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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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홈즈의 숨겨진 사건

은 발상 자체가 기똥차다. 셜록홈즈가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데 살해된 사람이 바로 코난 도일이라는 설정이다. 홈즈가코난 도일의 죽음을 수사하는 것이다. 발상도 재미있지만 홈즈가코난 도일을 비하하는 설정도 흥미롭다. 홈즈는코난 도일을 서푼짜리 잡문이나 쓰며 지내 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 자신의 창조주를 이토록 시니컬하게 경멸하는 재치에 박수를 ! 나는 재치를 갈치 다음으로 좋아한다. 실제로 코난 도일은 자신이 창조한 셜록홈즈를 굉장히 부끄러워 했던 인물이다.

 

비록 탐정 홈즈가코난 도일에게 부와 명성을 선물했지만, 그는 <셜록홈즈> 때문에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낭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도 소설 속에서 홈즈를 죽인다. 그러자 독자들이 씩씩거리며 항의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국기를 집 앞에 내걸고 조의를 표하기도 했다고 ! 농담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고 한다. 이 소설의 강점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텍스트가 열려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각도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는 단편이다. 훌륭한 단편이다.

 

 

 

그녀의 매듭

최제훈은 일단 글을 재미있게 쓴다. 미문을 쓰려고 하는 욕망이나 젠체하려고 하는 근성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그게 그의 장점이다. 그렇다고 너무 앵앵거리는 2학년 진달래 반 어린이 말투를 선보이지도 않는다. 앵앵거리는 버릇은 모기들에게나 줘 ! 이 작품도 독특하다. 주인공은 이성 친구인 성호를 놀릴 심산으로 장난을 치기로 한다. 우선 가장 흔한 이름으로 이현정을 선택한다. 미니홈피에 이현정을 치면 수많은 사람의홈피 주소가 뜬다. 360명의 이현정 중에 하나를 클릭 !

 

그 홈피 주인의 사진을 캡쳐한 후 성호와 함께 있는 장면으로 합성을 한다. 그냥...장난삼아서. 그리고는 성호의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가 지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가상 공간에서 만들어진 짝짓기가 현실에서 일어난다. 어느 날 주인공은 성호와 이현정이 애인이 되어 자신 앞에 나타난 장면을 목격한다. 설상가상, 이현정은 주인공을 잘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녀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다. 매듭, 그렇지 ! 매듭. 잘 못 묶인 매듭을 풀면 기억 상실에 걸린 주인공의 과거가 드러난다. 흥미, 진진하다.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이 소설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 . 최근에 이혼한 남자 한성민은 결혼을 앞둔 대학 동아리 여자 후배 수연을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곧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식사를 함께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 말은 곧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백을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야깃거리가 마땅치 않다. 예비 신부와 이혼남 사이에 < 결혼 > 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가 아니었던가 ? 결혼이 금기 시 되니 결혼과 관련된 사랑, 연애, 가족 이야기도 금지된다. 그러니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럴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 마리아 > . 마리아는 수연의 학원 동료이다.

 

그녀는 동료들 사이에서 마르지 않는 가십의 유전 이요, 입방아의 순교자 , “이러쿵저러쿵의 신화적 인물 이며, “ 뒷담화의 살아 있는 전설 이다. 그들은 만날 때마다 어색해지는 순간이 오면 마리아 뒷담화를 풀어놓는다. 그리하면 화기애애해진다. 하하하. 호호호 ! 남자는 마리아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자주 만난 것과 다름이 없다. 심지어는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 마리아의 근황 > 을 물어볼 정도이니 말이다. “ 글쎄 말이에요? 마리아와 마리다가 어젯밤 이러쿵저러쿵 !“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마리아는 수연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거나, 혹은 여러 인물을 하나로 통일한 캐릭터이고, 동시에 자신의 욕망이 전이된 인물이라는 사실. 어쩌면... 가장 흔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늘 자신만의 마리아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 어떤 남자가 있었지...> 로 시작하는, 싸구려 신파 멜로 남자 주인공의 회상은 백이면 백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마리아란 사람이 있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 녀석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여러 사람을 하나로 묶인 다중이이기도 하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퀴르발 남작의 성

괴물을 위한 변명

일단 재미있다. 삼라만상, 이 세상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후일담도 없다. 또한 고뇌하는 지식인 포스도 없다. 느닷없이 내가 네 애비다, 라고 말하는 다스베이다형 인간도 없다. 사소설 특유의 지랄도 없다. 일상성은 지나가는 개에게 줍시다. 최제훈은 한국 문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셜록홈즈, 마녀, 드랴큘라, 프랑켄슈타인, 괴물, 다중인격자 등등. 그는 의도적으로 한국적 색체를 지운다.

 

 

그의 소설 속에는 지명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남대문, 압구정, 대림, 신길 등의 지명은 지워져 있다. 의도적 생략처럼 보인다. 대신 스타벅스, 노이슈반스타인 성, 오카야마 성이 등장한다. 가족에대한 언급도 없다. 주인공의 트라우마는아버지 때문이었어요, 흑흑흑이라는지긋지긋한 < 가부장적 아버지 탓 > 도 등장하지 않는다. 최제훈은 해체된 가족 서사에 대해 관심 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은 무국적이다. 최제훈은 인터뷰에서 가족 서사 지긋지긋하죠 ! 지나가는 개에도 줘 버렸습니다. 허허허 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확신하지만 당신에게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 있다, 라고 말하기는 양심에 걸린다.

 

 

그는 한국형 가족 서사 속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을 호출하며 마녀를 불러들인다. < 아버지 어머니 아이 > 라는 욕망의 삼각형 대신 < 드라큘라 마녀 아이 >로 대체한다. 그는 아버지의 자리에 드라큘라를 호출하고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닌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한다. 아버지의 권위에 쪽을 준다. 아버지 죽이기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인 홈즈는<셜록홈즈의 숨겨진 사건 > 에서는 역으로 창조주인 코난 도일을 서푼짜리 잡문이나 쓰는 인물로 평가 절하한다.

 

 

한편 <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 >에서는 남성 사회에 의해 왜곡된 마녀의 긍정적 역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마녀 사냥은 17세기 유행했다가 18세기 들어 소멸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 마녀 사냥 > 열풍이다. 된장녀, 막말녀의 끊임없는 재생산은 남성 사회에 의해 자행되는 중세 마녀 사냥을 보는 듯하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참... 좆 같은 일이다. 여성인 당신에게 충고 한 마디 하자면 절대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지 마라. 담배 피우는 남성에게 따귀를 맞을 테니깐.

 

 

단편 < 괴물을 위한 변명 > 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의 관계를 다룬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창조주인 박사의 이름이다.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냥 단순히 무시무시한 놈, 악당, 짐승, 더러운 벌레로 불렸다. 작가는 원작의 주인공이 괴물이 아니라 박사임을 상기시킨다. 독자는 주인공인 박사에게는 관심 조차 없고 오로지 괴물에게만 열광한다. 코난 도일이 셜록홈즈에게 쪽 당하듯, 박사는 괴물의 인기에 쪽을 당한다. 창조주 아버지는 인기가 없다. 기존의 한국 소설 속 주인공이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이 소설은 역으로 아들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아버지를 다룬다. 못난이는 자식이 아니라 아버지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형 소설에서는 매우 낯선 풍경이다.

 

 

이문열이 이상적인 아버지를 주장하며 여성 지배를 정당화하고 신경숙이 어머니의 복원을 통해서 현대인의 결핍을 메우려고 한다면, 최제훈은 왜 못난 부모를 롤 모델로 삼는냐고 반문한다. 코난 도일보다 더 인기 있는 자는 아들인 홈즈가아니었습니까 ? 또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보다 더 인기 있는 자는 박사가 더러운 벌레라고 조롱하던 그 괴물이 아니었던가요 ?허허허.

 

 

 

!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

단언하건대, 이 소설은 2000년대 이후 출간된 소설집 중 현재까지 가장 훌륭한 소설집이다. 형편 없는 이상 문학상 수상 모음집 10권을 읽느니 차라리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좋다. 그는 독자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갖춘 작가이다. 천명관의< 고래 > 이후 가장 놀라운 <입봉작> 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소설이다. 강력,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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