화보다 재미있을 수 있다.

승리한 경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적지만 패배한 경기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메이저리그 특급 투수 크리스매튜스의 말이다. 다음 해 삼미는 기똥차게 변신을 한다. 최종 성적은 1위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놓친 2였다. 박민규는 이 소설에서 실패의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국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뽑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를 뽑는다. 소설도 만화처럼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박민규에게 찬사를 !

 

 

7. 각하가 야구를 싫어하는 결정적 이유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야구란 본질적으로 실패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3할 타자란 열 번 싸워서 7번 실패하고 3번 성공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3할 타자는 실패한 타자. 그런데 야구는 3할 타자를훌륭한 타자라고 판단한다. 이렇듯 야구는 백전백승의 세계가 아니고 승자 독식의 세계도 아니다. 3 7패의 세계이다. 현대건설이 프로야구 팀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이명박의 성공 철학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야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포츠다. 야구는이명박 씨가 쓰레기통에 버린 그 실패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본다. 각하가“ 7패나 했어 ?“ 라고 조롱할 때,삼미슈퍼스타즈 팬클럽은“ 3승이나 했어! “ 라며 당신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래서 나는 야구가 좋다. 각하와 상득 씨는 죽었다 깨어나도 실패가 주는 짜릿한 감동을 알지 못한다.

 

8. 허공을 향해서

타자는 허공을 향해 방망이를 휘두르고 투수도 허공을 향해 공을 던진다. 타자는 외로운 존재다. 동료는 아무도 없다. 그는 동료들을 등진 채 홀로 그라운드에 선다. 앞에 보이는 것은 허공뿐이다. 그는 혼자서 9명의 상대팀 선수와 경기를 한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동료를 등진 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해 공을 던진다. 그들은 허각의 형 허공과 싸우는 것이다. 그것은 헛것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외로운 싸움에서 멜로의 서사를 읽는다. 야구는 남성 액션 영화이기보다는 여성 로맨틱 멜로 영화에 가깝다. 엄청나게 빠른 직구를 자랑하는 투수의 공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공은 딱딱한 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으로 포수의 글러브에 들어온다.

 

 

9. heart라고 쓰고 히트라고 읽는다.

그들은 <싸우> 는 것이 아니라 <싸랑> 을 하는 것이다. 로맨틱 멜로의 주인공들이 티격태격 싸우다가 정이 드는 장르라면 야구는 티격-타격싸우다가 눈이 맞는 장르다. 타자는 y좌표이고 투수는 x좌표이다. 곰곰생각하는발 박사의 음흉스러운 말투를 흉내 내자면 방망이는 페니스이고, 공은 젖가슴이다. 방망이 군은 공 양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자주 다니는 골목길에서 기다렸으나 공 양은 다른 곳에서 그를 기다린다. 멜로는 그것을 엇갈림이라고 부르고 야구에서는 헛 스윙이라고 부른다. 이 어긋남의 서사는 자주 반복된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그들은 우연히 마주친다. 그곳은 시청 앞 지하철 역이기도 하고, 두오모 성당이기도 하고, 쇼생크 탈출에서의 그 해안가이기도 하다. 멜로 드라마는 그것을그들의 운명적 만남이라고 부른다. 야구에서는 이 운명적 만남을히트/hit’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엔 하트/heart’처럼 보인다.

http://myperu.blog.me/2015122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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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2-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입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실컷 웃으라고.
한동안 지마켓에서 3900원에 팔기도 했구요^^
그 책을 읽은 선배가 너무 웃겨서 눈물난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뒤부터 그 선배가 책을 자주 사주지만.
남근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마당극하는 대전 우금치라는 민족극패가 공연한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에서 남근목 3개를 목에 건 교주의 명대사가 생각나네요. "남근아미타불 관능보살"

9번째 비유 정말 멋져요!! 가슴에 폭 박히는 말이네요. 안타가 사랑이라...
근우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문학은 기아땅.... (이제 근우는 한밭으로 가버렸지만)
문학구장에서 종범신이 연속 홈런(끝내기)을 쳤을 때 우리끼리 "이렇게 재미있는 걸 안보는 사람은 무슨 맛으로 살지?" 했었죠.
 
베니스의 상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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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베니스의 상인 > 을 읽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

 

 

셰익스피어의 < 베니스의 상인 > 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읽은 적이 없어도 읽은 것과 다름이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판결은 3개가 존재한다. 첫째가 솔로몬의 판결이다, 둘째는 예수의 판결이다. 그는 창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죄 없는 자만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아마...이명박 각하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제일 먼저 창녀에게 돌을 던졌을 것이 분명하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니 말이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각하가 예수와 동시대적 인간이었다면 예수의 위대한 판결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섹스피어의 희곡 < 베니스의 상인 > 에 나오는 남장여인의 “ 1파운드의 살과 한 방울의 피 판결이다. 남장여인의 주장은 이렇다 :“ 계약서에는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낸다고 했으니 살만 가져 가세요. , 채무자의피를 흘려서는 안 됩니다. 살만 도려낸다고 계약서에 적혀 있을 뿐 피를 흘린다는 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죠. 흠흠. “섹스피어는 이 장면을 연극의 절정 부분에 배치한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온다. 승기를 잡았다는 말.

 

 

만약에 채무자가 피를 흘린다면, 당신은 그 벌로 엉덩이 백 대와 전 재산을 몰수하겠어요. 동의하십니까 ?( 이때 샤일록이 몸을 비틀거리며 말을 더듬는다. 남장여인, 이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며 ) 말을 더, 더더더더듬지, , 마마마마마마마마시고 예나아니오, 로만 말씀하세요. 동의하십니까 ?“ 배심원과 재판 참관인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 브라보, 저 남장여인에게 영광 있으라 !

 

 

이 세 가지가 바로 3대 명판결이다. 그런데 나는 솔로몬과 예수의 판결에는 동의하지만 섹스피어의 판결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명판결이기는커녕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판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판결은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만약에 내가 샤일록이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장 여인의 말에 일단 동의하겠다. , 이제부터는 샤일록의 몸에 들어간 곰곰생각하는발의빙의다.

 

 

, 네네. 그러고말고요. 전 살만 도려낸다고 했으니 도련님의 소중한 피를 훔친다면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요. 일단 도려내겠습니다요 ! 피를 안 흘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샤일록을 연기하는 곰곰생각하는발 씨의 당돌한 태도에 남장여인은 당황한다. 화가 난 남장여인은 젖꼭지를 바짝 세우며 으르렁거린다. “ 좋아요, 도려내세요 ! 만약에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그에 따른 무시무시한 형벌이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감은 떨어져야 보기 좋은데, 감이( 걸어서 다가 ) 오면 그때부터는 감이 무서워진다. 저 감의 정체는 뭐야 ? 무서운 예감 ?! , 으으으으.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도대체 어떻게 피를 흘리지 않고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낸다는 것일까 ?흠흠, 섹스피어 원전보다 페루애곰곰생각하는발 씨의 외전이 더 흥미진진한걸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정육점에서 사용하는 칼을 들고 채무자 앞에 선다. 그리고는 귀족 남자의 볼을 잡고는 칼로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낸다.

 

 

하지만 여러분의 기대와는 달리 곧 경악스러운 사태가 벌어진다. 1파운드의 살점을 도려냈더니 백작 귀족 도련님의 얼굴에서는 피가 철철 넘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남장여인은 화가 잔뜩 나서 태형을 준비한다. 백작 귀족 도련님의 아픔보다 100배는 더한 고통을 안겨주마, 너의 멘탈은 도미노처럼 붕괴될 것이다, 더러운 유대인이여 !“아이구. 에그머니나 !이를 어쩐디요 ?피를 흘렸습니다요. 이거 원...... 약속대로 저에게 태형 100대를 때리십시요. 저의 실수를 제 스스로도 용납이 되지 않으니 100대에 100대를 더 때리십시요. 달게 받겠습니다 !“ 그런데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유로운 얼굴이다. 꿍꿍이 속내가 있는 것이다. 이어서 회심의 카드를 꺼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곰곰생각하는발 씨의 명연설이다.

 

 

 

, 몽둥이로 내 엉덩이를 때리시되 피멍이 들면 안 됩니다. 멍이 들어도 안 됩니다. 저는 태형에는 동의했으나 내 엉덩이에 피멍이 들어도 좋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 칼로 살을 베다 > 라는 말에는 이미 < 피를 흘리다 > 라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 치도곤을 먹이다 > 라는 말에도 <피멍이 든다 > 라는 내용이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흘리지 마라, 라는 요구와 피멍이 들면 절대 안된다는 요구는 모두 억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억지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저도 당신에게 요구합니다.

 

 

더러운 유대인인 저를 때리시되 피멍이 들면 안됩니다. 당신은 곤장을 때리겠다고만 말했지 멍이 생긴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채무자의 살을 도려낼 때 피를 흘린 것이 약속 위반이라면, 당신 또한 내 엉덩이에 피멍이 들게 만든다면그것 또한 약속 위반입니다. 빚을 담보로 1파운드의 살을 요구하는 저 같은 악덕 고리대금업자도 나쁘지만, 궤변으로 법 해석을 농락한 당신은 더 나쁜 범죄자입니다. 이 판결은 판례로 남아서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동안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만들었지만 이 판결은 앞으로 수백 명의억울한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비추는 한낮의 태양이라고 들었습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배웠습니다. 저 같은 고리대금업자에게도 법은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저는 여러분이 현명한 판단을 하시리라 믿습니다.법 전체를 농락한 저 사람에게 벌을 내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삐뚤어진 못난 인간에게 벌을 내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역사에 기록될 증인이 될 것입니다.만약에 제 엉덩이에 피멍이들게 만든다면 저는 그에 대한 대가로 저 사람의 숨통을 끊겠습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 일순, 사위는 침묵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한 남자가 용기를 내 일어서며 박수를 보냈다. 맨 뒤에 앉은 사람도 일어나 박수를 치며 외쳤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사건에 대한 재판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에 눈이 멀어서 한 인간의 몰락에만 관심을 가지는 꼴이 되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씨 ! 당신에게 영광을 !“ 상황은 역전되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는 곰곰발에게로.

 

 

 

과연 남장여인은 어떤 대답을 할까 ?남장여인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할 때 나는 더욱 단호하게 요구할 것이다. “, 더더더더더듬지 마시고 예, 아니오 라고만간단하게 답해 주십시요 !동의하시겠습니까 ?“ 우리가 이 연극에서 깨달아야 할 점은 재치 있는 남장 여인의 설레발이 아니라 불공정한 법의 잣대이다. 만약에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손에 의해 피를 흘려야 할 사람이 백인 귀족 도련님이 아니라 유대인 샤일록이라면 과연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 법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가 ?

 

 

셰익스피어는 철저하게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했다. 고흐처럼 사후에 명성을 얻은 작가도 아니다. 그는 가장 이른 나이 때부터 부와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당시의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잘 다루는 귀신 같은 작가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쉽게 말해서 대영제국 백인 주류 귀족의 똥구멍을 잘 긁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셰익스피어는 피 터지게 주류 사회와 싸운 작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나는 섹스피어보다는 조지 오웰이 더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망명 생활을 한 적도 없고, 배가 고파서 굶은 적도 없다. 셰익스피어는 이문열과 비슷하다. 이문열이 대한민국 주류인 한나라당과 중년 남성을 위해 비주류와 여성을 공격하듯이 섹스피어는 대영제국 주류인 귀족 사회를 위한 글만 썼다. 그것은 작가가 가져야 할 사회 인식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 잔재주는 좋으나 깊이가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쓴 사람이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이토록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시선과 야유를 보내는 문학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샤일록은 재판에 져서 재산을 몰수당한다. 돈을 빌려갔으나 갚지 않은 제국의 백인 귀족 도련님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의를 제기한 유대인 샤일록은 재산을 몰수당한다. 이건 좋은 판결이 아니라 악랄한 권력의 남용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로맨틱 소동극이잖아, 문학 작품이잖아, 셰익스피어 작품이잖아,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그 대가의 작품이잖아, 현명한 백인이잖아, 백인은 언제나 현명하잖아. 그럼, 그렇고 말고...... 현명한 자는 언제나 백인들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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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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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홈즈의 숨겨진 사건

은 발상 자체가 기똥차다. 셜록홈즈가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데 살해된 사람이 바로 코난 도일이라는 설정이다. 홈즈가코난 도일의 죽음을 수사하는 것이다. 발상도 재미있지만 홈즈가코난 도일을 비하하는 설정도 흥미롭다. 홈즈는코난 도일을 서푼짜리 잡문이나 쓰며 지내 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 자신의 창조주를 이토록 시니컬하게 경멸하는 재치에 박수를 ! 나는 재치를 갈치 다음으로 좋아한다. 실제로 코난 도일은 자신이 창조한 셜록홈즈를 굉장히 부끄러워 했던 인물이다.

 

비록 탐정 홈즈가코난 도일에게 부와 명성을 선물했지만, 그는 <셜록홈즈> 때문에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낭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도 소설 속에서 홈즈를 죽인다. 그러자 독자들이 씩씩거리며 항의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국기를 집 앞에 내걸고 조의를 표하기도 했다고 ! 농담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고 한다. 이 소설의 강점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텍스트가 열려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각도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는 단편이다. 훌륭한 단편이다.

 

 

 

그녀의 매듭

최제훈은 일단 글을 재미있게 쓴다. 미문을 쓰려고 하는 욕망이나 젠체하려고 하는 근성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그게 그의 장점이다. 그렇다고 너무 앵앵거리는 2학년 진달래 반 어린이 말투를 선보이지도 않는다. 앵앵거리는 버릇은 모기들에게나 줘 ! 이 작품도 독특하다. 주인공은 이성 친구인 성호를 놀릴 심산으로 장난을 치기로 한다. 우선 가장 흔한 이름으로 이현정을 선택한다. 미니홈피에 이현정을 치면 수많은 사람의홈피 주소가 뜬다. 360명의 이현정 중에 하나를 클릭 !

 

그 홈피 주인의 사진을 캡쳐한 후 성호와 함께 있는 장면으로 합성을 한다. 그냥...장난삼아서. 그리고는 성호의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가 지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가상 공간에서 만들어진 짝짓기가 현실에서 일어난다. 어느 날 주인공은 성호와 이현정이 애인이 되어 자신 앞에 나타난 장면을 목격한다. 설상가상, 이현정은 주인공을 잘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녀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다. 매듭, 그렇지 ! 매듭. 잘 못 묶인 매듭을 풀면 기억 상실에 걸린 주인공의 과거가 드러난다. 흥미, 진진하다.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이 소설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 . 최근에 이혼한 남자 한성민은 결혼을 앞둔 대학 동아리 여자 후배 수연을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곧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식사를 함께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 말은 곧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백을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야깃거리가 마땅치 않다. 예비 신부와 이혼남 사이에 < 결혼 > 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가 아니었던가 ? 결혼이 금기 시 되니 결혼과 관련된 사랑, 연애, 가족 이야기도 금지된다. 그러니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럴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 마리아 > . 마리아는 수연의 학원 동료이다.

 

그녀는 동료들 사이에서 마르지 않는 가십의 유전 이요, 입방아의 순교자 , “이러쿵저러쿵의 신화적 인물 이며, “ 뒷담화의 살아 있는 전설 이다. 그들은 만날 때마다 어색해지는 순간이 오면 마리아 뒷담화를 풀어놓는다. 그리하면 화기애애해진다. 하하하. 호호호 ! 남자는 마리아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자주 만난 것과 다름이 없다. 심지어는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 마리아의 근황 > 을 물어볼 정도이니 말이다. “ 글쎄 말이에요? 마리아와 마리다가 어젯밤 이러쿵저러쿵 !“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마리아는 수연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거나, 혹은 여러 인물을 하나로 통일한 캐릭터이고, 동시에 자신의 욕망이 전이된 인물이라는 사실. 어쩌면... 가장 흔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늘 자신만의 마리아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 어떤 남자가 있었지...> 로 시작하는, 싸구려 신파 멜로 남자 주인공의 회상은 백이면 백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마리아란 사람이 있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 녀석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여러 사람을 하나로 묶인 다중이이기도 하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퀴르발 남작의 성

괴물을 위한 변명

일단 재미있다. 삼라만상, 이 세상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후일담도 없다. 또한 고뇌하는 지식인 포스도 없다. 느닷없이 내가 네 애비다, 라고 말하는 다스베이다형 인간도 없다. 사소설 특유의 지랄도 없다. 일상성은 지나가는 개에게 줍시다. 최제훈은 한국 문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셜록홈즈, 마녀, 드랴큘라, 프랑켄슈타인, 괴물, 다중인격자 등등. 그는 의도적으로 한국적 색체를 지운다.

 

 

그의 소설 속에는 지명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남대문, 압구정, 대림, 신길 등의 지명은 지워져 있다. 의도적 생략처럼 보인다. 대신 스타벅스, 노이슈반스타인 성, 오카야마 성이 등장한다. 가족에대한 언급도 없다. 주인공의 트라우마는아버지 때문이었어요, 흑흑흑이라는지긋지긋한 < 가부장적 아버지 탓 > 도 등장하지 않는다. 최제훈은 해체된 가족 서사에 대해 관심 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은 무국적이다. 최제훈은 인터뷰에서 가족 서사 지긋지긋하죠 ! 지나가는 개에도 줘 버렸습니다. 허허허 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확신하지만 당신에게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 있다, 라고 말하기는 양심에 걸린다.

 

 

그는 한국형 가족 서사 속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을 호출하며 마녀를 불러들인다. < 아버지 어머니 아이 > 라는 욕망의 삼각형 대신 < 드라큘라 마녀 아이 >로 대체한다. 그는 아버지의 자리에 드라큘라를 호출하고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닌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한다. 아버지의 권위에 쪽을 준다. 아버지 죽이기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인 홈즈는<셜록홈즈의 숨겨진 사건 > 에서는 역으로 창조주인 코난 도일을 서푼짜리 잡문이나 쓰는 인물로 평가 절하한다.

 

 

한편 <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 >에서는 남성 사회에 의해 왜곡된 마녀의 긍정적 역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마녀 사냥은 17세기 유행했다가 18세기 들어 소멸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 마녀 사냥 > 열풍이다. 된장녀, 막말녀의 끊임없는 재생산은 남성 사회에 의해 자행되는 중세 마녀 사냥을 보는 듯하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참... 좆 같은 일이다. 여성인 당신에게 충고 한 마디 하자면 절대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지 마라. 담배 피우는 남성에게 따귀를 맞을 테니깐.

 

 

단편 < 괴물을 위한 변명 > 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의 관계를 다룬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창조주인 박사의 이름이다.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냥 단순히 무시무시한 놈, 악당, 짐승, 더러운 벌레로 불렸다. 작가는 원작의 주인공이 괴물이 아니라 박사임을 상기시킨다. 독자는 주인공인 박사에게는 관심 조차 없고 오로지 괴물에게만 열광한다. 코난 도일이 셜록홈즈에게 쪽 당하듯, 박사는 괴물의 인기에 쪽을 당한다. 창조주 아버지는 인기가 없다. 기존의 한국 소설 속 주인공이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이 소설은 역으로 아들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아버지를 다룬다. 못난이는 자식이 아니라 아버지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형 소설에서는 매우 낯선 풍경이다.

 

 

이문열이 이상적인 아버지를 주장하며 여성 지배를 정당화하고 신경숙이 어머니의 복원을 통해서 현대인의 결핍을 메우려고 한다면, 최제훈은 왜 못난 부모를 롤 모델로 삼는냐고 반문한다. 코난 도일보다 더 인기 있는 자는 아들인 홈즈가아니었습니까 ? 또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보다 더 인기 있는 자는 박사가 더러운 벌레라고 조롱하던 그 괴물이 아니었던가요 ?허허허.

 

 

 

!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

단언하건대, 이 소설은 2000년대 이후 출간된 소설집 중 현재까지 가장 훌륭한 소설집이다. 형편 없는 이상 문학상 수상 모음집 10권을 읽느니 차라리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좋다. 그는 독자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갖춘 작가이다. 천명관의< 고래 > 이후 가장 놀라운 <입봉작> 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소설이다. 강력,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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