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시간이 지나면 새 책은 반드시 중고 매매 시장으로 나온다. 새책에서 헌책으로의 이동 기간이 짧다는 것은 책으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받는 책이라면 외면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중고 매매 시장을 가득 채우는 책들은 대부분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들)이거나 자기계발서들이다. 대중으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은 책들이 사실은 주인으로부터 제일 먼저 버려지는 것이다. 중고 서적 도매 시장 서고에 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그곳은 베스트셀러의 유기보관書요, 고려장'이다. 내가 김난도의 힐링 에세이나 김미경의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이유는 그 책들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그 책들보다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는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지면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들이다. 새끼 때는 귀엽다며 키우다가 다 크면 시끄럽게 짖는다고 몰래 버리는 염치없는 반려견의 주인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탕'이다. 달아서 핥아먹는 것이다. 김미경은 인문학서를 시건방진 것'으로 정의했는데, 이 정의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생각은 자유요, 착각도 자유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헌책방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새책은 자기계발서이다. 반면 가장 늦게 도착하는 책은 인문학서'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알라딘 중고 장터'에서 가장 빈약한 서고는 인문학 분야'이다. 적게 팔리지만 책 주인으로부터 가능 늦게 버려지는 책이 바로 인문학서'이다. 김미경의 말대로 책은 잘못 없다. 책을 고르는 대중의 안목이 문제다. 사랑과 사탕을 혼동하지 말자.

 

 

 


 

 

 

 

 

 

 

 

책은 출판사가 만들지만 헌책은 책 주인이 만든다.

 

 

며칠 동안 100편에 가까운 글을 " 올렸다. "  내가 이 문장에 < 쓰다 > 라는 동사를 굳이 쓰지 않은 이유는 전에 사용하던 블로그에 있던 글(들)을 이곳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이미지 하나 첨부하고 서체'를 바꾸는 정도가 내가 알라딘 서재'에서 했던 전부다. 그동안 이삿짐을 풀고 책장을 정리한 꼴이다. 이젠 얼추 다 정리가 된 것 같다. 차분한 마음으로 첫 번째 독서 일기'를 " 쓴다. "

 

오래된 잡지'를 샀다. 서른 권 정도니 크게 들인 것이다. 그것도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의 월간 영화 잡지 키노'를 말이다. 학창시절 때 용돈을 받은 기억이 없어서 명절 때 받은 돈으로만 잡지'를 사다보니 이 빠진 옥수수 모양이 됐다. 12, 1월호는 있는데 2, 3, 4, 5, 6월호는 없고, 7, 8월호는 있는데 9, 10, 11월호는 없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사서 읽지 못했던 것을, 빌려 읽느라 조심스럽게 읽었던 잡지를 이제 다시 읽는 것이다. 근 20년 전의 잡지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 기분이 묘하다. 한껏 멋을 낸 모델의 패션이 촌스러울 때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오래 전 잡지'라는 것을 각인시켜 줄 뿐 그다지 생경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앳된 최진실의 인터뷰나 이경영의 스틸 사진'을 볼 때이다. 그들은 10년 후의 일들은 까마득히 모른 채 방긋 웃고 있었다. 소녀의 들뜬 열의, 세상에 대한 낙천적 호의 그리고 성공에 대한 굳은 결의. 그런 것들. 누가 알았으랴. 운명이라는 이름의 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반면에 한류 스타의 낯선 모습도 종종 보인다. 단역으로 스틸 사진 프레임의 끝에 있는, 스치고 지나가는 촬영 현장에 찍힌 모습이 이채롭다. 알고 있었을까 ? 누구는 10년 후에 몰락하고, 누구는 10년 후에 우뚝 솟은 스타가 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또... 모른다. 10년 후의 어느 독자가 10년 전 오늘의 잡지를 보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잭 상태는 새책이나 다름없었다. 볕을 받아서 누렇게 변색이 되었을 뿐, 읽은 흔적은 거의 없다. 구겨진 흔적도 없고, 밑줄을 긋거나 잘생긴 리버피닉스의 사진을 오린 흔적도 없다. 하긴 누가 월간 잡지따위'를 읽으면서 밑줄을 긋겠는가. 하지만 서운하다. 흔적(밑줄)이란 일종의 고백'이다. 그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헌책을 읽을 때 발견하게 되는 책주인의 밑줄을 볼 때마다, 나는 읽기를 잠시 멈추고 밑줄'만을 본다. 밑줄을 긋는다는 행위는 책의 주인이 책의 저자에게 보내는 동의, 공감, 하이파이브'다. 비록 밑줄 친 문장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는 그 문장을 깊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책 주인은 밑줄로 자신의 생각을 " 쓴다. "

 

보르헤스'의 단편 <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은 필사의 대가 피에르 메나르'가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 를 마침표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 적음으로써 원전을 능가하는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이야기'다. 여기서 피에르 메나르의 필사는 표절이 아니라 창조'다. 여기서 굳이 저자의 죽음이나 독자 반응 이론, 시뮬라시옹, 현상학, 후기구조주의 등의 딱딱한 먹물 꼰대 스타일로 풀어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자/텍스트'는 세르반테스이고, 독자/수용자'는 피에르 메나르'는 점이다. 그러니깐 돈키호테의 애독자 피에르 메나르의 필사는 곧 밑줄'에 대한 은유이다. 밑줄은 쓰는 행위'이다. 밑줄이 하나의 완성된 " 묶어서한말 " 이라면, 서표 대신 모서리를 접은 흔적은 마침표와 쉼표이다. 그리고 책 사이사이에 끼워진 오래된 영수증이나 극장표 등'은 독자의 딴생각'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헌책의 역사를 만든다.

 

▶ 묶어서한말 : 깨알오소리사전을 참조하라.

 

 

사실 소설가들은 모두 제 2의 피에르 메나르'였다. 이 밑줄(들)을 모아서 결국은 자신의 책을 완성하는 것이다. 박민규, 김연수, 김애란, 천명관 등은 모두 수천 번의 밑줄 끝에 자신의 글을 완성한 사람들이다. 새책 같은 헌책'보다 더 풍요로운 것은 헌책 같은 헌책'이다. 헌책의 가치는 흔적에 있다. 밑줄이나 메모 그리고 모서리가 접힌 흔적은 책의 텍스트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소설은 소설가가 만들고, 새책은 출판사가 만들지만, 헌책은 책의 주인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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