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내가 여의도 대로에서 묻지 마 칼부림 범죄'를 저지른다면 조선일보는 제일 먼저 이 글'을 기삿거리에 인용할 것이 뻔하다. 곰곰생각하는발, 평소 잔인한 영화 자주 봐... 웨스 크레이븐의 < 왼편 마지막 집 > 에서 시체 훼손 장면을 보며 환상 키운 듯 !  이왕 인용할 거라면 다음과 같은 문장도 꼭 인용해 주길 바란다. " 나는 평소 아침마다 배달되는 조선일보'를 읽지도 않은 채 그 신문종이로 똥을 닦고는 했다. "

 

P.S 조선일보는 이런 기사 내용을 쓸 것이다 : 곰곰생각하는발은 평소 잔인한 영화를 자주 보았다. 웨스 크레이븐의 왼편 마지막 집에서의 그 유명한 시체 훼손 장면을 보며 환상을 키운 듯하다. 또한 조선일보'를 혐오한 점으로 보아 극렬 좌익 세력에 세뇌가 된 것으로 보인다.

 

 


 

 

 

 

 

 

 

 

Freaks : 애타게 공포 영화를 찾아서......

 

나는 중학생 때부터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공인한 걸작들만 보러다녔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시네마떼끄는 물론이고 불란스 문화원도 몇 번 간 적이 있다. 아, 불란서 하니깐 조경란이 생각난다. 불란서'스러운 조,경,란 ! 그래서 친구들이 3류 동시 상영 극장에서 하는 공포 영화‘나 에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할 때마다 속으로 코 팠다. 

 

" 그 영화 정말 무섭대 ! 학동이는 그거 보고 오줌까지 지렸다고 하던걸. 시바, 존나 무섭나 봐. 더군다나 영화 < 반지하 제왕 씨' > 이라는 영화는 주인공 제왕이가 서울 여자 다 따먹는 얘기래.  젖꼭지는 물론이고 여배우 털도 보여준대. 강식이 형이 말하던데 세상의 모든 거시기 털'은 다 곱슬이라네. 너 자지에 털 났냐 ? 났으면 한 번 보여 줘. 나도 다음에 나면 보여줄게. 응, 으으응? 이거 좆나 환상적인 조합 아니냐. 당장 야자 까고 보자 ! " 그럴 때마다 나는 작품의 질과 취향의 저급함’을 들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 아이콩, 므므므므므 무서워라. 보다가 똥도 쌀 놈들. 꺼져, 병신들아 !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와. 쮸쮸바나 빨아랏 ! " 당시 나는 적어도 아카데미 수상작 정도는 되어야 내 수준에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착각은 자유다.


동네 동무들이 할로윈따위의 공포영화에 열광할 때, 나는 점잖게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 지옥의묵시록 > 감독판'을 혼자 보고 있었다. 말론 브란도’가 말한 “ horror ... horror! " 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 할로윈 > 과 < 나이트메어 > 시리즈‘를 미치게 좋아했고, 무릎과 무릎 사이를 보고 싶었으며, 겨드랑이와 겨드랑이 사이’에 있는 물컹한 것을 한 번 만져보는 것이 당시의 소원이었다. 뽀송뽀송한 우윳빛 젖가슴이란. 당시 나는 커다란 도화지‘에 영화 별점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벽에 붙이고는 그날 그날의 영화와 별 스티커 점수를 기록하였는데, 당시의 공포 영화‘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별 세 개 이상은 무리였고, 반면에 아카데미상 출신 영화들은 지루해서 잠을 자는 한이 있어도 최소 별 세 개’ 이상이었다. 사실 입 주변에 솜털이 4월의 새순처럼 듬성듬성 자라던 아이‘가 < 지옥의묵시록 > 를 이해한다는 것은 파리가 경제를 이야기하는 뉴스 스튜디오에서 진지하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나는 < 지옥의 묵시록 > 을 보고 나서 " 별 다섯 개 ! 가장 위대한 영화!!!!!!! " 라고 그날의 영화 관람 카드’에 적은 기억이 난다. 허세가 작렬했던 시절이었고, 제대로 된 중2병이 도지던 시절이었다. 반면 < 무릎과 무릎 사이 > 따위의 영화를 영화 관람 카드에 적을 때‘는 부모님이 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 무와 무 사이 > 로 적고는 별 하나도 아까워 별 스티커‘를 매기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 장대를 든 여자 > 는 < 연필을 든 여자 > 로 개명하고는 혼자 까르르르 웃었다. 공포영화는 마치 친구들과 어울려서 거리를 걷는데 몸빼 바지’를 입고 머리에 다라이‘를 이고 가는 엄마’를 볼 때와 비슷했다. 나름 예술 영화 마니아로서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는 고백은 창피하고, 외면하고 싶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그 무엇이었다 !

 

 

 

 

 

그렇다, 당신도 전생에 한때는 자작나무‘이었듯이, 나 또한 한때는 영화광’이었고, 자일리톨‘이었다.  예술영화에 대한 열광이 시들해질 무렵, 동네 비디오 가게’를 지나가다가 문득 공포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는지는 지금이 모르겠다. 나는 바로 비디오 가게 문을 열고 공포 영화’ 코너‘를 훑어보았다. 신간들이 1박2일로 대여료 2000원에 팔리고 있는 사이 방구석 모퉁이의 공포 영화’는 먼지를 이불 삼아 드르렁드르렁 잠을 자고 있다. 늘어진 하얀 런닝구 사이로 젖꼭지를 보인 채 낮잠을 자고 있는 사과 장수인 아버지‘처럼.  굴러다니느라 멍들어서 상품가치가 떨어진 오래된 공포영화 테이프'는 개 당 500원에 한 개씩 팔리고 있었다. 떨이'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리지 않는 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었던가 ?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대한민국 비디오 가게‘에 팔리지 않고 낮잠을 자는 세상의 모든 공포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로 공포 영화 비디오 테입‘은 번개 맞은 박달나무’처럼 분주하게 팔리고 있었다. 물론 유일한 고객은 나뿐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전히 공포 영화‘는 팔 할이 쓰레기였다. 그래도 나는 이탈리아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공포 영화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해 본 공포 비디오테이프’가 이미 100개를 넘었다. 공포 영화 오디세이‘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싸구려 공포영화는 매우 훌륭한 장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있었고, 자일리톨이 있었고, 오래된 자작나무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 고무인간의 최후 > 였다. 처음에는 < 고무지우개의 최후 > 의 오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얼마나 그림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지우개가 닳고 닳았을까? 비디오테이프 뚜껑을 보니 조잡하기 그지없다. 뚜껑에 쓰인 카피 문구'처럼 정말 눈 뜨고는 차마 보지 못할 영화인지도 몰랐다. 차라리 < 우뢰매 > 의 특수효과를 칭찬해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 감독을 보니, 피터졌어 ?! 빵 ! 콩 콩 스카이콩콩.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없다. 당시 나는 비디오 가게에 나열된 순서대로 비디오를 선택했기 때문에 4편의 공포영화를 빌리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만 이 작품은 뉴질랜드 영화'라는 것 때문에 설레였던 기억이 난다. 기대하지도 않았으면서 기대한 영화다. 하지만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영화는 기가 막히게 훌륭했다. 기득권에 대한 냉소와 경멸 그리고 힘 있는 유머‘가 영화 전체’를 든든하게 지원사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나중에 이 영화를 만든 < 피터졌어 > 감독은 < 반지의제왕 > 으로 헐리우드를 정복한다. 피 터트리는 재주로 헐리우드의 제왕이 된 피터잭슨‘에게 경배를 !

 

 

< 나이트메어 > 를 만든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을 구하는 것도 이 오디세이의 별미’였다. 서울시의 모든 비디오 가게의 공포 코너‘를 샅샅이 뒤져서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연희동 < 으뜸과버금 > 에서 < 왼편 마지막 집 > 을 발견했을 때'는 서울대학교 전체 수석'을 차지한 것만큼이나 기분 좋았다. 그렇게 재미있냐고 ? 그렇게 훌륭하냐고 ? 천만에,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만큼 재미없고, 후지고, 지루한 영화’도 없다. 사실 별 스티커 하나도 아까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 왼편 마지막 집 > 에 감동한 이유는 베르히만의 걸작 < 처녀의 샘 > 을 아주 싸구려틱하게 리메이크했다는 점이다. 고상한 영화를 싸구려로 만드는 웨스 크레이븐의 연출력에 나는 감동했다. 시바, 그래 그거다.

 

다른 영화들처럼 진지하지도, 교훈을 주지도, 아름답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진지하지도 않아도 좋고, 교훈을 주지 않아도 좋고, 아름답지 않아도 좋고, 재미를 주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들의 지루한 그리고 비루한, 재미있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은, 명풍 루이비통 가방을 가지고 싶지만 가짜 루이비통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 지상의 삶은 교묘하게 싸구려 공포영화‘를 닮았다. 가끔은 상사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박살내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하빠리의 비애’를 공포 영화는 시원하게 만족시켜 준다.


가끔 뉴스에서 잔인한 공포영화와 포르노‘가 모방범죄의 원흉으로 지목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 나라’를 더 병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싶다.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빈곤에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을 외면하는 눈이고, 교육’을 빌미로 약장사 하는 사학이며, 뒷돈 챙기기에 혈안이 된 정치권이다. 이들이야말로 공포영화나 포르노‘보다 더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렇지 않을까 ? 나는 저예산 공포영화를 보면 몸빼 바지에 똥색 다라이‘를 머리에 인 어머니’가 생각나고, 한여름 그늘 아래에서 늘어진 런닝구 차림으로 낮잠을 자는 대책 없는 아버지의 초라한 젖꼭지가 생각난다.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셨던, 스펙타클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족보에서 너희들이 태어난 것이 유일한 스펙타클이라고 말씀하시던, 그런 싸구려 삶.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던 삶. 안녕 나의 괴물들. 안녕, 나의 프릭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공포 영화와 에로 영화'다, 라고 말할 줄 알았지 ? 뻥이야. ㅋㅋㅋㅋ.

 

 

 

 

 

접힌 부분 펼치기 ▼

 

 

- 벽지에 때가 타서 도배 할 생각은 엄두도 안 나고, 곰곰 생각하다가 직접 그렸다.

 

 

 

 

 

 

 

프릭스'와 카프카'라는 이름의 술병이다. 프릭스는 공포 영화'에 대한 개인적 오마쥬'이고, 카프카는 카프카에 대한 오마쥬다. 그 전에 살던 집에서는 한쪽 벽면 전체'에다 니체의 얼굴을 그렸다. 정말 말 그대로 얼굴만 그려서 거대했다. 다행히 그 집은 재개발 지역 아파트여서 내가 이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렸다.

 

 

 

 

 

 

花 라고 그려진 꽃병은 릴케'다. 윤희상 시인이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 흔들리는 꽃을 그렸다고 고백하듯, 나는 릴케를 그리기 위해서 화병을 그렸다. 화병 주둥이에 꽂힌 줄기는 장미'다. 그리고 장미 가시에 찔려 흘린 피는 릴케의 피다. 릴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즐거움이여. 내가 외우는 유일한 묘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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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3-2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게 읽었어요. 실컷 글 읽고는 '프릭스'를 장바구니에 담았지 뭐에요.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그림들이 아주 마음에 드는데요. 곰발님 글 속의 그림들은 그림 자체가 뭔가 말을 건네는 드한 느낌이랄까. 글과 그림의 유기적 결합이랄까.
책 들고 영화관에 가다' 코너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7 21:36   좋아요 0 | URL
사실 여기에 올린 글은 모두 복사해서 올린 글이비다. 다른 블로그에 썼던 글들인데
책과 관련된 거 죄다 이쪽으로 옮기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무슨 수로 이많은 글을 하루에 쓰겠어요. ㅋㅋ
옮긴 중에 이미지'나 추가하는 게 전부입니다. 제가 포스터'를 굉장히 좋아해요.
좋은 포스터 있으면 그동안 수집해 놓은 게 있는데 내용에 맞겠다 싶은 포스터 삽입하는 거니다.
요거 은근 재미있어요. ㅎㅎ.

달사르 2013-03-2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접힌 부분 펼치기' 기술도 터득하셨네요?
와..빠르십니다. ^^

직접 그리신 그림, 멋져요. 여기서도 프릭스'는 홀로 누워있군요. 한 방울씩 계속 떨어지는 중인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7 21:38   좋아요 0 | URL
앗.. 프릭스' 토드브라우닝 영화 말씀하시는 건가요 ? 이 영화느 워낙 개인적 취향이라..
하여튼 저의 베스트 10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무지 좋아해요.

+

프릭스란 병을 자세히 보면 울퉁불퉁해서 서 있을 수 없어요. ㅎㅎ. 항사 넘어져 있을 수밖에 없죠..

달사르 2013-03-27 22:25   좋아요 0 | URL
넵. 토드브라우닝요.
ㅋㅋㅋㅋ. 과연..프릭스' 답군요. 울퉁불퉁.

올해는 옛날 영화 좀 많이 봐야지..생각하고 있었는데, 곰발님 덕분에 계획이 수월하게 풀립니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8 00:34   좋아요 0 | URL
전 요즘 영화들 너무 현란해서 짜증이 나더라고요.
프릭스'라... 느낌이 묘할 겁니다. 하도 오래전에 보아서 가물가물하네요..

라로 2013-03-28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벽을 다 그림으로 채우신 거에요????헐~
곰생발님,,곰발님???암튼 계속 놀래키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8 12:21   좋아요 0 | URL
일종의 낙서로 도배를 한 거죠..ㅎㅎㅎ
저것도 죽노동이더군요. 9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갑질 사회 : 완장은 문신이다 !

 

 

 

 

 

 

 

  

 

 

 

 

 

 

 

 

 

 

 

 

 

 

 

 

 

 

 

 

 

 

 

 

A.

호돈의 소설 < 주홍글씨 > 는 가방에 대한 이야기'다. 이 가방의 로고가 A다. 주홍글씨 A 다. 주인공 헤스터가 가진 가방은 36폰트가 박힌 가방이다. 로고가 크니 백 미터 밖에서도 쉽게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손가락질한다. 헤스터가 욕을 먹는 이유는 촌티 나는 A 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민 모두 다 A를 가지고 있다. 다만 로고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 로고는 훗날 루이비통으로 진화하였다. 믿거나 말거나.

 

 

 


 

 

 

 

 

 

 

 

 

 

계급의 진화 : 주홍글씨 A에서 LV까지.

 

* LV : 루이비통

 

명품 로고'를 보면 계급이 보인다. 이 바닥을 들여다보면 우아한 것과 천박한 것'들의 두뇌 싸움'이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명품이란 말 그대로 비, 싼, 것' 이다. 백이면 백, 품질이 좋아서 구매한다기보다는 있어 보이기 위해서 구매'를 결정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초창기'에는 루이비통'이라는 로고를 폰트 36'로 대문짝만하게 찍어냈다. 이렇게 !

 

'루 이 비 통'

 

이 정도 크기라면 전방 백 미터 거리에서도 알 수 있는 크기다. 사람들은 이 크기에 압도당하고, 이 로고가 박힌 가방을 맨 여자'는 상류층, 우아한 것'이 된다. 그러면 상류층을 꿈꾸는 바로 아래 단계의 계급인 쁘디부르주아 무리는 무리해서라고 8년 3개월 할부'로 이 36 폰트의 루이비통을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는 상류층의 럭셔리 파티'에 참석하며 자신도 상류 계급의 일원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리지날 상류 계급은 루이비통 가방 하나 달랑 매고 돌아다니는 아랫것'을 자신들과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36 폰트 루이비통 대신 9 폰트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다니기 시작한다. 백 미터 밖에서도 보이던 로고는 이제 악수할 수 있는 거리 안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티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의 9폰트 루이비통을 확인한다. 그들은 서로 마주앉아서 차 마시는 사이다. 호호호.

 

 

'루 이 비 통'

 

 

어제까지만 해도 36폰트 루이비통 가방을 들던 살롱 마담들은 이제 36폰트 루이비통'은 가난한 년이 있어 보일려고 생색내는 가방'이라며 조롱한다. 하지만 눈치가 100단인 바로 아랫것은 8년 3개월 할부 중 7개월만 납부한 가방을 버리고 9폰트짜리 루이비통 가방으로 잽싸게 갈아탄다. " 저 년들을 따라가야 해 !  " 명품과 계급의 관계는 늘 이런 식'이다. 그런데 관계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하층 계급의 소비자'는 계를 타서라도, 빚을 내서라도 뒤늦게 36폰트 루이비통'을 카드로 긁는다. 이로써 상류 계급의 예언은 적중한다. 36폰트 로고가 박힌 루이비통은 가난한 년이 있어 보일려고 생색내는 가방이 된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욕만 먹는 꼴이다. 여기에 틈새시장을 노리고 접근하는 루이비통이 있다. 짝퉁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욕망만 상류층인 소비자를 위해 짝퉁은 만들어진다. 그들의 욕망을 위해서 36폰트로 박는다. 이것은 일종의 게임이다. 

 

 

나중에는 로고 없는 루이비통이 등장한다. 가방'을 열어야지만 개미 똥구멍 같은 로고가 보일 뿐이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이인 그들은 이제 가방을 열어 명함을 주고받는 은밀한 사이가 된다. 결론은 이렇다.  36폰트 루이비통 가방을 가진 사람은 아침 8시에 지옥철'을 타고,  14폰트 루이비통을 가진 사람은 자가용으로 출근을 하고, 9폰트 루이비통은 벤츠를 타고 출근을 하며, 로고 없는 루이비통을 가진 사람은 출근'을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명품 로고는 품격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천박한 것들이 꼴값하는 지표로 읽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고 없는 루이비통'은 우아한 자가 가질 수 있는 최후의 명품 종결자'인가 ? 천만에 ! 한정판'이 있다. 돈 있다고 무조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정판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가격은 최소 두 배 이상 오른다. 공장에서 나이키 만 개 만들다가 한정판이란 이름으로 달랑 열 개 만들면 열 배'로 뛰는 이치와 같다. 엄밀히 말하면 농락이지만 사람들은 희소성의 가치라는 이유'로 어리석은 소비를 한다. 비싼 가방을 사도 우아한 것들에게 욕을 먹으니, 돈은 돈대로 들고 자존심은 자존심 대로 상한다. 도대체 대안은 뭘까 ? 간단하다. 명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 된다.

 

이 루이비통 로고를 주홍글씨 A로 바꾸자. A는 욕망'이다. 희망은 드러내면 좋지만 욕망은 감추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 촌스러운 36폰트 로고가 박힌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마광수가 대표적이다. 교수가 야한 여자가 좋다고 하니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한다. 결국에는 음란죄로 재판에 호명된다. 그나마 남자에게는 관대한 편이다. 여성이 36폰트 A 로고가 박힌 가방을 들면 난리가 난다. 서갑숙의 < 나는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 가 좋은 예이다. 검사가 호통을 친다. 죄명은 36폰트 A라는 로고가 박한 가방을 가진 죄다. 쪽팔리다는 이유이다. 물론 검사는 36폰트 로고 A가 박힌 가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로고가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검은 가죽의 클래식한 가방이다.

 

장면이 바뀐다. 여기는 경기도 가평의 어느 별장. 반주 음악이 들리고 탬버린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카메라 이동하면 10명 남짓의 남녀가 노래방 시설이 갖추어진 거실에서 벌거벗고 그 짓을 한다. 씐난다 ! 누군가 외친다. 채찍이 필요해 ! 그 소리에 검사는 자신의 검은 가죽 가방을 열어 가죽 채찍을 꺼낸다. ( 인써트 ) 가방 안에는 상표가 있다. 촌스럽다고 지적했던 주홍글씨 A 다. ( 페이드 아웃 )

 

 

 

 

 

 로고의 진화

 

 

루이비통 : 가짜. 

루이비통 : 하층민 

루이비통 : 중산층

루이비통 : 상류층

루이비통 : 보다 상류층

루이비통 : 보다 더 상류층.

루이비통 : 최상위 1%.

루이비통  ; 로얄패밀리.

루이비통 ; 진짜 로얄 패밀리.

루이비통 : 정말로얄피밀ㄹ.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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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3-2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주홍글씨에 대한 논문을 써야 하는데 님의 이 주제를 좀 가져가서 사용해도 될까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해주셨네요!! 님 진짜 누구세요????ㅎㅎㅎ(팜님이 괴물이라고 했던 댓글이 기억나서;;;) 암튼 멋지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7 11:41   좋아요 0 | URL
아, 이거 완성된 글이 아닌데 올라갔네요 ? 어 왜 올라갔죠 ? ㅎㅎㅎ. 가져가세요. 왕창 !!!

달사르 2013-03-2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제가 얼마전에 촌년 인증 당했던 거로군요..ㅠ.ㅠ (이 포스팅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네요. 힝.)
지인이 결혼 선물로 명품 가방을 샀다고 보여주는데요. 로고가 가방 안에 있다면서 보여주더라구요. 명품인데 왜 로고가 뻔히 잘 보이는데 없고 가방 안에 있지? 이상타..하고만 말았더니..ㅋㅋㅋ

명품 가방 없으믄 탈계급?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7 17:26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요즘은 가방 안에 인증표를 단다고 합니다. 사실 명품 가지고 싶은사람들은 이미 카다로그 보고 다들 알잖아요. 하여튼 명품 로고는 크기가 점점 줄어들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추세입니다.
사실 나이키 로고가 제일 크게 박힌 옷은 대부분 짝퉁 3000원짜리 옷이었잖아요.
크면 다 짝퉁입니다.
명품 가방 없으면 글쎄요...ㅎㅎㅎㅎㅎ 뭘까요..

만화애니비평 2013-03-2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누나가 마지막이군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8 00:3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확히 보셨군요.
이거 무서워서 맘 놓고 쓰지도 못하게습니다.
 

토리노에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가 상징성'에 기반을 둔다면, 벨라 타르는 현시성'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은 즉물성이다. 벨라 타르는 그 어떠한 첨삭 없이 날것을 현시함으로써 진실을 보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온갖 상징으로 압도되는 알레고리화'라기 보다는 쿠르베나 일리야 레핀의 소박한 그림에 가깝다. 그는 < 과정을 과장 > 없이 보여준다. 양말을 신고, 바지를 입고,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스웨트를 걸치고, 마지막에 외투를 입는다. 그리고 옷을 벗을 때는 그 역순을 편집 과정 없이 집요하게 보여준다. 말의 장신구를 입히는 과정과 벗기는 장면도 지루하도록 반복된다. 결국 과장 없는 과정의 목격을 통해서 관객이 깨닫는 것은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반복'이다. 인간은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생의 의지를 죽음의 묵시록과 연관시켜서 인간은 시지푸스처럼 부조리한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벨라 타르는 生은 환희가 아니라 형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생의 의지'에 대한 경멸을 의미할까 ?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늙은 남자가 얼어버린 감자'를 씹을 때, 우리는 어떤 숭고함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숭고함은 생의 찬양이 아니다. < 겨우 > 살아야 하는 인간'에 대한 감독의 연민이다. 영화 < 토리노의 말 > 에서는 니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니체가 늙고 병든 말의 목덜미'를 잡고 울다가 미쳐버린 곳이 바로 토리노'다. 이 일화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롤랑 바르트의 < 카메라 루시다 > 이다. 그는 " 1889년 1월 3일, 학대받아 숨진 말의 목덜미에 울며 매달리던, 연민'때문에 미쳐버린 니체 " 라고 적는다. 나는 이 하나의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사랑했다. 그것은 박완서의 < 그 남자네 집 > 에서 한때의 찬란을 " 내 생애 구슬 같은 겨울 " 이라고 말해서 내 심장을 뛰게 했던 것과 같은 울림이다.

 

 


 

 

 

 

 

 

 

 

 

 

옛 고전 그림'은 대부분 알레고리畵였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징'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화가 얀 반 에이크의 걸작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 1434年 > 그림은 배경 속 사물의 속뜻'을 이해하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미술학자 파노프스키는 이 작품을 결혼(을 증명하기 위한) 그림이라고 해석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촛대 위에 켜진 단 하나의 초는 신의 통찰력과 지혜 혹은 결혼에의 맹세를, 오렌지는 아담의 사과를 의미하는 과일을, 강아지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충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묵주는 영혼의 걸음이고, 빗자루는 마음을 쓸어담는 도구이고, 벗어놓은 신발은 결혼식을 수행하는 공간이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배치다. 그리고 거울 뒤에 반영되는 세 인물은 화가와 조수 그리고 결혼을 증명하는 증인'이라고 한다. 파노프스키'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상징이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피어싱이고, 목에 걸면 목걸이다. 엿장수 마음대로'다. 

 

도상학'이 우습다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일 때 도상학이 主가 되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상징 해석은 별책 부록 정도로 다루어야 한다. 냉정하게 이 그림을 보자 ! 이 그림에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불이 켜진 하나의 초는 신의 통찰력에 대한 상징일까 ? 그렇지 않다. 네덜란드의 일조량은 매우 적다. 일년 내내 비가 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낮에도 촛불을 켜 두고는 했다. 그리고 오렌지에 대한 해석도 과장된 해석이 많다.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 에서 왼쪽 창가를 보면 오렌지가 놓여 있다. 도상학자 파노프스키'는 이 과일을 선악과 이전의 순수'를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미술학계의 거목이니 그의 말은 권위'를 얻는다. 그런데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오렌지'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림 속 모델인 아르놀피니는 부호'였다고 한다. 당시 그림은 부자들의 사치품 중 하나였다. 일반 서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어서 거상들이 그림 속 모델로 등장한 이유는 부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림은 그 이전에는 주로 성서나 신화 속 주인 혹은 권력자들의 몫이었다. 그러던 것이 상인들이 떼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파워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르놀피니'가 궁정 화가였던 아이크를 고용해서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것은 아르놀피니가 아이크에게 꽤 비싼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흐가 이웃집 모델을 그리는 따위의 서민적인 풍경을 연상하면 안 된다. 당시에 그림은 사치품이었다. )

 

 

 

 

 

 

홀바인의 < 대사들 > 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그림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뽐내기 중 하나였다. 만약에 당신이 아이크에게 그림을 주문했다고 하자.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 나라면 이렇게 요구하겠다. " 제가 책을 좋아하다 보니 거실을 배경으로 그려주십시요. 아, 그리고 이쪽... 이쪽으로 오세요. 요 책장이 콩가에서 직수입한 삼나무인데요. 번개 맞은 나무입니다. 명품이죠. 이곳에 서 있는 것을 그려주세요. 구두는 페리가모'를 신겠습니다. 하하하, 제가 이 수제 구두를 러브합니다. 아, 그리고 바나나 ! 하하하하. 창가에 바나나 하나 놓고 그립시다. 맛 좀 보신 적 있소 ?  이놈의 바나나 하나가 농민들 한 달 품삯이라니, 비싸도 너무 비싼 과일이오. " 대충 이런 식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네덜란드에서 오렌지'는 구경하기 힘든 과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오렌지를 먹는다는 것은 곧 부를 상징하는 것. 아르놀피니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오렌지'를 선택했다면 ? 오렌지에 대한 해석에서 전자가 도상학적 접근이라면 후자는 사회경제학적 접근'이다. 도상학적 접근이 맞을 수도 있고, 경제학적 접근이 맞을 수도 있다. 경제학적 접근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 책 읽어주는...... > 따위의 미술 소개 책들은 모두 오렌지'를 성악과 이전의 순수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파노프스키의 해석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틀릴 수도 있다.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과일을 종교적 성스러움과 결부시키려면 차라리 사과나 포도'를 그렸어야 하지 않을까 ? 오렌지'는 오히려 파노프스키의 도상학'이 매우 위험한 접근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시 르네상스 시대는 부와 사치'를 훌륭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또한 그러한 사치 품목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부의 과시는 지금처럼 부도덕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림을 주문한 거상은 자신이 소유한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그림 속에 명품이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림 속 오렌지'는 아담의 사과에 대한 은유가 아니라 그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구하기 힘든, 가장 비싼 과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을 가진다.

 

지나치게 과도한 상징과 기호'는 부르주아적 시선이다. 그것은 일종의 살롱 문화'가 선호하는 취향이다. 많이 배운 놈이 그림의 이해력도 좋다. 결국 도상학이란 많이 배운 놈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재료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번역하자면 < 갑 > 의 놀이터이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다. 바로 귀스타브 쿠르베'다. 그는 체질적으로 상징과 기호'를 경멸했다. 상징을 해석해야지만 그림이 비로소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은 민중에 대한 배,배배배배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천사를 보지 않았기에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상징에 대한 오브제'를 배제했다. 도상학에 대한 상식이 없이도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가 원한 것은 순수한 리얼리즘'이었다.

 

< 세상의 근원 > 은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리얼리티란 완벽한 재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것을 재현하려는 욕망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일리야 레핀의 <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 도 리얼리즘의 걸작이다. 이 그림 또한 도상학적 오브제'가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어떤 상징 해석'보다 풍부하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느닷없는 출현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기쁨과 놀람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하는 레핀의 눈은 매와 같다. 이 작품이 알레고리화'와 차별점을 두는 것은 날것의 생생함이다. 리얼리즘은 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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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3-28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그림도 맘에 들어 한참을 봤는데, 링크도 걸려 있군요. 하하. 그림 읽어주는 남자' 셨군요. ^^

도상학. 일종의 그림 해부학 개념이네요. 유명한 도상학자는 요즘의 유명한 평론가 스타일?
근데 저런 설명이 없으면 저 같은 사람은 그림 속에 뭐뭐가 있는지 제대로 다 보지도 못했을 것 같애요. 그저 와..천 질감이 제대론데? 저 구겨진 부분을 봐. 강아지 털은 또 어떻구? 완전 북실거려. 아, 만지고 싶다. 남자는 다리가 왜케 얍실해? 완전 부실한데? 슬리퍼는 왜 저래? 좀 단정하게 놔두지 않고 말야...등등의 생각에 그쳤겠어요. ㅎㅎ

별책부록 정도의 도움으로 도상학 설명을 듣고, 나머지는 자기가 창조적으로 생각을..제 생각에도 오렌지 그림은 비싸다, 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 거 같애요. (주위에 그림 좋아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 해부면 무척 좋아할 것 같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8 00:37   좋아요 0 | URL
슬리퍼도 무슨 상징이 있던데 까먹었습니다.
참고 자료론 좋지만 그것을 그림 감상의 주가 되면 좀 곤란한 거 같아요.
아하, 그럴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해야지 이것은 그거다, 라는 전재를 깔고
보면 개인적감상이 반감이 되잖아요. 그래서... 어줍잖게 일갈을 ㅎㅎㅎㅎㅎ

달사르 2013-03-28 00:45   좋아요 0 | URL
요즘 공부하는 게 있어서 늦게까지 공부하다 오늘, 머리 제대로 식히고 갑니다. ^^
제 댓글이 미진한 듯하여, 위에 추가댓글을 좀 보강했슴돠~

달사르 2013-03-2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라 타르가 영화계의 쿠르베 씨인가요?
현시성. 일상의 반복..'토리노의 말'도 시간 내서 봐야겠어요. 잘 읽은 고마움으로,
황지우 시인의 시 한 편 덧붙입니다.


<거룩한 식사>
황 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매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8 00:3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좋아하는 황지우 시네요.
토리노의 말 보십시요. 깜짝 놀라게 됩니다.
뭐... 기똥차서 말이 안 나와요.
최소주의'라고 하나요...
전 요즘간결한 게 좋아요.
바우하우스적 디자이 좋아하거든요.
토리노의말은 최소주의'적인 영상이 맘에 듭ㄴ다.

걸작이라는 말은 이런데 쓰이는 걸 겁니다.


 

 

 

헌책.

 

 

 

 

 

 

 

 

 

  

 

 

 

 

 

 

 

 

 

 

 

 

 

 

 

 

 

 

시간이 지나면 새 책은 반드시 중고 매매 시장으로 나온다. 새책에서 헌책으로의 이동 기간이 짧다는 것은 책으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받는 책이라면 외면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중고 매매 시장을 가득 채우는 책들은 대부분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들)이거나 자기계발서들이다. 대중으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은 책들이 사실은 주인으로부터 제일 먼저 버려지는 것이다. 중고 서적 도매 시장 서고에 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그곳은 베스트셀러의 유기보관書요, 고려장'이다. 내가 김난도의 힐링 에세이나 김미경의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이유는 그 책들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그 책들보다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는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지면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들이다. 새끼 때는 귀엽다며 키우다가 다 크면 시끄럽게 짖는다고 몰래 버리는 염치없는 반려견의 주인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탕'이다. 달아서 핥아먹는 것이다. 김미경은 인문학서를 시건방진 것'으로 정의했는데, 이 정의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생각은 자유요, 착각도 자유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헌책방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새책은 자기계발서이다. 반면 가장 늦게 도착하는 책은 인문학서'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알라딘 중고 장터'에서 가장 빈약한 서고는 인문학 분야'이다. 적게 팔리지만 책 주인으로부터 가능 늦게 버려지는 책이 바로 인문학서'이다. 김미경의 말대로 책은 잘못 없다. 책을 고르는 대중의 안목이 문제다. 사랑과 사탕을 혼동하지 말자.

 

 

 


 

 

 

 

 

 

 

 

책은 출판사가 만들지만 헌책은 책 주인이 만든다.

 

 

며칠 동안 100편에 가까운 글을 " 올렸다. "  내가 이 문장에 < 쓰다 > 라는 동사를 굳이 쓰지 않은 이유는 전에 사용하던 블로그에 있던 글(들)을 이곳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이미지 하나 첨부하고 서체'를 바꾸는 정도가 내가 알라딘 서재'에서 했던 전부다. 그동안 이삿짐을 풀고 책장을 정리한 꼴이다. 이젠 얼추 다 정리가 된 것 같다. 차분한 마음으로 첫 번째 독서 일기'를 " 쓴다. "

 

오래된 잡지'를 샀다. 서른 권 정도니 크게 들인 것이다. 그것도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의 월간 영화 잡지 키노'를 말이다. 학창시절 때 용돈을 받은 기억이 없어서 명절 때 받은 돈으로만 잡지'를 사다보니 이 빠진 옥수수 모양이 됐다. 12, 1월호는 있는데 2, 3, 4, 5, 6월호는 없고, 7, 8월호는 있는데 9, 10, 11월호는 없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사서 읽지 못했던 것을, 빌려 읽느라 조심스럽게 읽었던 잡지를 이제 다시 읽는 것이다. 근 20년 전의 잡지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 기분이 묘하다. 한껏 멋을 낸 모델의 패션이 촌스러울 때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오래 전 잡지'라는 것을 각인시켜 줄 뿐 그다지 생경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앳된 최진실의 인터뷰나 이경영의 스틸 사진'을 볼 때이다. 그들은 10년 후의 일들은 까마득히 모른 채 방긋 웃고 있었다. 소녀의 들뜬 열의, 세상에 대한 낙천적 호의 그리고 성공에 대한 굳은 결의. 그런 것들. 누가 알았으랴. 운명이라는 이름의 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반면에 한류 스타의 낯선 모습도 종종 보인다. 단역으로 스틸 사진 프레임의 끝에 있는, 스치고 지나가는 촬영 현장에 찍힌 모습이 이채롭다. 알고 있었을까 ? 누구는 10년 후에 몰락하고, 누구는 10년 후에 우뚝 솟은 스타가 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또... 모른다. 10년 후의 어느 독자가 10년 전 오늘의 잡지를 보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잭 상태는 새책이나 다름없었다. 볕을 받아서 누렇게 변색이 되었을 뿐, 읽은 흔적은 거의 없다. 구겨진 흔적도 없고, 밑줄을 긋거나 잘생긴 리버피닉스의 사진을 오린 흔적도 없다. 하긴 누가 월간 잡지따위'를 읽으면서 밑줄을 긋겠는가. 하지만 서운하다. 흔적(밑줄)이란 일종의 고백'이다. 그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헌책을 읽을 때 발견하게 되는 책주인의 밑줄을 볼 때마다, 나는 읽기를 잠시 멈추고 밑줄'만을 본다. 밑줄을 긋는다는 행위는 책의 주인이 책의 저자에게 보내는 동의, 공감, 하이파이브'다. 비록 밑줄 친 문장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는 그 문장을 깊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책 주인은 밑줄로 자신의 생각을 " 쓴다. "

 

보르헤스'의 단편 <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은 필사의 대가 피에르 메나르'가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 를 마침표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 적음으로써 원전을 능가하는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이야기'다. 여기서 피에르 메나르의 필사는 표절이 아니라 창조'다. 여기서 굳이 저자의 죽음이나 독자 반응 이론, 시뮬라시옹, 현상학, 후기구조주의 등의 딱딱한 먹물 꼰대 스타일로 풀어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자/텍스트'는 세르반테스이고, 독자/수용자'는 피에르 메나르'는 점이다. 그러니깐 돈키호테의 애독자 피에르 메나르의 필사는 곧 밑줄'에 대한 은유이다. 밑줄은 쓰는 행위'이다. 밑줄이 하나의 완성된 " 묶어서한말 " 이라면, 서표 대신 모서리를 접은 흔적은 마침표와 쉼표이다. 그리고 책 사이사이에 끼워진 오래된 영수증이나 극장표 등'은 독자의 딴생각'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헌책의 역사를 만든다.

 

▶ 묶어서한말 : 깨알오소리사전을 참조하라.

 

 

사실 소설가들은 모두 제 2의 피에르 메나르'였다. 이 밑줄(들)을 모아서 결국은 자신의 책을 완성하는 것이다. 박민규, 김연수, 김애란, 천명관 등은 모두 수천 번의 밑줄 끝에 자신의 글을 완성한 사람들이다. 새책 같은 헌책'보다 더 풍요로운 것은 헌책 같은 헌책'이다. 헌책의 가치는 흔적에 있다. 밑줄이나 메모 그리고 모서리가 접힌 흔적은 책의 텍스트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소설은 소설가가 만들고, 새책은 출판사가 만들지만, 헌책은 책의 주인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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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1이다.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창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양들의 침묵 : 사라진 알파벳(들) b, u, s.

 

 

 

 

 

 

 

 

희생자는 모두 “ 가죽이 벗겨진 채 ” 죽는다. 더군다나 희생자의 목에는 커다란 나방의 고치가 걸려 있다. 연쇄살인범‘은 < 버펄로 빌 > 이라고 불리는 놈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가 바로 한니발 렉터 박사‘ 다.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이 그는 죽은 자의 살갗을 벗기기보다는 차라리 그 인육을 먹는다 ! 토머스 해리스의 < 양들의 침묵 > 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조나단 드미 감독의 영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영화‘는 장르 특유의 상투적인 공식’을 과감하게 뒤집는다. FBI 수사 요원‘인 클라리스는 연쇄살인범 버펄로 빌’을 잡기 위해서 감옥에 갇힌 연쇄살인범인 한니발 렉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상한 짝패 관계이다. 여기서 홈즈 역은 연쇄살인범이고, 왓슨 역은 여형사‘이다. 범죄자는 멘토이고, 형사는 멘티이다. 클라리스는 렉터의 도움 없이는 사건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살인자와의 인터뷰가 진행하는 동안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가 역전된다. 감옥 안에 있는 살인자가 질문을 던지고 감옥 밖에 있는 형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lam(b)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말하는 입과 먹는 입 / Oral 이다. 버펄로 빌’이 죽인 희생자의 목구멍에는 나방의 고치‘가 걸려 있다. 식도가 막혔다는 것은 곧 발설과 배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입은 항문과 연결되어 있는데, 유년기는 바로 구순기/Oral 와 항문기/Anal 의 지배를 받는다. 버펄로 빌이 강박적으로 목구멍 속에 좀벌레 나방‘의 고치를 목구멍 속에 넣는 행위’는 그가 소화에서 배변까지, 혹은 상대방과의 소통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구강 기관 장애‘는 비단 버펄로 빌의 문제만은 아니다.

 

제목 < 양들의 침묵 > 에서 “ 침묵 ” 은 바로 목이 막혀서 말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병적 증후이다. 이 말할 수 없음’은 사건이 점점 진행되면서 클라리스의 트라우마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양을 뜻하는 lamb은 철자 b가 묵음으로 처리되면서 단어 lam 과 동음이의어‘로 작동한다. lam의 사전적 의미’는 때리다, 내빼다, 달아나다 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단어’가 스탈링이 렉터 박사에게 힘겹게 고백하는 자신의 정신적 상흔을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한밤중에 양/lamb 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어린 클라리스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간다. 거기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양을 도살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그는 양을 격렬하게 때린다.(lam : 때리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클라리스는 그 자리에서 달아난다. ( lam : 달아나다. ) 이 장면은 프로이트가 말한 < 원초적 장면 > 과 겹친다. 어린 클라리스‘에게는 양 도살 장면’이 정신적 상흔으로 남은 것이다. 성인이 된 뒤에도, 그녀는 이 상흔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녀가 힘차게 말하지 못하고 몰래 도망치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은 결국 그녀 스스로 남은 양들의 살육‘을 도운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lamb 에서 철자 b 를 묵음으로 처리함으로써 양의 죽음에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알파벳 b 다. 이렇듯 이 소설/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는 괄호 ( ) 다.

 

 

 

▦ mo(u)th

이러한 알레고리‘는 작품 속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 나방 > 의 존재에서도 드러난다. 나방을 뜻하는 moth mouth 와 유사하다. 영화 < 양들의 침묵 > 메인 포스터’는 클라리스를 연기한 조디 포스터가 정면을 응시하는 디자인인데, 입 대신에 나방이 있다. 그러니깐 mouth 대신 moth 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므로 클라리스, 한니발 렉터, 버펄로 빌’은 모두 < 입 > 이라는 단어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 그들은 모두 구강 기관‘에 문제가 있다. 클라리스가 발화‘에 문제가 있다면, 렉터 박사’는 섭식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의 병명은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될 인육을 먹는 < 이상 섭식 장애 > 이다. 그리고 버펄로 빌은 희생자의 목구멍 속 깊숙이 나방의 고치‘를 삽입한다.

 

작품 속에서 버펄로 빌의 직업은 재단사‘다. 그는 희생자들의 피부에서 벗겨낸 여성 인피로 가죽 옷을 만든다. 그의 욕망은 여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 피부로 만든 옷으로 몸을 감싸서 자신의 남성 육체’를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고치 속에 몸을 숨긴 좀나방 유충처럼 말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나방을 뜻하는 단어인 moth는 입을 뜻하는 단어인 mouth'에서 알파벳 u가 생략된 낱말이다. mo(u)th‘이다. 그래서 버펄로 빌’은 희생자의 mouth'‘에 mo(u)th' 를 삽입한다. 이 얼마나 황홀하며 상징적 제스츄어인가. 이것은 살인자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이다. 버펄로 빌의 목적이 여성이 되는 것이라면, 렉터 박사의 목적은 지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라리스의 정신적 해방은 무엇일까 ? 밤마다 들리는 죽어가는 양들의 성난 울음소리‘를 잠재울 방법 말이다.

 

방법은 하나다. 그녀의 목구멍 속에 있는 나방의 고치’를 빼내서 소리가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마치 호리병의 뚜껑을 빼서 병 속에 갇힌 요정을 빠져나오게 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방식은 정신과 치료의 가장 기초적인 치료법‘이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목구멍 속에 숨겨진 비밀‘을 발설하게 함으로써 병을 치유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 공교롭게도 작품 속 한니발 렉터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래서 유리벽 사이‘로 나누는 렉터와 클라리스의 대화는 사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대화요법’인 것이다. 렉터는 그녀에게 아직도 밤마다 양의 울음소리‘를 듣는가, 라고 묻는다. 그녀는 그의 집요한 질문에 굴복하여 자신의 비밀을 발설한다. 그 순간, 십 년이 넘도록 꽉 막힌 목구멍이 뚫린다. 비로소 그녀는 버펄로 빌의 작업실을 발견한다. 클라리스가 버펄로 빌’의 집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는 이제 여섯 번째 희생자의 살가죽을 벗겨 옷을 완성하려고 한다.

 

 

 

▦ jame(s)

원작자인 토머스 해리스가 lamb 에서 알파벳 b 가 묵음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발음이 같은 lam 를 이야기에 편입시키고, mouth 에서 알파벳 u를 생략시켜서 moth의 서사를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clothes와 mo(u)th라는 두 단어를 결합시킨다. 해리스는 버펄로 빌의 욕망의 오브제인 clothes 와 mo(u)th를 연결한다. 결국 우리는 최종적으로 a clothes moth' : 좀벌레 나방이라는 단어를 얻는다. 그가 키우는 나방 이름이다. 이렇듯 단어를 가지고 장난치는 방식은 버펄로 빌의 이름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의 진짜 이름은 제임/ jame 이다.

 

원래는 james인데 병원 담당 계원의 실수로 jame 이라고 표기하는 바람에 제임스가 아니라 제임이 되었고 책의 에필로그에 나온다. 그러니깐 그는 자신의 잘못된 이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잘못된 이름인 jame 으로 살아간 것이다. 그의 이름인 제임은 알파벳 s가 탈락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희대의 살인자인 버펄로 빌을 이해해야 한다. 좀나방 유충은 천으로 된 옷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그는 좀나방 유충이 갉아먹지 못하는 인피로 만든 여성 가죽 옷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닐까 ?

 

이 영화의 원작자인 토머스 해리스‘는 매우 정교하게 씨줄과 날줄’을 엮는다. 겉으로는 선정적이며 엽기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나가는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해석이 과연 내가 억지로 짜 맞춘 것에 불과할까 ?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종류의 대중소설‘을 문학적으로 평가할 가치가 없는 펄프픽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정교하게 짜인 구조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형편없이 지루한 소설’을 읽느니 차라리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이 낫다. 헤르만 헷세의 성장소설이나 토머스 해리스의 성장소설이나 다 같은 성장소설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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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4 = 1이다.
    from 새빨간 활 2013-05-01 06:46 
    44 = 1'이다. 특정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닥치는 대로 읽고 보는 편이다.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파는 스타일'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 그래야 깊게 팔 수 있는 법이니깐. 추리 소설'도 건드려 보고, 하드보일드 소설'도 찔러 보고, 공포 소설도 건드려 본다. 그리고 스릴러'도 살짝 간만 본다. 설핏 보기엔 곁가지만 요란하게 뻗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 범죄 소설 > 이라는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