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서랍 속 잡동사니

축구는 한심한 스포츠다, 농구도 한심한 스포츠다, 골프도 한심한 스포츠다, 체조도 한심한 스포츠다, 피겨스케이팅도 한심한 스포츠다. 오직 야구만이 위대한 스포츠다! 그렇다, 야구는 위대한 스포츠다. 나는 줄곧 보스턴 레드삭스 팀을 응원했는데 내가 레드삭스 팀을 응원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빨간양말이라는 앙증맞은 팀 토템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1에는 보스톤레드삭스 대신 템파베이를 응원했다. 나는 템파베이를 늘 < 서랍 > 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왜냐하면 서랍 속에는 온갖 싸구려 잡동사니가 다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를 서랍 속에 넣어두지는 않지 않은가 ? 서랍은 잠시 넣어두는 곳이지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서랍 속에서 잡동사니와 뒹굴다가 다이아몬드가 된 놈은 고급 쥬얼리 케이스를 요구하고는 했다. 고급 장식의 쥬얼리 케이스를 살 수 없는 템파베이는 몸값이 오른 선수를 시장에 팔아서 그 돈으로 무명이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영입하거나 구단 운영비로 쓰고는 했다. 한 마디로 명문 구단은 아니다. 템파베이는 메이저리그 구단 중 가장 가난한 구단이다.

 

2. 0.1%의 한계.

템파베이는 예상대로 <존나> 못했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다. 투수들은 템파베이와 상대하면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이길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8월이 끝날 때까지 템파베이의 팀 성적은 초라했다. 그해템파베이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0.1%였고 보스턴은 87%’였다.하지만 템파베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놓은 시점에서템파베이와보스톤의 승패는 똑같았다.리그 1위는 영원한 우승 후보 양키스였다. 전체 2위에게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를 얻기 위해서는 두 팀은 마지막 남은 경기에서 사력을 다해 싸워야 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템파베이를 응원하기로 했다. 약자에 대한 본능적 지지가 발동한 것이다. 당시 보스톤은 꼴찌였던 볼티모어와 경기를 했고, 템파베이는 영원한 우승 후보 양키스와 마지막 경기를치뤘다. 이미 템파베이는양키스와의 마지막 3연전에서 기적의 2연승을 한 터였다. 당시에 메이저리그 최강 팀이자 리그 1위인 양키스는 3연패를 당한 경험은 있어도 같은 팀에게 3연패를 당한 기록은 없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8회말까지)보스톤은 32로 이기고 있었고 템파베이는 70으로 지고 있었다.템파베이 0.1%의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

 

 

3. 우우 하지 맙시다. 와와합시다 !

- 라고 판단할 때 일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7 0’으로 지고 있던 템파베이는8회에 몸값이 가장 비싼 친구였던 상대 팀 투수에게서 무려 6점을 얻었고 9회엔 1점을 추가해서 동점을 만들었다. 아나운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리고 연장 12회에서는 굿바이 홈런을 터트려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아나운서는 또 다시 기적이라고 울부짖었다. 그 시각 보스톤은 9회에 2점을 헌납하고 역전패한다. 최종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친구는 템파베이였다.

나는 이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면서 펑펑 울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 시부럴..... 야구는 정말 위대한 스포츠야. 템파베이의 기적은 싸구려 스포츠 서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었다. 그것은 원숭이도 찍을 수 있도록 만든 십만 원 똑딱이 자동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대한민국 사진대전에서 대상을 먹은 꼴과 같았다.

 

4. 망토와 바바리

메이저리그에 템파베이가 있다면 코리안리그에는 삼미슈퍼스타즈가 있었다. 박민규의 놀라운 데뷔작 <삼미슈퍼스타즈 마지막 팬클럽 > 은 우승할 확률 0.1%를 가진 대책 없는 삼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 구단의 토템이 곰,,사자,호랑이, 거인등 용맹스러운 전사 이미지라면, 삼미의 토템은 망토 입은 사람이었다. 얼핏 보면 슈퍼맨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냥 사람이 망토 입은 모습이다. 망토 입은 사람이라... 망토 입은 사람이라....뚫어지게 쳐다보니 망토는 마치 바바리 외투처럼 보였다. 어라?!착시현상인가 ? 방망이는 우람한 남근 같다. 맙소사, 삼미의 토템은 정신이 오락가락 삼천포로 빠지는 골목길 바바리맨이 아닌가 !한나라당 윤리 심의 위원들이 대노할 장면이었지만 그들은 무식해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5. 단골 고객님에게 감사용 선물을 드립니다.

더군다나 슈퍼스타즈에 슈퍼스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프로야구 팀이기보다는 취미로 즐기는사회인 야구 팀에 가까웠다. 선수 이름도 슈퍼스타에 어울리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최강타, 전태풍, 백두산 같은 멋진 이름 대신 금광옥과장명부 그리고 감사용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금광옥은 새로운 사과 품종 이름 같고, 장명부는인기 만화 데쓰노트를 한국식 이름으로 지으면 어울릴 만한 이름 같았다. 그리고감사용은 감사용 다음에 선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얼굴도 까무잡잡해서 십 원에 열두 개 주는 아주공갈염소똥을 닮았다. 그런데도 슈퍼스타들이란다. 슈퍼맨 망토 입고 야구를 하는 정신 없는 구단답게 꼴찌는 삼미의 몫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좋지 않은 기록은 모두 삼미가 기록했다. 한 시즌 최다 연패, 한 시즌 최소 승률, 한 경기 최대 점수차 역전패,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한 경기 최다 홈런 허용, 한 경기 최다 사사구 허용, 특정 구단 상대 최다 연패, 최소 몸값 등등.

 

 

6. 소설도 만화보다 재미있을 수 있다.

승리한 경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적지만 패배한 경기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메이저리그 특급 투수 크리스매튜스의 말이다. 다음 해 삼미는 기똥차게 변신을 한다. 최종 성적은 1위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놓친 2였다. 박민규는 이 소설에서 실패의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국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뽑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를 뽑는다. 소설도 만화처럼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박민규에게 찬사를 !

 

 

7. 각하가 야구를 싫어하는 결정적 이유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야구란 본질적으로 실패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3할 타자란 열 번 싸워서 7번 실패하고 3번 성공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3할 타자는 실패한 타자. 그런데 야구는 3할 타자를훌륭한 타자라고 판단한다. 이렇듯 야구는 백전백승의 세계가 아니고 승자 독식의 세계도 아니다. 3 7패의 세계이다. 현대건설이 프로야구 팀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이명박의 성공 철학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야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포츠다. 야구는이명박 씨가 쓰레기통에 버린 그 실패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본다. 각하가“ 7패나 했어 ?“ 라고 조롱할 때,삼미슈퍼스타즈 팬클럽은“ 3승이나 했어! “ 라며 당신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래서 나는 야구가 좋다. 각하와 상득 씨는 죽었다 깨어나도 실패가 주는 짜릿한 감동을 알지 못한다.

 

8. 허공을 향해서

타자는 허공을 향해 방망이를 휘두르고 투수도 허공을 향해 공을 던진다. 타자는 외로운 존재다. 동료는 아무도 없다. 그는 동료들을 등진 채 홀로 그라운드에 선다. 앞에 보이는 것은 허공뿐이다. 그는 혼자서 9명의 상대팀 선수와 경기를 한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동료를 등진 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해 공을 던진다. 그들은 허각의 형 허공과 싸우는 것이다. 그것은 헛것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외로운 싸움에서 멜로의 서사를 읽는다. 야구는 남성 액션 영화이기보다는 여성 로맨틱 멜로 영화에 가깝다. 엄청나게 빠른 직구를 자랑하는 투수의 공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공은 딱딱한 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으로 포수의 글러브에 들어온다.

 

 

9. heart라고 쓰고 히트라고 읽는다.

그들은 <싸우> 는 것이 아니라 <싸랑> 을 하는 것이다. 로맨틱 멜로의 주인공들이 티격태격 싸우다가 정이 드는 장르라면 야구는 티격-타격싸우다가 눈이 맞는 장르다. 타자는 y좌표이고 투수는 x좌표이다. 곰곰생각하는발 박사의 음흉스러운 말투를 흉내 내자면 방망이는 페니스이고, 공은 젖가슴이다. 방망이 군은 공 양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자주 다니는 골목길에서 기다렸으나 공 양은 다른 곳에서 그를 기다린다. 멜로는 그것을 엇갈림이라고 부르고 야구에서는 헛 스윙이라고 부른다. 이 어긋남의 서사는 자주 반복된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그들은 우연히 마주친다. 그곳은 시청 앞 지하철 역이기도 하고, 두오모 성당이기도 하고, 쇼생크 탈출에서의 그 해안가이기도 하다. 멜로 드라마는 그것을그들의 운명적 만남이라고 부른다. 야구에서는 이 운명적 만남을히트/hit’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엔 하트/heart’처럼 보인다.

http://myperu.blog.me/2015122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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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2-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입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실컷 웃으라고.
한동안 지마켓에서 3900원에 팔기도 했구요^^
그 책을 읽은 선배가 너무 웃겨서 눈물난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뒤부터 그 선배가 책을 자주 사주지만.
남근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마당극하는 대전 우금치라는 민족극패가 공연한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에서 남근목 3개를 목에 건 교주의 명대사가 생각나네요. "남근아미타불 관능보살"

9번째 비유 정말 멋져요!! 가슴에 폭 박히는 말이네요. 안타가 사랑이라...
근우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문학은 기아땅.... (이제 근우는 한밭으로 가버렸지만)
문학구장에서 종범신이 연속 홈런(끝내기)을 쳤을 때 우리끼리 "이렇게 재미있는 걸 안보는 사람은 무슨 맛으로 살지?"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